무정차 통과
94화
청문회장 방청석은 텅 비었다. 오전 일곱 시 삼십분, 청문회 속개까지 두 시간 반이 남은 시각이었다. 이지원은 방청석 앞줄 왼쪽 끝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놓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음이 빈 의자들 사이로 번졌다.
이지원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는 철도특별사법경찰 압수수색 팀장이었다.
“완료했습니다. 부엌 찬장 이중 바닥에서 장부 세 권, USB 한 점 확보.”
이지원이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이메일이 도착했다. 첨부 파일 세 개. 압수물 사진과 목록.
“장부에 정치인 이름 나옵니까.”
“국회의원 세 명 확인했습니다. 금액과 일자도 기재돼 있습니다.”
이지원의 왼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 손가락이 터치패드를 움직였다.
압수물 봉투 사진이 화면에 떠올랐다. 투명한 비닐 봉투 안으로 붉은 장부 세 권이 포개져 있었다. '2015-2017 회계', '2018-2020 회계', '2021-2024 회계'. 검은 유성 매직 글씨가 형광등 빛을 받아 반사됐다.
“실물은 지금.”
“봉인 후 호송 중입니다. 청문회장까지 한 시간 정도.”
USB 메모리 사진이 다음 파일이었다. 검은색 플라스틱 케이스에 은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스티커에는 볼펜으로 '거래내역_2019-2023'이라고 적혀 있었다.
“장부 촬영본도 보냈습니다. 주요 페이지만 우선 촬영했습니다.”
이지원이 새 파일을 열었다. 장부의 안쪽 페이지였다. 수기로 빼곡히 적힌 숫자와 이름. 왼쪽 칸에 날짜, 가운데 칸에 수취인, 오른쪽 칸에 금액. 펜의 필압이 강해 종이 뒷면까지 글씨가 배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이지원은 장부 촬영본 중 주요 내역을 캡처했다. 날짜와 금액이 선명한 세 페이지를 골라 하나의 PDF로 묶었다. 그다음 감사실 서버에 업로드하고, 위원장 이메일로 발송했다. 메일 본문에는 다섯 줄만 적었다.
'별장 압수수색 결과: 회계 장부 3권, USB 1점 확보. 정치인 실명 3인 확인. 청문회 속개 전 위원장님 태블릿에 공유 요청.'
전송 완료를 확인한 이지원이 노트북을 덮었다. 방청석 뒤쪽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오전 아홉 시. 청문회장 문이 열리고 속기사가 들어왔다. 이어서 보좌관들이 위원장석 측면을 정리했다. 이지원은 방청석 앞줄에 앉아 휴대폰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복도 측면 문이 열렸다. 윤태호가 법률 대리인과 함께 들어왔다.
윤태호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정장 라인은 여전히 정확했지만 넥타이 매듭이 살짝 틀어져 있었다. 그가 피감사인석 앞에 멈춰 섰다. 법률 대리인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윤태호가 화면을 내려다봤다. 손에 든 서류 가방을 내려놓는 동작이 멈췄다.
이지원은 방청석에서 그 정지된 손을 봤다. 윤태호의 왼손 약지, 굵은 금색 인장 반지가 형광등 빛에 반짝이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오른손이 휴대폰을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법률 대리인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다. 윤태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청문회장 중앙을 가로질러 위원장 빈 자리에 닿았다가,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돌아갔다. 눈의 깜빡임이 한참 동안 없었다.
이지원은 시계를 봤다. 아홉 시 십이 분.
윤태호가 피감사인석에 앉았다. 서류 가방을 열지 않았다. 양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 손등으로 핏줄이 옅게 솟아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뒤집어 화면을 탁자 쪽으로 놓았다. 그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법률 대리인이 재킷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윤태호는 그 메모지를 쳐다보지 않았다. 텅 빈 위원장석을 응시할 뿐이었다.
방청석 뒤쪽에서 신우진이 들어왔다. 그는 이지원의 옆자리에 앉으며 피감사인석 쪽을 한 번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전 열 시 십오 분. 위원장이 목탁을 두 번 두드렸다.
“청문회를 속개합니다.”
위원장이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화면에는 붉은 장부 촬영본이 띄워져 있었다.
“본 위원회는 금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소재 별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집행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압수물은 회계 장부 3권, USB 메모리 1점입니다.”
방청석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위원장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피감사인석을 바라봤다.
“장부에는 국회의원 3인의 성명과 후원 금액, 입금 일자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와 함께, 이 부품 납품 계약과의 연관성을 검토할 것입니다.”
위원장이 태블릿 화면을 확대했다.
“장부에 등장하는 국회의원은 한상진 의원, 그리고 두 분의 의원입니다. 한상진 의원의 경우 2019년 3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연 2회, 총액 3억 4천만 원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법률 대리인이 일어났다.
“위원장님, 절차적 이의를 제기합니다.”
