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복수전
7화
서리한이 바위 뒤로 몸을 날렸다. 쇄골착이 허공을 갈랐다. 철환이 바위 모서리를 깨뜨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오른쪽 어깨가 늦었다. 나한철의 두 번째 휘두르기가 어깨죽지를 스쳐 갔다. 타박음이 났다.
“소연화 그년이 말했지. 스승님 얼굴이 파래질 때까지 바라봤다고.”
나한철이 쇄골착을 어깨에 메듯 올리며 다가왔다. 광장 바닥이 그의 발걸음마다 울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늙은이가 눈만 굴리더래. 그걸 내가——”
서리한의 오른손이 허리춤을 스쳤다. 독병 하나가 나한철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나한철이 고개만 기울였다. 병이 등 뒤 바위에서 깨졌다.
“촌스럽군. 사부님도 그렇게 덤비셨지.”
서리한이 숨을 들이켰다. 어깨 통증이 팔 전체로 번졌다. 그래도 오른손이 움직였다. 손가락 사이로 두 번째 병이 올라왔다.
나한철의 그림자가 덮쳤다. 쇄골착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몸을 굴렸다. 바닥에 금이 갔다. 서리한이 한쪽 무릎으로 일어났다. 호흡이 짧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왼쪽 가슴께가 쑤셨다.
“왜 안 오지.”
백서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한철이 광장 입구를 힐끗 보았다.
“네 여자는 도망친 거냐.”
서리한이 대답 없이 웃었다. 입술이 갈라졌다.
그 웃음을 보자 나한철이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이내 쇄골착을 들어 올렸다.
백서린은 그 순간 광장 동쪽 바위 더미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한철의 걸음걸이를 보았다. 왼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끌렸다. 오른발은 단단했다. 체중이 왼쪽으로 실리지 않는다.
발바닥이다.
백서린이 침통을 열었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왼쪽 용천혈. 거기만 독화가 덜 됐다.
서리한이 다시 일어났다. 도포 자락에서 뼛가루가 떨어졌다.
“한 번만 더.”
나한철의 눈이 커졌다. “뭐?”
“스승님 얼굴 말해라.”
서리한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치 약재 이름을 묻는 듯했다. 녹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한철이 크게 웃었다. “눈물이 났지! 소리도 못 지르고 눈물만 줄줄——”
쇄골착이 날아왔다. 서리한이 왼쪽으로 피했지만 어깨 부상이 중심을 무너뜨렸다. 무릎이 꺾였다. 철환 셋이 바닥을 찍었다.
나한철이 팔을 휘둘러 올렸다. 쇄골착이 서리한의 정수리를 향해 치솟았다.
“이제 끝이——”
왼발이 떨어졌다. 발바닥에 찔려 들어오는 금속의 감각.
“뭐——”
나한철이 휘청였다. 발을 내려다보았다.
바닥 틈새, 녹슨 광차 레일 사이로 은빛 침 하나가 정확히 솟아 있었다. 용천혈을 관통했다. 백서린이 미리 박아둔 침이었다.
나한철의 왼다리가 순간적으로 힘을 잃었다. 거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계집이!”
두 번째 침이 날아왔다. 오른쪽 견정혈에 꽂혔다. 백서린이 바위 뒤에서 일어나 있었다. 땋은 머리가 흐트러졌다.
“이제 왼쪽.”
그녀가 달려왔다. 손에 네 번째 침.
나한철이 포효했다. 전신의 근육이 부풀었다. 피부가 검푸르게 변했다. 체독이 발동된 것이다. 이미 꽂힌 침 두 개가 살점을 뚫고 튕겨 나갔다.
“그깟 침!”
백서린이 멈추지 않았다. 쇄골착의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한철이 팔을 휘둘렀다. 백서린이 상체를 숙였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찢었다. 그 틈에 세 번째 침을 날렸다.
왼쪽 목의 핏줄과 쇄골 사이. 체독이 가장 얇은 지점.
백서린의 오른손 검지가 떨렸다. 침 끝이 흔들렸다. 나한철의 거친 호흡이 그녀의 이마를 때렸다.
떨리는 손가락이 침을 놓지 못했다.
“백서린!”
서리한이 외쳤다. 나한철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순간 백서린이 숨을 들이켰다.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받쳤다. 떨리는 손가락 위로 왼손이 덮였다.
침이 들어갔다.
정확히 혈에 닿았다.
나한철의 몸이 굳었다. 눈이 뒤집혔다. 목에서 괴성이 터졌다.
체독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전신의 검푸른 핏줄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팔에서 다리로, 등에서 가슴으로 독기가 거꾸로 흘렀다.
“이런 개 같은——”
나한철이 무릎을 꿇었다. 쇄골착이 바닥에 떨어졌다. 손가락이 쥐가 났다.
전신 근육이 제각각 수축했다. 갈비뼈가 들썩였다. 허벅지가 파열음과 함께 부풀었다 꺼졌다.
백서린이 물러났다. 손에서 떨림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서리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에요.”
서리한이 일어났다. 어깨가 아팠지만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한철 앞에 섰다.
