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 통과
97화
위원장이 목탁을 두드렸다.
“합동 청문회를 속개합니다.”
신우진은 증인석에서 일어났다. 무릎 관절이 가볍게 소리를 냈다. 허리를 곧게 폈다. 오른손으로 강재호의 노트 사본을 접어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왼손 검지가 흉터 위를 한 번 쓸었다.
증인석에서 내려오는 세 걸음. 방청석까지 일곱 걸음.
스크린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7년 전 강재호의 손글씨가 그대로 떠 있었다. `TH1187-04 로트, 제동 패드 마모도 기준치 1.8배. 검수 통과됨. 사유: 시험 성적서 정상.`
이지원이 일어서서 자리를 비켰다. 통로 쪽 좌석이었다. 신우진은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이지원도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한 칸 반의 거리. 팔걸이에 놓인 이지원의 태블릿 화면이 여전히 검색창을 띄우고 있었다.
검색어 `TH1187-04 2017-10-30`. 아래로 검색 결과가 여섯 줄.
위원장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종이가 접히며 내는 마찰음이 속기사의 자판 소리와 겹쳤다.
“다음 증인을 호출하겠습니다.”
윤태호의 변호사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위원장님, 잠시—”
“기각합니다.”
변호사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멎었다. 위원장은 그 손가락을 보지 않았다.
“현장 정비팀장, 박중호. 증언대로 나오십시오.”
방청석 뒤편에서 보조기 짚는 소리가 들렸다. 플라스틱이 바닥 타일을 찍었다. 박중호가 일어서고 있었다.
어깨로 좌석 팔걸이를 밀며 무게중심을 옮겼다. 왼쪽 다리는 여전히 접히지 않았다. 보조기를 손목이 아닌 팔뚝으로 감싸 쥐었다.
증언대까지 열두 걸음이었다. 보조기가 타일을 찍을 때마다 윤태호 피감사인석 탁자의 물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박중호는 윤태호를 보지 않았다.
그가 든 것은 아홉 해 전 감사 자료 사본 한 권뿐이었다. 표지는 바랬다. 가장자리에 손때가 밴 흔적.
증언대 앞에 섰다. 보조기를 오른손으로 접어 옆에 세웠다. 왼손을 증언대 위에 올렸다. 손가락 마디가 부풀어 있었다. 오래된 유압유와 용접 불똥이 만든 손이었다.
위원장이 말했다.
“증인, 성함과 직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중호. 철도공사 차량정비단 정비팀장입니다.”
목소리가 컸다. 방청석 뒤편까지 울렸다. 30년간 기관음과 공구 소음 사이에서 일한 사람의 성량이었다.
“증인은 2015년 7월 9일, 현재 문제가 된 납품사에 대해 품질 의혹 보고서를 제출한 기록이 있습니다. 보고서 번호 QC-2009-0031. 본인이 작성하신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박중호가 사본을 들었다. 책상 위에 올리지 않았다. 손에 든 채로 페이지를 폈다. 세 번째 페이지. 중간 부분에 빨간 색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보고서 내용을 직접 설명해 주십시오.”
박중호가 숨을 들이쉬었다.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B4 계열 제동 밸브. 부품 번호는 당시 KD-2037-087이었습니다. 지금은 B4-BV-2287로 바뀌었죠. 번호만 바뀌었습니다.”
사본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인장강도 실측 결과, 설계 기준 18.5뉴턴에 못 미쳤습니다. 16.4뉴턴. 정확히 2.1뉴턴 모자랐습니다.”
박중호가 고개를 들었다. 청문회장 천장 조명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패킹 재질도 틀렸습니다. HNBR로 납품됐는데 설계는 EPDM이었습니다. HNBR은 내열성은 있지만 인장강도가 낮습니다. 제동 계통에는 치명적입니다.”
위원장이 끄덕였다.
“그 보고서는 어떻게 처리됐습니까.”
“반려됐습니다.”
“누가 반려했습니까.”
“당시 구매처 과장. 강인수.”
박중호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탁해졌다.
“그리고 구매처 대리였던 윤태호가 직접 저를 불렀습니다.”
청문회장이 조용해졌다. 속기사의 손가락만 움직였다. 키보드 타건음이 빨라졌다.
“뭐라고 했습니까.”
“보고서 제출하면 정비팀 전체 인사 조치라고 했습니다. 전원 좌천이라고.”
윤태호가 피감사인석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장 소매 위로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손목 시계 초침만 움직였다.
박중호가 계속했다.
“그리고 2015년 10월 16일 오후 3시쯤. 구매처 사무실 문 닫고.”
박중호가 숨을 한 번 멈췄다.
