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독문복수전

3화

다음 날 저녁.

흑시루는 남만 제일의 주루였다. 삼층 목조 건물이 등불로 휘황하게 타올랐다. 이 밤만은 일반 손님을 받지 않았다. 정문 앞으로 호위무사들이 늘어섰다. 허리춤엔 하나같이 날붙이.

서리한이 골목 어귀에서 발을 멈췄다.

등 뒤로 들려오는 백서린의 숨소리.

“지하 거래장 입구는 후문 쪽이에요. 정문 경비가 스물, 후문은 여섯.”

그녀가 낮게 말했다.

서리한은 대답하지 않고 도포 안주머니를 짚었다. 금독단 주문서 원본이 바스락거렸다. 사마독의 직인이 찍힌 종이.

“해독제를 원하면.”

서리한이 돌아보지 않고 잘라 말했다.

“내 뒤에서만 있어라.”

백서린이 숨을 멈췄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상관없다.”

서리한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후문은 예상보다 한적했다. 등불 두 개만 깜빡이고 경비 여섯이 교대로 문을 지켰다. 서리한이 그림자 속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누구냐.”

경비 하나가 손을 올렸다.

서리한이 왼쪽 소매를 휘둘렀다. 빈 소맷자락이 바람을 가르며 허공을 쳤다. 경비의 시선이 거기 닿은 순간.

오른손.

손가락 두 개가 경비의 목을 스쳤다. 보랏빛 변색된 손끝이 피부에 닿자 경비는 비명도 없이 주저앉았다.

체독. 마비독.

나머지 경비들이 칼을 빼들었다.

“습격이다!”

서리한이 몸을 낮췄다. 세 발짝. 첫 경비 손목을 비틀고 두 번째 경비 무릎을 찼다. 세 번째.

백서린의 침이 날아왔다.

경비 넷이 동시에 무너졌다. 다섯째가 도망치려다 문설주에 머리를 부딪혔다. 마지막 하나가 입을 열었다.

“누….”

서리한의 손이 입을 막았다.

손끝이 닿고 셋을 셌다. 하나, 둘. 경비가 축 늘어졌다.

“제압만 한 거죠?”

백서린이 다가왔다.

서리한이 문을 열었다. 돌계단이 지하로 이어졌다. 술 냄새와 약재 냄새가 섞인 공기가 올라왔다.

“따라와.”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거래장.

넓은 석실에 탁자 세 개가 놓였다. 벽을 따라 무인들이 늘어서고 중앙 탁자 위엔 붉은 비단이 깔렸다. 그 위로 작은 도자기 병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금독단.

사마독이 중앙에 앉았다.

반백의 머리에 금관, 진한 붉은 비단 도포. 열 손가락에 각기 다른 보석 반지. 왼손 약지의 흑요석 반지가 등불 아래서 반짝였다.

맞은편에 세 무리가 앉았다.

첫째 탁자 앞은 잔룡채. 문신을 한 사내 넷. 둘째 탁자 앞은 북방에서 온 흑풍표국. 셋째 탁자 앞은 의복으로 봐서 청성파 계열의 속가 제자들.

“오늘 거래는 열 병까지다. 남만 밖으로 나가면 값은 세 배.”

사마독이 웃었다.

오른쪽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다.

“먼저 금액을 확인하시죠.”

잔룡채 대표가 금괴를 탁자 위에 올렸다. 사마독이 손가락으로 금괴를 쓸었다. 왼손 약지의 흑요석 반지가 스쳤다.

그때.

발자국 소리.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서리한이 걸어 들어왔다. 짙은 남색 도포에 왼쪽 소매는 빈 채로 매듭지어졌다. 오른손은 허리춤 독약병 위에 걸렸다.

얼굴에 쓴 검은 복면을 벗었다.

푸르스름한 혈관이 목에서 뺨까지 번졌다. 짙은 녹색 눈동자가 사마독을 향했다.

“누구냐.”

잔룡채 대표가 일어났다.

서리한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마독.”

사마독의 눈이 가늘어졌다. 좁고 긴 뱀눈. 반지 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감히.”

잔룡채 대표의 손이 칼자루로 향했다. 서리한이 시선을 돌렸다. 녹색 동공이 번뜩이자 사내가 숨을 삼켰다.

“잔룡채는 물러나.”

서리한이 말했다.

“금독단 거래는 오늘부로 끝이다.”

흑풍표국 측이 술렁였다.

