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독문복수전

11화

벽이 닫히고도 소연화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돌벽에 맴돌았다. 백서린이 품에서 찢긴 페이지를 꺼내 촛불 아래 펼쳤다. 종이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랬고 글씨는 절반쯤 지워져 있었다.

서리한이 검집을 내려놓고 다가섰다. 백서린의 손끝이 페이지 한 줄 한 줄을 짚으며 내려갔다.

“이거예요.”

백서린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의학서를 읽을 때의 속도였다.

“만독귀원의 마지막 단계. 칠절마독공의 일곱 독을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독을 품은 자체가 극독이 되는 경지. 그런데 여기 주석이 있어요.”

손가락이 멈춘 곳을 서리한도 들여다봤다. 스승의 필체였다. ‘이 경지는 시한부. 독이 피와 살을 집어삼킨 뒤에는 스스로 무너진다. 고로 진정한 만독귀원은 융합이 아닌 순환.’

“스승님이 아셨어요.” 백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서리한님의 칠절마독공이 만독귀원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독을 거둬내는 길이라는 걸.”

그 순간 등 뒤 돌문 너머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숨소리였다.

촛불이 일제히 꺼졌다.

어둠 속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천장에서 바닥으로, 다시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읽었군요. 그걸.”

백서린이 페이지를 품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스승님은 나에게 주지 않은 길을 사형에게만 줬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어둠 저편에서 발소리가 났다. 맨발이 돌바닥을 스치는 소리였다.

“사형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는 스승님을 선택했고, 스승님을 가지려고 했고, 스승님의 숨소리 하나까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죠. 사형은 그러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스승님은 사형에게만 진짜 유산을 남겼어요.”

공기가 달라졌다. 구문향과 다른 달콤한 단내가 목구멍을 찔렀다. 환영독이었다.

백서린의 손이 침통으로 향했다. 서리한이 오른손을 들어 막았다.

“움직이면 안 돼요. 이 독은 후각이 아니라 기억을 타고 퍼져요.”

소연화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손등이 먼저 떠올랐다. 찢긴 페이지를 쥔 손이 아니었다. 빈손이었다.

“아, 그런데 그걸 알아채다니 대단하네요. 그 의원, 버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요.”

서리한이 반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소연화.”

“네, 사형.”

“스승님은 네게 비녀를 줬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한 박자 지나 웃음소리가 다시 났다. 전보다 낮고 갈라져 있었다.

“그래요. 입문식 날 밤에 직접 꽂아주셨어요. 내 머리에.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유일한 선물이었죠. 그래서 사형은 뭘 원하는 거예요?”

“비녀 안에 든 조각.”

공기가 갈라질 듯 정적이 번졌다. 백서린의 숨소리만 규칙적으로 오갔다.

소연화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실루엣만으로 그 동작이 분명했다.

“이런. 그걸 어떻게.”

서리한이 검집을 한 걸음 옆에 내려놓았다. 무기를 내려놓는 시늉이 아니었다. 오른손을 펴서 허공에 들었다.

“받아야 한다.”

“안 주면?”

“가져간다.”

소연화가 한 걸음 물러서며 손을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보랏빛 가루가 흩어졌다. 환영독이었다. 촛불 없이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입자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좋아요. 그럼 여기서 시작하죠.”

백서린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빙석유에 적신 천 조각이었다. 냄새를 맡자 환영독의 단내가 희석됐다.

소연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페이지를 쥔 왼손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걸로 내 환영을 막을 수 있을까요?”

백서린이 대답하는 대신 오른손으로 침 두 개를 뽑았다. 하나는 자신의 인중 아래, 하나는 서리한에게 건넸다.

소연화가 손목을 틀었다. 가루의 흐름이 방향을 바꿔 백서린을 향했다. 서리한이 몸을 틀어 막아섰다. 오른손 손등으로 독가루를 쳐냈다.

그 순간 백서린이 서리한의 옆구리 아래로 손을 뻗었다. 소연화가 페이지를 든 손을 약간 낮춘 틈이었다. 침이 소연화의 손목 부근을 스쳤다.

찔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연화가 움찔하며 페이지를 놓쳤다.

