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PT는 사랑을 싣고

2화

며칠 뒤, 아침 일곱 시 사십오 분.

한소리푸드 본사 로비. 공기가 달랐다. 식품회사 특유의 은은한 단내가 복도까지 배어 있었다.

강수아가 내 옆에서 노트북 가방을 고쳐 멨다.

“언니, 오늘 컨디션 어때요?”

“나쁘지 않아.”

“거짓말.”

“……들켰네.”

수아가 작게 웃었다. 내 손목 보호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더 붙이진 않았다.

유리문 너머로 중역 회의실이 보였다. 긴 타원형 테이블. 양쪽에 놓인 프로젝터. 창밖으로는 흐릿한 미세먼지가 끼어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중얼거렸다.

“한소리푸드. 식품 브랜드 PT는 처음이지?”

“언니랑 같이하는 것도 처음이고, 차민혁 팀이랑 붙는 것도…… 아니, 그건 두 번째네.”

“세 번째야.”

“어? 아, 제일뷰티 두 번이었구나.”

작년 가을에 한 번, 그리고 지난주. 벌써 세 번째 경쟁이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중역 회의실 앞.

문이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차민혁 팀원들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노트북 세팅하는 소리, 케이블 정리하는 소리.

내가 문간에 서자 차민혁이 고개를 들었다.

넥타이 핀이 형광등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내 얼굴을 정확히 1초 정도 응시하고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지난주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여준 미소는 이미 자취를 감춘 듯했다.

“윤 대리님, 먼저 세팅하시죠.”

차민혁이 말했다. 업무 톤이었다. 무미건조하고 효율적인 그 목소리.

“네.”

내 왼편에 강수아가 노트북을 올렸다. 충전 케이블을 찾느라 가방을 뒤적였다. 나는 자료 파일을 열며 화면을 확인했다. 첫 슬라이드가 떴다. ‘한소리푸드 — MZ세대를 겨냥한 신규 간편식 브랜드 전략’.

데이터는 사흘 밤을 새워 보강했다. 지난 PT에서 찔렸던 부분을 완전히 다시 짰다.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경쟁 PT 시작하겠습니다.”

한소리푸드 측 실무진 세 명이 입장했다. 가운데 앉은 남자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두 회사 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발표 순서는 지난주 추첨대로 유나이티드애드 윤 대리님 팀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어섰다. 노트북을 스크린에 연결했다.

첫 슬라이드 넘김.

“한소리푸드의 신규 간편식 라인은 2535 여성 소비자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해당 연령대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강수아가 내 옆에서 추가 슬라이드를 띄웠다. 시계열 그래프가 나타났다. 지난 3년간의 구매 빈도, 객단가 변동, 온오프라인 비율.

자신 있었다. 데이터는 탄탄했다.

15분째.

소비자 선호도 분석으로 넘어갔다.

“해당 간편식 카테고리에서 맛 품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67.3퍼센트입니다. 가격 민감도는——”

그때였다.

차민혁이 손을 들었다.

테이블 반대편. 그는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한소리푸드 담당자가 그를 쳐다봤다.

“질문 있으십니까, 차 팀장님?”

“네.”

그가 일어서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방금 인용하신 소비자 선호도 데이터. 온라인 패널 조사 결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내 목소리가 조금 굳었다.

“표본 구성이 실제 구매자층을 대표하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해당 패널은 자발적 참여 방식이죠.”

“자발적 참여입니다만——”

“자발적 참여 패널은 제품에 대한 사전 관여도가 높은 응답자가 과대표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67.3퍼센트라는 수치도 그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회의실 공기가 바뀌었다.

한소리푸드 담당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설명해 보라’는 얼굴이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래도 알고 있던 지점이었다. 준비도 했다.

“그 점은 저희도 보완했습니다.”

강수아가 재빨리 추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오프라인 매장 POS 데이터와의 교차 검증 결과였다.

“온라인 패널 데이터를 오프라인 구매 데이터와 병행 분석했을 때, 맛 품질 우선 비율은 62.1퍼센트로 조정됩니다. 5.2포인트 차이지만——”

“표준오차와 신뢰구간은 제시되어 있습니까.”