“무슨 소리냐.”

“증거.”

서리한이 품에서 주문서를 꺼냈다.

탁자 위에 펼쳤다. 사마독의 직인. 금독단 원료 배합표. 밀반입 약재 목록.

“만독상단주 사마독. 독문 스승 현천명에게 바친 약이 금독단으로 바꿔치기됐다.”

잔룡채 대표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직인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굳었다.

사마독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른쪽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흥미롭군. 독문이라면….”

왼손 약지의 흑요석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스승의 제자가 살아 있을 줄이야.”

서리한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셨다.”

사마독의 손가락이 멈췄다.

“네가 올린 약으로.”

그 순간.

사마독의 눈이 커졌다. 반지 낀 손가락이 떨리더니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공포였다.

“말 같지 않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서리한이 움직였다.

오른손이 허리춤을 쳤다. 독약병 뚜껑이 날아갔다.

사마독이 탁자를 뒤집었다.

“잡아라!”

벽 쪽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서리한이 몸을 비틀었다. 첫째 무인의 칼날이 옷깃을 스쳤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상대 손목을 찍었다. 보랏빛 손끝. 무인이 비명을 지르며 칼을 놓쳤다.

둘째.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셋째.

어깨를 쳐서 밀어냈다. 체술이 아니라 보법. 독문의 독보.

백서린이 입구에서 침을 던졌다.

무인 넷이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 경혈을 짚은 침.

“서리한!”

그녀가 외쳤다.

서리한은 듣지 않았다. 눈앞에 사마독뿐이었다.

사마독이 물러나며 왼손을 비틀었다. 약지의 흑요석 반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기.

“칠절마독공… 네가 익혔더냐.”

서리한이 오른손을 올렸다.

내공이 손끝으로 몰렸다. 손등의 혈관이 검게 변했고 탁자 위의 촛불이 일제히 흔들렸다.

“그 손으로.”

서리한의 목소리.

“스승님께 약을 올렸지.”

사마독이 반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독기가 안개처럼 퍼졌다.

“죽은 줄 알았더니만! 애송이가 감히!”

서리한이 독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숨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칠절마독공 삼중. 일곱 독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사마독의 독기가 피부에 닿았지만 칠절마독공이 삼켰다. 독이 독을 먹었다.

사마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말도 안 돼… 칠절초 독기를….”

서리한이 거리를 좁혔다.

한 걸음.

사마독이 소매에서 단검을 빼들었다. 두 걸음. 단검을 찔렀다.

서리한이 몸을 비틀어 피했다. 단검이 왼쪽 빈 소매를 찢었다. 천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른손이 사마독의 손목을 잡았다.

“스승님의 원수.”

손아귀에 힘을 줬다.

“첫 번째 이름.”

사마독이 비명을 질렀다.

반지 낀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단검을 놓쳤다. 서리한이 단검을 주워 사마독의 오른손을 탁자 위에 눌렀다.

“이 손으로 약을 올렸고.”

단검이 빛을 반사했다.

“이 손으로 배신했다.”

단검이 떨어졌다.

피가 탁자 위로 흩뿌려졌다. 사마독의 오른손이 잘려 나갔다. 손가락 열 개 중 다섯이 바닥에 떨어졌다. 금관이 굴렀다. 흑요석 반지가 피에 젖었다.

사마독이 쓰러졌다.

입에서 거품과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첫 번째 값이다.”

서리한의 왼손목에서 문신 하나가 깜빡였다. 일곱 개 중 첫 번째. 빛이 평소보다 옅었다. 그걸 보며 서리한이 숨을 내쉬었다.

그때.

몸이 휘청였다.

오른팔이 굳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경련이 어깨까지 번져 혈관이 검게 부풀었다.

칠절마독공 과다 발동.

“서리한!”

백서린이 뛰어왔다.

서리한이 무릎을 꿇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검은 핏줄이 목까지 올라왔다. 독공을 지나치게 썼다.

“움직이지 마요.”

백서린이 무릎을 꿇고 앉으며 앞치마 침구 주머니를 더듬었다. 오른손 검지가 떨렸다. 트라우마의 떨림.

그녀가 숨을 가다듬자 떨림이 멈췄다.

침 네 개가 서리한의 팔과 목에 꽂혔다. 정확히 독혈을 짚었다. 서리한의 호흡이 조금 느려졌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에요. 독공이… 혈관을 타고 역류하고 있어요.”