백서린의 왼손이 종이를 낚아챘다. 동시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소연화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굳어졌다. 환영독 가루가 멈췄다.

“그래요. 그걸 가져가도 소용없어요. 사형은 이미 독 자체니까. 그 페이지가 말하는 건 단 하나예요. 폐공. 칠절마독공을 스스로 거둬내는 것만이 살 길이에요.”

서리한이 오른손을 허공에서 거뒀다.

“안다.”

소연화의 눈썹이 올라갔다.

“알면서도?”

“스승님이 그렇게 가르쳤다. 독은 쌓는 게 아니라 돌리는 것이다.”

소연화가 비녀를 뽑았다. 머리카락이 허리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비녀 끝이 촛농처럼 반짝였다. 그 속에 뭔가 들어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조각이 은빛 촉 안에 박혀 있었다.

“사형이 폐공하면 복수도 끝이에요. 나를 상대로 무공 없이 싸울 수 있을까요?”

서리한이 검집을 향해 오른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손잡이를 감아쥐지 않고 단단히 밀었다. 검집이 돌바닥을 긁으며 옆으로 밀려났다.

무기를 버렸다.

“이미 폐공하기로 했다.”

백서린이 페이지를 내려다봤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페이지 마지막 줄에 적힌 문장을 읽는 중이었다. 만독지환을 머금은 자가 칠절마독공을 거두면 체내 독기가 역류하여 사흘간 사경을 헤맨다는 구절이었다.

소연화가 비녀를 쥔 손을 올렸다. 독린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럼 증명해 봐요. 여기서, 지금.”

촛불 하나가 심지 없이 다시 붙었다. 독공의 기운이 공기 중에서 발화한 불꽃이었다. 파르스름한 빛이 세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소연화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눈이 건조한 병은 여전했다. 대신 입술이 갈라질 때까지 웃고 있었다.

“사형, 나는 스승님의 마지막 표정을 평생 간직했어요. 이제 사형의 표정도 갖게 해 줘요.”

천장에서 돌가루가 먼저 쏟아졌다. 이어 굉음.

중앙 홀 서쪽 기둥이 안으로 무너지며 천장 판석 세 개가 연달아 떨어졌다. 바닥이 흔들렸다. 백서린이 침통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섰다.

서리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른손이 검집을 벗어던졌다. 칼을 뽑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폈다. 검지와 중지, 보랏빛으로 물든 두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소연화가 기둥 잔해 너머에서 걸어 나왔다. 검붉은 치마자락이 돌가루에 덮여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손목의 금줄 방울이 무너지는 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 입술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사형, 드디어.”

서리한이 발을 굴렀다. 돌바닥이 갈라졌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한 걸음.

소연화의 손톱에서 보랏빛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 그은 다섯 줄기 궤적이 갈퀴처럼 번졌다. 서리한이 상체를 틀었다. 독무가 왼쪽 빈 소매를 스치며 벽에 닿았다. 돌에 닿자 삭, 소리가 나며 표면이 부풀었다.

두 걸음.

서리한의 오른손이 소연화의 어깨를 향했다. 소연화가 뒤로 젖혀졌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허리가 휘었다. 손가락이 빗나갔다. 바로 그 자리로 소연화의 긴 손톱이 서리한의 옆구리를 찔렀다.

도포가 찢어졌다. 피부에 닿기 직전, 서리한이 몸을 반 바퀴 돌렸다. 손톱이 갈비뼈를 스쳤다.

얕은 상처. 하지만 상처에서 독기가 스며들었다. 보랏빛 실핏줄이 상처 주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아직 부족해요. 칠절마독공은.”

소연화의 목소리가 무너지는 천장을 배경으로 맑았다. 서리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오른손 손목을 왼손 의수로 쥐었다.

의수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나무와 쇠로 짠 관절이 손목을 조였다. 손목 안쪽, 마지막 문신이 있던 자리다. 문신의 윤곽조차 이제 보이지 않았다. 일곱 개 중 여섯이 사라지고, 마지막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

만독귀원의 마지막 조건.

