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서찰의 비밀, 일곱 개의 밤

6화

동트기 전, 내금위 종사관 집무실.

촛불이 반쯤 타들어간 놋촛대 아래 이겸이 홀로 앉아 있었다. 차령 상궁의 진술을 기록한 종이를 펼쳐 ‘밀실의 아이’라는 구절을 다시 읽던 손이 멎었다.

익숙한 표현이었다. 품속에서 꺼낸 오래된 종이 뭉치를 펼치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뛰어오는 소리. 이겸이 종이를 뒤집어 덮었다.

“종사관 나리, 계시옵니까.”

차령 상궁의 목소리였다. 숨이 차 있었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렸다. 차령 상궁의 얼굴은 밤새 뜬눈으로 지샌 사람의 것이었다.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어제…… 어제 아뢰지 못한 것이 있사옵니다.”

그녀가 문을 등 뒤로 닫았다. 손바닥으로 옆구리를 긁는 소리가 났다.

“태운 서찰의 내용 말이옵니다.”

이겸이 붓을 집었다.

“앉으시오.”

차령 상궁은 앉지 않았다.

“제가…… 그 서찰을 다 읽었사옵니다. 태우기 전에.”

“알고 있소.”

“아니옵니다. 전부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이겸의 붓이 허공에서 멈췄다.

차령 상궁의 손가락이 소매 밖으로 나왔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긁는 동작이 빨라졌다.

“거기…… ‘대비전 지밀 상궁이 중전의 밀실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고 적혀 있었사옵니다.”

이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확실하오.”

“분명하옵니다. 그리고……”

차령 상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중전의 아들’이라는 구절도 있었사옵니다. 그 서찰은 중전 마마의 밀실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옵니다. 제가 알기로, 그런 일을 쓸 수 있는 곳은……”

“중전전뿐이오.”

이겸이 문장을 완성했다. 차령 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 떨림이 더 심해졌다.

“한 가지만 더 묻겠소.”

이겸이 일어섰다.

“그 서찰을 건넨 사람은 대비전 쪽이 아니었소?”

차령 상궁의 눈이 커졌다.

“어찌…… 아셨사옵니까.”

“짐작했을 뿐이오. 누구였소.”

“중전전 소속의 나인이었사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사옵니다. 다만 얼굴은 어렴풋이……”

“좋소.”

이겸이 기록을 마무리하며 붓을 놓았다.

“지금 하신 진술은 매우 중대하오. 이 기록은 내금위 문서함에 봉인될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도 공식 진술로 남소.”

“저는…… 그럼 이제……”

“돌아가셔도 좋소. 다만——”

이겸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대비전 어느 누구에게도 오늘 이 자리에 온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오. 진술 내용은 더더욱 그러하오.”

차령 상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사옵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녀가 물러난 뒤에도 손가락 떠는 소리는 복도 너머로 한동안 이어졌다.

이겸은 기록지를 다시 펼쳤다. ‘대비전 지밀 상궁’과 ‘중전의 아들’ 사이에 붓으로 가는 선을 그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낡은 수기를 펼쳐 같은 구절을 찾았다.

십 년 전 기록 속에서도 ‘중전의 아들’이라는 말은 같은 필체로 쓰여 있었다.

같은 날 이른 아침. 침방.

윤소하는 합숙처 곁방의 문을 닫아걸고 바느질함을 열었다.

봉합실과 바늘들 아래, 무명 헝겊에 싸둔 서찰 조각 두 개를 꺼냈다. 손끝이 조각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익숙한 감촉이었다.

소혜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매를 붙잡던 손길.

칠흑 같은 밤, 숨 막히는 회랑.

“……이것만은…… 반드시……”

그때는 몰랐다. 이 조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나 이제 알겠다.

한 조각에는 ‘密(밀)’. 다른 한 조각에는 ‘子(자)’.

윤소하는 두 조각을 나란히 놓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비스듬한 아침 햇살에 비추었다. 찢긴 자리의 결이 맞닿았다. 원래 한 장이었던 종이.

‘밀(密)’은 빽빽할 밀. ‘자(子)’는 아들 자.

그러나 이 둘이 같은 문장 안에서 만나면——

‘밀실의 아들’.

윤소하의 호흡이 멎었다.

중전전에는 밀실이 하나 있다. 그곳은 침방 나인조차 출입할 수 없는 공간. 날리상궁만이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소혜가 숨진 날 밤, 날리상궁은 그 밀실에 출입했다.

