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복수전
1화
만독상단의 후원은 약재 냄새로 가득했다.
녹나무 장작 훈증에 절인 백출, 유황에 그을린 웅황석. 수십 가지 독초와 약재들이 뒤섞여 숨이 막힐 듯했다. 서리한은 숨을 얕게 들이쉬었다. 만독지환의 잠복기가 끝나가는 시점. 독기 가득한 이곳에서 오래 머물면 내상을 키울 뿐이었다.
“소리!”
인사 관리인의 굵은 목소리가 창고 입구에서 울렸다. 오십 대의 사내가 장부를 든 채 서리한을 훑어보았다. 한쪽 소매가 텅 빈 남색 도포 차림의 젊은이에게 시선이 머물렀다가, 곧 무심히 지나갔다. 외팔이 잡부쯤이야 흔한 일이었다.
“자네는 후원 창고. 약재 분류다. 잘못 만졌다간 손가락 썩으니 조심해.”
서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인은 장부를 건네며 덧붙였다. “오늘 상단주님 진료일이라 의원이 온다. 본채 쪽엔 얼씬도 말고. 끝나면 숙소 배정해 줄 테니 저녁 종 치기 전엔 움직이지 마라.”
“알았다.”
서리한의 대답은 짧았다. 관리인이 등을 돌리자마자 시선이 창고 안쪽을 훑었다.
넓었다. 마른 약초 다발이 천장 서까래까지 쌓여 있고, 질항아리 수십 개가 줄지어 놓였다. 독사 주정을 담근 병, 오공을 말린 망태기, 지네 가루 포대까지. 만독상단은 독약 거래로 근년에 세를 불린 신흥 상단이었다. 사마독이 이끄는 이곳은 남만과 중원을 잇는 독재 유통의 중심지나 다름없었다.
서리한은 왼쪽 어깨를 살짝 굴렸다. 절단 부위에 두른 붕대가 땀에 젖어 짓눌렀다.
무시했다.
오른손으로 첫 번째 질항아리를 열었다. 한빙사의 비늘 가루. 냄새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약재 더미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눈에 새겼다. 통로 구조, 감시초소와의 거리, 경비 교대 시간을 관리인의 말투에서 추측한 대로 맞춰 보았다.
두 번째 열을 지나칠 때였다.
발이 멈췄다.
칠절초. 말린 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독문의 독공 수련에 쓰이는 희귀 약초다.
만독상단의 거래 목록에는 없는 물건이었다. 서리한이 숙이며 냄새를 맡았다. 틀림없었다.
이걸 단순한 상품으로 유통할 리 없었다. 수요자는 한정돼 있었다.
사마독.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칠절마독공의 일곱 가지 독재 중 둘째 재료. 서리한이 수련하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이게 상단에 있다는 건 사마독이 독문의 금제 독공 비전을 빼돌렸다는 증거였다.
그때였다.
목덜미의 푸르스름한 혈관이 꿈틀거렸다. 만독지환의 잠복기가 옅은 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일으킬 수 없었다.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히려 좋았다.
서리한은 오른손을 복부 앞으로 가져갔다. 내공을 역류시켰다. 칠절마독공의 독기를 의도적으로 거슬러 올렸다. 초식이 아니라 자해에 가까운 역행이었다. 독기가 경맥을 타고 역주했다.
순간 숨이 막혔다.
무릎이 꺾였다.
질항아리 선반에 어깨를 부딪쳤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으려다 팔이 풀렸다. 독기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안이 텁텁하게 마비됐다.
이게 계산이었다. 가벼운 발작. 일반 중독 증세로 보일 정도로만.
시야가 흔들렸다.
쿵.
선반이 흔들리며 약재 찌꺼기가 쏟아졌다. 서리한은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녹색 동공이 풀렸다 좁혀졌다 하며 초점을 잃었다. 만독지환 특유의 마비가 손끝에서 팔꿈치로 번졌다.
통로 저편에서 발소리가 났다.
가볍고 빠른 걸음. 장화가 아니라 천 신 바닥이 흙바닥을 스치는 소리였다. 인사 관리인의 굵은 목소리가 아니라, 맑고 낮은 음성이 따라붙었다.
“잠시만요. 독기운이…”
흰색 저고리에 푸른 치마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밑단은 무릎까지 걷어 올려져 있었고, 앞치마엔 침구 주머니가 달렸다. 가슴까지 오는 긴 흑발이 하나로 땋아져 왼쪽 어깨 위로 늘어져 있었다. 땋은 머리 끝의 비취 고리가 햇살에 반짝였다.
백서린이었다.
그녀는 서리한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른손으로 서리한의 손목을 집었다. 맥을 짚는 손가락이 길고 섬세했다. 왼쪽 눈 아래 작은 눈물점이 시선을 끌었다.
“호흡이 얕고…”
맥박을 세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리한은 그 떨림을 감지했다. 익숙한 떨림이었다.