바닥의 쇄골착을 집어 올렸다.
나한철이 눈만 굴렸다. 입술이 경련으로 비틀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승님께서……”
서리한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녹색 눈동자가 나한철의 팔로 천천히 내려갔다.
“……뼈가 부서질 때도, 네 얼굴을 보고 계셨겠군.”
쇄골착을 들어 올렸다. 오른손 하나로 무게를 견뎠다. 내공이 손목을 타고 철환으로 흘러들었다.
“소리가 나셨을까.”
쇄골착이 내려갔다.
나한철의 오른팔이 분쇄됐다. 뼈가 갈리는 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경련으로 목이 조여 있었다.
“눈물이 나셨다고?”
두 번째. 왼팔. 나한철의 팔뚝에서 지네 문신이 찢어졌다. 검푸른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서리한이 쇄골착을 던졌다. 무릎을 꿇고 나한철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팔찌가 덜컹였다. 수십 개의 금속 고리 사이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나한철이 이를 갈았다. 마지막 힘으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네, 네놈도…… 조만간……”
서리한이 팔찌를 뜯어냈다.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 가죽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한철의 손목에서 검은 피가 번졌다.
“네놈의 뼈도 스승님처럼 부서져라.”
팔찌를 왼쪽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증표였다.
나한철의 눈이 열린 채로 멈추었다. 체독의 역류가 멈추지 않았다. 심장이 마지막으로 한 번 뛰었다. 피부가 검게 변했다.
서리한이 일어서려다 멈추었다. 오른쪽 발끝부터 감각이 사라졌다. 양말을 채우는 차가운 물처럼 마비가 기어올랐다.
“……백서린.”
목소리가 가늘었다.
백서린이 달려왔다. 서리한의 품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닿은 가슴 근육이 떨고 있었다.
“독공이 올랐어요, 지금.”
서리한의 입술이 파래졌다. 푸른 혈관이 목에서 턱까지 번졌다. 만독지환의 전조와 칠절마독공의 상승이 동시에 몸을 찔렀다.
다리가 풀렸다.
백서린이 그를 받아 안았다. 바닥에 무릎이 닿았다. 서리한의 머리가 그녀의 어깨에 얹혔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손을…… 손이…….”
백서린이 서리한의 오른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그녀가 엄지로 수소양경맥을 짚었다.
“팔도. 양팔 다 마비가 오고 있어요. 독공이 경맥을 역류시킨 거예요.”
침통을 열었다. 손이 떨렸다.
서리한의 눈이 반쯤 감겼다. 초점이 흐려졌다.
“백서린.”
“……말하지 마요.”
“증표…… 둘째다.”
백서린의 손이 멈추었다. 침을 든 오른손이 공중에서 떨렸다.
그녀가 침을 내리꽂았다. 서리한의 양팔 소부혈에 네 개의 침이 박혔다. 마비의 진행이 늦춰졌다. 손끝에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다.
“움직이면 안 돼요. 지금부터 반 시진은——”
“왼쪽 팔찌.”
서리한이 끊어 말했다. 숨을 내쉬었다.
백서린이 그의 왼쪽 소매를 만졌다. 옷감 아래 딱딱하게 느껴지는 금속 덩어리.
“체크리스트야.”
서리한이 눈을 감았다. 손끝이 땅을 긁었다. 마비된 팔이 부들거렸다.
백서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련장 쪽에서 부하들의 함성이 점점 가까워졌다. 횃불이 흔들렸다.
그녀가 의학적으로 논리를 찾았다. 해야 할 말은 하나였다.
“자. 일어나요.”
서리한이 눈을 떴다.
백서린이 이미 그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체중이 실렸다. 둘의 호흡이 섞였다.
“아직 한 사람 남았잖아요.”
서리한이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발이 바닥을 디뎠다. 마비가 있었지만 버텼다.
둘이 광장을 가로질렀다. 나한철의 시체가 어둠에 잠겼다. 횃불이 제련장입구를 비추었지만 그들은 이미 서쪽 갱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백서린의 손가락 떨림이 서리한의 허리를 받치는 손에 전해졌다. 서리한은 그 떨림을 알았지만 묻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리한의 호흡이 짧아졌다. 독공이 오르면서 체내의 독기가 심장을 압박했다.
“서두르지 마요.”
“부하들이……”
“이 갱도는 알잖아요. 예전에 일하던 곳.”
백서린이 말을 돌렸다. 서리한의 다리에서 감각이 또 한 번 꺼졌다. 걸음이 느려졌다.
“의원이 할 말이 아니지만.”
“……뭔데.”
“그 팔찌, 두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서리한이 걸음을 멈추었다. 백서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녹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오른손이 왼쪽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팔찌를 움켜쥐었다.
“안 된다.”
한 마디였다. 다시 걸었다.
백서린이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서리한의 허리를 더 단단히 받쳤다. 검지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바위가 무너지는 소리, 쇠붙이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멀어지고 있었다.
서쪽 갱도를 빠져나와 본채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였다. 백서린이 서리한의 체중을 거의 떠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계단참에 다다르자 서리한의 다리 감각이 돌아왔다. 그는 백서린의 부축을 뿌리치듯 떼어내고 스스로 섰다.
