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

3화

루안은 천장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습기로 얼룩진 돌 천장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궁금하냐고 묻기 전에, 이미 말할 생각이라는 거군.”

「뭐?」

“네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회피하던 네가.” 루안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손끝이 매트리스를 살짝 긁었다. “정보를 주려는 태도지. 대가 얘기로 넘어가자.”

정적이 흘렀다. 미르의 빛 입자들이 침상 옆에서 느리게 회전했다.

「……대가라.」 미르의 목소리에서 비웃음이 빠졌다. 「좋아. 나는 하급 정령이야. 이름도 없고, 등록된 진명도 없어. 너희 마탑 방식으로는 계약이고 뭐고 불가능해.」

“알고 있다.”

「닥치고 들어. 그런데도 너는 내 목소리가 들려. 계약도 없이. 1년 전 계약식에서도 들었고.」

루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르가 스스로 그날을 입에 올린 건 처음이었다.

「이건 네 쪽의 문제야. 내 쪽 문제는……」 미르의 빛이 한 박자 느려졌다. 「이름이 없다는 거다.」

“이름을 가지면 뭐가 달라지지.”

「모르냐? 정령은 진명으로 계약하는데, 진명이 생기려면 먼저 이름이 있어야 해. 하급은 이름조차 못 받아. 그게 규칙이야.」

루안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네가 원하는 게 이름이라면.”

「그래. 네가 지어.」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인간이 이름을 붙이면 정령은 진명을 가질 자격이 생겨. 마탑의 계약식 따위랑은 상관없는 길이야.」 미르의 빛이 한순간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옅어졌다. 「네가 내 목소리를 듣는 이유도 거기 있을 거다. 너는 계약할 정령이 아니라, 이름을 줄 인간이었던 거야.」

“그걸 10년 전부터 알고 기다렸다고?”

「대충 맞아.」

루안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렸다. 손가락 마디가 여전히 뻣뻣했다. “이름을 지어주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나.”

「너에게 내 감각 일부가 열려. 대신 완전한 계약은 아니야. 진명이 없으니까. 그냥…… 임시 유대.」

루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동 숙소 어딘가에서 누군가 잠꼬대를 했다. 침상이 삐걱였다.

“미르.”

빛 입자들이 완전히 멈췄다.

“네 이름은 그거다. 미르.”

순간 숨을 들이마실 수 없었다. 들이마신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 혀끝을 스쳤다. 동시에 어둠 속의 돌바닥, 습기, 먼지 냄새, 열린 복도 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미세한 바람의 흐름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루안의 감각이 아니었다. 자신의 피부와 혀와 코가 아니라, 허공에 떠 있는 다른 존재의 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였다.

“이게.”

「……열렸네.」 미르의 목소리가 전보다 낮고 느리게 들렸다. 비웃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감각인 줄은 나도 처음 알아.」

눈을 감자, 감은 눈꺼풀 너머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공기 입자 하나하나가 길을 알려주는 듯한 착각. 원소의 흐름이라고 부를 만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이걸 네가 항상 느끼고 있었군.”

「당연하지. 너희 인간은 이 기본도 못 느끼니까 마법이고 뭐고 허둥대는 거고.」

비꼬는 말투였지만 끝이 살짝 흐려졌다. 루안은 눈을 떴다. 미르의 형체가 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이름 하나로 변하는 게 꽤 많네.”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 죽여 버릴 테니까.」

다음 날 아침, 잡역장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마력 잔류물 분류 작업대 여섯 개가 길게 늘어서고, 회색 튜닉을 입은 무영자 스무 명 남짓이 각자 자리에서 분류용 핀셋을 움직이고 있었다. 루안은 구석 작업대에서 막 잔류물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저렸다.

공기의 흐름, 원소의 밀도, 작업장 저편에서 누군가 분류용 램프의 심지를 조정할 때마다 일어나는 열의 미세한 파동까지 전부 느껴졌다.

“야, 어제 잡역 땡땡이 친 거 감독관한테 일렀냐?”

한쪽에서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린 무영자 하나가 루안을 보며 웃었다. 옆에 있던 다른 무영자가 팔꿈치로 찔렀다.

“아린이 대신해 줬다며. 여자 하나에 붙어사는 꼴 좀 봐.”