서리한이 의수로 자신의 손목을 비틀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서 피가 솟았다. 보랏빛이 아니라 검붉은 색. 핏방울이 허공에 떠올랐다.

소연화의 눈이 커졌다.

피가 증발했다. 증발한 자리에서 검은 안개 같은 독무가 퍼졌다. 구문향도, 환혼향도 아닌. 아무 냄새도 없고, 아무 빛도 없는. 그저 공기 자체가 무거워졌다.

서리한이 내디뎠다. 바닥에 발이 닿을 때마다 돌이 검게 변색됐다. 만독귀원. 피 한 방울이 극독이 되는 경지.

소연화가 물러서며 손을 휘둘렀다. 열 개의 손톱에서 독침이 쏟아졌다. 수십 발.

서리한이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에 맺힌 피 한 방울이 안개로 번졌다. 독침들이 안개에 닿자 녹슬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소연화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맑음이 사라졌다. “그게 스승님이 사형에게만…….”

“아니다.”

서리한의 발이 소연화의 그림자를 밟았다. 검은 독무가 그림자조차 물들였다.

“스승님은 모두에게 주셨다. 네가 거부했을 뿐.”

손이 뻗었다. 소연화가 피하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독공이 역류하고 있었다. 만독귀원의 독무에 닿은 모든 독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소연화의 체내에 쌓인 독들이 하나씩 역류하기 시작했다.

서리한의 손가락이 소연화의 비녀를 집었다. 천천히 뽑았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풀려 흩어졌다.

소연화가 웃었다. 입술이 갈라지며 피가 흘렀다.

“사형…… 이제 알겠어요. 난…….”

말을 끝내지 못했다. 등 뒤의 벽이 무너졌다. 지붕 전체가 기울며 서까래가 쏟아졌다. 바닥이 반으로 갈라졌다. 소연화의 검붉은 치마자락이 갈라진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서리한이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비녀를 쥔 손만 허공에 남았다. 돌과 먼지가 소연화를 덮었다.

백서린이 달려왔다. 서리한의 몸이 기울었다. 무릎이 먼저 꺾였다. 바닥에 닿기 전에 백서린이 어깨를 받쳤다.

“서리한님……!”

오른손이 떨렸다. 비녀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의 검은빛이 손등을 타고 팔로 번지고 있었다. 만독귀원으로 전환된 피가 심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리한의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백서린이 침을 꺼내 목의 핏줄을 찔렀다. 침 끝에서 검은 독기가 스며 나왔다. 임시 방편일 뿐이었다.

비녀를 쥔 손이 천천히 가슴께로 올라갔다. 손가락 사이로 비녀 속에서 작은 빛이 샜다. 비취 조각. 나한철의 팔찌, 사마독의 반지에 이은 세 번째.

서리한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셋.”

의식이 끊겼다.

구관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가루가 촛불을 삼키고, 기둥이 뿌리째 뒤틀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백서린은 이미 조제를 마친 해독제를 서리한의 입가에 댔다.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도자기 병을 기울였다. 검붉은 액체가 갈라진 입술 사이로 스며들었다.

서리한의 눈꺼풀이 떨렸다. 초점 없는 녹색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다. 호흡이 한 번 깊어졌다가 다시 가빠졌다.

“들리나요?” 백서린이 말했다. “해독제를 넣었어요. 하지만 이건 독공을 멈추지 못해요. 체내 독기를 중화할 뿐이에요.”

서리한이 대답 대신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안에 소연화의 비녀가 박혀 있었다. 뽑아내려는 걸까, 놓지 않으려는 걸까. 손가락이 경련하듯 떨렸다.

“선택해야 해요. 지금, 이 자리에서.”

백서린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칠절마독공을 폐공하면 체내 독기 순환이 멈춰요. 만독지환도 해제되고,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천장 돌판 하나가 홀 중앙으로 추락했다. 먼지구름이 번졌다. 백서린이 몸을 숙여 서리한을 가렸다.

“——독공을 잃은 대가로 왼쪽 감각은 영구히 돌아오지 않아요. 미각도 사라질 거예요. 이미 오른손 변색이 진행 중이니 신경 손상이 확정적이에요.”

