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

4화

아침이었다. 완전히 밝은 아침. 무영자 구역 공동 숙소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루안은 침상에 누워 잠시 천장을 응시했다. 양팔이 묵직하게 욱신거렸다. 긴장했던 근육이 풀린 탓이다.

「일어났네.」

미르의 목소리가 왼쪽 귀 위에서 들렸다. 루안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늘 던전 간다며. 벌써부터 그 꼴이야?」

“……꼴이 어쨌는데.”

「눈 밑이 시커멓잖아. 잠은 잤냐?」

루안은 상체를 일으켰다. 답은 하지 않았다. 두 시간쯤 잤다.

「하,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견습생 주제에.」 「실패한 견습생이던가.」

루안은 침상에서 내려와 왼쪽 가슴의 천 조각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낙인은 가만히 있었다. 욱신거리지도 않았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공동 숙소의 긴 복도를 지나 세면장으로 향했다. 다른 무영자 서넛이 물을 틀고 있다가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보냈다. 왼쪽 가슴을 가린 천 조각, 그리고 얼굴을 봤다. 아무 말도 없었다. 전에는 조롱이라도 했다.

미르가 킥킥 웃었다.

「인기인이네.」

루안은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물이 턱을 타고 흘렀다. 무영자 구역엔 거울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마탑 최하층 복도로 나왔다. 벽의 램프들이 깜빡이고 있었고, 루안이 지나갈 때마다 불꽃이 흔들렸다. 아린이 복도 끝에서 달려왔다.

“선배! 여기!” “오늘 진짜 가는 거죠? 던전. 어젯밤에 신청서 넣었어요.” “그래.” “감독관 표정이 재밌더라고요. ‘무영자가 자원이라니’ 하면서.”

아린이 걸음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소문이 완전히 퍼졌어요. 정령을 데리고 다닌다는 얘기. 어떤 놈은 빛이 보인다고도 하고.” “진짜 소문은 없고?” “……있어요. 어제 케인 아르겔 님이 직접 찾아왔다는 거.” “그런데 선배가 살아서 돌아와서 더 큰 소문이 됐죠. 보통 그분이 무영자한테 관심 가지면 반쯤 죽어 나오거든요.”

미르가 낄낄거렸다.

「역시 인기인이야. 금색 눈까지 사로잡았네.」 「닥쳐.」 「말대꾸는 잘하네. 실력도 그만큼이면 좋겠다.」

하위 던전으로 통하는 지하 통로로 접어들자 천장이 낮아지고 공기가 축축해졌다. 벽에는 마력 진압용 봉인석이 박혀 있었고, 돌바닥엔 오래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통로 끝에서 철문이 열렸다.

아치형 구조물 안쪽으로 어둠이 꿈틀거렸다. 푸르스름한 마력 잔류물이 안개처럼 바닥에 깔려 있었다. 입구 좌우로 관리원 둘이 섰다. 한 명이 루안을 내려다봤다.

“무영자 신청?” “네! 루안 선배고요, 제가 어제——” “알아.”

관리원이 피식 웃었다. 다른 한 명은 웃지 않고 왼쪽 가슴을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뒀다.

“규칙은 알 거다. 안에서 죽어도 책임 안 진다. 마수 핵 하나라도 건지면 성과 인정. 못 건지면 잡역만 늘어난다. 갈 거냐.”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철문이 열리자 찬 바람과 함께 마력과 썩은 것, 오래된 먼지 냄새가 밀려왔다. 아린이 입구 밖에 서서 웃음을 거뒀다.

“……조심하고 와요. 진짜로.”

루안이 손을 한 번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빛이 바뀌었다. 램프 불빛은 뒤로 밀려나고 푸르스름한 잔광만이 통로를 감쌌다. 갈라진 돌 틈으로 마력 잔류물이 흘렀다.

미르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 옛날 피 냄새가 나네. 마수들 꽤 오래 있었어.」

루안은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마다 돌이 미세하게 울렸다. 마수 도감을 전부 외웠지만 그건 종이 위의 정보였다.

「떨고 있네. 다리가.」 “안 떨려.” 「거짓말. 감각 공유된 거 잊었냐? 오른쪽 종아리, 경련 일어나고 있어.」

루안은 걸음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종아리가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무서우면 돌아가. 아직 문 가까우니까.」 “가.”

통로는 완만하게 아래로 휘어지며 1층으로 내려갔다. E급 이하 마수만 출몰하는 구역.

「근데 너 마수랑 싸워본 적 없잖아.」 “……없어.” 「계약 실패하고 바로 잡역 들어갔으니까.」 “맞아.” 「하, 죽겠네 진짜.」

돌바닥이 미세하게 울리며 진동이 올라왔다. 루안이 걸음을 멈췄다.

