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독문복수전

5화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산길이었다. 폐철광산 입구는 버려진 지 오래된 듯 광차 레일이 녹슬어 있고, 갱도 어귀를 가로막은 쇠창살은 한쪽이 뜯겨 나갔다.

서리한이 걸음을 멈췄다. 왼쪽 소매가 바람에 살짝 들렸다.

“매복.”

백서린이 침통을 품에서 꺼내며 숨을 죽였다. 그녀의 시선이 어둠 속 갱도 입구를 훑었다. 바위 그림자가 움직였다.

하나, 둘, 셋.

어둠에서 복면을 한 사내들이 나타났다. 전부 검은 무명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에는 기다란 곡도와 쇠뭉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나한철 대인께서 기다리신다.”

앞장선 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리한이 움직였다. 오른손이 허리춤을 스쳤다. 손가락 사이로 작은 도자기 병이 하나 올라왔다.

던졌다.

병이 복면대의 발밑에서 깨졌다. 푸른 연기가 순식간에 퍼졌다. 한빙사 주정.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독이다!”

선두의 둘이 비틀거렸다. 무릎이 먼저 꺾이고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서리한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오른손이 곡도를 쥔 복면인의 손목을 쳐내고, 돌려서 턱을 가격했다. 뼈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상대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두 번째가 쇠뭉치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컸다. 서리한은 상체를 숙여 피하며 오른발로 상대의 무릎을 찍었다. 복면인이 신음을 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백서린이 침을 뽑았다. 세 번째 복면인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피하지 않았다.

상대의 곡도가 어깨를 스치기 직전, 백서린의 침이 복면인의 팔뚝 혈자리에 꽂혔다. 손목이 힘을 잃고 무기가 땅에 떨어졌다. 곧바로 두 번째 침이 목의 혈을 찔렀다. 복면인이 눈을 뒤집으며 무너졌다.

“왼쪽!”

백서린의 외침에 서리한이 몸을 틀었다. 바위 뒤에서 뛰어나온 복면인이 거대한 쇠지레를 휘둘렀다. 서리한이 옆으로 굴렀다. 쇠지레가 땅을 찍어 파편이 튀었다.

그 쇠지레가 다시 올라갔다. 하지만 목표가 빗나갔다.

지지목을 쳤다.

갱도 입구를 받치던 굵은 나무 기둥이 굉음과 함께 부서졌다. 천장의 암반이 먼저 갈라졌다. 돌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바위 하나가 떨어져 복면인 하나를 덮쳤다. 비명이 짧게 울렸다.

서리한이 백서린의 손목을 잡았다.

“안으로.”

갈림길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백서린이 그의 뒤를 따라 뛰었다. 등 뒤에서 바위들이 연이어 무너져 내렸다.

파편이 허공을 가르며 어깨를 스쳤다. 돌부스러기가 등짝에 박혔다. 갱도가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큰 바위 하나가 입구를 막았다. 굉음과 함께 먼지 구름이 밀려들었다. 두어 번 기침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든 서리한의 눈에 무너진 갱도 안쪽이 들어왔다. 복면인 셋이 쓰러져 있었다. 하나는 다리가 바위에 깔렸고, 둘은 머리에서 피를 흘렸다. 그 옆으로 헝겊 옷을 입은 민간 광부 둘이 벽에 기대어 떨고 있었다.

백서린이 무릎을 꿇었다. 침통을 열고 침 대신 붕대와 지혈용 약초를 꺼냈다. 벽 틈새로 새는 희미한 빛에 의지했다.

다리가 깔린 복면인이 신음했다. 백서린은 옷자락을 찢어 지혈대를 만들었다. 그녀의 손이 상처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뼈가 부러졌어요. 바위를 치워야 합니다.”

서리한이 바위에 손을 얹었다. 외팔로는 무리였다. 말없이 광부들을 바라봤다. 잠시 후 떨던 광부 하나가 일어나 함께 바위를 굴려내자 깔렸던 다리가 드러났다.

백서린이 재빨리 붕대를 감았다. 그 순간 오른손 검지가 떨렸다.

미세했다.

하지만 침을 쥘 때 그 떨림이 손끝에서 멈추지 않았다. 백서린의 얼굴이 굳어졌다. 붕대를 묶는 손놀림은 정확했지만, 검지가 뻣뻣하게 경직됐다.

다른 환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머리를 다친 복면인. 출혈이 심했다. 지혈 약초를 짓이겨 상처에 올렸다. 떨림이 약초를 떨어뜨렸다.

백서린이 숨을 들이켰다.

