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서찰의 비밀, 일곱 개의 밤

4화

내금위 임시 수사 본부. 촛불이 반쯤 타들어 갔을 무렵, 문이 열렸다.

이겸이었다. 손에 든 것은 윤소하의 바느질함에서 나온 가짜 서찰 한 조각. 탁자 맞은편에 앉아 정중앙에 내려놓는다.

벽에 기댄 채 그를 올려다보는 윤소하. 손목에는 아직 포승이 감기지 않았다. 체포되었으나 결박은 되지 않은 상태—그녀는 그걸 실수로 보지 않았다.

“소혜 나인의 유품에서 발견된 것과, 네 바느질함에서 나온 것.”

이겸이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 친다.

“봉투가 다르다. 재질, 필획의 기울기, 봉합에 쓴 실까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는 윤소하.

“저를 의심하신다면 이미 결박하셨겠지요.”

“그래서 묻는다.”

이겸의 상체가 약간 앞으로 기울었다. 촛불이 얼굴 절반을 깎아내듯 비춘다.

“이 조각이 네 바느질함에 들어간 경위,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잠시 침묵. 오른손 검지가 치마자락 위를 한 번 스쳤다. 바늘 굳은살이 옷감에 걸리는 감각.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가 진짜 조각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 차이를 지켜야 한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사옵니다.”

목소리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소혜 나인의 시신이 발견된 그날 밤, 날리상궁께서는 합숙처 봉쇄를 지체하셨습니다.”

이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지체?”

“내명부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상급 상궁의 첫 조치는 봉쇄입니다. 날리상궁께서는 그것을 한 시진 가까이 늦추셨고, 그사이 누군가 이 합숙처를 드나들었습니다.”

“네가 목격했느냐.”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윤소하가 말을 끊고 이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대비전 근처에서 근무하는 이가 그 무렵 침방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군지 말씀드릴 수는 없사옵니다. 제보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탁자 위 종이에 올려둔 손가락. 이겸은 그대로였다.

“대비전이라고 했느냐.”

“봉함실 나인의 바늘 처리를 보신 적이 있나이까.”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 이겸의 눈빛이 미세하게 좁아진다.

“네가 그 일을 어떻게 아느냐.”

“바느질은 침방의 일. 봉함실의 나인들도 저희에게 배웁니다. 그분들은 봉투를 접을 때 종이 모서리를 먼저 꺾는 버릇이 있습니다.”

탁자 위의 조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윤소하. 실제로 닿지는 않았다.

“이 조각의 종이는 직각으로 잘려 있습니다. 봉함실에서 나온 것이라면, 저 한 귀퉁이에 접힌 자국이 남았겠지요. 만약 없었다면——누군가 의도적으로 봉함실을 흉내 냈다는 뜻.”

대답 대신, 이겸은 조각을 집어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종이의 모서리는 깨끗하게 직각이었다.

“봉함실 최 상궁.”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네 말은 그가 이 조각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말하는 거냐, 아니면 만들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거냐.”

“최 상궁께서 소혜 나인 사망 사흘 전, 야심한 밤 회랑을 혼자 지나가셨다는 목격담이 있습니다. 작은 상자를 들고 침방 방향으로.”

이겸의 엄지가 검지 마디를 한 번 눌렀다. 거기서 멈춘 숨소리가 들린다.

“네가 그 목격자를 밝힐 수 없느냐.”

“박 상궁, 차령 상궁이십니다. 하지만——”

허리를 곧추 세우는 윤소하. 어깨가 벽에서 떨어졌다.

“지금 그분을 소환하시면 내명부 안에서 정보가 샙니다. 최 상궁의 뒤에는 대비전이 있습니다. 대비전의 정보는 날리상궁의 귀에 닿기까지 반나절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조언하는 것이냐.”

짜증은 없었다. 순수한 확인이 이겸의 물음에 실렸다.

“조사 방향을 제안드리는 것뿐이옵니다. 날리상궁께서 합숙처 봉쇄를 지체하신 그 한 시진 동안, 누군가 이 조각을 제 바느질함에 넣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침방에 접근할 수 있던 사람의 목록——”

“내금위가 이미 확보했다.”

말을 자른 이겸이 이내 목소리를 낮추었다.

“명단에는 침방 소속이 아닌 인원이 여섯 명 있다. 그중 세 명은 대비전 발령자다.”

두 사람의 시선이 탁자 위 종이 조각에 동시에 닿았다. 촛불이 한 번 가볍게 흔들린다.

“한 가지만 더 묻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겸.

“너는 어째서 시신을 가장 먼저 뒤집었느냐.”

치마자락에서 멈춘 윤소하의 손끝.

“목을 매단 이의 얼굴을 보았사옵니다. 이전에도.”

“이전이라면.”

“어릴 적 고향에서. 자살로 위장된 타살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목을 맨 시신은 혀의 위치가 다르니까요.”