서찰 조각을 쥔 손이 떨렸다. 소혜가 전하려 했던 것은 중전 마마의 사라진 서찰. 그 서찰은 중전의 아들에 관한 것. 그리고 소혜는 그걸 윤소하에게 전하려다——

누군가 막은 것이다. 목숨을 끊어서.

윤소하는 조각들을 다시 무명 헝겊에 싸서 소매 안쪽에 넣었다. 바느질함 뚜껑을 닫고 일어섰다. 손끝이 치맛자락을 비볐다.

이것이 체크리스트 세 번째 단계로 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녀는 침방을 나섰다. 발걸음은 중전전을 향했다.

같은 날 아침. 중전전 밀실 앞 복도.

촛불이 꺼진 회랑 끝, 날리상궁이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팡이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걸음걸이.

“상궁 마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날리상궁의 걸음이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윤소하가 다가섰다. 두 사람 사이에 복도의 찬 기운이 흘렀다.

“여쭈어볼 일이 있사옵니다.”

날리상궁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지팡이를 짚은 손가락이 옅게 떨렸다.

“네 목소리가 오늘따라 차갑구나.”

“상궁 마마.”

윤소하가 소매에서 무명 헝겊을 꺼냈다. 그 앞에서 조각이 드러났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옵니까.”

날리상궁의 시선이 조각에 닿았다. 그녀의 얼굴에 아무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종이 조각이로구나.”

“아니옵니다.”

윤소하의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중전 마마의 사라진 서찰에서 찢겨 나온 조각이옵니다. 소혜 나인이 죽기 전, 제게 전하려 했던 증거이옵니다.”

날리상궁의 눈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는 알게 되었사옵니다. 이 조각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윤소하가 조각을 빛에 비추었다.

“‘密(밀)’. ‘子(자)’. 이 두 글자는 ‘밀실의 아들’을 가리키옵니다.”

복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날리상궁의 왼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손가락이 낡은 호박 가락지를 감싸쥐었다.

“상궁 마마께서는 그 서찰이 사라진 직후, 가장 먼저 중전전 밀실을 출입하셨사옵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날리상궁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고하실 수 없사옵니다.”

윤소하의 눈빛이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침방 물품 기록부에는 분명히 남아 있사옵니다. 서찰 실종 당일, 중전전 밀실 열쇠를 상궁 마마께서 인수하신 기록이.”

날리상궁의 손가락이 호박 가락지의 금 간 부분을 더듬었다. 오래된 금이 가락지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네가……”

목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노파의 부드러움으로.

“내게 무엇을 바라느냐.”

“진실을 알고 싶사옵니다.”

윤소하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상궁 마마께서는 왜 그 서찰을 숨기셨사옵니까. 중전 마마를 위함이었사옵니까. 아니면——”

말을 멈추고 날리상궁의 손을 보았다. 가락지를 만지는 손.

“다른 이유가 있으셨사옵니까.”

침묵.

길고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날리상궁의 시선이 복도 저편으로 향했다. 밀실의 문.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닫혔다.

윤소하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상궁 마마.”

날리상궁이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서찰은…….”

목소리가 갈라질 듯 낮았다.

“네 생모가 받았어야 할 것이었다.”

윤소하의 손에서 서찰 조각이 떨어졌다.

무명 헝겊이 복도 바닥에 펼쳐졌다. 그 위로 ‘密(밀)’과 ‘子(자)’가 흩어졌다.

날리상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팡이를 돌려 천천히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호박 가락지를 쥔 손만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윤소하는 바닥에 떨어진 조각을 줍지 못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듣지 못했던 말.

회귀 후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

네 생모.

중전전 복도에 촛불 하나 깜빡였다.

윤소하의 손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떨리는 손끝이 조각을 집었다.

그녀의 눈이 복도 저편을 향했다. 날리상궁이 사라진 어둠.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내금위 철릭의 옷깃 스치는 소리.

이겸이었다. 손에는 수사 노트가 들려 있었다.

그가 걸음을 멈췄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윤소하의 손끝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에 들린 종이 조각이.

“윤 나인.”

윤소하가 천천히 일어났다. 얼굴을 들었다.

눈가가 붉지 않았다. 울지 않은 얼굴. 다만 눈빛이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종사관 나리.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대비전 불경 보관소.

이른 오전, 대비 마마가 아침 예불을 위해 처소를 비운 사이였다.

