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게이트: 리셋

11화

상암동 하늘이 붉게 갈라졌다. 게이트 입구가 열리자 도로 아스팔트 위로 검은 균열이 번졌다. 관제 구역 임시 컨테이너 안, 모니터 세 개가 켜져 있었다. 왼쪽은 게이트 마나 파형, 가운데는 심층부 열화상, 오른쪽은 진입자 바이탈.

정도윤이 가운데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강민준, 진입 시작.”

김하사가 왼쪽 화면의 수치를 짚었다. 마나 밀도 곡선이 3200테라룩스를 돌파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쯤 심층부 진입했겠군.”

강민준은 '빛의 서약' 오른팔 보호대를 두드리며 걸었다. 금빛 마나 아우라가 동굴 벽면을 핥았다. 게이트 내부는 침묵. 발소리만 바닥에 깔린 잿빛 이끼를 스쳤다.

던전 코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 수정 기둥. 높이 4미터. 표면에서 군청색 맥박이 뛰었다.

“이거로군.”

강민준이 양손을 수정 기둥 쪽으로 뻗었다. 신성력이 금빛 파장으로 퍼져나갔다. 출력 80퍼센트.

벽면이 흔들렸다. 90퍼센트. 바닥 이끼가 바스러졌다.

관제 화면에서 마나 밀도 곡선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김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계점 돌파.”

경고음이 울리기 전에 마나 파형이 반전했다.

강민준의 신성력은 던전 코어에 닿지 못했다. 코어 표면에서 군청색 맥박이 한 번 튕기자, 금빛 파장이 그대로 강민준의 가슴으로 되돌아왔다. 충격파 하나가 동굴 전체를 찔렀다.

‘빛의 서약’ 보호대가 산산조각났다.

강민준의 왼쪽 무릎이 먼저 꺾였다. 이어 오른팔. 신성력이 증발했다.

바닥에서 검은 촉수 같은 덩굴이 솟아 그의 허벅지와 어깨를 감았다. 강민준이 몸을 틀었지만 마나가 응답하지 않았다. 덩굴이 조여들었다. 금빛 동공이 흔들렸다.

“뭐야…….”

숨소리가 짧아졌다. 덩굴이 갈비뼈를 압박했다. 강민준의 왼쪽 흉터 부위에서 힘줄이 튀어나왔다.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샜다. 덩굴이 천천히 그를 들어 올리더니 바닥에서 1미터 높이로 고정시켰다.

열화상 화면에서 강민준의 체온 신호가 급락했다. 바이탈 라인이 점멸을 멈추고 황색 고정.

정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게이트 규칙 발동. 완료.”

김하사가 의자 등받이를 움켜잡았다. “S급이 저렇게 쉽게.”

“게이트는 등급 순으로 희생자를 고르지 않아.” 정도윤이 왼쪽 화면의 파형 그래프를 확대했다. “기억한다. 지난 12년간 같은 패턴을 세 번 봤다. 높은 출력으로 들어간 놈부터 역제압하는 규칙.”

그가 데이터칩을 단말에 꽂았다. 오른쪽 화면에 게이트 1호점 대숙청 생존자 명단이 떠올랐다. 람다 구역. G1-Λ-7. 마나 파형 중첩 그래프가 그 옆에 자동으로 로드됐다.

“이 파형을 똑같이 그리는 게이트는 없어. 하나만 빼고.”

김하사가 오른쪽 화면을 노려봤다. “저게 그 말이었군. 진화하는 게이트지만 나락만 12년 전 판박이라고.”

“강민준이 신성력을 최대 출력으로 개방할 때까지 4분 17초 걸렸다. 3년 전 잠식된 회랑 변이 시간과 같아.”

김하사가 담배를 꺼내다 관제 컨테이너 천장의 금연 표지를 보고 구겨넣었다.

“그럼 저건 이미 끝난 작전이네.”

“끝나지 않았다.” 정도윤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던전 코어의 진동 주파수였다. “게이트가 아직 강민준을 죽이지 않았다. 지금은 일단 가두기만.”

밖에서 엔진 소리가 났다. 검은색 길드 차량 두 대가 관제 구역 철제 펜스 앞에 멈췄다. 박성렬이 문을 열고 내렸다. 트렌치코트 깃을 세운 채 빠르게 컨테이너 쪽으로 걸어왔다.

문이 열렸다.

“상황 보고.”

군복 차림의 하급 조제사 한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박성렬의 시선이 모니터 세 개를 스캔했다. 강민준의 바이탈 황색 고정. 마나 파형 반전 로그. 열화상에 포박된 실루엣.

박성렬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다 멈췄다.

“길드는 게이트 통제권을 발동한다. 관제 데이터는——”

“늦었습니다.”

정도윤이 오른쪽 화면의 전송 아이콘을 눌렀다. 박성렬의 태블릿에 알림이 떴다. 그가 화면을 내려다봤다.