차민혁이었다.

또 손도 들지 않고 물었다.

“95퍼센트 신뢰구간에서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3.1퍼센트포인트입니다.”

“표본 수.”

“——”

숨이 멈췄다.

표본 수. 그걸 물어볼 줄 알았다. 알았지만 대비가 부족했다. 2차 데이터를 끌어오느라 표본 가중치 조정 결과를 정리하지 못한 것.

“응답자 수를 말씀드리기 전에, 해당 조사가 파일럿 성격임을——”

“파일럿 결과를 전체 전략의 근거로 제시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조용한 회의실.

차민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화난 기색도, 의기양양함도 없었다. 그게 더 비수였다. 마치 틀린 답안을 조용히 지우는 선생님 같았다.

한소리푸드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음…… 차 팀장님 지적에 대해 추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누군가 채점하는 소리만 반복됐다. 67.3퍼센트. 62.1퍼센트. 플러스마이너스 3.1.

그때였다.

희미한 불빛. 책상 위에 펼쳐진 출품표. ‘2019 대한민국 광고 공모전 신인부문’.

옆에서 누군가 내 디자인 시안을 들여다봤다. 짙은 검은 머리칼. 나는 옆얼굴만 봤다. 수상자 발표 날, 그 사람은——

“윤 대리님?”

강수아의 목소리였다.

정신이 돌아왔다. 내 손가락이 포인터를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표본 가중치 관련 보충 자료를 곧 제출하겠습니다.”

말이 빨라졌다.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한소리푸드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기울었다. 차민혁의 팀원 한 명이 무언가를 메모했다. 조용히, 하지만 내 쪽을 보면서.

나머지 발표는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슬라이드는 넘어갔지만 내 목소리는 스스로의 귀에도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손목 보호대 밑으로 땀이 배었다.

발표가 끝났다.

차민혁 팀의 PT가 이어졌다. 그는 특유의 건조한 톤으로 데이터를 쌓아 올렸다. 표본 수, 신뢰구간, 구매 전환율, 매장별 POS 상관계수.

질문의 여지가 없는 구조물처럼 발표가 진행됐다. 한소리푸드 담당자들의 리액션이 달랐다. 질문도 활발했다.

강수아가 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망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30분 뒤.

한소리푸드 담당자가 잠시 논의를 거쳐 발표했다.

“두 회사 다 좋은 안이었습니다만, 이번 프로젝트는 차민혁 팀장님의 안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윤 대리님 팀도 데이터 보완만 된다면 다음 기회에——”

나머지는 들리지 않았다.

귀가 멍했다.

회의실 불이 켜졌다.

차민혁 팀원들이 조용히 자료를 정리했다. 환호는 없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무표정한 움직임들.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강수아가 내 가방을 대신 챙겼다. 그녀의 손도 조금 떨렸다.

“언니——”

“나중에.”

짧게 끊었다. 그리고 회의실 문을 향해 걸었다.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차민혁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한소리푸드 담당자와 악수하며 명함을 건네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자 잠시 시선이 옮겨졌다.

그의 눈동자에 무언가 스쳤다. 지난주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던 그 표정의 잔상 같은 것.

아니, 착각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돌아서서 회의실을 나왔다. 강수아가 뒤따라왔다.

“언니, 괜찮아요? 표본 수 그거 어쩔 수 없었——”

“수아야.”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나 지금 좀.”

“…….”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우리 둘만 올랐다. 문이 닫히자 강수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억울하다. 데이터 편향 지적은 맞는데, 그걸 저렇게——”

“공정한 지적이었어.”

“……어?”

“알고 있었어. 표본 가중치 정리 못 한 건 내 실수야.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 변명이고.”

말이 빨라졌다. 감정 실린 말투는 아니었다. 그냥 사실만 나열했다.

강수아가 입을 다물었다.

1층. 로비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왔다. 미세먼지 낀 하늘이 뿌옇게 빛났다. 회사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았다. 강수아가 옆자리에 앉아 창밖만 봤다.

나는 손목 보호대를 만지작거렸다.