「오른발. 그대로.」

루안은 직감적으로 멈췄다. 오른발이 허공에 반쯤 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돌 틈새에서 희미한 붉은 선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력 실. 건드리면 벽의 구멍에서 독침이나 마력 탄환이 튀어나올 함정이었다.

「천천히 뒤로.」

루안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오른발을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근육이 뻣뻣해졌다. 발바닥이 돌에 닿자 숨을 내쉬었다.

「혼자였으면 벌집이었어.」 “……그렇네.” 「칭찬은?」 “감사합니다, 미르 님.” 「비꼬는 거냐.」

루안은 벽에 등을 붙이고 마력 실을 눈으로 따라갔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붉은 선들이 아홉 개,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왼쪽 벽 돌출부. 실이 안 닿는 유일한 경로야.」

루안은 튀어나온 돌을 디딜 공간을 확인하고 점프했다. 손이 돌출부를 잡자 팔에 체중이 실리며 어깨가 욱신거렸다. 다리를 올려 벽에 바짝 붙었다. 마력 실이 얼굴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조심히 건너.」

벽을 따라 옆으로 움직였다. 돌출부가 이어져 있었다. 관리용 경로인 듯했다.

5미터쯤 이동하자 마력 실 지대가 끝났다. 루안은 바닥에 내려섰다. 팔이 떨리고 있었다. 긴장 탓에 체력 소모가 빨랐다.

「생각보다 잘하네. 두 번은 더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아.」

루안이 피식 웃자 미르가 즉시 반응했다.

「왜 웃어. 지금 웃을 상황 아니야.」

통로가 끝나고 천장 5미터의 석실이 나타났다. 벽에는 오래된 횃불 걸이, 바닥 중앙에는 검은 잔여물이 원형으로 번져 있었다. 마수의 배설물이나 토사물이 말라붙은 흔적이었다.

그 위에 마수가 웅크리고 있었다. 털 빠진 회색 가죽, 네 개의 눈을 가진 개 형태. 입에서 검은 침이 뚝뚝 떨어졌다.

E급 하급 마수, 그라울러. 도감 그대로였다. 돌진과 물기가 주 패턴, 약점은 목젖 아래 맥동점.

마수가 고개를 들었다. 네 눈이 동시에 루안을 향했다.

「왔네. 뭐 해. 싸워야지.」

루안의 다리가 바닥에 붙었다. 귀에 맥박 소리가 울리고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마수의 썩은 냄새가 밀려왔다.

“어떻게…….” 「뭐?」 “어떻게 싸우는지 모르겠어.”

그라울러가 몸을 일으켰다. 낮은 으르렁거림이 석실을 울렸고, 이빨 사이로 검은 침이 실처럼 늘어졌다.

「왼쪽으로 한 걸음, 그리고 한 걸음 더.」

루안은 굳은 근육에도 불구하고 왼쪽으로 두 걸음 움직였다.

그 직후 그라울러가 루안이 서 있던 자리로 돌진했다. 회색 덩치가 허공을 갈랐다.

「그거 봐. 피했잖아.」 「다음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 그라울러는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도는 게 빨라.」

루안은 몸을 돌렸다. 마법진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력은 있지만 계약 정령 없이는 불가능했다.

「주먹을 쥐어 봐.」

오른손을 말아쥐었다.

「느껴져?」 “……무슨.”

「네 마력. 지금 손바닥에 모이고 있어. 내가 붙여준 거야.」

손바닥이 뜨거워지며 푸르스름한 빛이 손등 위로 번졌다.

「하급 정령이라 이 정도밖에 안 돼. 불평하지 마.」

그라울러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네 눈이 루안을 추적하며 뒷다리 근육이 부풀었다.

「다시 올 거야. 이번에는 안 피하고 들어가.」

“……뭐?”

「농담 아니야. 오른쪽으로 반 걸음. 가슴에 힘 빼고. 마수 앞에서 멈칫하면 진짜 죽어.」

그라울러가 더 빨리 튀어 올랐다. 루안은 오른쪽으로 반 걸음 움직이며 상체를 비틀었다. 마수의 앞발이 왼쪽 어깨를 스쳤다. 그 순간 목젖 아래 맥동점이 보였다. 검은 피부 아래 푸른 빛이 깜빡였다.

루안이 주먹을 뻗어 목표를 정확히 때렸다. 타격감이 팔뚝까지 전해졌고, 딱딱했다. 그라울러가 짧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마수가 바닥에 떨어져 경련하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눈이 하나씩 감겼다.

루안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양팔이 떨리고, 어깨에서 피가 조금 났지만 참을 만했다.

「……죽였네. 한 방에.」

미르의 목소리가 반음 높아졌다.

「의외인데.」 “운이 좋았어.”

