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 통과
96화
청문회장의 문이 닫혔다. 두꺼운 방음 목재가 공기를 밀어내며 닫히자, 회의장 안에 남은 공기마저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다. 형광등이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벽을 따라 흘렀다.
폐회 선언 후 10분. 복도에 있던 기자들이 삼삼오오 흩어졌다. 어떤 이는 커피를 뽑아 들고, 어떤 이는 노트북을 접어 가방에 쑤셔넣었다. 그 소란은 곧 사라졌다.
신우진은 증인석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딱딱한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친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에 밴 오래된 유압유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이지원이 다가왔다. 낮은 굽의 구두 소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또렷하게 울렸다.
“잠깐 앉아 계십시오. 곧 속개됩니다.”
이지원이 방청석 앞줄로 손짓했다.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먼지가 얇게 앉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위원장이 자리로 돌아왔다. 가죽 의자가 체중을 견디며 짧게 끽 소리를 냈다. 속기사가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손톱 끝에 바른 투명 매니큐어가 형광등 빛에 반짝였다.
“합동 청문회를 속개합니다.”
목탁 소리 하나. 작지만 날카로운 음향이었다. 마치 쇠붙이를 두드리는 듯한 여운이 허공에 남았다.
위원장이 서류 한 장을 들었다. 종이 모서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방금 전 정회 시간에 윤태호 측 법률 대리인에게서 긴급 이의 제기가 접수되었습니다. 먼저 이것을 다루겠습니다.”
윤태호 옆자리의 변호사가 일어났다. 검은 정장, 은색 커프링크스. 왼손에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메모지는 가장자리가 칼로 벤 듯 정확히 반으로 접혀 있었다. 커프링크스에 청문회장 천장 조명이 작은 점으로 맺혔다.
“본 대리인은 증인 신우진의 증인 적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느린 동작이었다. 목덜미에 잔 근육이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변호사가 증인석 앞으로 두 걸음 걸어왔다. 구두 밑창이 마룻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마찰음이 번졌다. 그는 증인석과 방청석 사이의 경계선 바로 앞에서 발을 멈췄다.
“증인은 7년 전, 2017년 11월 2일 발생한 탈선 사고 당시 그 열차의 정비 담당자였습니다. 이 사고로 증인의 동료였던 정비 2팀 강재호 주임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사고 충격으로 객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인 채 발견됐습니다.”
이지원의 손목이 움찔했다. 메탈 시계가 방청석 팔걸이에 스쳤다. 짧고 경쾌한 금속성 소리가 소음처럼 퍼졌다.
변호사가 속기록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종이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증인은 이 청문회에서 지난 한 달간 제출한 증거의 상당 부분을 해당 동료의 이름으로 수집했습니다. 사망한 동료가 남긴 자료를 마치 자신의 발견인 것처럼 제시해왔습니다. 당사자의 객관성이 담보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위원장이 신우진을 바라봤다. 안경 너머의 눈빛에 어떤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
“증인, 이의에 대해 답변하시겠습니까.”
신우진이 증인석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는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겼다. 스탠드 마이크의 유연한 목 부분이 약간 휘었다.
“7년 전 사고 당일, 제 담당 구역은 제동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아침 작업 배정표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제 구역은 3호차 출입문이었습니다.”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답변을 읽는 듯한 평탄함이었다.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감사실 보관 정비 일지에 있습니다. 작업자별 구역 배정과 실제 점검 항목이 모두 기재된 서류입니다.”
위원장이 이지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 근육이 셔츠 칼라에 스쳤다.
“감사실 관계자. 확인 가능합니까.”
이지원이 태블릿을 켰다. 화면이 구동되며 푸른빛이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손가락이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손톱이 강화유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속기사의 자판 소리 사이로 섞여 들렸다.
“2017년 11월 2일자 정비 2팀 일지 검색합니다.”
20초 정도의 침묵. 수십 개의 파일명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파란 링크 텍스트들이 그녀의 눈동자 위로 줄지어 흘러내렸다. 이지원의 눈이 한 파일명에서 멈췄다.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확인했습니다. 문서 번호 MT-2017-1102-03.”
이지원이 태블릿을 들고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킷 자락이 방청석 팔걸이에 스쳤다.
“위원장님, 해당 일지에 따르면 당일 신우진 주임의 담당 구역은 3호차 출입문 개폐 장치 점검입니다. 제동 장치 정비 항목에는 강재호 주임과 박중호 주임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서명도 날인되어 있습니다.”
변호사가 한 걸음 물러났다. 구두 뒤축이 마룻바닥을 조용히 디뎠다.
이지원이 덧붙였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나서였다.
“문서 원본은 감사실 서버에 보존 중입니다. 타임스탬프와 작업자 전자 서명 포함 전체 로그를 위원회에 바로 전송하겠습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약간 치켜들며 이지원 쪽으로 손바닥을 보였다.
