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98화

위원장이 손을 들었다. 속기사가 자판에서 손을 떼었다.

“증인 신우진. 증인석으로 나와 주십시오.”

신우진이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왼손에 강재호의 조사 수첩 사본. 오른손에 박중호의 보고서 사본.

증인석까지 일곱 걸음. 걸을 때마다 사본 표지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증인석에 섰다. 위원장과 눈이 마주쳤다.

“본 청문회는 증인 신우진의 최종 보충 증언을 청취합니다.”

피감사인석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윤태호의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절차적 이의가 있습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돌렸다.

“말씀하십시오.”

변호사가 일어섰다. 검은 정장 소매에서 커프링크스가 번쩍였다.

“증인은 7년 전 사망한 검수원과 사적 관계가 있습니다. 증언 내용이 개인적 감정에 치우칠 우려가 큽니다. 증언 범위를 제한해 주십시오.”

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변호사를 향했지만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위원장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증인과 고 강재호 검수원의 관계는 이미 본 위원회에 제출된 자료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증인의 진술 범위는 본 위원회가 판단합니다. 이의는 기각합니다.”

목탁 소리.

변호사가 잠시 서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았다.

윤태호가 변호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위원장이 신우진을 향했다.

“증인. 준비된 증언이 있다면 시작해 주십시오.”

신우진이 왼손의 노트 사본을 들었다.

“먼저 제출할 자료가 있습니다.”

“어떤 자료입니까.”

“7년 전 검수팀 선임 강재호의 조사 노트 사본입니다. 유족 동의 하에 제출합니다.”

위원장이 손을 내밀었다. 직원이 다가와 노트 사본을 받았다. 위원장이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한 청문회장에 울렸다.

“원본은 어디에 있습니까.”

“별도 보관 중입니다. 요청 시 제출 가능합니다.”

“사본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계속하십시오.”

신우진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스크린 위에 아직 떠 있는 강재호의 손글씨. 1.8배. 검수 통과.

“2017년 10월 30일. 제 선임이었던 강재호 검수원은 TH1187-04 로트의 제동 패드 마모도가 기준치 1.8배임을 확인했습니다.”

속기사가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수를 통과시켰습니다.”

방청석 왼쪽에서 이지원이 태블릿 화면을 내렸다. 시선이 증인석으로 고정되었다.

“사유는 시험 성적서 정상. 강재호 검수원은 그 부품의 결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덮어야 했습니다.”

신우진이 노트의 해당 페이지를 폈다. 접힌 자국이 선명한 종이.

“이 부분을 낭독하겠습니다.”

위원장이 끄덕였다.

“TH1187-04 로트. 제동 패드 마모도 기준치 1.8배. 검수 통과됨. 사유: 시험 성적서 정상.”

읽는 목소리는 높낮이가 없었다. 검수 기록을 낭독하는 현장의 어조 그대로였다.

“그리고 2017년 11월 1일. TH1187-04가 장착된 열차가 무정차 통과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청문회장이 조용해졌다. 방청석에서 누군가 기침을 삼켰다. 기자들의 노트 필기 소리만 연필 끝으로 종이를 긁었다.

“강재호 검수원은 그 사고 현장에 있었습니다.”

신우진이 노트를 한 장 넘겼다.

“부상을 입고 은퇴했습니다. 7년째 집 밖을 나오지 못합니다.”

피감사인석에서 윤태호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한 번 두드렸다. 변호사가 손목을 잡았다. 윤태호의 손이 멈췄다.

신우진이 노트를 접었다.

“2017년 11월 1일자 페이지입니다.”

종이를 세 번 접어 왼손에 쥐었다.

“그날 이후 강재호 선임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위원장이 목을 가다듬었다.

“증인. 본 위원회는 유족 동의 하에 제출된 이 노트의 증거 가치를 인정합니다. 증인과 고 강재호 검수원의 관계가 이 증언의 어떤 부분을 제약한다고 생각합니까.”

신우진이 위원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는 부품 하나를 바로잡지 못해 동료를 잃은 사람입니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이것은 원한이 아닙니다.”

왼손에 쥔 노트 사본을 증거대 위에 올려놓았다.

“바로 그 부품 하나를 지금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이 자리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지원이 태블릿을 들어 속기록 화면을 확인했다. 손가락이 멈췄다.

신우진이 오른손의 보고서 사본을 들었다.

“증거번호 QC-2009-0031. 박중호 검수관이 2009년 10월 14일 작성한 품질 의혹 보고서입니다.”

표지를 펼쳤다.

“이 보고서 3페이지. 부품 번호 TH1187-04.”