“독의 흐름이 이상하다. 보통 중독이 아니에요.”
백서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호박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서리한의 목에서 뺨까지 번진 푸르스름한 혈관을 응시했다.
“일곱 갈래로 독기가 순환하고 있다. 마치… 수련으로 쌓은 독공처럼.”
그녀는 빠르게 말했다. 의학적 판단을 정리하는 말투였다.
“칠절마독공?”
서리한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백서린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서리한의 손목에서 맥박을 더 세게 눌렀다.
“역행시켰군요. 의도적으로.”
의문형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서리한은 발작을 멈췄다. 호흡을 고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녹색 눈동자에 경계가 서렸다. 오른손을 천천히 빼내며 물었다.
“…누구지.”
백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백서린. 녹의원 의원입니다. 지금 상단주님 진료 때문에 이곳에 왔는데…”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서리한의 왼쪽 소매를 바라보았다. 빈 소매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절단 부위는 능숙하게 매듭지어져 있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 어렵군요.”
백서린이 뒤를 돌아보았다. 통로 끝에서 인사 관리인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목소리를 낮췄다.
“통로 구석으로 가시죠.”
서리한이 선반에서 몸을 뗐다. 다리는 아직 후들거렸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백서린이 먼저 걸어가 통로 구석으로 그를 밀어 넣었다. 약재 더미가 시야를 가려 주었다.
백서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칠절마독공. 독문의 금제 독공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경지예요. 알고 있어요.”
서리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맥을 짚으면서 확인했어요. 이건 단순한 중독이 아니에요. 스스로 쌓은 독공이 몸을 잠식하고 있다. 그것도 삼중 수준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독경통해에 기록된 증상과 거의 일치해요. 독공의 역행으로 인한 경맥 마비 패턴, 혈관 변색의 확산 속도, 맥박의 불규칙성까지.”
서리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독경통해?”
“의서예요. 칠절마독공 같은 극독 독공의 해독 원리를 기록한 고문헌이죠.”
백서린은 잠시 망설였다. 왼손이 무의식적으로 앞치마 주머니를 스쳤다.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당신 같은 중독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서리한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독할 수 있나.”
짧았다.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녹색 눈동자가 백서린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백서린은 숨을 들이쉬었다.
“가능합니다. 다만 쉽지 않아요. 칠절마독공은 일곱 가지 독이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를 풀면 다른 하나가 반응해요. 그리고…”
그녀가 서리한의 목에 번진 푸르스름한 혈관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만독지환도 있군요.”
서리한의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독약병에 닿았다. 이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독문의 존재, 만독지환의 특성, 칠절마독공의 위험성까지.
“조건이 뭐지.”
서리한이 물었다. 협상이었다. 감정을 섞지 않은, 거래를 위한 질문.
백서린은 잠시 생각했다. 땋은 머리 끝의 비취 고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두 가지예요. 첫째, 당신의 독공 샘플을 제공해 주세요. 해독제 개발을 위해 주기적으로 맥을 짚고 독의 변화를 기록해야 해요. 둘째…”
그녀는 서리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와 함께 움직여야 해요. 해독은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해요. 당신 혼자 다니게 둘 수 없어요. 상태를 계속 관찰해야 합니다.”
“감시.”
서리한의 대답은 한마디였다. 백서린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아요. 하지만 치료를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당신이 해독제를 원한다면 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해요.”
서리한은 침묵했다. 만독지환의 발작은 한 달에 한 번. 독경통해를 연구한 의원은 아마 무림에서 이 여자뿐일 터였다. 복수는 계속돼야 했다. 이 몸이 버티는 동안.
“좋다.”
그의 대답은 짧았다. 백서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치료는 오늘 저녁부터 시작하죠. 녹의원 내원 치료실에서요.”
서리한이 고개를 들었다.
“상단은 그만두고.”
“당연하죠. 지금 상태로 일할 수 있겠어요?”
백서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짐 챙기세요. 상단주님 진료를 마치고 정문 앞에서 만나요. 한 시각 안에.”
백서린이 등을 돌리려다 멈췄다. 다시 한 번 서리한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상단에서 일하는 동안… 뭔가 발견한 건 없었나요.”
서리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도포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작은 쪽지 한 장이 손에 잡혔다.
아까 칠절초를 발견할 때 선반 밑에서 보았던 종이 조각. 희미한 붓글씨로 ‘금독단’과 ‘스승’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진한 독약 얼룩이 번져 대부분은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쪽지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백서린에게 보여줄 단계가 아니었다.
“없다.”
백서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 질 무렵에 봐요.”
그녀가 통로를 빠져나갔다. 천 신 바닥이 흙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멀어졌다. 약재 냄새만이 남았다.
서리한은 선반에 등을 기대고 잠시 숨을 골랐다. 만독지환의 발작은 가라앉았지만, 내공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왼쪽 절단 부위가 욱신거렸다.
사마독. 금독단. 스승.