속기사가 이지원의 말을 빠르게 받아 적었다. 기계식 키보드의 스위치가 경쾌하게 연타음을 냈다.
변호사가 메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접은 메모지가 양복 안주머니로 사라지는 순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이 떨렸다. 잠시 윤태호와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5도쯤 기울이며 윤태호의 왼쪽 눈을 올려다 보았다. 윤태호의 오른손 약지가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 반지를 낀 적 없던 자리에 가느다란 살갗 주름만 패여 있었다.
탁. 작지만 분명한 신호음이었다.
변호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 대리인은 정비 구역 배정 기록의 진위를 다투지 않습니다. 다만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증인은 강재호 주임과 4년간 함께 근무했습니다. 같은 정비 팀, 같은 라커룸, 같은 야간 교대조였습니다. 사고 이후 동료의 개인 조사 노트를 사적으로 보관해왔습니다. 유족에게도 반환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트는 외부 감사나 징계 절차에 제출한 적이 없는, 공식 기록이 아닌 사적 문서입니다.”
신우진의 왼손이 허벅지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이 접히며 손등의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손가락의 유압유 흉터가 창백해졌다. 오래된 화학 화상 자국이 형광등 아래서 희뿌옇게 떠올랐다.
변호사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증인석으로부터 불과 1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그에게서 옅은 향수 냄새가 번졌다. 시트러스 계열의 가벼운 향이었다.
“그 노트를 7년간 보관하며 본인이 직접 증거로 가공해온 증인은 이 청문회에서 조사자가 아닙니다. 피해자입니다. 동료의 죽음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유가족과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청문회장이 조용해졌다. 벽에 걸린 스피커의 화이트노이즈마저 멀게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누군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위원장이 신우진을 바라봤다. 안경테 너머의 눈이 가늘어졌다.
“증인. 강재호 주임의 조사 노트를 보관 중입니까.”
신우진이 허벅지 위의 주먹을 풀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펴지며 마디가 하나씩 소리를 냈다. 오른손 검지가 증인석 난간에 짧게 획을 그었다. 마치 난간의 먼지를 밀어내는 듯한, 그러나 실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은 허공의 동작이었다.
“그렇습니다.”
방청석 뒤쪽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날카로운 흡기음이 공기를 갈랐다. 이내 입을 막는 천 소리가 났다.
변호사가 몸을 돌려 위원장을 향했다. 양복 재킷의 뒷자락이 허리선을 따라 팽팽하게 접혔다.
“증인이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이 점에서 증인의 객관성은 결정적으로 훼손되었습니다. 7년간 사적 문서를 보관하며 공적 절차에 제출할 타이밍을 스스로 결정해왔다는 것은, 증인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해왔음을 보여줍니다. 본 대리인은 강재호 조사 노트를 증거 목록에서 제외하고 증인 신우진의 증인 적격을 재심사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지원이 태블릿 위로 손가락을 멈췄다. 화면 속 커서가 깜빡이며 멈춰 섰다. 왼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눈썹과 눈꺼풀 사이의 주름이 깊어졌다.
강재호 노트의 존재를 공개된 자리에서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청문회 예비 심사에서도, 증거 목록 공개 시에도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정보였다.
감사실 내부 보고서에도 항목명만 기재됐다. ‘고 강재호 주임의 현장 메모’라고. 노트의 구체적 성격, 보관 연한, 누가 보관 중인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지원 자신이 감사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일부러 모호하게 처리한 대목이었다. 개인 소지품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였다.
이지원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손목의 메탈 시계가 팔걸이에 닿았다. 찰칵, 금속이 플라스틱을 스치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울렸다.
그녀의 시선이 윤태호에게서 변호사로, 다시 청문회장 천장 구석의 CCTV로 천천히 움직였다. 카메라의 적외선 표시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녹화 중이었다.
위원장이 망치를 들다가 멈췄다. 나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의 제기의 근거가 되는 정보는 어디서 입수한 겁니까. 증거 목록에도 기재되지 않은 사항입니다.”
변호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입술이 얇게 다물어졌다가 열렸다. 침을 삼키는 목울대의 움직임이 넥타이 매듭 위로 드러났다.
“의뢰인의 내부 조사 결과입니다. 공식 경로를 통해 확보한 정보입니다.”
“내부 조사가 증인의 사적 소지품까지 파악할 권한이 있습니까. 감사실에서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변호사의 왼손이 넥타이 매듭을 짧게 만졌다. 실크 넥타이가 손가락 마디에 반사됐다.
“청문회의 쟁점에 관련된 정보입니다. 입수 경로보다 내용의 진위가 우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증인이 직접 보관 사실을 인정했고, 이로써 진위는 확인되었습니다.”