이겸은 차령 상궁의 진술을 바탕으로 대비 측근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보관소에 접근했다.

대비 좌석 곁 탁자 위에 놓인 불경 한 권. 대비가 늘 손에 쥐고 다니는 것이다.

이겸이 경전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책장 사이에 접힌 작은 쪽지 한 장.

뽑아서 펼치는 순간, 이겸의 숨이 멎었다.

쪽지에 적힌 글씨. 획의 방향. 붓을 놀린 기울기.

왼손잡이의 필체였다.

오른손으로 쓴 글씨는 획이 당겨지는 느낌이 있지만, 왼손잡이의 글씨는 획이 밀려나가는 듯한 독특한 흔적을 남긴다. 이겸은 낮에 침방에서 확인한 가짜 서찰 조각의 필체를 떠올렸다. 획의 방향이 같았다.

쪽지의 내용은 단순한 불경 구절처럼 보였다. ‘모든 번뇌는 집착에서 비롯되나니——’

그러나 이겸에게는 불경 구절이 아니라 증거로 읽혔다.

이것이 가짜 서찰 제작자의 필체다.

그는 쪽지를 재빨리 기록한 후, 다시 불경 사이에 끼워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발걸음을 옮기며 수사 노트에 한 줄을 추가했다.

‘대비전 불경 속 쪽지 — 왼손잡이 필체 확인. 가짜 서찰과 동일인 것으로 추정.’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 더.

‘차령 상궁 진술: 대비전 지밀 상궁, 사건 당일 중전 밀실 방향으로 이동 정황.’

증거의 끈이 대비전 쪽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복도로 나오자,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겸은 수사 노트를 접어 품에 넣고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불경 보관소의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났다. 대비가 돌아온 것이었다.

중전전 복도.

이겸이 윤소하 앞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표정이 평소와 다르오.”

이겸의 말에 윤소하가 서찰 조각을 소매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날리상궁 마마께서…… 이 조각이 중전 마마의 서찰임을 부정하지 않으셨사옵니다.”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은 아니었사옵니다.”

윤소하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다만, 침묵하셨사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사옵니다. 이 서찰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제 생모가 받았어야 할 것이라고.”

이겸의 눈썹이 움직였다.

“생모라고 하셨소.”

“예.”

윤소하의 손이 치맛자락을 비볐다.

“저는 침방에 배정되기 전, 이미 여러 해 전에 어미를 여의었사옵니다. 그런데 날리상궁께서는 제 출생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계셨사옵니다.”

“그 말을 듣고 어찌할 생각이오.”

“추적하겠사옵니다.”

그녀의 눈이 곧았다.

“중전 마마의 서찰과 제 출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소. 대비전 불경 속 쪽지에서 왼손잡이 필체를 확인했소. 가짜 서찰 제작자와 동일인의 것으로 보이오.”

“그럼 대비전이——”

“예. 가짜 서찰의 원천일 가능성이 매우 높소. 그리고 차령 상궁의 진술에 따르면, 대비 측근이 사건 당일 중전 밀실 방향으로 이동한 정황도 있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찰 두 개가 존재하오. 대비전의 가짜 서찰, 그리고 중전 마마의 진짜 서찰. 어느 쪽이든 우리는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갔소.”

윤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사관 나리. 제가 침방 기록부를 통해 날리상궁의 밀실 출입 전후 행적을 추적하겠사옵니다.”

“나는 대비 측근의 알리바이를 재검토하겠소. 차령 상궁을 증인으로 세울 준비도 필요하오.”

이겸의 엄지가 검지 마디를 한 번 쳤다.

“하나만 더 묻겠소. 당신의 생모에 관해…… 짐작 가는 바가 있소.”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윤소하의 얼굴에서 그가 본 것은, 답을 모르는 자의 혼란이 아니라 답을 직감하고도 말할 수 없는 자의 긴장이었다.

“아직은……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사옵니다.”

이겸이 고개를 끄덙였다.

“좋소. 때가 되면 듣겠소.”

그가 돌아서서 복도를 걸어갔다.

윤소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체크리스트 기록지를 한 번 만졌다.

두 번째 단계는 끝났다.

세 번째 단계로 가는 문은, 생모의 이름이었다.

중전전 복도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촛불 한 번 깜빡일 동안, 그녀의 눈에 복도 저편 밀실의 문이 비쳤다.

서찰의 비밀, 일곱 개의 밤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