“근거는.”
“해당 장부의 압수 경위와 증거 능력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압수물이 청문회에 반입된 지 아직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피감사인 측에 검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위원장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안경 너머로 법률 대리인을 직시했다.
“압수 절차는 적법한 영장에 따라 집행되었고, 압수물 목록과 촬영본은 이미 감사실 서버에 등록되었습니다. 본 위원회는 청문회 운영 규칙 제14조 2항에 따라 이 증거를 채택합니다.”
법률 대리인이 다시 입을 열려 했다.
“위원장님──”
“증거 채택은 확정되었습니다. 피감사인 윤태호, 장부에 기재된 후원금과 부품 납품 계약의 연관성에 대해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문회장이 조용해졌다.
윤태호는 앉아 있었다. 양손이 여전히 탁자 위에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물렸다.
위원장이 다시 물었다.
“윤태호 피감사인, 장부에 기재된 국회의원 후원금에 대해 아는 바를 진술해 주십시오.”
윤태호의 오른손이 탁자 위에서 살짝 움찔했다. 인장 반지가 탁자 모서리에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입을 열지 않았다.
법률 대리인이 몸을 기울였다. 귀엣말을 건네려 했지만 윤태호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 손이 다시 탁자 위로 떨어졌다.
위원장이 목차를 넘겼다.
“묵비권 행사로 기록하겠습니다.”
피감사인석 뒤쪽의 보좌관이 속기사에게 짧게 손짓했다. 탁탁, 키보드 소리가 이어졌다.
신우진은 방청석에서 윤태호의 왼손을 보고 있었다. 탁자 위에 평평하게 붙은 손바닥. 손가락 사이로 힘이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 손이 7년 전 검수실 책상 위에서 서류를 집어 던지던 손과 같은 손인지 떠올렸다. 선임의 조사 노트에 적혀 있던 구절이 스쳤다. '구매처 윤태호 대리, 전량 검수 통과 협조 바람.'
그 문장 하나가 오늘 아침 회계 장부까지 이어지는 데 7년이 걸렸다.
신우진은 노트를 집어넣고 피감사인석을 다시 바라봤다. 윤태호는 고개를 들지 않고 탁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넥타이 매듭이 어느새 더 기울어져 있었다.
위원장이 목탁을 두드렸다.
“장부 증거는 공식 채택되었으며 본 위원회는 필요 시 관계자 소환을 통해 추가 검증을 진행할 것입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기 전, 10분간 정회합니다.”
망치 소리가 짧게 울렸다.
땀에 젖은 셔츠 등판이 간신히 마르자 회의장 안은 숨 막히는 정적 대신 환풍기 소리로 가득 찼다. 반쯤 비워진 피감사인석 건너편으로 오전의 마지막 질의서가 하나둘 스테이플러에서 분리되고 있었다.
위원장이 목탁을 한 번 내리쳤다.
“윤태호 증인. 이 위원회가 수차례 질의하였습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의 계약 갱신 과정에서, 동일한 부품 코드 B4-BV-2287이 매번 입찰 조건을 통과한 경위를 설명해 주십시오.”
윤태호는 법률 대리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짙은 남색 수트의 소매가 팔뚝을 팽팽하게 감쌌다. 오른손 약지의 금색 인장 반지가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대답하지 않았다.
위원회 좌측의 법무팀 선임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종이 소리가 마이크를 탔다.
“답변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위원장이 방청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추가 증거를 제출할 증인이 있습니까.”
신우진이 일어났다. 왼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이지원이 3분 전 건넨 태블릿이었다. 화면에는 문서 체인 완성본이 열려 있었다. 위원석 좌측 모니터로 태블릿 화면이 전송되었다.
“신우진 증인, 증언대로 나오십시오.”
검수복 상의를 입은 채 증언대로 걸어갔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 유성 매직이 꽂혀 있었다. 마이크 앞에 서서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7년 전 탈선 사고의 부품은 TH1187-04. 금번 무정차 통과 사고 부품과 동일 제조사 코드 DH, 동일 금형라인 2A입니다.”
화면에 부품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떴다. 왼쪽은 7년 전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TH1187-04, 오른쪽은 올해 사고 부품 B4-BV-2287. 패킹 재질 모두 HNBR. 마모 위치 동일.
“부품 코드는 바뀌었지만 인장강도 16.4뉴턴, 패킹 재질 불일치는 동일합니다.”
신우진이 태블릿을 한 번 스와이프했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금일 오전 별장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회계 장부입니다.”
방청석에서 숨소리가 몇 개 동시에 멎었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열고 압수수색 결과 보고서 파일을 열었다. 손가락이 터치패드 위에서 멈췄다.
화면에 붉은 표지의 장부가 떴다. 검은 유성 매직으로 쓴 ‘2015-2017 회계’, ‘2018-2020 회계’, ‘2021-2024 회계’. 이중 바닥에 포개져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신우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태블릿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2018년 9월 3일. B4-BV-2287 로트 단가 협상일. 같은 날짜, 한상진 의원실 후원금 2천만 원.”