이지원이 일어났다. 구두 굽이 바닥을 딛는 소리가 예상보다 컸다.
“위원장님.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치를 조용히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강재호 주임의 노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감사실 내부 4명뿐입니다. 감사실장, 담당 과장, 기록물 관리자, 그리고 저입니다. 그중 누구도 이 내용을 외부에 전달한 기록이 없습니다. 접근 로그도 전부 보존되어 있습니다. 노트의 존재가 윤태호 측에 알려진 경위 자체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감사실 내부의 정보 유출 또는 피감사 대상의 불법적 정보 수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윤태호의 턱선이 굳어졌다. 왼쪽의 얕은 흉터가 빛에 반사됐다. 턱뼈를 따라 난 길이 3센티미터쯤의 오래된 상처 자국이 형광등 아래서 유난히 하얗게 떠올랐다. 그의 손가락이 책상 가장자리를 짧게 움켜쥐었다.
신우진이 증인석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동작으로 의자 등받이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위원장님.”
모든 시선이 신우진에게 쏠렸다. 방청석에서 기자들의 카메라가 조용히 연사음을 냈다.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짧게 번쩍였다.
“그 노트는 제 동료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사고 나흘 전부터 시작된 부품 점검 일지이고, 마지막 페이지 날짜는 사고 전날인 11월 1일입니다. 7년간 보관해온 것을 인정합니다.”
신우진이 가슴 주머니에서 접힌 서류를 꺼냈다. 와이셔츠 안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는 체온에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몇 장 되지 않는 사본이었다. A4 용지를 정확히 사등분한 크기로 접혀 있었고, 접힌 선을 따라 종이 섬유가 약간 일어나 있었다.
“전체 공개는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강재호 주임의 부인은 현재 이 청문회장에 와 계십니다. 오늘은 7년 전 부품 결함과 직접 관련된 페이지만 제출하겠습니다.”
위원장이 잠시 생각했다.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몇 페이지입니까.”
“4페이지입니다. 모두 2017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사흘간의 기록입니다. 부품 로트 번호와 마모도 측정값, 검수 통과 경위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위원장이 좌우의 위원들과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왼쪽의 여성 위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원회는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해당 페이지를 제출하십시오.”
신우진이 증인석 앞으로 걸어나와 사본을 증거대 위에 올렸다. 종이가 마호가니 재질의 증거대에 닿으며 바스락, 작은 소리를 냈다. 그의 손가락이 종이 모서리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위원회 직원이 사본을 받아 문서 스캐너에 넣었다. 스캐너 내부에서 초록색 레이저 광선이 한 번 지나갔다.
청문회장 전면 스크린이 켜졌다. LCD 패널이 낮은 휘도로 빛나며 종이의 질감까지 재현했다.
첫 페이지였다. 손글씨가 빼곡했다.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필체.
날카로운 획보다 둥근 곡선이 많은 글씨체였다. 유성 볼펜으로 눌러쓴 자국이 깊었다. 날짜가 상단에 찍혀 있었다.
`2017년 10월 30일.`
그 아래 한 줄. 고딕체도 명조체도 아닌, 오래된 기술자의 손글씨였다.
`TH1187-04 로트, 제동 패드 마모도 기준치 1.8배. 검수 통과됨. 사유: 시험 성적서 정상.`
청문회장이 멈췄다.
속기사의 자판 소리가 끊겼다. 그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완전히 정지했다. 어느 기자의 노트북 타건음도 사라졌다.
방청석 뒤편에 앉은 박중호가 무릎 위에 놓은 보조기를 움켜잡았다.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의 보조기가 손아귀에서 삐걱거렸다. 그의 왼쪽 다리는 7년 전 그 사고 이후로 접히지 않았다.
정적은 15초 정도였지만 더 길게 느껴졌다. 천장에 설치된 공조기의 바람 소리마저 그 순간만큼은 멎은 듯했다.
신우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증인석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증거대 바로 앞에 선 채, 스크린 위의 손글씨를 등지고 서 있었다.
이지원이 태블릿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화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TH1187-04 2017-10-30`을 입력했다. 자동 완성 기능이 과거 감사 기록을 하나씩 제안하기 시작했다.
스크린 위의 친필은 움직이지 않았다. 7년 전 잉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종이에 눌린 펜촉의 깊이, 잉크가 번진 미세한 자국, 모서리를 접다 생긴 작은 구김까지 스캐너가 모조리 읽어냈다.
기준치 1.8배의 마모. 검수 통과. 사유는 시험 성적서 정상. 한 줄 한 줄이 글자가 아니라 균열처럼 보였다.
신우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서 있었다.
증거대 위에는 붉은 장부 세 권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위로 강재호의 손글씨가 빛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