나한철의 팔찌를 손에 쥔 채 서리한이 몸을 일으켰다. 백서린 쪽으로 한 걸음 뗐다.
두 번째 걸음에서 무릎이 꺾였다.
돌바닥에 부딪힌 소리보다 숨 멎는 소리가 먼저 났다. 오른손이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손등으로 푸른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목에서 뺨까지 번지던 혈관이 검게 변색됐다.
백서린이 달려들었다. “서리한!”
서리한의 등이 활처럼 젖혀졌다. 호흡이 짧게 씹혔다. 뱉지 못한 숨이 목 안에서 갈렸다. 피부가 종잇장처럼 마르며 손끝부터 괴사하기 시작했다. 오른손 손톱 밑이 검어졌다.
백서린이 침통을 뽑았다. “언제부터였어요. 발작 전조.”
“……광장에서.”
말 한 마디에 입술이 터졌다. 검붉은 핏줄이 턱을 타고 흘렀다. 백서린이 손을 뻗어 목의 핏줄을 짚었다.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다 한 박자 쉬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지난번 발작이 엿새 전이에요. 삭일까지 닷새는 남았고.”
침 세 개를 동시에 뽑아들었다. 견정, 기문, 단중혈에 순서대로 꽂았다. 서리한의 몸이 한 번 크게 떨리더니 호흡이 길어졌다.
백서린이 침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주기가 30퍼센트는 줄었어요. 칠절마독공을 쓸 때마다 만독지환이 빨라져요.”
서리한이 눈을 떴다. 동공이 흐릿했다. “얼마나.”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남은 게.”
침을 더 깊이 찔렀다. 서리한이 숨을 들이켰다. 백서린의 손이 침통으로 다시 갔다. 손가락 세 개가 침을 집었다. 집은 손가락이 떨렸다.
오른손 검지.
그녀가 침을 쥔 손을 허리춤 뒤로 감췄다. 왼손만으로 침혈을 짚었다. 태연을 가장한 손끝이었지만 서리한의 시선이 그 손목을 따라 내려갔다.
“떨리는군.”
“신경 쓸 때가 아니에요.”
서리한이 팔찌를 움켜쥔 손을 들어 올렸다. 손목에서 나한철의 피가 굳었다. “이걸로 두 번째다.”
백서린이 침을 한 개 더 놓았다. 경문혈에 꽂자 서리한의 어깨 근육이 풀렸다. 괴사가 멈추고 손톱 밑 검은 기운이 엷어졌다. 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품에서 해독약 한 봉을 꺼냈다. 사향과 감초 냄새가 갱도의 습기와 섞였다. 서리한의 입술 사이로 조금씩 흘려 넣었다.
서리한이 약을 삼켰다. 잠시 뒤 목소리가 돌아왔다.
“지금 상태로 앞으로 몇 번.”
백서린이 빈 약봉을 접었다. 손가락 두 개로 접는 동작인데 검지를 쓰지 않았다. 중지와 약지만으로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침묵.
서리한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젖은 암반 틈새로 어둠만 흘렀다. “만독귀원까지 가면.”
“그 전에 죽어요.”
백서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침통을 닫으려다 놓쳤다. 은 침 몇 개가 바닥에 흩어졌다. 줍는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이 손 때문에…… 예전에 환자 하나를 살리지 못했어요. 증상이 똑같은데 손이 말을 안 들어서. 그 뒤로 사람이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이래요.”
침 하나를 집지 못했다. 손가락이 현을 튀기듯 두 번, 세 번 허공에서 멈췄다. 서리한이 손을 뻗었다.
오른손.
떨리는 그녀의 손등을 감쌌다. 식은땀이 밴 피부였다. 손바닥 온도만이 살아 있었다.
서리한이 말했다. “시간을 묻는 거다.”
“모르겠어요.”
“거짓말.”
화도 나지 않았다. 서리한이 손을 거두었다. 백서린의 검지가 잠시 더 떨다가 가라앉았다. 서늘해진 손이 침을 하나 집었다.
“만독지환의 발작이 이 속도면…… 닷새 후 삭일 발작을 버티기 힘들어요. 칠절마독공을 한 번만 더 쓰면 독공과 만독지환이 서로 먹이로 물려요.”
서리한이 팔찌를 품 안에 밀어 넣었다. “소연화 처리까지다.”
“그 전에 제가 찢긴 페이지를 찾을게요. 소연화가 가졌을 거예요. 독경통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서리한이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가 삐걱거렸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갱도로 들어왔다.”
백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알아요.”
어둠 속 갱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한철의 부하들은 아니다. 더 가볍고 느리다. 한 걸음, 한 걸음, 규칙적인 간격으로 돌부스러기를 밟는 소리.
갱도 입구의 어둠에서 싸늘한 미소가 먼저 드러났다. 희미한 등불이 손끝에 들려 있었다. 소연화가 걸음을 멈추고 서리한을 내려다보았다.
“사제, 스승님의 죽음이 그렇게 궁금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