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

6화

다음 날 오전, 마탑 중앙 실험장.

루안은 왼팔 붕대를 쥐었다 폈다. 뼈 붙는 감각은 멀었지만 움직임엔 지장이 없었다. 간호사에게 받은 여분의 붕대를 주머니에 넣고 소환장을 손에 들었다.

「몸은 어때.」

“갈 만해.”

「별로 안 갈 만한데.」

“할 말은 그게 아니잖아.”

잠시 침묵 후 빛 입자가 시야를 스쳤다.

「……어제 질문. 대답은 아직 안 할 거야. 근데 도망가지 않는다고는 했잖아.」

“기억해.”

「그럼 됐어.」

미르의 빛이 루안의 왼쪽 어깨 위로 스며들었다. 붕대 감긴 팔 쪽을 피해 자리 잡았다.

의무실을 나서자 복도 끝 벤치에서 아린이 졸고 있었다. 루안은 멈춰 섰다가 그냥 지나갔다. 깨우면 실험장까지 따라올 테니 혼자 가는 게 나았다.

중앙 실험장은 3층. 천장까지 뚫린 원형 공간 바닥에 측정 마법진이 푸른 빛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관람석엔 이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앉아 수군거렸다.

“저게 그 무영자야?”

“C급을 혼자 잡았다며.”

중앙 통제석에 케인 아르겔이 서 있었다. 진청색 로브,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는 시선. 곁의 그림자 속에서 상급 정령 카이젤의 은색 윤곽이 희미하게 빛났다.

“시간을 지켰군.” 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중앙으로.”

루안이 마법진 중앙으로 걷자 발밑의 푸른 선들이 반응했다. 왼쪽 가슴 낙인을 가린 천이 떨렸다.

「마법진이 너무 많아. 짜증 나.」

“버텨.”

「명령하지 마.」

통제석에서 하급 조제사가 감도를 조정하자 측정용 수정 구슬 여섯 개가 떠올랐다.

“재계약 실험, 피험자 루안. 정령 소유 여부 및 등급 측정.” 케인이 선언했다. “소환하라.”

루안은 숨을 들이쉬었다. 미르.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해.

마법진 중앙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빛 입자들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어 반투명한 소녀의 실루엣을 그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빛의 머리카락, 눈동자 없는 청색 발광체의 눈. 미르가 루안의 오른쪽 어깨에 반쯤 걸터앉았다.

“보여?!”

“이런 형태는 처음 본다——”

측정 수정 구슬 여섯 개가 동시에 빛을 토해냈다. 푸른색, 황금색, 붉은 기운이 섞였다. 마지막 구슬은 진동만 반복하다 멈췄다. 등급 특정 불가 신호였다.

통제석의 조제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케인 님, 이 반응은——”

“알고 있다.”

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손가락이 난간을 움켜쥐었다.

「뭘 그렇게 봐.」 미르가 관람석을 향해 말했다. 루안에게만 들렸다.

“듣는 사람은 나뿐이야.”

「그러니까 말하는 거지.」

관람석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마법사, 동료에게 속삭이는 마법사. 맨 뒷줄 구석의 무영자 두 명 중 하나가 가슴을 움켜쥐며 일어섰다.

“저거…… 진짜 정령이라고?”

다른 하나는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았다.

루안은 미르를 올려다봤다. 미르는 빛 입자를 흩뿌리며 팔짱을 꼈다.

“내 정령은 하급이 아니라니까요.”

루안의 건조한 목소리에 실험장이 조용해졌다. 케인의 눈썹이 올라갔다. 루안은 오른손을 주머니에 둔 채 덧붙였다.

“그쪽들 기준으로 뭔지는 나도 모르지만.”

케인이 계단을 내려와 마법진 가장자리까지 다가왔다. 카이젤의 그림자가 길게 따라붙었다.

“측정 불능 등급. 상급 이상, 최상급 미만—혹은 계측 범위를 벗어난 미지의 패턴. 이게 네 답변이냐.”

“측정한 건 그쪽이잖아요.”

케인의 입꼬리가 경련했다. “네 정령은 마탑의 규정에 따라 정식 조사 대상이다. 보안부에 보고하고, 측정 데이터는 봉인한 채 상위 심의에 회부한다.”

“감시 대상이라는 말은 빼고.”

“포함되어 있다.”

케인이 한 걸음 더 다가서려 하자 미르의 빛이 요동쳤다.

「가까이 오지 마.」

머릿속 울림이 아니었다. 마법진의 선들이 진동하고 수정 구슬 하나에 금이 갔다. 마법사들이 움찔했다. 케인의 걸음이 멈췄다.

그림자에서 카이젤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은색 윤곽, 짐승의 두개골과 인간의 어깨가 뒤섞인 형체. 어둠으로 이루어진 형상의 눈에 해당하는 두 개의 공허가 미르를 응시했다.

「그대.」 카이젤의 낮은 목소리에 미르의 빛이 흔들렸다. 「여기서 힘을 드러내면 안 된다.」

「네가 나한테 뭐라 할 자격은 없는데.」

미르가 루안의 어깨에서 일어나 허공에 반 걸음 떠올랐다. 머리카락이 옅은 푸른색에서 백색으로 바뀌었다.

「물러나, 강제 계약이나 묶인 주제에.」

카이젤의 공허가 커지고 검은 형상이 미르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카이젤.”

