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의 비밀, 일곱 개의 밤
3화
다음 날 아침, 침방 후원 다용도실.
햇빛이 창호지 너머로 희끄무레하게 번졌다. 윤소하는 소혜의 유품이 담긴 함지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입회 진행관이 문밖에서 대기한다는 통보를 받은 지 한 호흡 만이었다.
이겸은 이 유품들을 모두 확보하지 않았다. 소혜가 쓰던 바느질 도구함만 가져갔다. 회귀 전에는 그 도구함에 모든 관심이 쏠렸지만, 윤소하는 이제 알았다.
소혜는 물건을 둘로 나눠 숨겼다.
함지박 안에는 소혜의 겨울 당의 한 벌과 속옷감 몇 점, 반절쯤 꿰매다 만 버선짝이 들어 있었다. 윤소하는 버선을 집어 들었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무명 한 겹이 더 들어간 듯 감촉이 두터웠다.
안감의 시접을 손끝으로 짚어보자 매끄러웠다. 바늘땀이 겉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공그르기였다. 소혜의 솜씨가 아니었다. 침방에서 이런 박음질을 할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봉함실 나인.
윤소하는 버선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시접을 비벼 틈새를 벌렸다. 겹감 사이로 종이 모서리가 밀리듯 스쳤다. 숨을 멈추고 집게손가락으로 빼냈다.
손톱 두 배 크기의 종잇조각. 연한 자줏빛. 먹글씨의 마지막 획이 종이 끝자락에서 멎어 있었다. 지난밤 발견한 '밀(密)' 자와는 다른 필획의 굵기였다.
더 앞 부분이다.
소매 안주머니 깊숙이 조각을 밀어넣으며 일어섰다. 허리를 굽혀 함지박을 정리하는 사이, 등 뒤로 발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십시오.”
이겸이었다. 말투는 조용했으나 손은 운검 손잡이에 걸쳐 있었다.
윤소하가 몸을 돌렸다. 이겸의 뒤편으로 침방 작업실 쪽에서 내금위 군관들이 움직이는 발소리가 울려왔다.
“침방 전역의 소지품을 수색합니다. 작업실로 함께 가시지요.”
윤소하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침방 작업실. 나인 여섯 명이 각자의 바느질함 앞에 서 있었다.
날리상궁 한씨는 방의 북쪽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이겸의 손끝에 닿는 물건 하나하나를 좇았다. 차령 상궁 박씨는 문 근처에 서서 손수건을 쥔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손가락이 수건 귀퉁이를 반복해서 비벼댔다.
군관 한 명이 첫 번째 나인의 바느질함을 열었다. 실꾸리, 바늘집, 가위. 두 번째도 같았다. 세 번째에서 반쯤 뜯긴 서찰 조각 하나가 나왔을 때, 이겸이 손을 들었다.
“멈추시오.”
그는 그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자줏빛 종이. 찢긴 면에 대비전에서만 사용하는 명주실이 한 올 붙어 있었다. 군청색 바탕에 금실을 섞은 특수 실.
이겸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지로 검지 마디를 톡, 한 번 쳤다.
“누구의 바느질함입니까.”
군관이 확인했다. “소혜 나인 것입니다.”
날리상궁의 왼쪽 눈썹이 한 번 떨렸으나, 곧바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계속하라.”
이겸의 명령에 군관들이 네 번째 나인 함으로 이동했다. 다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윤소하의 바느질함.
뚜껑이 열렸다. 실꾸리와 바늘집, 반쯤 꿰매다 만 의복 조각 두 점이 위에 놓여 있었다. 군관이 그것들을 치우자 바닥에 깔린 겹헝겊이 드러났다.
“겉감 아래를 확인하라.”
이겸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군관이 겹헝겊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서 접힌 종잇조각이 떨어졌다.
자줏빛. 찢긴 면에 두 획의 먹글씨. ‘ㅇ’과 아래로 뻗은 긴 획.
윤소하의 시야가 조각에 고정되었다. 그것은 지난밤 자신이 확보한 진짜 조각이 아니었다. 종이의 굵기가 달랐다. 찢긴 면의 각도도 더 날카롭다.
누군가 심었다.
날리상궁의 손가락이 허리춤에서 멈췄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시선이 순간적으로 차령 상궁에게 옮겨붙었다가 떨어졌다.
이겸이 조각을 집어 올렸다. 그는 그것을 봉투 조각과 나란히 펼쳐본 뒤, 천천히 윤소하를 돌아보았다.
“윤소하.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알지 못합니다.”
“당신 바느질함에서 나왔소.”
“누군가 넣은 것입니다.”
이겸이 한 걸음 다가섰다. 손에 든 조각을 그녀의 눈높이까지 올렸다.
“소혜 나인을 죽인 자가 쓴 자줏빛 종이. 그와 똑같은 것이 당신 함에서만 두 개째 나왔소.”
윤소하의 손끝이 치맛자락을 스치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이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종이의 출처를 따지기 전에, 누가 제 바느질함을 열 수 있었는지부터 확인하시지요.”