내 실수였다. 차민혁은 그걸 정확히 찔렀을 뿐이다. 공정했다.

그런데 왜.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꿈틀거렸다. 지고도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기분. 그가 보여준 무표정한 정확함이 칼날처럼 박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보여준 그 미소는 대체 뭐였을까.

유나이티드애드 본사, 오후 두 시.

사무실 복도에 들어서자 백실장이 커피잔을 든 채 서 있었다.

“뭐…… 돌아왔구나.”

“네.”

“결과는?”

“졌습니다.”

백실장은 대답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내 어깨 너머로 복도 끝을 바라봤다. 그 시선 끝에 차민혁 팀 공간이 있었다.

“그렇구나.”

짧게 말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오렌지색 재킷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메일함부터 열었다. 습관이었다.

읽지 않은 메일이 세 통. 그중 하나가 인사팀 전체 공지.

제목: [사규 개정 안내] 인사규정 제17조, 제28조, 제35조

클릭했다.

스크롤을 내렸다.

“…….”

제17조.

사내 교제 관련 조항.

‘회사는 임직원 간 사적인 교제가 업무의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인사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

‘교제 사실이 확인된 임직원 중 1인은 타 부서로의 전환 배치 또는 권고사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종전 규정은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경우’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은 대상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부서, 직급 상관없이. 심지어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판단될 경우’라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인사위 재량이라는 뜻이다.

옆자리에서 강수아가 무언가를 타이핑하느라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 표정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조항.

제35조.

‘경쟁 관계에 있는 팀 소속 임직원 간 사적 접촉은 프로젝트 기간 중 공식 회의 외 자리에서는 신고 대상이다.’

경쟁 팀. 차민혁과 나. 저 엘리베이터 안의 30분. 누군가 신고했다면 벌써 문제였을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들려온 소리.

“하아……”

백실장이었다.

몇 발짝 떨어진 그녀의 자리. 오렌지색 재킷이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백실장은 모니터 앞에 앉아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인사팀 공지 메일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마우스에서 떨어졌다. 깊은 한숨이었다. 이어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

“……이걸 진짜 쓰게 될 줄이야.”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조용한 사무실에서 내 귀에는 닿았다.

쓰게 될 줄이야.

백실장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이내 메일 창을 닫았다.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가람 씨.”

“……네.”

“메일 봤지?”

“네.”

백실장이 커피잔을 살짝 흔들었다. 내용물이 파동을 그렸다.

“요즘…… 사내 분위기가 좀 그래.”

“무슨 말씀이신지.”

“글쎄.”

그녀는 입가에 모호한 미소를 걸었다. 그 미소가 무슨 뜻인지 나는 몰랐다. 다만 그 눈빛은 알고 있었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조심스러움.

“조심하자고…… 그런 뜻이야.”

백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휴게실 쪽으로 걸어갔다.

남은 건 나와 강수아. 그리고 모니터에 떠 있는 인사규정 개정 메일.

강수아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낮게 물었다.

“언니, 메일 무슨 내용이에요? 나 아직 확인 못 했는데——”

“사내 연애 금지 조항 강화.”

“……네?”

“심지어 경쟁팀끼리 사적 접촉도 신고 대상이래.”

수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주 엘리베이터. 나와 차민혁이 단둘이 갇혔던 그 사고.

“저, 그럼 지난주에——”

“사고였으니까 괜찮을 거야.”

짧게 잘랐다.

“경비 보고서도 올라갔고, CCTV에도 남았을 테니까.”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런 규정이…….”

“모르지.”

나는 마우스를 굴려 메일 창을 닫았다. 하지만 그 조항들은 이미 눈앞에 남아 있었다.

30일 이내 인사위 소집.

권고사직.

경쟁팀 간 사적 접촉 신고.

그리고 백실장의 한숨. ‘이걸 진짜 쓰게 될 줄이야.’

누군가 이미 겨냥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예방적 개정일까.

알 수 없었다.

창밖은 여전히 뿌옇다.

내 손목 보호대가 어느새 젖어 있었다. 땀인지, 아니면 세면대에 들렀을 때 묻은 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나는 보호대를 풀어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PT는 사랑을 싣고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