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

1화

게이트 잔해에서는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구겨진 철골 사이로 마법진 파편이 푸르스름한 빛을 뿜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타는 냄새와 오존 향이 뒤섞여 코를 찔렀다. 마탑 외곽 제7구역. 두 시간 전 불안정 게이트가 열렸다가 스스로 붕괴한 곳이다.

“무영자 3조, 잔해 분류 속도 올려라! 해 떨어지기 전에 마수 핵 전량 회수해야 한다!”

감독관의 고함이 현장을 울렸다. 회색 튜닉을 입은 무영자 열두 명이 침묵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루안은 그중 하나였다.

장갑을 낀 손으로 무너진 석재 더미를 들어 올리자 검게 그을린 마수의 앞발뼈가 드러났다. 루안은 무릎을 꿇고 잔해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뼈는 왼쪽 포대, 마력 잔류물은 봉인 용기. 정해진 규칙대로.

「하, 또 이거야?」

손이 멈췄다.

「일주일에 게이트가 세 번씩 터지는데, 너희 청소하는 쪽도 참 대단하다.」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목소리. 여자아이의 톤이었지만, 끝이 비꼬듯 올라갔다. 루안은 손에 쥔 마수 뼈를 그대로 움켜쥔 채 주위를 돌아봤다.

오른쪽에서 작업하던 사내가 루안을 쳐다봤다.

“왜, 손 베였냐?”

“……아니.”

루안은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귀밑까지 뛰고 있었다.

「찾아봐야 안 보여. 나 여기 없으니까.」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 같은데, 공기의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루안은 숨을 들이켰다. 마력 탐지에 걸릴 만한 잔류 에너지도 없었다.

「근데, 왼쪽에서 세 번째 무너진 철골 밑.」

목소리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거기 마수 핵 있는데, 지금 상태로는 한 2분 뒤에 터질걸? 그냥 두면 저기 키 큰 놈부터 순서대로 날아가겠네.」

루안은 왼쪽을 봤다.

세 번째 철골. 그 아래에서 동료 하나가 쪼그려 앉아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마른 체구의 소년. 이름은 몰랐다. 무영자들 사이에서 이름을 물어보는 일은 드물었다.

「너도 그거 맞으면 병원 신세야. 가슴에 낙인 가린 천 조각, 불에 타겠네.」

루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거기에 있던 소년이 멈추고 올려다봤다.

“그 철골 밑, 지금 건드리지 마.”

“뭐?”

소년이 미간을 좁혔다.

“전에도 여기 작업했는데…….”

“마력 잔류 농도가 이상해.”

루안의 말에 현장이 조용해졌다. 감독관이 다가왔다. 이마에 땀을 흘린 중년 남자였다.

“루안, 네가 무슨 근거로.”

“왼쪽에서 세 번째 철골 밑이야. 마수 핵이 살아 있어.”

그 순간, 철골 아래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렸다. 금속이 휘어지는 소리. 감독관의 얼굴이 굳었다.

“물러나!”

모두가 뒤로 뛰었다. 2초, 3초.

파열음은 예상보다도 더 컸다. 푸른 섬광이 철골을 찢고 치솟았고, 쇳조각 세 개가 지면에 꽂혀 거품처럼 끓었다. 서 있던 위치에 소년이 멈춰 있었더라면 그대로 목을 맞았을 각도였다.

작업조 전체가 숨을 죽였다.

“……씨.”

누군가가 터뜨린 욕이 침묵을 깼다. 소년은 주저앉은 자세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감독관이 고개를 틀어 루안을 봤다.

“……마력 농도? 농도를 어떻게 네가?”

“감촉이 달랐어.”

루안은 건조하게 답했다.

「감촉? 아까 잔해 만질 때 마력 감응 따윈 없었잖아?」

목소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거짓말도 참 잘하네.」

감독관은 잠시 루안을 노려봤다. 무언가 더 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결국 고개를 저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재정렬! 3조는 북쪽 구역으로 이동한다. 방금 그 철골 주변은 건드리지 말고!”

무영자들이 천천히 흩어졌다. 몇몇이 루안의 옆을 지나며 말을 걸었다.

“방금 거, 어떻게 알았어?”

“아까도 작업하다 멈추더니…….”

“고맙다는 건 아니고.”

짧은 중얼거림들이었다. 루안은 답하지 않았다. 왼쪽 가슴 위, 낙인을 가린 천 조각이 땀에 젖어 축축했다.

「고맙다는 건 아니래.」

목소리가 흉내를 냈다.

「인간들, 실패자끼리도 참 정이 없다. 너, 여기서 몇 년째야?」

루안은 입을 열었다.

“누구지.”

「어? 말 통하는 거야? 나는 너 혼잣말하는 줄 알았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덧붙였다.

「미르야. 이름 같은 건 없어. 하급 정령이거든.」

루안의 호흡이 멎었다.

“정령?”

「그럼 유령이겠어, 멍청아.」

루안은 주먹을 쥐었다. 1년 전 계약식의 밤이 스쳤다. 어둠 속에서 들렸던 희미한 목소리.

그때도 이런 무례한 어조였을까.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무것도 듣지 못했고,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무너졌다.

“……계약식 때, 네가.”

「글쎄.」

미르의 어조가 처음으로 망설였다.

「시끄럽네. 작업이나 해. 아까 같은 게 또 터지면 너도 다친다고.」

목소리가 사라졌다. 현장의 소음이 밀물처럼 돌아왔다. 루안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폈다. 장갑 아래로 길고 마디 굵은 손가락이 떨렸다.

정령이다.

정령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의 낙인이 타는 듯 아렸다.