이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침방 나인들의 함은 각자 자물쇠가 있습니다. 열쇠는 당사자만 가지고 있지요.”
“그렇소.”
“제 열쇠는 어젯밤 합숙처를 봉쇄할 때까지 제게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윤소하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다. “봉쇄 이후 다용도실에 들어온 것은 종사관 나리께서 아실 겁니다.”
날리상궁이 입을 열었다. “네 함에서 증거가 나왔다. 자물쇠 이야기는 핑계에 불과하다.”
윤소하는 그녀를 향해 반쯤 몸을 돌렸다. 말투는 여전히 정중했으나, 숨소리 한 점 섞이지 않았다.
“상궁 마마께서는 제 함의 열쇠가 복제될 수 없다고 확신하십니까.”
날리상궁의 입술이 가늘게 다물렸다.
이겸이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끊는 동작이었다. 그는 윤소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조각을 필갑에 넣었다.
“내금위 종사관 이겸. 소혜 나인 살해 혐의 및 중전 서찰 은닉 혐의로 침방 나인 윤소하를 체포합니다.”
군관 두 명이 다가왔다. 윤소하는 손목을 잡히기 전에 스스로 두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깨가 곧았다. 시선은 바닥을 향하지 않았다.
“심문은 내금위 임시 본부에서 합니다.”
이겸이 덧붙였다. 그의 눈에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윤소하의 바느질함에서 나온 조각은 대비전 특수 실이 붙어 있던 봉투 조각과 재질은 같았으나, 필획의 기울기가 달랐다.
그는 한 번 더 검지 마디를 톡 쳤다.
누군가 이 조각을 따로 만들었다. 그런데 왜 또 다른 조각은 소혜의 도구함에 숨겼던 걸까.
윤소하가 군관들 사이를 걸어 작업실 문을 나서는 동안, 그녀의 오른손은 소매 안주머니 위를 스치고 있었다. 두 개의 진짜 조각이 내의 안에 눌려 피부에 닿아 있었다. 차가운 종이의 촉감이 심장박동을 따라 미세하게 떨렸다.
가짜를 심은 자가 있다. 그 자는 내가 진짜를 가졌다는 걸 아직 모른다.
작업실 안, 차령 상궁의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줍는 대신, 수건을 발로 밀어 의자 밑으로 감추었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편전 곁 행각의 임시 수사 본부.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뿌옇게 물들였으나 방 안은 서늘했다.
탁자 위에는 소혜의 유품에서 나온 찢긴 봉투 조각과, 윤소하의 바느질함에서 압수한 종잇조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겸은 의자에 앉지 않고 탁자 앞에 선 채 윤소하를 마주했다. 입회 진행관이 문 옆에서 묵묵히 붓을 들고 있었다.
“소혜 나인의 도구함에서 나온 조각과 같은 재질입니다.”
이겸이 바느질함에서 나온 조각을 가리켰다.
“언제, 왜 당신의 바느질함에 이것이 들어갔는지 설명하십시오.”
윤소하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시선은 탁자 위의 조각에 고정된 듯했으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혜의 도구함에서 나온 조각이 먼저입니까.”
“질문에 답하십시오.”
“제 바느질함은 합숙처에 두는 물건입니다. 침방 나인 모두가 드나드는 공간이옵니다.”
이겸의 눈매가 좁아졌다. 엄지가 검지 마디를 한 번 톡 쳤다.
“누군가 넣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소혜의 바느질 도구함에서 나온 조각은, 소혜가 직접 넣은 것인지 누군가 넣은 것인지 아직 모르는 상태로 보입니다.”
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윤소하가 그의 침묵을 한 박자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종사관 나리께서 두 조각을 같은 재질로 보신 것은 맞사옵니다. 다만 제 바느질함에 든 것과 소혜의 도구함에 든 것은 같은 손이 넣은 것인지, 다른 손이 넣은 것인지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당신의 추측입니까.”
“바느질하는 사람의 버릇입니다.”
윤소하가 탁자 위의 조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 시선으로만 짚었다.
“소혜의 도구함 안감에 꽂혀 있던 종잇조각은 모서리가 안으로 접혀 있었사옵니다. 바늘을 보관할 때 실밥이 걸리지 않게 종이 모서리를 접는 것은 봉함실 나인들의 오랜 습관입니다. 제 바느질함에 든 조각은 모서리가 접히지 않았습니다.”
입회 진행관의 붓이 종이 위를 바쁘게 움직였다.
이겸이 탁자 위의 두 조각을 번갈아 살폈다. 과연 하나는 모서리가 안으로 반듯하게 접혀 있었고, 다른 하나는 평평했다. 그는 종잇조각을 손으로 집지 않고 몸을 약간 굽혀 시선을 맞추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소혜가 그 조각을 직접 다루었다는 증거입니다. 소혜는 봉함실 나인이 아니므로, 봉함실 나인의 습관을 가진 누군가와 함께 그 종이를 만졌거나——”
윤소하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봉함실 나인의 손이 소혜의 도구함에 닿았다는 증거이옵니다.”
