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리셋
7화
게이트 입구는 버려진 물류창고 지하였다. 철제 셔터가 열리고 마나 측정기 경보음이 짧게 울렸다.
한세아가 손을 들었다.
“대기조는 여기까지. 진입조만 따라온다.”
진입조는 다섯 명. B급 탱커 하나, C급 딜러 둘, C급 서포터 하나. 그리고 정도윤.
E급은 진입조에 못 끼는 게 상식. 서포터가 힐끗 쳐다봤지만 한세아는 설명하지 않았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축축하고 쇠비린내 섞인 바람이 통로 끝에서 불어왔다.
“이런 구조는 처음 봅니다.”
탱커가 방패를 앞세우며 중얼거렸다. 천장은 높고 벽면은 검은 유리질이었다. Y자 분기점 두 개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국장님 교범대로면 좌측 진입입니까.”
서포터의 물음에 한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벽면에 박혀 있었다.
검은 유리질 표면에 희미한 선들이 새겨져 있다. 언뜻 장식 같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교차하며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정도윤.”
한세아가 낮게 불렀다.
정도윤은 이미 벽 앞이었다. 오른손 검지로 유리질 표면을 천천히 훑었다.
“맥박.”
짧은 한마디.
“네?”
서포터가 되물었다.
“벽에 맥박이 있습니다. 마나가 혈액처럼 흐르고 있어요.”
손가락이 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멈췄다. 그 지점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이완했다.
“순환계 구조입니다. 이 게이트는 살아 있어요.”
한세아가 태블릿을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데이터 로그가 실시간으로 쌓였다.
“첫 번째 분기점.”
정도윤이 Y자 갈림길 앞으로 걸어갔다. 좌측 통로 벽면에서는 선들이 촘촘하게 모여 꿈틀거렸다. 우측 통로 벽면 쪽은 선들이 듬성듬성, 거의 멈춘 상태.
“좌측은 마나 밀집 구역입니다. 들어가면 벽이 닫혀요.”
“우측은?”
탱커가 물었다.
“열려 있어요. 지금은.”
정도윤이 우측 통로로 먼저 들어섰다. 한세아의 손짓에 대원들이 뒤따랐다.
두 번째 분기점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좌측 벽은 수축, 우측 벽은 이완.
“이 게이트는 마나가 높은 쪽으로 유인해서 가둡니다.”
정도윤이 벽에 손바닥을 얹었다. 맥박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박성렬 국장님 교범은 모든 미궁형 게이트에서 좌측 고정 진입이었죠.”
한세아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이 구조에서 좌측만 골라 들어가면 4분 안에 전멸이야.”
탱커의 얼굴이 굳었다. 서포터가 태블릿에 박성렬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띄웠다. 붉은 점들이 좌측 통로마다 쌓여 소멸하는 그래프다.
“저게 우리였을 뻔했군요.”
세 번째 분기점을 지나자 공간이 열렸다. 둥근 방 중앙에 던전 코어가 떠 있었다. 마나가 희붉게 회전하며 맥박에 맞춰 수축했다.
“코어 파괴는 B급이.”
한세아의 명령에 탱커와 딜러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30초 만에 코어가 산산조각났다.
공간이 흔들렸다.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했다.
출구로 걸어나오며 서포터가 중얼거렸다.
“사상자 제로입니다.”
한세아는 대답 없이 태블릿을 확인했다. 작전 데이터 로그 전 구간 기록 완료. 박성렬의 시뮬레이션 그래프와 실제 진입 경로를 겹친 비교 데이터가 화면에 떠올랐다.
좌측 진입 시뮬레이션: 전멸. 우측 진입 실측: 생존.
데이터 로그는 저장됐다.
철제 셔터 밖으로 나오자 대기조가 일어섰다. 한세아가 태블릿을 닫으며 말했다.
“작전 종료. 복귀한다.”
그로부터 1시간 20분 후. 아르고 길드 본부로 복귀하는 차량 안에서 그녀는 창밖만 바라봤고, 누구도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오후 3시. 아르고 길드 중앙 전략 회의실.
탁자 위에 데이터 로그가 투사되고 있었다. 마나 잔류량, 경로 이탈 시점, 변이 구간 생존자 전원의 바이탈. 숫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작전부 쪽 중립파 인사가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한세아 팀장의 판단이 옳았군요.”
박성렬의 손가락이 멈췄다. 안경을 벗으려던 동작.
“교본대로 진입했으면 선발대 전멸이었겠습니다.”
또 다른 간부가 거들었다. 인사부 쪽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박성렬이 안경을 접었다.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 천에 묻은 기름 자국을 확인하는 시선이 평소보다 길었다.
“데이터는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참고 자료로 전원 생존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처음 입을 연 작전부 측 간부가 받았다. 회의실 공기가 살짝 기울었다.