다시 집었다. 손가락에 힘을 줬다. 관절이 하얘졌다.

지혈은 성공했다. 붕대를 감고 압박을 줬다. 마지막 환자. 광부 하나가 가슴을 감싸 쥐고 숨을 헐떡였다. 갈비뼈 골절.

“똑바로 누우세요.”

백서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손은 떨렸다. 부목을 대는 동안 검지가 부목 가장자리를 두 번이나 잘못 짚었다. 세 번째 만에 제대로 고정했다.

서리한이 벽에 기대어 그녀를 지켜봤다. 녹색 눈동자가 백서린의 손에 고정됐다.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이것으로 급한 처치는 끝났습니다.”

백서린이 말했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검지를 구부려 손바닥 안으로 감췄다. 주먹을 꼭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가늘게 떨렸다.

실패한 기억이 스쳤다. 손이 떨려 침을 잘못 놓았던 날. 약재가 잘못돼 환자가 눈을 감았던 날. 침상에 누워 차가워지던 손.

지금은 아니었다.

백서린이 천천히 손을 폈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떴다.

오른손을 치마폭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표정은 의연했다. 하지만 치마폭 아래 숨은 손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서리한이 벽에서 몸을 뗐다. 그의 발걸음이 바닥의 돌조각을 밟았다. 부서지는 소리. 백서린의 곁에 멈춰 섰다.

“손.”

백서린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서리한은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을 그녀의 오른손에 두었다. 치마폭 아래서 떨림이 멈추길 기다렸다. 백서린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침통을 품에 넣었다. 손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서리한의 녹색 눈동자가 그 떨림을 따라 움직였다. 물었다.

“언제부터.”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백서린이 잠시 망설였다.

“오래됐어요.”

말을 마치고 광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움직일 수 있습니까.”

광부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하나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백서린이 부목을 단단히 고정했는지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지혈대를 한 번 더 만졌다.

다친 복면인 셋은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갈비뼈가 부러졌으니 움직이면 안 돼요.”

백서린이 짧게 제지했다. 복면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상처 입은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갱도 깊숙한 곳에서 바람이 울렸다. 입구가 막혔지만, 어디선가 공기가 새고 있었다. 벽 틈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먼지가 가라앉고 있었다.

백서린이 벽에 등을 기댔다. 떨리는 검지를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눈을 감았다. 떨림이 손바닥 안에서 맥박처럼 뛰었다.

서리한이 무너진 입구 쪽을 바라봤다. 바위 더미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한철의 부하는 더 오지 않았다. 광산 안쪽은 깊고 어두운 침묵.

백서린이 눈을 떴다. 손 떨림은 여전했다. 침통을 열어 침 한 개를 꺼냈다. 자기 혈자리를 향해 손을 올렸다가 멈췄다.

떨리는 손으로는 무리였다.

침을 도로 넣었다. 침통 뚜껑을 닫는 소리가 갱도 안에 울렸다.

서리한이 허리춤의 독약병을 하나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안의 분말이 빛에 반짝였다. 잠시 바라보다 다시 닫았다.

“기다린다.”

백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네.”

떨리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떨림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어둠 저편에서 쇠붙이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먼 발치의 광차가 움직인 것인지, 바위가 갈라진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서리한의 손이 독약병을 다시 품에 넣었다. 백서린의 손은 여전히 무릎 위에서 떨렸다.

도망치는 발소리가 갱도 안쪽으로 이어졌다. 서리한이 따랐다. 단검 끝이 벽 암석을 스치며 불꽃을 튀겼다.

빛 없는 갱도 깊은 곳. 벽 광물이 푸르스름한 잔광만 내뿜었다.

도주하던 하급 조제사가 돌부리에 걸렸다. 품에서 약병들이 쏟아졌다.

서리한의 오른손이 멱살을 움켜잡았다. 단검을 목 뒤로 들이밀자 조제사의 숨이 멎었다.

“어디까지.”

떨리는 손가락이 갱도 안쪽을 가리켰다. 좁은 통로 저편으로 철광석 채굴 흔적이 거미줄처럼 얽혔다.

“대장님… 안쪽 제련장에…”

서리한이 조제사를 벽으로 밀쳤다. 뒤통수를 부딪치고 축 늘어졌다.

제련장 입구는 반쯤 무너진 목조 지지대가 막았다. 쇠 녹은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섞였다.

지지대 아래로 빠져나갔다.

제련장 안은 천장까지 뚫렸다. 용광로 흔적과 깨진 도가니 조각이 흩어졌다. 구석 벽에 시신 하나가 기대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졌다.