서리한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은 없었다. 목젖이 한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구관 전체가 경사지며 기울었다.

“폐공하지 않으면 1분 안에 극독이 심장에 도달해요. 그러면 해독제도 소용없어요.”

백서린이 서리한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이 손끝에 전해졌다. 약하고 불규칙했다.

“복수로 죽을 건가요, 독을 버리고 살 건가요.”

서리한이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스승의 편지가 떠올랐다. 소연화가 흩뿌렸던 조각들이 아니었다. 입문한 날 밤, 스승이 직접 건넨 두루마리였다.

‘칠절은 일곱 독이 아니라 일곱 번 포기하는 힘이다. 진정한 독의 경지는 독을 머금음에 있지 않고 흘려보냄에 있다.’

스승의 글씨였다. 서리한은 그날 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공은 쌓는 것이라 배웠으니까. 지금은 달랐다.

눈을 떴다.

“폐공이다.”

오른손이 비녀를 내려놓지 않았다. 다른 손가락들만 펼쳐졌다. 검지와 중지가 단전 위에 닿았다.

백서린이 숨을 들이켰다.

서리한의 손가락이 경혈을 차례로 짚었다. 기해, 관원, 기문. 매번 손끝이 닿을 때마다 짧은 신음을 삼켰다. 네 번째 혈을 누르자 등 뒤로 검은 핏줄이 솟아올랐다가 사그라졌다.

마지막, 단중혈.

손가락이 명치에 닿는 순간, 서리한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입술 사이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벽에 닿은 숨결이 돌을 부식시켰다.

몸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곱 문신이 하나씩 사라졌다. 손목 위 보랏빛 흔적이 번지듯 희어졌다. 마지막 문신이 완전히 지워지자, 목에서 뺨까지 번졌던 푸른 혈관이 본래 살색으로 돌아왔다.

만독지환이 풀렸다.

머리 위에서 큰 돌판이 떨어졌다. 백서린이 서리한의 어깨를 끌어당겨 굴렀다. 돌판이 바로 옆 바닥을 박살냈다.

“가야 해요. 기둥이 버티는 동안에.”

백서린이 서리한의 오른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서리한이 비녀를 허리띠 사이에 꽂았다. 두 사람이 무너지는 복도를 달렸다.

구관의 입구는 이미 반쯤 막혀 있었다. 남은 틈새로 새벽 공기가 흘러들었다. 백서린이 먼저 빠져나가고, 서리한이 돌틈을 비집었다. 오른쪽 어깨가 끼이자 숨을 내쉬며 몸을 빼냈다.

등 뒤에서 구관이 완전히 무너졌다.

먼지가 숲을 덮었다.

독무 숲의 나무들 사이로 첫 새벽빛이 스몄다. 서리한은 쓰러지듯 나무 둥치에 기대었다. 호흡이 안정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허리띠에서 비녀를 뽑아 들었다. 은빛 바늘 끝에 마른 피가 묻어 있었다. 소연화의 것.

복수의 마지막 증표.

왼쪽 어깨 쪽을 내려다봤다. 의수 너머 감각이 없었다. 칠절마독공을 폐공하기 전에도 잃었던 팔이었다.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다친 부위를 눌렀을 때, 아무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다.

“신경이 끊겼나 봐요.” 백서린이 옆에서 말했다. “폐공의 후유증이에요.”

서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혀끝이 입천장에 닿았다. 침의 맛이 사라져 있었다. 미각도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살았군.”

짧은 말이었다. 백서린이 서리한의 손목을 잡았다. 맥을 짚는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만독지환도, 칠절마독공도 완전히 사라졌어요. 이제 평범한……”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서리한의 손에 쥔 비녀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백서린이 숨을 멈췄다. 서리한이 비녀를 눈높이로 들었다. 은빛 바늘과 장식 사이, 연결 부위에 미세한 틈이 있었다.

손톱으로 틈을 벌렸다. 비녀의 몸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안쪽은 속이 비어 있었다.

그 안에서 작은 비취 조각이 드러났다. 사마독의 반지, 나한철의 팔찌에서 나온 것과 같은 빛깔, 같은 결.

스승의 목걸이였다.

독문복수전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