게이트 1호점 작전 원본 보고서. 사망 처리자 14명. 하단 주석: ‘명령 하달자: 당시 전략국장 박성렬’.

박성렬의 손가락이 태블릿 모서리를 움켜잡았다.

“출처가 의심스럽군요. 조작된 정보를——”

“관리청 재조사팀에도 같은 파일을 보냈습니다. 10분 전.” 정도윤의 손이 시계로 가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멈췄다. “검증은 그쪽에서 하겠죠.”

박성렬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너 같은 E급이——”

“보고서 하단 코드. 세 자리 번호가 국장님 결재 승인 일련번호와 일치합니다. 길드 전산 서버에서 추출한 데이터와 대조해도 같고.”

박성렬의 안경 너머로 핏줄이 붉어졌다.

태블릿 화면이 한 번 더 깜빡였다. 두 번째 파일이 열렸다. E급 각성자 3명의 누락 기록.

KR-E-2239, KR-E-2240, KR-E-2241. 연구소 이관 주석. 코드 앞 세 자리가 강민준 재검증 요청서와 일치했다.

김하사가 박성렬과 하급 조제사 사이를 한 걸음 막아섰다.

“차 한 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박성렬의 숨소리만 컨테이너 안에 남았다. 그가 태블릿을 조제사에게 건네며 손가락 하나로 관제실 밖을 가리켰다.

“통신 중계 차단하겠습니다. 방금 전송된 데이터는 위법 수집——”

정도윤이 모니터를 박성렬 쪽으로 돌렸다.

“나락 게이트는 지금 강민준 길드장님의 마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비 개방 때 신성력 70%를 봉쇄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방금 포박된 건 규칙의 첫 단계.”

박성렬의 눈이 가늘어졌다.

“두 번째 단계는 뭡니까.”

“게이트가 가둔 개체의 마나를 전부 소진시키는 겁니다.” 정도윤이 던전 코어 진동 그래프를 손가락으로 쫓았다. “지금 이 파형이 평형을 넘어서면, 다음은 역류가 아니라 소멸입니다. 강민준 길드장님은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밖에서 바람이 철판을 때렸다. 박성렬의 태블릿에서 관리청 회신 알림이 떴다.

파일 수신 확인. 조사관 현장 파견.

박성렬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손등에 축축한 땀이 묻어났다. “통신 차단은 취소——” 그가 말을 삼켰다. 입이 말랐다.

정도윤이 시계를 보지 않았다. 그 대신 오른쪽 화면의 강민준 바이탈을 봤다. 황색에서 오렌지색으로 전환되기 직전의 경계였다.

“국장님.” 정도윤이 낮은 톤으로 말했다. “게이트 안에 계신 분은 길드장입니다. 통신 중계 유지하시죠.”

박성렬이 대답하지 않았다. 하급 조제사가 손을 허리춤 통신기로 가져가다 김하사의 시선을 받고 멈췄다.

관제 화면 왼쪽에서 마나 밀도 곡선이 두 번째 임계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락 게이트 외부 임시 지휘 본부. 텐트 안 천장에 임시 조명이 매달려 흔들렸다. 박성렬이 관제 모니터 앞에서 손을 내렸다.

모니터엔 아직 조작 보고서 원본 데이터의 비교 화면이 떠 있었다. 각성자 관리청 수사관 세 명이 텐트 입구에서 다가왔다. 중앙의 수사1팀 김정환이 신분증을 펼쳤다.

“박성렬 국장님. 각성자 관리청입니다.”

박성렬이 안경을 벗었다. 손수건을 꺼내려다 멈췄다. 김정환의 손목에 채워진 현장 녹음기가 녹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게이트 1호점 대숙청 사건 재조사 건으로 긴급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김하사가 한 걸음 나섰다. 때 묻은 전술 재킷 주머니에서 접힌 서류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12년 전 게이트 1호점 람다 구역 진입 명령서 사본이었다. 하단 승인자 서명 란 — 박성렬. 도장과 서명이 선명했다.

“이게 람다 구역 진입 명령서 원본이다. 승인자, 당시 전략국장 박성렬. 여기 사인은 네 놈 거지?”

박성렬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12년 전 기록은 관리청도 인정한 공식——”

“공식 종결 뒤에 은폐된 진입 팀이 열네 명이다.” 김하사가 말을 자르며 다른 서류를 덧댔다. 생존자 명단 복원본. G1-Λ-1부터 G1-Λ-14까지 코드가 찍혀 있었다. “게이트 1호점 내부 구역 코드 체계는 극비였고, 람다 구역 진입 팀 전원은 미귀환으로 처리됐다.”

정도윤이 손목에서 시계를 풀었다.

탁자 위에 시계를 내려놓고 뒷판을 위로 향하게 했다. 형광등 아래 G1-Λ-7 각인이 떠올랐다. 김하사가 생존자 명단에서 같은 코드를 짚었다.