거짓이 아니었다. 회귀 전, 첫 번째 죽음의 기억 속에서 배운 것. 다만 그 '이전'이 고향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었다는 사실만 감췄을 뿐이다.

오랫동안 그녀를 내려다보는 이겸.

“네 진술은 내일까지 기록으로 남는다. 그전에 최 상궁을 체포할 것이다.”

문으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한 가지 경고한다. 네 바느질함에 이 조각을 넣은 자는 아직 네 곁에 있다. 감금이 풀려도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문이 닫혔다. 윤소하는 닫힌 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손을 옷깃 안으로 넣는다. 두 개의 종잇조각이 그대로 피부에 붙어 있었다.

감금이 풀려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금위 집무실. 자정을 갓 넘긴 시각. 이겸은 탁자 위에 두 개의 기록철을 펼쳐놓았다.

왼쪽은 십 년 전 아버지 사건의 증거물 기록. 오른쪽은 오늘 압수한 윤소하 바느질함의 가짜 서찰 조각. 둘 다 별도의 서류에 필적이 첨부되어 있다.

촛불 두 개를 더 가져와 탁자 양옆에 놓았다. 불빛이 종이 위를 낮게 기어간다. 기록철을 넘기던 손이 특정 면에서 멈췄다.

획의 시작. 붓을 약간 비틀어 눌렀다 떼는 버릇.

삐침의 끝. 긋고 나서 미세하게 위로 올려 머무는 습관.

두 종이를 나란히 겹쳐 보았다.

다른 붓. 다른 먹. 다른 종이.

그러나 근육의 기억은 십 년의 세월을 지웠다. 손은 같았다.

검지 마디에 닿은 엄지. 한 번. 또 한 번. 세 번째는 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춘다.

이 필체는 아버지 사건에서 사라진 서찰의 필체와 같다. 그런데 왜 최 상궁이 만든 조각에 이 필체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어둠 속의 궁궐 지붕들이 겹쳐져 있다. 저 너머가 대비전.

십 년 전, 아버지는 중전과 대비 사이의 어떤 서찰을 추적하고 있었다. 서찰이 사라진 직후, 역모의 누명이 가문을 덮쳤다.

필체가 같다는 것은. 턱선이 굳어졌다. 같은 사람이 썼다는 뜻이다. 십 년 전 그 서찰도, 지금 이 조각도.

대비의 측근, 최 상궁. 서찰을 봉하는 봉함실의 책임자.

그러나 필체는 봉함 나인의 일이 아니다. 서찰의 내용을 쓰는 것은 발신자——대비 마마 자신이거나, 대비의 구술을 받아 적는 전서관.

최 상궁은 집행자. 그 위에 명령자가 따로 있다.

탁자로 돌아온 이겸이 기록철을 덮고 열쇠로 서랍을 잠갔다. 손바닥이 서랍 위에 얹힌다.

윤소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숨긴 것보다, 그녀에게 누명을 씌운 쪽이 더 큰 것을 감추고 있다.

입김으로 촛불 하나를 불어 껐다.

대비전 후원 복도. 점심 무렵. 차령 상궁 박씨는 목판을 가슴께 받쳐 든 채 행각을 따라 걷고 있었다.

침방 세탁 일정표를 대비전 지밀상궁에게 전달하라는 심부름. 평소 같으면 하급 나인이 갈 일을 날리상궁이 직접 그녀를 지목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손이 차가워진다.

행각 모서리에서 발이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 최 상궁.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죽인 차령 상궁이 귀를 기울였다.

“하루 안에 각 처소에 한 통씩. 침방·수방·어의녀 처소까지 빠짐없이.”

최 상궁의 작고 빠른 목소리. 긴장이 실려 있지만 명령조는 감추지 못했다.

“누가 묻거든 세탁물 사이에서 발견된 것처럼 해라. 절대 중전의 것이라고 말하지 말고, 다만——그런 것처럼 보이게.”

“상궁 마마, 이것이 정말 중전 마마의……?”

신임 나인으로 보이는 젊은 목소리.

“네가 알 바 아니다. 심부름만 하라.”

발소리가 흩어졌다. 세 명쯤 되는 나인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목판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차령 상궁. 손끝이 떨려서 나무판이 덜컹거렸다.

가짜 서찰이다. 대비전에서 만든 가짜 서찰을 중전의 것처럼 흘리는 중이다.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최 상궁의 발소리. 재빨리 뒷걸음질 쳐서 행각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목판에 이슬이 맺힌 손자국이 선명하다.

숨겨야 한다. 본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

거의 뛰다시피 후원을 가로지른다. 어디론가 부딪힐 듯한 공포가 발뒤꿈치를 쫓고 있었다. 침방 쪽 다용도실이 보이는 지점까지 와서야 걸음을 늦추었다.

숨을 몰아쉬며 벽에 손을 짚었다.