위원장이 보고서 사본을 받아 들었다.

신우진이 주머니에서 부품 로트 번호 일치 대조표를 꺼냈다. A4 용지 한 장. 표로 정리된 숫자들.

“그리고 현재 납품된 부품. 동일 로트 번호. 동일 인장강도 16.4뉴턴. 동일 패킹 재질 HNBR.”

대조표를 위원장에게 건넸다.

“스크린에 띄울 수 있도록 파일도 준비했습니다.”

위원장이 직원에게 손짓했다. 청문회장 정면 스크린에 대조표가 떠올랐다.

왼쪽 열: 2009년 10월 — TH1187-04 — 16.4N — HNBR. 오른쪽 열: 2024년 9월 — B4-BV-2287 — 16.4N — HNBR.

동일 규격. 동일 결함. 동일 납품사.

방청석에서 박중호가 보조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섰다. 눈을 감았다.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피감사인석에서 윤태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변호사가 메모지를 펼쳤다. 펜을 찾아 상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펜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탁자 위로 굴렀다.

신우진은 대조표를 한 번 더 바라봤다.

“부품 하나. 15년. 같은 결함. 같은 은폐.”

스크린에서 숫자들이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신우진이 증인석에 손을 내려놓았다. 왼손 검지의 흉터가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유압유에 베인 지 7년 된 자국.

청문회장이 정적에 잠겼다.

속기사의 손가락이 멈췄다. 기자들이 노트 필기를 멈추고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방청석 뒤쪽에서 누군가 심호흡을 했다.

위원장이 대조표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본 위원회는 증인의 증언과 제출된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서류를 가지런히 모았다.

“더 이상의 반대 신문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피감사인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청문인 측. 최종 변론 기회를 드립니다.”

윤태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허벅지가 탁자 아래에 닿아 짧은 소리가 났다.

변호사가 손을 뻗었다. 윤태호의 팔뚝을 잡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윤태호가 변호사를 돌아봤다. 입술이 벌어졌다.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윤태호의 주먹이 탁자 위에서 폈다 쥐어졌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왼쪽 턱선의 흉터가 굳은 표정 위로 도드라졌다.

변호사가 손을 놓았다. 검은 정장 소매를 바로 펴고 천천히 일어섰다.

커프링크스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구름이 창밖을 지나며 청문회장 천장 조명이 잠시 어두워졌다.

“변론을——”

변호사가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포기하겠습니다.”

의자 밀리는 소리. 방청석 곳곳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기자 한 명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세 번 이어졌다.

신우진은 증인석에 서 있었다. 오른손이 노트 사본 위에 올려져 있었다. 강재호의 마지막 페이지. 7년 된 잉크가 손끝 아래에 있었다.

증인석을 내려왔다. 방청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지원과 눈이 마주쳤다. 이지원이 태블릿을 가슴 앞으로 내렸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 광대 아래 작은 점이 살짝 움직였다.

신우진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지원 옆의 빈자리.

앉았다.

박중호가 보조기 손잡이에서 손을 떼었다. 신우진의 어깨를 한 번 쳤다. 손바닥이 묵직하게 얹혔다.

“수고했다.”

신우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유성 매직을 꺼냈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 꽂았다.

피감사인석에서 윤태호가 일어났다.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챙겼다. 가죽 손잡이가 끽 소리를 냈다.

윤태호가 걸었다. 구두 굽이 청문회장 바닥을 네 번 울렸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왼쪽 턱선을 손등으로 한 번 문질렀다. 흉터가 손가락 마디 사이로 보였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오후 빛이 들어와 바닥을 반쯤 채웠다.

윤태호가 나갔다. 변호사가 뒤를 따랐다. 문이 닫혔다.

증거대 위에는 붉은 장부 세 권.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사본. 23건의 증언록 파일. 익명 제보 봉투. 강재호의 조사 노트 사본.

스크린에는 아직 대조표가 떠 있었다. 왼쪽 열과 오른쪽 열. 2009와 2024. 같은 숫자.

신우진은 그것을 바라봤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이지원이 속기록에 마지막 메모를 입력했다. 태블릿 화면을 닫았다.

청문회장 천장의 형광등이 가늘게 윙윙거렸다.

신우진이 왼손을 들었다. 검지의 흉터를 엄지로 한 번 쓸었다.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주먱이 느리게 폈다 쥐어졌다.

박중호가 보조기를 폈다. 금속 지지대가 딸깍 소리를 냈다.

“끝났다.”

신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박중호를 보았다. 피로와 안도가 섞인 표정. 목소리는 조용했다.

“아직 아닙니다.”

스크린 위의 대조표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무정차 통과9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