서리한의 눈이 흉골에 멈췄다. 갈비뼈가 방사형으로 부서지고 골절면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쇄골착. 뼈를 안쪽부터 분쇄하는 독문 무공.

시신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른손이 부서진 갈비뼈 위를 훑었다.

벽면을 올려다봤다.

암벽에 푸르게 빛나는 선이 녹아들었다. 손바닥으로 내리친 듯한 자국이 수직으로 패였다. 독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면 체내 독기가 바위 광물과 반응해 남기는 흔적. 스승 현천명의 독공 자국이었다.

그 옆에 더 깊은 균열이 벽을 가로질렀다. 주먹 자국이었다. 암석이 동심원으로 부서졌다.

쇄골착 타격 흔적. 스승의 독공 자국 바로 옆.

서리한이 일어섰다.

스승은 이곳에서 싸웠다. 먼저 독공으로 벽을 쳤다. 그 직후 같은 자리에서 쇄골착에 맞았다. 시간차가 거의 없다. 독공으로 벽이 무너지기도 전에 날아든 공격이었다.

마주 보고 싸운 게 아니다. 측면이나 후방에서 들어왔다.

오른손에 뼛조각 하나를 집었다. 충격이 척추까지 전달돼 전신 뼈가 연쇄 골절된 흔적. 외부 충격 방향은 왼쪽 후방. 스승의 왼팔은 이미 없었다.

뼛조각이 손아귀에서 부서져 가루가 흩어졌다.

사마독이 금독단을 바쳤다면, 이 광산에서 기다린 쪽은 나한철이었다. 약으로 무력해진 스승에게 뒤에서 쇄골착을 날린 것.

녹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빛났다.

푸른 혈관이 목에서 뺨까지 부풀었다. 칠절마독공의 독기가 도포 아래로 새어나와 발밑 먼지를 밀어냈다.

스승의 독공과 나한철의 쇄골착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사용됐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돌아서서 제련장을 나왔다.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빠른 걸음. 약초 냄새가 먼저 다가왔다.

백서린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침통이 들려 있었다. 땋은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고, 호흡이 약간 가빴다. 오른손 검지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부상자들은 안정됐어요. 그런데…”

서리한의 얼굴을 보더니 말을 멈췄다. 백서린의 호박색 눈동자가 그의 목에 부풀어 오른 혈관을 훑고, 도포 자락에 묻은 뼛가루에 멎었다.

“안쪽에서 뭘…”

갱도 입구 쪽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백서린의 말을 잘랐다.

수십 개의 발소리였다. 장화 바닥이 암석을 긁는 소리, 무기가 갑옷에 부딪히는 소리. 질서 없이 거칠었지만 숫자는 분명했다.

그리고 목소리.

“오랜만이군, 막내야!”

갱도 벽을 타고 증폭된 음성이 제련장 입구까지 밀려왔다. 걸걸하고 굵은 목소리. 한 번 듣고도 바로 알 수 있는 억양.

나한철이었다.

“사부님 뼈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져주다니. 감동인데?”

웃음소리가 갱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한 방향이 아니었다. 갱도 입구에서 본류가 밀려오고, 좌우 측면 갱도에서도 별동대가 접근하는 소리였다.

백서린이 침통을 가슴 앞으로 당겼다. 손가락이 침 하나를 뽑아 쥐었다. 손끝 떨림이 침 끝에 전해져 바늘이 은은하게 진동했다.

서리한이 그녀의 앞에 섰다.

오른손이 허리춤에서 독약병 하나를 꺼냈다. 엄지로 마개를 밀어내자 역한 냄새가 퍼졌다. 도포 소매를 걷어 올리자 왼쪽 절단면이 드러났다. 상처 가장자리를 따라 푸른 독문신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뚜껑을 딴 독약을 절단면에 부었다. 액체가 피부에 닿자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흡수됐다. 문신의 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사부님의 뼈를 부순 기술, 보고 싶었지?”

나한철의 음성이 한층 가깝게 들려왔다. 이제 겨우 수십 보 거리였다. 횃불 불빛이 어둠 저편에서 벽면을 핥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직접 보여주마. 네놈 뼈도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줄 테니.”

백서린이 심호흡했다.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서리한은 단검을 거꾸로 쥐었다. 칠절마독공의 기운이 칼날을 따라 흘러내리며 푸른 안개처럼 엉겼다.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갱도 입구에서 횃불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열댓 개의 불꽃이 좁은 통로를 가득 채웠다. 그 뒤로 어깨가 통로 양옆 벽에 닿을 듯한 거구의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한철이었다.

독문복수전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