눈앞에 떠오른 윤소하의 얼굴. 포승도 없이 내금위로 끌려가면서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던 여자.

윤소하는 죄가 없을지도 모른다.

입 밖에 낼 용기는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치마를 털며 다용도실 안으로 몸을 숨기는 차령 상궁. 품 안에서 목판이 기울어져 있다.

같은 날 저녁. 내금위 임시 수사 본부.

문이 다시 열렸다. 이겸이었다. 이번에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대신 군관들에게 물러가라는 손짓.

벽에서 몸을 일으킨 윤소하. 감금된 지 반나절이 넘었고, 단 한 번도 울거나 애원하지 않은 얼굴이 약간 창백해져 있다.

“포박을 풀겠다.”

직설적인 첫마디.

“감금도 여기까지다.”

윤소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증거가 없기에 저를 석방하시는 것인지, 증거를 찾으셨기에 석방하시는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둘 다다.”

탁자 앞에 선 이겸. 앉지 않았다.

“네 바느질함에서 나온 조각은 조작된 증거물이다. 봉투 모서리에 접힌 자국이 없고, 바늘땀의 간격이 봉함실의 방식과 다르다. 그러나——”

한 박자 멈춘다.

“이것을 조작한 자가 대비전 쪽이라는 증거도 확보했다. 봉합에 쓰인 실은 삼합청면사. 대비전 봉함실에서만 사용하는 특수품이다.”

대답 대신 허리에 힘이 들어간 윤소하. 척추가 곧아진다.

삼합청면사. 그 실은…… 소혜의 도구함에서도 보았다. 같은 실이 붙은 봉투 조각.

“네 진술대로 최 상궁을 체포했다. 심문을 시작하면 곧 많은 것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한 톤 낮아진 이겸의 목소리.

“그가 배후를 자백한다 해도, 대비 마마께 직접 수사선을 뻗을 권한은 내금위 종사관에게 없다. 국왕의 윤허 없이는.”

사이에 놓인 촛불만이 가만히 타오른다.

“그래서 제안한다.”

반 걸음 다가온 이겸. 침범하지 않는 거리다.

“제한적 통행을 허락한다. 침방 복귀. 단, 내금위의 허가 없이 대비전에 접근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다.”

“조건이 있으실 것 같사옵니다.”

조용한 목소리. 그러나 그 안에는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다.

“네가 침방 안에서 가짜 서찰의 유포 정황을 포착하면, 반드시 내게 먼저 보고하라. 날리상궁이 아니라 나에게. 이것이 조건이다.”

“저를 침방 안에 잠입시키는 정보원으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다르게 표현한다면.”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가라앉는 이겸.

“나는 지금 네게 협력——아니, 공조를 제안하는 중이다.”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는 윤소하. 안에 든 두 개의 종잇조각이 체온으로 데워져 있다.

이 사람은 대비전에 복수할 이유가 있다. 아버지의 사건. 그 서찰의 필체.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는 이미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원수를 향한 체크리스트가 있다. 최 상궁은 이제 사라졌다. 다음 이름으로 가려면, 더 높은 곳을 봐야 한다.

“동의하겠사옵니다.”

천천히 일어난 윤소하.

“한 가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보뿐만 아니라, 대비전 쪽에서 나온 가짜 서찰——그 실물을 확보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제 손으로 찾아내겠습니다.”

촛불이 작게 깃든 눈동자.

“그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지 않사옵니까.”

한동안 말이 없는 이겸. 엄지가 검지 마디를 한 번 스쳤다. 부드러운 동작.

“네가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누명을 벗고 싶을 뿐이옵니다.”

칼날처럼 정직한 대답. 진실의 절반.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한 걸음 물러서며 문 쪽으로 손짓했다.

“통행 허가증은 내일 아침까지 침방으로 보내겠다. 오늘 밤은 침방 합숙처로 돌아가라. 단——네가 확보한 증거물이 있다면, 내게 숨기지 마라.”

문을 향해 걸어가는 윤소하. 문턱에서 발을 멈추고 돌아본다.

“종사관 나리께서도 한 가지 기억해 주시옵소서. 이 사건의 시작은 실종된 중전 마마의 서찰. 그 서찰은 아직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서찰이 누구에게 가고 있었는지——그것을 아는 순간, 이 모든 퍼즐은 한 번에 맞춰질 것입니다.”

공기 중에서 부딪히는 두 사람의 시선.

이윽고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한 윤소하가 복도로 사라졌다.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

닫히지 않은 문 너머,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등을 이겸이 바라본다. 무의식적으로 검지 마디를 찾던 손이 이내 떨어졌다.

윤소하. 너는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도 네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고.

손으로 촛불 하나를 가리며 입김을 분다. 꺼진 불빛. 방 안으로 어둠이 밀려든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서찰의 비밀, 일곱 개의 밤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