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95화

위원장이 망치 소리로 폐회를 선언한 지 십 분이 지났다.

청문회장 복도 측면 문이 열려 있었다. 윤태호가 사라진 통로다. 복도 너머로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신우진만 남아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선 낡은 가죽 냄새가 올라왔다.

증거대 위의 장부 세 권은 그대로였다. 비닐 봉투 너머 붉은 표지가 형광등 아래서도 끈적하게 빛났다. 아무도 치우지 않은 증거. 신우진은 그 붉은 빛을 잠시 바라보았다.

신우진이 천천히 손을 폈다.

접혀 있던 선임의 조사 노트 사본이 펼쳐졌다. 종이가 오래 접혀 있던 자리마다 얇게 닳아 있었다. ‘TH1187-04 검수 거부 — 2017년 3월 11일’. 잉크가 번진 흔적 위로 시간이 쌓여 있었다.

왼손 집게손가락 흉터가 그 글자 위를 지나갔다. 두 번째 마디를 가로지르는 하얀 선. 7년 전 탈선 사고 현장에서 잔해를 들추다 생긴 자국이었다. 그 손가락이 2017이라는 숫자 위에서 멈췄다.

“신우진 씨.”

이지원의 목소리였다. 청문회장의 정적을 가르는 낮은 음성이었다.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지원이 방청석 통로에 서 있었다. 구겨진 재킷 소매가 팔꿈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한 손에는 닫힌 노트북, 다른 손에는 휴대폰. 화면이 아직 켜져 있었다. 손등에선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났다. 철야 근무의 흔적이었다.

“압수물 검증 절차는 위원회 사무국에서 넘겼습니다. 장부 원본은 이송 준비 중이고, USB는 감사실 서버로 사본 전송 완료됐습니다.”

신우진이 노트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셔츠 천 너머로 노트의 모서리가 심장 쪽을 눌렀다.

“사본.”

“네. 위원장이 사본 열람을 허가했습니다. 정치인 실명 세 명 전부 확인했어요.”

이지원이 휴대폰을 내렸다. 화면 속 붉은 장부 사진이 꺼졌다. 하지만 그 붉은 빛은 눈 안에 남아 있었다.

“한상진 의원 포함. 총액 삼억 사천만 원이 기록된 계좌와 부품 계약 시점이 전부 겹칩니다.”

신우진이 일어났다. 방청석 의자가 천천히 접혔다. 그 소리가 빈 회의장 안에 길게 울렸다.

“겹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지원이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지퍼 닫는 소리가 났다.

“부족하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납품 기록이 필요해요. 장부에 적힌 날짜에 실제로 어떤 부품이 들어왔는지.”

신우진이 방청석 앞줄로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바닥의 카펫이 눌렸다. 좌석 아래 놓아둔 검은 가방에서 정비 일지 한 권을 꺼냈다. 오래된 기름과 윤활유 냄새가 올라왔다. 표지는 기름에 절어 반들거렸고, 모서리는 둥글게 닳아 있었다.

“여기 있다.”

신우진이 일지를 폈다. 종이 사이로 먼지가 날렸다. 뒷부분의 빈 페이지까지 넘기고 중간쯤 멈췄다. 손가락 끝이 익숙한 페이지에 닿았다.

“2019년 3월 14일. B4-BV-2287, 입고 수량 12개. 검수자 신우진.”

이지원이 다가왔다. 신우진의 손가락이 가리킨 줄을 노트북 화면과 번갈아 봤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장부 첫 번째 후원금 이체일이 2019년 3월 13일입니다.”

“하루 차이다.”

“네. 납품 전날 후원금이 먼저 들어갔어요.”

신우진이 일지의 다른 페이지로 넘겼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기름 자국이 페이지를 가로질렀다.

“2021년 9월 7일. 같은 로트 번호, 입고 수량 8개.”

이지원이 장부 사본 파일을 스크롤했다. 화면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스크롤 바가 느려지더니 손가락이 멈췄다.

“2021년 9월 6일. 오전 후원금 이체. 오후에 성적서 발급.”

신우진이 일지를 덮었다. 표지가 내려앉으며 공기가 빠져나갔다.

“패턴이 똑같다. 후원금이 먼저, 부품은 그다음.”

그때 방청석 뒷문 쪽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카펫을 밟는 둔탁한 소리가 아닌, 바닥을 직접 디디는 묵직한 소리.

박중호였다.