화면이 반으로 갈라졌다. 왼쪽은 장부의 해당 페이지, 오른쪽은 은행 이체 기록. 날짜 일치. 금액 일치.
“2021년 3월 15일. 동일 로트 계약 갱신일. 당일 오후 후원금 3천만 원.”
스크린에 표시된 로트 번호는 KD-2037-087, KD-2037-114, B4-BV-2287. 세 개의 로트 번호가 시간순으로 정렬되었다. 그 옆으로 6년간 12회의 후원금 이체 기록이 줄을 이었다.
“시험 성적서 발급일 이후 평균 4.3일 안에 후원금이 입금되었습니다.”
신우진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위원석을 직시했다.
“후원은 부품 인증 태만의 대가입니다.”
피감사인석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윤태호의 법률 대리인이 손을 들려다 멈췄다. 위원장과 시선이 마주친 탓이었다. 위원장이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법률 대리인이 손을 내렸다.
“추가 시간을 요청합니다만 .”
“기각합니다.”
위원장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망치를 들지도 않았다.
“증인이 제출한 증거 자료는 청문회 운영 규정 제14조 2항에 따라 정식 증거로 채택합니다.”
청문회장 정면 시계가 오전 11시 28분을 가리켰다.
복도 쪽 출입문이 열렸다.
경찰관 2명이 알루미늄 증거물 운반 케이스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케이스 표면에 ‘압수물-봉인-증거번호 AU-2024-0087-10’이라는 붉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의 메탈 시계를 무의식적으로 만졌다. 시계 초침이 11시 31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위원장이 증거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실물 확인 절차를 시작합니다.”
경찰관이 케이스의 봉인 테이프를 절취선을 따라 뜯었다. 케이스 뚜껑이 열렸다. 흰 면장갑을 낀 위원회 사무국 직원이 내부에서 장부 세 권을 꺼냈다. 한 권씩 비닐 증거물 봉투에 담긴 채였다.
직원이 위원석 중앙으로 걸어가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위원장이 세 권을 왼쪽부터 차례로 집어 표지를 확인했다. 안경 너머로 비닐 아래 검은 유성 매직 글씨가 투과되어 보였다.
“2015-2017 회계.”
두 번째 권.
“2018-2020 회계.”
세 번째 권.
“2021-2024 회계.”
방청석의 모든 시선이 피감사인석으로 쏠렸다. 윤태호는 두 번째 장부의 표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왼쪽 턱선의 칼자국 흉터 위로 근육 한 가닥이 짧게 떨렸다.
깜빡임이 멎었다. 오른손 약지의 반지를 왼손 검지로 천천히 돌렸다. 3초쯤 그렇게 앉아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올백으로 정리한 머리카락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 올 풀려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본 위원회는 증인 윤태호와 장부에 기재된 자들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 절차를 개시할 것을 결의합니다.”
위원장이 처음으로 망치를 들었다. 청문회장 내 모든 소리가 멎었다.
“이상으로 1차 세션을 종료합니다.”
망치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윤태호가 몸을 일으켰다. 동작이 반 박자 느렸다. 의자 팔걸이를 짚은 손가락이 살짝 미끄러졌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재빨리 팔을 받쳤다. 윤태호는 그 팔에 몸을 기댄 채 복도 쪽 측면 문으로 걸어갔다. 걸음걸이에서 평소의 정확한 보폭이 사라져 있었다. 문이 닫혔다.
법률 대리인이 서류 가방을 챙겨 뒤따라 나갔다.
이지원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덮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왼쪽 눈썹이 내려갔다. 손에 쥔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붉은 장부 사진이 떠 있었다. ‘압수물 확인 완료 11:37’이라는 메시지가 화면 하단에 한 줄 올라와 있었다.
방청석에서 신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 세션 종료 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는 동안에도 허리를 펴지 못했다.
증거대 위에 놓인 실물 장부 세 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 두께는 3센티미터 남짓. 비닐 봉투 너머로 붉은 표지가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선명했다. ‘2018-2020 회계’라고 쓰인 장부의 등뼈에는 접힌 자국이 여러 겹 겹쳐 있었다.
그 장부 안에 7년 전 탈선 사고 부품의 로트 번호와 동일한 시기에 작성된 납품 기록이 들어 있었다. 납품일과 후원금 이체일이 같은 줄에 적혀 있었다.
신우진의 오른손에는 선임의 조사 노트 사본이 접힌 채 쥐어져 있었다. 노트 표지의 ‘TH1187-04 검수 거부 — 2017년 3월 11일’이라는 구절이 접힌 면 사이로 반쯤 보였다.
왼손 집게손가락의 유압유 흉터가 노트 모서리에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