“윤태호가 재떨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이지원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 위에서 정지했다. 신우진은 시선을 들지 않았다. 자신의 왼손 검지 흉터를 보고 있었다.
“유리 재떨이였습니다. 제 쪽으로 던지진 않았습니다. 벽에 던졌습니다. 유리가 깨졌습니다. 파편 하나가 여길 지나갔습니다.”
박중호가 오른쪽 귀 뒤를 가리켰다. 목으로 이어지는 흉터.
“그리고 말했습니다. 잊어라. 그게 전부다.”
청문회장 천장 공조기에서 바람이 새고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그 재떨이 파편이 윤태호 쪽으로도 튀었습니다.”
박중호가 처음으로 피감사인석을 똑바로 봤다.
“왼쪽 턱에 닿았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을 겁니다.”
윤태호의 왼쪽 턱선이 경직됐다. 근육이 수축하며 흉터가 더 깊어졌다. 변호사가 일어서려 했다.
윤태호가 손목을 올려 제지했다. 손동작 하나뿐이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법률 대리인이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이의 제기합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돌렸다.
“말씀하십시오.”
변호사가 일어섰다. 목소리가 정확했다. 분노보다 계산이 앞선 어조였다.
“증인의 증언은 9년 전 특정 개인에 대한 주관적 기억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증빙 없는 진술은 증거 능력에 의문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보고서 사본에 기록된 결재란을 보더라도, 당시 반려 사유는 기술적 근거 부족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증인의 기억과 문서상의 사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박중호가 사본을 증언대 위에 올려놓았다. 보조기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오른손으로 사본의 마지막 페이지를 폈다.
“기술적 근거 부족.”
박중호가 짧게 웃었다. 입술만 올라갔다.
“여기 결재란 보십시오. 강인수 과장의 반려 서명 위에 첨부된 종이가 있습니다.”
사본을 들어 위원장 쪽으로 향했다.
“시험 성적서 요약본. 납품사가 제출한 겁니다. 인장강도 18.5뉴턴으로 찍혀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성적서 발급일입니다.”
손가락이 성적서 하단을 가리켰다.
“2015년 7월 9일. 제가 현장 측정을 한 날짜와 똑같습니다. 오전에 제가 측정하고, 오후에 납품사가 정상 수치 성적서를 발급했습니다.”
박중호가 사본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으로 덮었다.
“한 곳에서 찍은 숫자가 아니라는 건 30년 경력이면 압니다. 측정 환경도, 장비도, 시료도 다른데 어떻게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똑같은 수치가 나옵니까.”
위원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증인, 지금 그 성적서가 조작됐다는 말씀입니까.”
“조작입니다. 제가 실측한 인장강도는 16.4뉴턴이었습니다. 이건 9년 전에도 그랬고.”
박중호가 사본 한 페이지를 더 넘겼다. 4페이지였다.
“7년 전 탈선 사고 현장에도 그랬습니다. 사고 차량에서 빼낸 제동 패드가 바로 이 부품이었습니다. 마모도 기준치 1.8배. 검수는 통과됐고 사유는 시험 성적서 정상. TH1187-04 로트.”
박중호가 한 번 더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그 부품을 9년 전에도 봤고, 7년 전 사고 현장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기 있습니다.”
위원장이 변호사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의는 기각합니다. 증인의 증언과 증거를 정식 채택하겠습니다.”
변호사가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으려다 팔꿈치로 책상 모서리를 쳤다. 속기사의 자판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증인 박중호, 추가 증언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증언대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박중호가 보조기를 폈다. 증언대에서 내려왔다. 걸음이 올 때보다 무거웠다. 보조기가 타일을 찍는 소리가 느려졌다.
방청석으로 돌아오는 열두 걸음 동안 박중호는 윤태호를 보지 않았다. 신우진 옆에 멈춰 섰다. 보조기를 접어 좌석 아래 밀어 넣었다.
앉았다.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신우진이 말하지 않았다. 박중호도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빈 좌석에 9년 전 보고서 사본만 놓여 있었다.
위원장이 다음 서류를 집었다.
“다음 증인. 전국철도노동조합 차량분과 지부장, 한경숙. 증언대로 나오십시오.”
한경숙이 일어났다. 노조 조끼 위에 기능성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운동화 굽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작고 빨랐다.
증언대까지 여덟 걸음. 주머니에서 두꺼운 파일 하나를 꺼내 증언대 위에 올렸다. 파일 끈을 풀었다.
“증인, 소지하신 서류가 무엇입니까.”
“노조가 지난 2년간 접수한 현장 증언록입니다. 총 23건.”
한경숙이 파일을 펼쳤다. 첫 페이지를 읽었다.