왼쪽 팔에 여전히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 벨크로가 낡아서 끝부분이 살짝 들떠 있었다. 손에는 A4 크기의 서류 봉투.

얼룩이 진 갈색 봉투의 한쪽 귀퉁이가 접혀 있었다. 걷는 속도는 느렸지만 보폭은 흔들리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보조기의 경첩이 낮게 삐걱댔다.

“뭘 확인했나.”

신우진이 돌아봤다.

“장부의 후원금 일자와 제 정비 일지의 입고일. 전부 하루 차이로 맞아떨어집니다.”

박중호가 봉투를 신우진 쪽으로 내밀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피로인지 긴장인지 구분되지 않는 떨림이었다.

“이걸로 확인할 게 더 있다.”

신우진이 봉투를 받았다. 열어보니 낡은 결재 공문 한 장과 품질 의혹 보고서 사본이었다. 서류에서 오래된 서랍 냄새가 났다. 금고 속 어둠의 냄새였다.

보고서 첫 장 상단에 ‘QC-2009-0031’. 그 아래로 부품 번호가 보였다.

‘KD-2037-114, 인장강도 16.4뉴턴 — 기준치 대비 2.1뉴턴 부족.’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9년 전 보고서.”

“그렇다. 오늘 새벽에 금고에서 꺼냈다.”

박중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으로 보고서를 가리켰다. 눈동자엔 말간 충혈이 퍼져 있었다.

“여기에 적힌 부품 번호 보고 말해 봐.”

신우진이 보고서를 다시 내려다봤다. 로트 번호 위로 손가락이 멈췄다. 손톱이 종이를 살짝 눌렀다.

“KD-2037-114. 지금 우리가 추적 중인 부품의 구형 로트입니다.”

“인장강도는.”

“16.4뉴턴. 이번 사고 부품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박중호가 결재 공문을 집었다. 종이가 그의 손에서 경련처럼 떨렸다.

“이 보고서를 묵살한 놈이 당시 구매처 대리였던 윤태호다. 그리고 결재 라인에 같이 서명한 과장 이름이 여기 있다.”

공문 하단의 결재란을 가리켰다. 손가락 아래로 구매처 과장 — 강인수. 도장은 9년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붉었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이 부팅되는 짧은 시간 동안 셋의 침묵이 흘렀다.

“강인수 과장은 현재도 구매처에 재직 중입니다. 7년 전 긴급 조달 예외 규정을 승인한 결재자와 동일인이에요.”

신우진이 공문을 접어 정비 일지 사이에 끼웠다. 서류 두 장이 닳은 종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증거 체인이 연결된다. 9년 전 보고서의 부품 결함, 7년 전 탈선 사고, 이번 무정차 통과까지 전부 같은 놈들의 결재 라인이다.”

박중호가 신우진의 어깨를 짚었다. 보조기를 찬 팔이 무게를 견디며 떨렸다. 무거운 손이었다. 금고 속에 9년 동안 갇혀 있던 보고서만큼 무거운 손.

“가서 증언해라. 지금.”

신우진이 증거대를 바라봤다. 장부 세 권은 아직 거기에 있었다. 붉은 표지가 누군가의 심장처럼 가만히 있었다.

“위원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청석에서 속기사가 복도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노트북을 든 손이 피곤해 보였다. 위원장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피감사인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빈 의자를 보는 눈은 깊었다.

신우진이 증인석으로 걸어갔다. 걸음마다 증거대와 가까워졌다. 왼손에는 정비 일지와 결재 공문. 오른손에는 9년 전 보고서 사본.

이지원이 그 뒤를 따랐다. 구두 굽이 바닥을 짧게 울렸다. 손에는 구매처 결재 기록 파일 묶음. 클립보드에 가지런히 정리된 종이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볍게 떨렸다.

“위원장님. 증거 보충 제출을 요청합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피로가 깊게 패인 얼굴이었다. 눈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증인 신우진. 무슨 자료입니까.”

신우진이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조명 빛이 보고서를 관통했다.

“2009년 10월 14일자 품질 의혹 보고서. 작성자는 당시 검수관 박중호.”

결재 공문을 펼쳤다. 접힌 자국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를 반려한 구매처 결재 라인. 대리는 윤태호, 과장은 강인수입니다.”

이지원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방금 제가 확인한 장부의 정치 후원금 이체 시점과, 신우진 씨의 정비 일지 부품 입고일이 모두 24시간 이내로 일치합니다. 후원금이 먼저, 납품이 다음입니다.”