백서린이 낮게 말했다.

“지금 당장 나가야 해요.”

서리한이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흐릿했다. 탁자 위의 오른손이 보였다. 사마독의 손. 검지에 낀 반지.

팔을 뻗었다.

“증표.”

잘린 손을 천 조각에 쌌다. 탁자 위의 금독단 두 병도 챙겨 도포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잔룡채 대표가 물러서며 말했다.

“우리는 관련 없다.”

흑풍표국도 등을 돌렸다. 청성파 속가 제자들이 먼저 도망쳤다. 무인 넷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사마독은 웅크린 채 오른쪽 팔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피가 바닥에 고였다.

“서… 리… 한….”

사마독이 숨을 토했다.

“스승님께서… 네놈을….”

말을 마치지 못했다. 실신 직전이었다.

백서린이 서리한을 부축했다.

“일어나요.”

서리한이 일어섰다. 다리가 풀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뒤에서.”

그녀가 팔을 어깨에 걸쳤다. 서리한의 체온이 차가웠다. 독기 탓이었다.

“계단이에요.”

둘이 계단을 올랐다.

흑시루 후문.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등불은 여전히 깜빡였고 제압된 경비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백서린이 골목을 살폈다.

“왼쪽으로. 은신처.”

서리한이 걸음을 뗐다. 한 걸음마다 혈관이 검게 부풀었다. 침이 독혈을 막고 있었지만 일시적이었다.

백서린이 호흡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독공 발동 횟수를 기록해야 해요. 앞으로 병세를 예측하려면.”

“알아서 해.”

서리한이 짧게 답했다.

“지금 상태로는 사흘 안에 다시 쓰면 위험해요. 칠절마독공은 하나를 쓰면 일곱 독이 동시에 반응하는 구조예요. 그걸….”

“긴 설명.”

서리한이 백서린을 보지 않고 말했다.

“필요 없어.”

백서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가 올라왔다. 하지만 의원은 환자를 탓하지 않는다.

“해독 연구 자료가 필요해요. 당신 독공이 진행될수록 샘플도 더 많이.”

“원하는 대로.”

골목이 끝나고 작은 은신처가 보였다. 버려진 약재 창고. 백서린이 미리 준비한 장소.

문을 열자 먼지 냄새가 났다.

서리한이 벽에 기대어 앉았다. 품에서 천 조각을 꺼냈다. 사마독의 오른손. 피가 천을 적셨다.

백서린이 등을 보이며 침구를 정리했다.

“손에.”

그녀가 말했다.

“검지 반지.”

서리한이 반지를 쳐다보았다.

손가락 마디에 낀 반지.

흑요석이 아니었다. 사마독이 끼고 있던 열 개의 반지 중 검지에 낀 것. 잘린 손에서 빛이 나자 반지 안쪽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서리한이 반지를 뽑았다.

안쪽 면에 작은 조각이 박혀 있었다. 비취. 초승달 모양. 크기는 손톱만 했다.

백서린이 다가왔다.

“그건….”

서리한의 숨이 멎었다.

스승의 비취 목걸이. 현천명이 늘 목에 걸던 장식. 사마독이 편지에 언급한 그 목걸이. 입문식 때 스승님이 제자들 앞에서 보여주시며 웃으시던 그 빛.

비취 조각을 들어 올렸다.

빛을 비추자 조각 안쪽에 미세한 글자가 드러났다. 침으로 새긴 암호문.

'나한철 북광산'

서리한의 녹색 눈동자가 커졌다.

“나한철.”

세 사형 중 둘째. 사마독과 달리 무공이 높았다. 은둔한 지 오래였다.

“북방 폐철광산.”

백서린이 심호흡을 내뱉으며 말했다.

“거점이에요.”

비취 조각이 서리한의 손바닥에 놓였다. 스승님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했다.

“두 번째 이름.”

왼손목의 문신이 다시 한 번 깜빡였다. 첫 번째 문신이 전보다 더 옅어졌다. 마치 새겨진 독이 옅어지듯.

백서린이 문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독경통해를 꺼낼 순 없었다. 찢긴 마지막 페이지. 완전한 해독의 전제 조건.

그녀가 등을 돌렸다.

“지금은 치료가 먼저예요.”

서리한이 비취 조각을 품에 넣었다. 스승의 유품. 사마독의 반지. 금독단 두 병. 증표가 늘었다.

등불이 흔들렸다.

밤은 아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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