「운으로 되는 게 아니야. 타이밍, 각도, 마력 집중이 완벽했어.」

잠시 침묵.

「……조금은 쓸모가 있나 보네.」 “칭찬이야?”

「아니. 사실 확인이야.」

루안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마수에게 다가갔다. 맥동점을 눌러 딱딱한 핵을 뽑아냈다. 검푸른 E급 정수가 손바닥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하루치 잡역 면제 분량이었다.

「첫 전리품이네. 감동적이야?」 “별로.”

루안은 정수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마수의 흔적은 없었다.

「더 갈 거야?」 “……아니. 이걸로 충분해.”

「벌써? 한 방 먹였으니 자신감 붙은 거 아냐?」 “오늘은 이걸로 됐어.”

루안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함정 구간을 피해 벽 쪽에 붙었다. 어깨 상처가 욱신거렸고, 다리가 무거웠다. 입구의 푸르스름한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던전 입구 철문을 밀고 나오자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오전 햇살이 복도에 쏟아졌다. 아린이 쪼그리고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선배! 상처!”

찢어진 어깨에서 피가 났다.

“이 정도야.”

“피 나고 있잖아요.”

루안은 정수를 꺼내 관리원에게 건넸다. 관리원이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급 그라울러 핵. 맞다. 단독 제압?” “……그렇습니다.”

관리원들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영자에게서 E급 핵을 받아본 적 없다는 표정이었다.

“잡역 면제 1일. 기록해두겠다.”

아린이 정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놀라워했다.

“혼자 잡은 거예요?” “정령 도움.”

“아…….”

아린이 갑자기 웃었다.

“방금 그거 자랑이죠?” “아니.”

“입꼬리 올라갔어. 또.”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절제된 구두 소리 하나와 가죽 신발 소리 둘.

진청색 로브의 케인 아르겔이 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그림자가 발치에 드리워져 있고, 형체 없이도 카이젤이 있음을 루안은 알았다.

“생각보다 길더군.”

금색 눈이 루안의 어깨를 스치고 정수로 향했다.

“E급 하나에 한 시간. 효율이 좋다고는 못 하겠어.”

루안이 대꾸하지 않자, 미르가 낮게 으르렁댔다.

「또 이 녀석이야? 지긋지긋하네.」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늑대 실루엣으로 올라왔다. 카이젤이었다. 진홍색 눈이 미르의 허공을 정확히 응시했다.

「그대.」

낮은 파동에 미르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뭐야. 왜 부르는 건데.」

카이젤이 한 걸음 다가서자 목의 붉은 문신이 빛나기 시작했다. 케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카이젤. 무슨 일이지.”

카이젤은 무시한 채 진홍색 눈을 고정했다.

「그대…… 어디서 왔는지 알겠군.」

「뭐라는 거야.」

미르가 루안의 등 뒤로 물러나며 손끝이 떨렸다. 처음 보이는 반응이었다.

카이젤의 입에서 낮은 진동이 새어나왔다. 경계와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울림이 섞여 있었다. 목의 문신이 한 차례 더 밝아졌다 가라앉았다.

「이름 없는 자가 아니었군.」

미르가 숨을 들이켰다.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카이젤의 시선이 처음으로 루안에게로 옮겨졌다.

「인간. 네가 지은 이름인가.」 “……그렇다.”

「그 이름, 오래 가지 못할 거다.」

케인이 두 걸음 다가왔다. “카이젤, 설명해라.”

카이젤은 대답 없이 몸을 그림자 속으로 밀어넣으며 마지막까지 미르를 응시했다.

「네 정체가 밝혀지면 이것도 더는 못 숨길 거다.」

그림자가 케인의 발치로 완전히 흡수되자, 케인의 금색 눈이 좁아졌다. 루안과 허공을 번갈아 보며,

“다음에 보자.”

돌아서자 진청색 로브가 사라지고 견습생들도 따라붙었다.

아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 진짜 뭐예요. 마탑에서 케인 아르겔한테 찍힌 사람들은 전부——”

말을 삼킨 아린에게 루안이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무영자 구역으로 향하는 한산한 통로. 아린이 조용히 물었다.

“선배, 케인 아르겔이 왜 너를…….”

그때 미르의 낮은 목소리가 루안의 귀에 박혔다.

「저 상급 녀석, 뭔가 숨기고 있어.」

루안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나한테서 옛날 냄새를 맡았어.」

미르의 음색에서 처음으로 불안이 감지되었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듯한 갈라짐.

루안은 왼쪽 가슴 너머 욱신거리는 낙인을 느꼈다. 혀끝까지 올라온 질문, 미르가 정말 하급 정령인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대답할 리 없고, 이유도 없었다. 주머니에 오른손을 찔러넣고 내리막 계단을 내려갔다.

아린이 뒤에서 뛰어왔다.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