노트북 화면을 위원장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 그래프로 정리된 시간대가 떠올랐다.

“동일 패턴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소 다섯 차례 반복됩니다. 전부 동일 납품사, 동일 로트 번호입니다.”

위원장이 태블릿을 들어 속기사에게 지시했다. 태블릿의 차가운 빛이 위원장의 얼굴을 비췄다.

“증거 번호 부여. AU-2024-0087-08로 등록하십시오.”

박중호가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보조기가 의자 팔걸이에 부딪혀 짧은 금속음을 냈다.

“위원장님. 제가 보충 증언하겠습니다.”

위원장이 목탁을 한 번 두드렸다. 낮은 울림이 청문회장 구석까지 퍼졌다.

“증인 박중호, 증인석으로 나오십시오.”

박중호가 느린 걸음으로 증인석에 섰다. 걸을 때마다 숨이 짧게 끊겼다. 보조기를 찬 팔이 살짝 떨렸다.

증인석 난간을 오른손으로 짚고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허파 깊이 공기를 채우는 소리가 마이크에 실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 보고서, 9년 동안 제 금고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당시 구매처 대리 윤태호가 전화로 지시했습니다. 그 보고서 제출하면 검수팀 전체가 인사 조치라고.”

위원장이 물었다.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끝이 약간 갈라져 있었다.

“그 지시를 받은 날짜는.”

“2009년 10월 16일. 보고서 작성 이틀 후입니다.”

이지원이 결재 공문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반려 도장 위에 멈췄다.

“이 공문에 찍힌 반려 날짜도 10월 16일입니다. 구매처 과장 강인수의 결재 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위원장이 공문을 직접 확인했다.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날짜를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속기사가 자판을 치는 소리가 빨라졌다. 키보드 소리가 빈 청문회장에 연속으로 울렸다.

“본 위원회는 이 증거를 채택합니다. 구매처 과장 강인수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하십시오. 긴급 조달 예외 규정의 남용 경위도 추가 의제로 포함합니다.”

윤태호가 피감사인석에 없었다. 변호인만 남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변호인의 손이 느려졌다. 장부 쪽을 한 번 쳐다보고 서류 가방을 닫았다. 가방의 자물쇠가 닫히는 소리는 예상보다 컸다.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짧게 끌렸다.

“본 위원회는 오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윤태호 납품사의 영구 입찰 자격 박탈 절차를 개시할 것을 권고합니다.”

목탁 소리가 두 번. 청문회장 벽에 소리가 부딪혔다.

“또한 구매처 직원 강인수 외 관련자 전원에 대한 징계 및 형사 고발을 결정합니다.”

신우진이 증인석에서 물러났다. 증인석의 나무 난간이 손바닥에서 잠시 온기를 뺏어갔다. 정비 일지를 펼쳤다. 마지막 빈 페이지에 유성 매직을 꺼내 썼다. 매직의 냄새가 올라왔다.

TH1187-04, B4-BV-2287, KD-2037-114. 세 개의 로트 번호.

그 아래 한 줄을 더 썼다. 매직 끝이 종이에 살짝 눌렸다.

‘기록 완료. 2024년 9월 19일.’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목탁을 세 번 두드렸다. 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상으로 합동 청문회를 폐회합니다.”

방청석이 썰물처럼 비기 시작했다. 의자 접히는 소리, 발걸음 소리, 낮은 대화 소리가 한데 섞였다. 한경숙이 노조 기록 파일을 품에 안고 일어났다. 최명식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박중호의 팔을 부축했다. 박중호의 보조기가 복도 끝으로 천천히 멀어졌다.

이지원이 신우진 곁으로 걸어왔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엔 옅은 안도가 떠 있었다. 신우진은 아직 일지를 덮지 않고 서 있었다.

신우진이 일지를 들어 보였다. 방금 적은 로트 번호 세 줄이 젖은 잉크로 반짝였다.

“이제야 한 줄이 완성됐습니다. 7년이 걸렸네요.”

이지원이 그 줄을 내려다봤다.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잉크의 젖은 빛이 반사됐다.

“기록으로 남기셨네요.”

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지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심장 위로 다시 무게가 더해졌지만 이전과는 다른 무게였다. 유성 매직도 함께 밀어 넣었다.

둘은 나란히 청문회장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증거대 위에는 붉은 장부 세 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정차 통과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