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쪽지의 ‘스승’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독이 금독단을 거래하고 있다면, 그건 독문의 기술을 도용한 증거였다. 첫 번째 체크리스트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도포를 여몄다. 창고를 나서며 관리인에게 짐을 챙기러 간다고 짧게 통보했다. 관리인은 불평했지만 서리한의 눈빛에 말을 삼켰다.
숙소는 비좁았다. 그가 가진 짐은 위조 신분패 하나와 입을 옷 몇 벌뿐이었다. 작은 보따리를 쌌다.
허리춤의 독약병을 하나씩 점검했다. 한빙사 주정, 오공환, 칠절초 분말. 모두 제자리였다.
해가 질 무렵, 상단 정문 앞에 백서린이 서 있었다. 그녀 옆에는 조그만 약초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사마독 진료를 마친 듯했다. 백서린은 서리한의 보따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군요.”
서리한은 대답 없이 그녀를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만독상단을 떠나 녹의원으로 향했다. 남은 건 의원의 약초 냄새와 서리한의 도포 안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쪽지뿐이었다.
녹의원 내원 치료실은 작고 깨끗했다. 벽면에는 약초 다발이 걸려 있었고, 탕약을 달이는 화로에서는 은은한 김이 올랐다. 중앙에는 진찰용 평상 하나. 햇볕이 창호지를 통해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백서린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침구 세트를 꺼내며 말했다.
“옷을 벗고 평상에 누우세요.”
서리한은 도포를 벗었다. 상반신이 드러나자 백서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까지 뻗은 흉터. 왼팔 절단 부위는 능숙하게 봉합돼 있었지만, 만독지환 탓에 혈관이 검푸르게 번져 있었다. 왼쪽 손목에는 일곱 가지 치명독을 상징하는 작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백서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침을 하나 꺼내 불에 소독했다.
“먼저 경맥의 흐름을 안정시킬게요. 칠절마독공은 독기가 역행하면 폐부를 찌르니까, 우선 기의 순환을 바로잡아야 해요.”
빠르고 정확한 어조였다. 그녀의 오른손 검지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침을 놓는 동작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첫 침이 서리한의 어깨에 꽂혔다.
서리한은 입을 열었다.
“해독 기간은.”
“최소 석 달. 혹은 더 길어질 수 있어요. 만독지환은 삭일에 발작하니까, 그 주기까지 감안하면…”
백서린은 두 번째 침을 놓으며 덧붙였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에요.”
서리한은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샘플 제공. 뭘 원하지.”
“일주일에 두 번, 이곳에서 맥을 짚고 혈액을 소량 채취할게요. 칠절마독공의 독성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록해야 해요. 그래야 독경통해의 이론을 실제 해독제로 발전시킬 수 있어요.”
백서린의 목소리에 열의가 스몄다. 의학적 호기심이었다. 서리한은 그녀가 단순한 의원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독경통해라는 의서를 가진 자. 독문의 금제 독공을 꿰뚫어 보는 자.
“그리고.”
백서린이 침을 멈추고 서리한을 내려다보았다.
“당신도 여기 머물러야 해요. 내원에 빈방이 하나 있어요. 해독이 끝날 때까지, 혹은 내가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감금.”
서리한의 대답은 여전히 짧았다. 백서린은 고개를 저었다.
“감시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치료니까.”
그녀가 마지막 침을 놓았다. 서리한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됐다.
“내일부턴 본격적인 해독을 시작해요. 오늘은 경맥 안정만 하고 끝내죠.”
백서린이 물러서며 말했다.
서리한은 상체를 일으켰다. 침이 꽂힌 어깨가 따끔거렸지만, 독기의 역류는 잦아들었다. 도포를 다시 입으며 짧게 말했다.
“…내일.”
백서린은 작게 웃었다.
“그래요. 내일.”
그녀는 탕약 화로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당신이 협조하는 동안, 나는 해독제를 완성할게요. 그게 우리의 거래예요.”
서리한은 평상에서 내려와 방을 나서려다 멈췄다.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독경통해. 어디서 구했지.”
백서린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녀는 뒤돌지 않고 대답했다.
“오래전에… 우연히 입수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가 결락돼서 완전한 해독법은 아직 몰라요. 그래서 당신의 샘플이 필요한 거예요.”
서리한은 더 묻지 않았다. 방을 나섰다.
백서린은 잠시 침묵했다. 손가락이 앞치마 주머니에 든 독경통해 사본을 스쳤다. 낡은 표지, 결락된 마지막 장. 그리고 표지 안쪽에 찍힌 작은 도장 하나.
독문의 문장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리한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아직은.
칠절마독공을 가진 독문 제자. 그가 이 의서의 주인과 어떤 관계인지, 왜 이걸 찾아 헤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거래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었다. 진실을 향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밖에서는 촛불이 반쯤 줄어든 내원 복도에 서리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여전히 도포 안주머니의 쪽지를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