한세아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등을 곧게 펴고 탁자 끝에 앉았을 뿐. 만년필은 탁자 위에 내려놓은 상태였고, 뚜껑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이번 작전의 성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인물이 말했다. 전략부 소속이지만 노선이 애매한 이였다.
“한 팀장의 변칙 판단이 없었다면 지금쯤 장례식장이었을 겁니다.”
박성렬이 안경을 썼다. 웃었다.
“물론입니다. 한 팀장의 판단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냈죠.”
'결과적으로는'.
한세아가 그 단어를 낚아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과정이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군요, 박 국장.”
“과정을 중시하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12년 전에도 그 과정을 중시하셨습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숫자가 화면에서 깜빡였다.
박성렬의 안경 너머 눈이 가늘어졌다. 닦는 동작은 반복하지 않았다. 그냥 한세아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슨 뜻이시죠.”
한세아가 태블릿을 깨웠다. 새 파일 대신 검은 화면을 띄웠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림자 미궁 교본을 12년 전 그대로 적용하신 근거를 여쭌 겁니다. 변이 데이터가 누적된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시는지.”
몇몇 중립파 간부가 헛기침을 했다. 인사부장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박성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작전 결과 보고가 주 안건입니다. 역사적 교본의 타당성 검토는 별도 안건으로—”
“데이터가 교본을 부정하는데 별도 안건이 필요합니까.”
작전부 간부 중 하나다. 이번엔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렬의 시선이 회의실을 한 바퀴 돌았다. 중립파는 모두 데이터를 보고 있었다. 그가 아닌 숫자를.
그가 태블릿을 접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각 부서는 후속 보고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문을 향해 걸어간다. 평소보다 발걸음이 반 박자 빨랐다.
문이 닫혔다.
한 중립파 인사가 한세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팀장님. 청문회 건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만…”
“말씀하십시오.”
“데이터는 우리 편입니다.”
한세아가 처음으로 만년필을 집었다. 뚜껑을 한 번만 돌렸다. 딸깍.
“알고 있습니다.”
저녁 7시. 길드 정문에서 삼백 미터 떨어진 뒷골목 카페.
환풍기 도는 소리만 창가에 깔려 있었다. 커피는 식은 지 오래고 테이블 위엔 종이 냅킨만 구겨져 있다. 손님이라곤 정도윤과 구석 자리의 노인 하나뿐.
문이 열렸다. 김하사가 기름기 묻은 점퍼 차림으로 들어왔다. 허리엔 여전히 열쇠와 USB가 달린 카라비너가 덜그럭거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들었다. 시선은 커피 너머로 정도윤을 훑고 있었다.
“청문회 소식 들었냐.”
“들었다.”
“네 상관, 이번에 꽤 위험하겠더라.”
김하사가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주문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점퍼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밀었다.
“대숙청 파일 추가 해독본.”
정도윤이 봉투를 집었다. 열지 않았다. 두께를 손가락으로 확인한다. USB 하나와 종이 몇 장.
“연결고리 찾았어.”
김하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담배 대신.
“희생자 14명의 소속 배치 명령서. 전부 한 사람 결재야.”
“누구.”
“현직이다. 길드 안에 있어.”
김하사가 정도윤의 눈을 똑바로 봤다. 평소의 조롱 섞인 시선이 아니다.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네가 지금 붙어 있는 그 라인. 한세아 팀장 라인이 제일 위험해질 거다.”
“박성렬이었다는 거냐.”
김하사가 대답 대신 봉투를 턱짓했다.
“USB 안에 명령서 전문이 들어 있어. 결재 서명까지.”
정도윤이 봉투를 조끼 안쪽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이 살짝 떨렸다. 손목시계 줄이 옷깃에 걸려 바깥으로 살짝 드러났다.
김하사가 그 시계를 봤다. 한참을 봤다.
“그 시계 말이다.”
“….”
“네가 람다 구역 코드를 처음 꺼냈을 때부터 찜찜했어.”
정도윤이 소매를 당겨 시계를 가렸다.
“그냥 유품이야.”
“유품이 게이트 1호점 미귀환 팀 코드를 달고 있는 건 우연이겠지.”
김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비너가 덜그럭거렸다.
“난 모른다. 본 적도 없고. 그 USB도 원래 네 거였던 거다.”
카페 문 쪽으로 두 걸음 가다가 멈췄다.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데이터는 좋은데, 이번 건은 좀 무겁더라. 조심해라.”
문이 닫혔다.
정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식은 커피 잔 옆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은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조끼 안쪽 주머니 속 USB의 모서리가 갈비뼈에 닿아 있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 9시 3분. 한세아의 전략팀장실.
정도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복도에서 받은 호출은 단 두 줄. 『지금. 사무실로.』
한세아는 책상 너머에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지 않은 자세.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춘 채.
“문 닫아.”
정도윤이 문을 닫았다. 그녀가 모니터를 그에게로 돌렸다.