“2023년 4월 접수. B4-BV-2287 로트 제동 밸브. 교체 주기 36개월 규정이나 현장에서는 50개월 이상 사용 중. 시험 성적서상 교체 이력이 정상으로 기재됨.”
두 번째 페이지를 넘겼다.
“2023년 8월 접수. 동일 부품. 인장강도 측정 결과 16.4뉴턴. 3년 전과 같은 수치. 담당자 이의 제기했으나 구매처에서 반려.”
위원장이 손을 들었다.
“증인, 이 증언록은 익명으로 접수된 것입니까.”
“대부분 익명입니다. 검수원들은 보복이 두려우니까요.”
한경숙이 파일 아래쪽에서 별도로 분리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작은 우편 봉투였다. 겉면에 손글씨로 `2023년 11월`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작년 11월에 접수된 내부 제보 한 건이 있습니다. 제보 내용은—.”
한경숙이 봉투를 열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특정 납품 로트 번호별 성적서 조작 의심 사례입니다. 날짜별로 기록돼 있습니다. 증거물도 함께 왔습니다. USB 하나.”
위원장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증거물의 출처는 어떻게 됩니까.”
“제보자가 노조 사무실로 직접 우송했습니다. 봉투에 손글씨 외 신원 특정할 내용은 없습니다. USB 내용만 확인했습니다. 데이터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의 시험 성적서 원본과 수정본 비교 파일이었습니다. 모두 위조된 문서들입니다.”
위원장이 잠시 멈췄다.
“제보자의 신변 보호는.”
“노조가 끝까지 책임집니다. 노조 규약 제42조에 근거해 신원은 노출될 수 없습니다.”
한경숙이 봉투와 파일을 함께 증언대 위에 정리했다.
“증언록 23건과 제보 봉투, USB를 정식 증거로 제출합니다.”
“채택하겠습니다.”
한경숙이 서류를 증거 담당자에게 건넸다. 담당자가 보관 봉투에 담아 번호표를 붙였다. 한경숙은 증언대에서 물러서며 말했다.
“이 증언록들에 기록된 부품들은 전부 아직 현장에 있습니다.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안전 기준 미달 상태로 운행 중인 부품들입니다.”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한경숙이 방청석으로 걸어왔다. 발걸음이 올 때보다 더 빨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능성 재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확인하고 다시 넣었다.
위원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팔목 시계를 한 번 보고, 서류를 정리했다.
“증언을 모두 청취했습니다.”
의자에 깊숙이 앉으며 상체를 바로 세웠다.
“본 청문회는 피청문인 윤태호의 부품 납품 비리와 정치 로비 의혹에 대해 충분한 심증을 확보했습니다.”
서류 뭉치를 가지런히 모았다.
“다음 회기에서 최종 증인 신우진의 보충 증언을 들은 후, 종합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목탁을 두 번 두드렸다.
“청문회를 휴회합니다.”
의자들이 밀리는 소리. 속기사가 키보드 커버를 덮었다. 방청석에서 기자들이 먼저 일어났다.
노트북을 접고 충전기를 뽑았다. 누군가 속삭였다. “신우진이 마지막이래.”
피감사인석에서 윤태호가 변호사에게 몸을 기울였다. 입술이 움직였다.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윤태호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짧게 두드렸다. 그가 일어났다. 정장 바지 무릎 부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변호사가 먼저 걸어나갔다. 윤태호는 피감사인석을 나서기 전, 왼쪽 턱선을 손등으로 한 번 문질렀다.
신우진은 방청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증거대 위에는 붉은 장부 세 권.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사본. 23건의 증언록 파일.
익명 제보 봉투. 그리고 스크린 위에는 여전히 강재호의 손글씨가 떠 있었다. 7년 된 잉크.
1.8배. 검수 통과.
이지원이 태블릿 화면을 끄고 일어섰다. 신우진 쪽으로 한 걸음 걸음을 옮겼다.
“다음이 마지막입니다. 준비되셨나요.”
신우진이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강재호의 조사 노트 사본을 꺼냈다. 접힌 종이를 펴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왼손 검지가 종이 표면을 한 번 쓸었다. 흉터가 있는 손가락.
“7년 동안 한 번도 준비된 적 없었습니다.”
노트 사본을 다시 접었다. 세 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유성 매직을 왼쪽 가슴 주머니에 다시 꽂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일어섰다. 증거대 위의 서류들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박중호가 옆에서 보조기를 폈다.
“간다.”
박중호가 먼저 걸었다. 신우진이 뒤를 따랐다. 국회 의원회관 복도로 이어지는 문이 열려 있었다. 바깥에서 오후의 빛이 복도 바닥을 반쯤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