“G1-Λ-7. 이 각인은 당시 람다 구역에 진입한 인원의 식별 코드와 일치한다. 시계 소유자는 생존자 명단에 없는 열네 명째 진입자였다.”

정도윤의 손끝이 시계 유리면을 스치고 떨어졌다. 짧은 침묵.

“관리청 공식 기록엔 람다 구역 진입 팀이 열세 명이다. 하나를 지운 사람이——”

“증거 제출을 완료했습니다.” 김정환이 태블릿을 닫으며 박성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박성렬 국장, 동행하시죠.”

관리청 요원 두 명이 박성렬의 양 옆에 섰다. 한 명이 수갑을 꺼냈다. 박성렬의 눈이 김하사에게서 정도윤으로, 다시 시계로 내려갔다. 입술이 움직였으나 소리는 나지 않았다.

김정환의 지시로 요원들이 박성렬을 텐트 밖으로 이송했다.

김하사가 서류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구금 시설로 간다. 나도 조사실로 가야 하고.”

“증언은 공식 기록으로 남는다.”

“신변 보호는 알아서 붙여주겠지.”

김하사가 서류 뭉치를 관리청 요원에게 건넸다. 그가 텐트 입구에서 잠시 멈춰 고개를 돌렸다.

“네 시계, 증거물로 넘어간다.”

“안다.”

텐트 천장 조명이 다시 한 번 깜빡였다. 모니터 화면 속 나락 게이트 마나 파형 그래프가 천천히 맥박 치고 있었다.

*

해가 저물었다. 아르고 길드 본관 14층, 비상 이사회실.

중앙 테이블에 간부 열두 명이 앉아 있었다. 벽면 스크린은 관리청 뉴스 속보를 틀고 있었다 — 박성렬 긴급체포, 게이트 1호점 대숙청 재조사 착수.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세아가 들어왔다. 테일러드 재킷 차림, 왼쪽 가슴에 아르고 황금빛 배지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 뒤로 정도윤이 따라 들어와 벽 쪽 방청석으로 걸어갔다.

“전략팀장 한세아입니다. 해임 무효 가처분이 한 시간 전 인용되었습니다.”

간부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퍼졌다. 전략부 차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장님은——”

“불참 사유를 재확인했습니다.” 한세아가 태블릿을 중앙 스크린에 연결했다. 은행 거래 기록과 비공인 연구소 송금 데이터가 떠올랐다. “길드장님의 공식 석상 불참은 건강 문제가 아닙니다. 연구소 코드 뒷 세 자리는 박성렬 전 국장 결재 문서 번호와 일치하고, 앞 세 자리는 강민준 길드장의 마나 재검증 요청서 검증 기관 코드입니다.”

화면이 전환됐다. 금융 추적 데이터. 송금인 — 아르고 길드장 개인 계좌. 수취인 — 서울 북부 비공인 연구소.

“이 데이터는 오늘 오후 법원 감정을 통과했습니다. 강민준의 불안정한 마나 증폭 실험은 길드장의 사적 자금으로 후원되었고, 인체 실험 피험자는 기록에서 삭제된 E급 각성자들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전략부 차석이 천천히 앉았다. 한세아가 태블릿을 닫았다.

“길드 규정 제31조에 따라, 길드장 유고 및 중대한 위법 혐의 발생 시 이사회는 임시 지휘권을 위임할 수 있습니다.”

“임시 지휘권자로 누구를 상정합니까.” 한 간부가 물었다.

“전략팀장 한세아.”

작전부 국장이 손을 들었다. “찬성합니다.”

“찬성.”

세 번째 손이 올라갔다. 다섯 번째. 여덟 번째. 반대는 없었다.

한세아가 중앙 자리로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닿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만년필을 쥐지는 않았다.

“임시 지휘권을 수락합니다.”

방청석에서 정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회의실 문을 향해 세 걸음 갔을 때, 문이 바깥에서 열렸다.

김하사였다.

호송복 차림이 아니라 검은색 전술 재킷 그대로였다. 손에 두꺼운 서류 뭉치를 쥐고 있었다. 관리청 요원 두 명이 복도에 서 있었다.

“조사실 가기 전에 이거 먼저 전해야 할 것 같아서.”

그가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표지에 찍힌 분류 코드 — 극비, 나락 게이트 실험 로그.

“길드장 개인 금고에서 나왔다.”

한세아가 서류를 펼쳤다. 실험 일지 첫 장. 나락 게이트 마나 파형 조기 개방 실험 — 1차 유도 성공. 날짜, 9일 전. 피험자 코드 — KR-E-2239, 2240, 2241.

정도윤이 서류를 들여다봤다.

“게이트를 조기 개방했다. 일부러.”

“인위적으로.”

회의실 조명이 깜빡였다. 스크린 속 나락 게이트 마나 파형 그래프가 맥박을 멈추고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게이트: 리셋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