루안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핀셋을 쥔 손이 평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미세한 원소 흐름이 신경을 건드려서 손가락 마디가 자꾸만 굳었다.

「저런 벌레 같은 소리는 무시하면 안 되나?」

익숙한 소리니까.

“선배.”

아린이었다. 작업대 옆에 서서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춤 공구 벨트를 양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왜 그래.”

“……선배 주변, 공기 흐름이 이상해요.”

루안의 손이 멈췄다. 아린의 눈이 작업대 위가 아니라 그의 어깨 너머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공기가?”

“나도 마법 못 써요. 그런데 마탑에서 1년 잡역하면 마력 잔류물의 흐름 정도는 감이 와요.” 아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선배 주변만 흐름이 비정상이에요. 마치…… 정령이 옆에 있는 마법사처럼.”

「쟤, 감이 좋은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들떠 있어서?」

속으로 답하려는 순간, 작업대 위의 분류용 램프가 깜빡였다.

불꽃이 완전히 꺼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작업장 전체의 램프 여섯 개가 동시에.

잡역장의 모든 손이 멈췄다.

“방금…….”

누군가의 목소리가 긴 침묵을 깼다. 루안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미르에게 가만히 있어라는 생각을 보내려다, 실수로 반대 명령에 가까운 파동을 흘려보낸 것을 깨달았다.

“저거 램프 정령 마법 아니냐?”

“미친, 어떻게 무영자가.”

“어제 소문 들었어? 잔해 현장에서 목소리 들었다는 거.”

“그게 진짜였어?”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 몇몇은 의자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또 몇몇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다가서려다 망설였다.

아린이 루안의 소매를 붙잡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선배. 지금.”

“실수였다.”

“실수였어요?!” 아린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갈라졌다가, 이내 낮아졌다. “……진짜 정령이 있는 거예요?”

루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작업장 전체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있다.”

아린의 주근깨 낀 코 주변의 피부가 창백하게 질렸다가 다시 붉어졌다. 세 번 정도 호흡을 반복한 뒤, 그녀는 허리춤의 공구 벨트를 엄지로 툭 쳤다.

“점심 밥값 말고요. 제대로 된 저녁 사야 해요. 설명 들려면.”

“……이 상황에서 흥정이 먼저냐.”

“협상 타이밍은 최대한 빨리 잡는 게 좋아요.”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수군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복도로 뛰쳐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소문은 이미 잡역장 밖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저 인간 꼬마, 은근히 맘에 드네.」

닥쳐.

잡역은 해가 중천에 걸릴 무렵 끝났다. 루안은 손에 묻은 검은 마력 잔류물을 작업복에 닦아냈다. 아린이 공구 벨트를 풀며 말했다.

“선배, 점심은요.” “배 안 고파.” “아까 밥값 내기로 했잖아요.” “……그랬나.” 아린이 한숨을 쉬었다. 둘은 공동 숙소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마탑 최하층 광장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습기 찬 돌바닥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짧게 늘어졌다. 주변을 지나던 무영자 몇이 루안을 보며 수군거렸다. 아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소문이 꽤 퍼졌네요.” “어쩔 수 없지.” 대답을 아꼈다. 미르의 목소리가 귀 옆에서 들렸다. 「실패한 천재가 정령을 부린다.

이거 완전히 역적 취급인데?」 광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앞을 가로막는 세 개의 그림자가 땅에 드리웠다. 진청색 로브, 어깨의 금색 견장.

케인 아르겔이 두 명의 견습생을 대동하고 서 있었다. 백금색 머리카락은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뒤로 넘겨져 있었고, 금색 눈동자가 루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케인의 시선이 왼쪽 가슴, 낙인을 가린 천 조각에 잠시 머물렀다.

“루안.”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끝에 날이 서 있었다. “마탑 고위 마법사께서 무영자 구역엔 무슨 일이냐.” “말은 짧게 하는군. 좋아, 나도 짧게 가지.” 케인이 한 걸음 다가섰다.

키 차이만큼 그림자가 루안을 덮었다. “네가 정령을 가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이냐.” 아린이 숨을 멈췄다.

주변을 지나던 무영자들도 걸음을 늦추며 광장 입구를 힐끗거렸다. 루안은 케인의 금색 눈을 올려다봤다. 동공이 세로로 길쭉하게 찢어져 있었다.