박성렬의 청문회 소집 메일. 수신자 명단은 길드 전체 임원.
“이걸 내가 먼저 봤어야 했다.”
한세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모니터를 돌리는 손끝이 날카로웠다.
“자넨 알았지. 사흘 전부터.”
“짐작했습니다.”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을 거다.”
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흘 전 게이트에서 자네는 변이 징후를 4분 전에 알았다. 그 정보가 박성렬의 작전 실패로 이어질 것도 계산했고.”
책상을 돌아 그 앞에 섰다. 한 뼘 거리.
“그리고 그 결과가 청문회라는 것도 예측했지. 그렇지.”
정도윤이 시선을 약간 낮췄다.
“결과는 몰랐습니다.”
“타이밍은 알았군.”
“정보를 풀면 누군가는 반격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지.”
“말할 타이밍이 아니었습니다.”
한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네가 타이밍을 정하는 기준이 뭐지.”
“정보가 사람을 죽이지 않을 때입니다.”
공기가 멈췄다. 정도윤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건조한 톤이었지만 끝음이 약간 빨랐다.
“너무 일찍 알면 대응이 과해진다. 너무 늦으면 죽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게 대체 무슨 경험이야.”
정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한세아가 반 걸음 더 다가섰다.
“자네는 E급이다. 게이트 경력도 3년이 채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판단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거야, 하지 않는 거야.”
“둘 다입니다.”
한세아가 천천히 책상으로 돌아갔다. 만년필을 집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돌리다가, 내려놓았다.
탁.
작은 소리였다. 회의 중에도 그녀가 만년필을 내려놓는 건 보기 드물었다.
정도윤의 시선이 만년필로 향했다. 무심코 스치듯 보려던 눈이 멈췄다. 클립 부분에 희미하게 각인된 일련번호.
KR-E-2241.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짧게 멈췄다.
“그 번호.”
한세아의 어깨가 굳었다.
“자료에서 봤다. 보고서에서 사라진 세 명. KR-E-2207, KR-E-2219, 그리고...”
정도윤이 만년필을 똑바로 응시했다.
“KR-E-2241.”
한세아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그녀의 반쪽 얼굴에만 닿았다.
“그게... 팀장님 오빠 겁니까.”
말하는 사이에 존대로 돌아와 있었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다른 이유였다.
열 초쯤 지났다. 한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사고 기록은 박성렬이 지웠다. 길드 인사 데이터에서도. 오빠는 12년 전 그 게이트에서... 살아 나왔는데.”
말을 끊었다.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정도윤이 오른손을 살짝 올렸다가 내렸다. 손목시계 유리가 형광등 빛을 반사했다. 무의식적으로 엄지가 시계줄을 한 번 눌렀다.
“그래서였군요. 박성렬을 파는 이유가.”
“경력 계산이 아니라고 말했지.”
한세아가 시선을 그에게 고정했다. 동요는 사라졌다.
“이건 복수다. 자네가 정보를 주는 만큼 나는 그를 찢어놓을 거다. 그 이상 묻지 마라.”
정도윤이 시계에서 손을 뗐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는 게 보였다.
“타이밍에 집착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 테니.”
한세아가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나한테도 묻지 마.”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 정도윤이 문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한세아는 만년필을 쥔 채로 몸을 돌리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복도로 나온 정도윤이 손목시계를 만졌다. 오른손 검지가 유리판 위를 한 번 쓸었다. 전생의 날짜. 숨을 길게 내쉬고 걷기 시작했다.
밤 11시 8분. 아르고 길드 국장실.
박성렬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반쯤 녹았다. 화면에는 한세아의 인사 기록과 만년필 등록 정보가 나란히 떠 있다.
수행 비서가 문 옆에서 대기했다.
“만년필 번호 확인은 확실한가.”
“예. 구매 기록과 부길드장이 직접 등록한 개인 물품 목록에서 교차 확인했습니다.”
박성렬이 안경을 벗어 천천히 닦았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KR-E-2241. 친오빠 식별 번호였군.”
“12년 전 게이트 1호점 작전에서 실종 처리된 E급입니다. 한세아 부길드장이 최근 해당 기록에 접근한 로그도...”
“됐다. 청문회 서류에 넣어.”
박성렬이 안경을 다시 썼다.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더니 발송 예약 창을 열었다.
“사적 감정 개입. 개인적 복수심에 기반한 전략 판단. 전략국장에 대한 조직적 사찰.”
입으로 중얼거리며 서류 항목을 훑던 그가 마지막 줄에 도달했다.
“길드 규정 제27조에 따른 직위 해제 발의.”
저장. 예약 발송 설정.
모니터에 작은 팝업이 떴다. 『내일 오전 10시 긴급 청문회 공지 발송 예약 완료』.
박성렬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녹은 얼음이 플라스틱 컵 속에서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는 팝업을 끄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