공동 숙소로 통하는 돌계단을 내려가자 익숙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업조가 복귀한 지 한 시간이 채 안 됐는데도 소문은 이미 구역 전체에 퍼져 있었다.

“저기 온다, 사고를 미리 안 그 분.”

통로 왼쪽 침상에 앉아 있던 무영자 하나가 턱짓으로 루안을 가리켰다. 마흔쯤 돼 보이는 남자였다. 가슴에 핀으로 고정한 낙인 가리개 천이 루안의 것과 같은 회색이었다.

루안은 대꾸하지 않고 자기 침상으로 걸어갔다.

“야, 다음 달 복권 번호도 좀 알려줘라.” 다른 쪽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무영자였다. “어차피 너보다 못 살 것도 없잖아?”

“조용히 해.”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연장자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루안은 침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장화 끈을 풀었다. 손끝에 마수 핵 처리장 맴돌던 퀴퀴한 잔향이 배어 있었다. 작업복 소매를 걷자 팔뚝에 긁힌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몰랐다.

“근데 진짜 어떻게 안 거야?”

목소리의 주인이 침상 앞까지 다가왔다. 아까 그 젊은 무영자였다. 등 뒤로 두엇이 더 고개를 빼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냥 예감이었다.” 루안이 말했다.

“예감? 저번 주 조제 보조하다가 실수한 것도 예감이냐?” 상대가 낙인 가리개를 톡톡 쳤다. “무영자 주제에 혼자 튀려고 하지 마. 우리는 다 같이 바닥이야.”

루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짙은 회색 눈동자가 촛불 아래서 잠시 보랏빛을 띠었다. 상대가 반 박자 늦게 시선을 피했다.

“맞아. 다 같이 바닥이니까 너도 조용히 해.”

루안이 침상 옆 선반에서 낡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화들짝, 등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길고 마디 굵은 손가락이 외투 주머니를 더듬었다. 잉크 얼룩이 손톱 주변에 마르지 않고 남아 있었다. 루안은 아무 말 없이 공동 숙소를 가로질렀다.

돌로 만든 복도는 습기가 차서 벽이 번들거렸다. 마탑 최하층의 유일한 장점은 구석이 많다는 것이었다.

구 도서관으로 통하는 나무 문은 경첩이 녹슬어 반쯤 열린 채 굳어 있었다. 루안이 어깨로 문을 밀자 썩은 종이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 일반 무영자들은 이곳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무너진 책장 사이로 달빛이 창살처럼 쏟아졌다. 루안은 기둥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거기, 좀 조용히 해줄래.”

공기가 없는 데서 울리는 목소리였다. 루안의 손가락이 멈췄다.

“네 머릿속이 시끄럽다고.”

루안이 숨을 멈췄다. 이번에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살짝 왼쪽. 책장이 무너진 쪽에서 빛 입자 둘이 천천히 떠올랐다. 게이트 사고 현장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음색이었다.

“정령이냐.”

침묵. 빛 입자가 살짝 흔들렸다.

“맞혀 볼 생각 없었는데.”

“뭘 더 확인할 게 있어. 네 주제 파악은 빠르네.”

목소리는 소녀의 것이었다. 열네댓쯤. 어조는 열네댓이 아니었다.

“나와라.” 루안이 말했다.

“명령하지 마. 네가 날 소환한 적도 없고 계약한 적도 없어.”

“그럼 왜 따라다녀.”

빛 입자들이 천천히 한곳으로 모였다. 책장 그림자 사이로 반투명한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145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체구. 소녀의 실루엣이었지만 관절이 없는 형태. 눈동자가 없는 대신 눈 전체가 청색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하급 정령이야, 나는.” 형체가 말했다. “이름도 없어. 실망했지, 실패한 천재?”

루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외투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쥔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봤어. 네가 마탑 바닥에서 구르는 것도, 네가 밤마다 여기 와서 혼자 앉아 있는 것도.”

“신고하겠다.” 루안이 말을 잘랐다. “무영자 구역에 미계약 정령이 출몰한다. 마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잠시 멈칫했던 빛이 다시 움직였다.

“해 봐. 그럼 네가 미친 게 확실해질 뿐이니까.”

루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너는 나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 너 자신한테조차도.” 형체의 투명도가 조금 더 짙어졌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이 빛 자체로 이루어져 감정에 따라 백색에서 연한 푸른색으로 느리게 바뀌고 있었다. “여기 있는 건 나뿐이잖아. 네가 나를 못 박아 봐.”

“무례하군.”

“네 인생이 무례야.”

빛 입자들이 갑자기 흩어졌다가 집중했다. 형체의 체적이 선명해졌다. 완전히 투명하던 것이 이제는 가장자리에 불투명한 선이 생겼다.

“잠깐.”

“열 번은 깜빡일 텐데.”

미르가 책장을 통과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10년이나 걸렸다, 실패한 천재.”

루안의 짙은 다크서클 아래로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1년 전 계약식. ‘아직 때가 아니다.’ 그 목소리가 그대로 방 안에 있었다.

“무슨 뜻이지.”

미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빛 입자들이 다시 느리게 흩어지며 형체의 투명도가 돌아오고 있었다.

루안은 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신고할까. 누구에게.

감독관? 마탑 보안부? 이 광경을 어떻게 설명하지. 제정신이고 미친 게 아니라는 증거 하나 없었다.

증명할 수 없는 정령. 그리고 자신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

마탑은 축하해 주지 않을 거다.

루안은 감은 눈꺼풀 너머로 아직 빛의 잔상이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무너진 책장 사이, 먼지 쌓인 책등들이 달빛 아래 줄지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