상급 정령 계약의 흔적이었다. “그렇다.” 케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어떤 정령이지.” “말할 이유가 없는데.” “무영자가 정령을 가진 건 전례가 없다.

마탑 규정상 보고 대상이다.” “그 규정은 계약 성립 기준이지.”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나는 계약을 하지 않았다.” 케인의 금색 눈이 반짝였다. 왼손의 은색 정령 반지가 빛을 머금었다.

“증명해 봐.”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 푸른 마력이 맺히며 주변 공기가 진동했다. 아린이 루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선배.” “물러나 있어.” 팔을 빼지 않았다. 미르가 낮게 웃었다. 「시험하려는 모양인데.

저거 상급 마법사 마력이야. 맞으면 아플걸?」 “재밌군.” 루안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은 케인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케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푸른 마력이 케인의 손바닥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령과의 유대 흔적을 시각화하는 탐지 마법이었다.

그걸 루안의 가슴께로 밀어 넣으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멈춰.” 낮고 굵은 진동이 광장을 울렸다.

케인의 마력이 허공에서 산산조각 났다. 진청색 로브의 그림자가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칠흑색 늑대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어깨높이는 루안의 가슴께까지 닿았고, 등에서 검은 아우라가 연기처럼 흘러내렸다. 네 발이 돌바닥에 닿을 때마다 미세한 파문이 퍼져나갔다. 목에는 붉은 계약 문신이 불길처럼 빛나고 있었다.

「비켜.」 카이젤이 케인의 옆으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케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거뒀다. “카이젤, 내가 부른 적 없다.” 「네 멋대로 나왔다.」 진홍색 시선이 루안에게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왼쪽 어깨 너머, 빈 공간을 향해 있었다. 미르가 숨을 들이켰다. 「……저 늑대.」 카이젤이 고개를 숙였다.

야수로서는 이질적일 만큼 절제된 동작이었다. 목의 붉은 문신이 한 차례 더 밝게 빛나며 경계와 존중이 뒤섞인 파동을 내보냈다. 침묵 자체가 분명한 신호였다.

케인이 카이젤의 반응을 감지했다. 정령과의 계약자만이 느낄 수 있는 파동이 그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금색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하급이 아니군.” 카이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꼬리를 한 번 바닥에 쓸듯 내리쳤다. 돌바닥에 검은 잔상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미르가 루안의 귀에 속삭였다. 「저 녀석, 나를 알아본 건 아니야. 근데 감지는 했어.

상급 정령이 하급을 향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정상이 아니지.」 루안은 침묵했다. 대신 카이젤의 목에 새겨진 붉은 문신을 응시했다.

강제 계약의 증표였다. 살아있는 상처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미르가 말을 이었다.

「저 문신. 강제 계약이야. 늑대는 자발적으로 저 인간을 따르는 게 아니란 뜻이지.」 케인이 손을 내렸다.

마력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느리게 숨을 들이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로브의 깃을 바로 세우는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좋다. 네가 가진 게 무엇이든.” 금색 동공이 찢어질 듯 가늘어졌다. “내가 반드시 밝히겠다.” 카이젤이 몸을 돌렸다.

거대한 검은 체구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라지기 직전, 루안의 뒤를 향해 낮은 진동음을 보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파동이었다.

하지만 미르는 달랐다. 「……경고했어.」 미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긴장감을 담았다. 「네가 누군지 밝히면 위험해진다고.」 카이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광장의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케인은 등을 보인 채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멈춰서 어깨 너머로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엔 공식적인 자리에서 묻겠다.” 견습생 둘이 황급히 뒤를 따랐다.

진청색 로브가 광장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루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린이 긴 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거……

상급 정령이었죠?” “그런 모양이야.” “선배한테 절을 한 건가요? 방금.” 답하지 않았다. 미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은 아니야. 인사 비슷한 거겠지. 옛날에……

뭔가 있었나 봐.」 루안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손등의 검은 가루를 한 번 더 닦아냈다. “가자. 배고파졌다.” “……이제야요?” 아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미 광장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미르가 낮게 중얼거렸다.

「너, 저 늑대한테 찍혔어. 그리고 저 금색 눈 인간도.」 “알아.” 「재밌어질 것 같은데.」 루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왼쪽 가슴의 천 조각 아래에서 낙인이 둔하게 욱신거렸다.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