이겸의 엄지가 다시 한 번 검지 마디를 쳤다. 이번에는 조금 느렸다.
“봉함실 나인의 명단을 제출하겠습니다. 누구라고 짚을 수 있습니까.”
“침방의 하급 나인이 감히 내명부 상급 나인을 지목하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하옵니다.”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불경이 아닙니다.”
윤소하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이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이 고요했다.
“대비전의 봉함을 전담하는 최 상궁께서 사흘 전 밤, 합숙처 바깥 회랑을 지나셨다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상자를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방 안의 공기가 멈췄다. 입회 진행관의 붓이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움직였다.
이겸이 천천히 허리를 폈다.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차령 상궁 박씨께서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차령 상궁께서 직접 확인하신 것은 아니오나, 당직 나인의 말을 전해 들으셨다고 하셨사옵니다.”
“그 말을 왜 지금 합니까.”
“종사관 나리께서 소혜의 목을 조른 손이 여인네의 손일 가능성을 이미 염두에 두고 계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옵니다.”
이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소혜의 목에 남은 손톱자국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윤소하가 처음 시신을 뒤집었을 때 지적한 것 외에는.
“당신이 시신을 만졌을 때 본 것입니까.”
“소혜의 멱에 남은 자국의 방향과 깊이를 보았사옵니다. 손가락이 가늘고 손톱이 길지 않은, 바느질을 많이 한 여인의 손이었습니다.”
이겸이 한 걸음 물러서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등을 보이며 잠시 생각하는 태도였다.
“최 상궁을 소환하겠습니다. 당신의 진술은 기록에 남습니다.”
“알고 있사옵니다.”
“다만 이것으로 당신의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느질함에서 나온 조각의 출처가 밝혀지기 전까지 당신은 감금됩니다.”
윤소하가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 표정에는 안도도, 두려움도 없었다. 마치 이 순서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담담함이었다.
이겸이 입회 진행관에게 눈짓했다.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내금위 군관 둘이 안으로 들어와 윤소하의 양옆에 섰다. 윤소하는 순순히 일어나 그들을 따라 걸었다.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의 손이 옷깃을 한 번 짧게 여몄다. 바느질함 밑바닥 겹헝겊 사이에 감춘 진짜 조각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가슴께를.
복도로 나가면서 윤소하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나의 이름을 넘겼다.
오후. 같은 방의 탁자 위에 압수된 가짜 서찰 조각들이 흰 천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겸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핀셋으로 조각 하나를 집어 올렸다.
조각을 봉합한 실을 돋보기 너머로 살피던 그의 손이 멈췄다.
실의 꼬임이 보통 명주실과 달랐다. 세 가닥의 가는 실이 특정한 각도로 함께 꼬여 있었고, 빛을 비추자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이겸은 핀셋을 내려놓고 벽 쪽의 작은 궤짝에서 면서를 하나 꺼냈다.
대비전에서만 사용하는 봉함실. 삼합청면사. 내명부의 어떤 처소에도 보급되지 않는, 오직 대비전 전용 물품이었다.
이겸의 호흡이 한 번에 멎었다가 천천히 이어졌다. 면서를 접어 탁자 옆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문서고에서 가져온 낡은 기록철을 펼쳤다. 십 년 전 아버지의 사건. 이겸이 내금위에 들어온 이유이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이름.
기록철을 넘기던 손가락이 특정 면에서 멈췄다. 증거물로 첨부된 서찰의 필체가 현재 탁자 위의 가짜 조각에 남은 붓자국과 나란히 놓였다.
획의 시작 부분에서 붓을 약간 비틀어 눌렀다 떼는 버릇. 삐침의 끝을 긋고 나서 미세하게 위로 올려 머무는 습관.
이겸은 두 종이를 나란히 겹쳐 보았다. 다른 붓, 다른 먹, 다른 종이였다. 그러나 필체의 근육 기억은 조금도 닳지 않았다. 같은 손이 쓴 글씨였다.
그의 손가락이 기록철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엄지가 검지 마디를 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불빛이 떨리지 않았으나,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촛농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십 년 전 아버지의 사건. 이 사건과 같은 손.
이겸이 기록철을 천천히 덮었다. 손바닥으로 표지를 누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행각 끝 방. 내금위 임시 감금실의 좁은 방 안, 윤소하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창살 사이로 오후의 빛줄기가 세 가닥 드리워져 그녀의 무릎 위를 지나갔다.
손이 옷깃 속으로 들어가 겹헝겊 사이의 종잇조각 두 개를 살며시 매만졌다. 종이의 결이 손끝에 닿았다. 하나는 ‘밀(密)’의 획 일부, 다른 하나는 그 아래로 이어질 글자의 조각.
최 상궁은 오늘 안으로 체포된다. 그다음은——
눈이 천천히 깜박였다. 체크리스트 첫 단계의 이름 하나가 지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종잇조각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라,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