케인의 짧은 명령에 상급 정령이 움직임을 멈췄다. 공허의 눈은 여전히 미르를 향했지만 손은 거둬들였다.

두 정령 사이 공기가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마법진의 빛이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금 간 수정 구슬이 타는 냄새를 풍겼다.

“……흥미롭군.” 케인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네 정령도, 내 정령의 반응도.”

루안은 왼팔 붕대를 문질렀다. 뼈가 욱신거렸다.

「저 인간, 마음에 안 들어.」

“나도다.”

「죽일까.」

“그건 안 돼.”

「치.」

케인은 루안의 독백을 눈치챈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정령과 대화 중이냐.”

“뭐, 대충.”

“공식 심의 전까지 네 거처를 제한한다. 잡역 배정도 보류.” 케인이 등을 돌렸다. “네가 가진 모든 건 마탑의 판단 아래 놓인다. 명심해라.”

관람석이 술렁였다. 마법사 몇이 급히 복도로 나갔다. 무영자 두 사람은 여전히 뒷줄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얼굴을 감쌌고, 다른 한 명은 입술을 깨물며 루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루안은 왼쪽 가슴 낙인을 가린 천 조각을 만졌다.

「카이젤, 저 상급 녀석……」 미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한테 ‘힘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어. 경계하는 게 아니라——」

“알아.”

「내가 묻기도 전에 알면 재미없잖아.」

“표정 보면 알아.”

미르가 코웃음 쳤다. 빛 입자들이 가라앉으며 머리카락 색이 연푸른빛으로 돌아왔다.

루안이 실험장을 나서자 케인의 부하 마법사 두 명이 따라붙었다. 거처 제한이 시작됐다.

「루안. 저 인간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해.」

“알고 있어.”

「진짜 알아?」

“몰라서 묻는 건 아니잖아.”

미르가 오른쪽 어깨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몸무게는 없었지만 빛이 스며든 자리 온도가 미세하게 올랐다.

복도 끝에서 아린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선배——!’

루안은 못 본 척 걸음을 빠르게 했다.

「저 인간은 안 피하면서 왜 저 애는 피하는데.」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잖아.”

「하, 어제 나한테 대답하라고 한 건 누군데.」

루안은 멈추지 않았다. 왼팔이 욱신거렸지만 붕대를 다시 감을 시간은 없었다. 뒤따르는 발소리가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었다. 아린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운 존재감이 저 뒤 실험장에서 뚫고 나와 루안의 뒷덜미를 짓누르고 있었다. 카이젤의 검은 시선. 상급 정령의 경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의무실 불빛이 깜빡일 때 루안은 미르의 목소리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붕대 감은 왼팔을 조심스레 들어 침상에서 일어났다. 벽의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왜 자지 않아.」 「잠 안 와.」

루안은 주머니에서 마탑 중앙 실험장 소환장을 꺼내 접힌 부분을 폈다. 내일 오전 9시. 케인의 서명과 진청색 마탑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 실험, 피험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듣긴 했어.」

미르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근데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응.」 「바보 같네.」

어조에는 비꼼보다 피로가 묻어 있었다. 루안은 소환장을 접어 튜닉 안주머니에 넣고 복도로 나섰다. 대기실 의자에 아린이 무릎을 끌어안고 벽에 머리를 기대 잠들어 있었다. 루안이 어깨를 흔들자 그녀가 눈을 비볐다.

“……선배? 벌써 아침이에요?” “아직 밤이야. 돌아가서 자.” “전령 왔었어요.” “……전령?” “네. 한 시간쯤 전에. 마탑주의 전령이요. 내일 실험 전에, 아니 오늘이네. 아침에 최상층으로 오라고.”

루안이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자 아린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갔다.

“또 거짓말할 때 버릇 나오네요.” “……습관이야.” “누구한테 들켜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예요.”

아린이 일어나 루안의 왼팔 붕대를 살피며 주변을 둘러봤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배. 내 계약식 얘기, 전에 했었죠.” “실패했다고만.” “그 이상은 안 했던 것 같은데…… 전, 정령이 있었어요. 계약식 당일까지 느껴졌어요. 그런데 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사라졌어요.”

루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라졌다고.” “네. 제가 도망친 게 아니라 정령 쪽에서 먼저 연결을 끊었어요. 마치 무서운 걸 피하듯이. 마탑은 그걸 그냥 실패로 처리했어요.” “……” “근데 선배는 달라요. 정령이 도망가지 않았어요. 조심하라는 거예요.”

아린이 루안의 튜닉 소매를 붙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탑주가 직접 부르는 무영자는 선배가 처음이에요. 뭔가 있어요.” “알겠어.”

루안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서 자. 내일 실험장에 올 거지.” “……당연하죠. 구경할 거예요.”

아린은 어깨의 긴장을 조금 풀고 복도 저편으로 걸어가며 덧붙였다.

“거짓말할 때 손부터 감추는 버릇 고쳐요.”

루안은 이미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있었다.

아침. 실험장 복도는 특이하게 조용했다. 벽을 따라 마력 진압 룬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고, 바닥 타일은 검은 대리석에 가까운 무게감이 돌았다. 루안이 통로를 걷고 있을 때 전면에서 회색 로브 차림의 전령이 다가왔다. 어깨에 수정구를 단 사슬이 걸려 있었다.

“루안. 마탑주께서 기다리십니다. 실험은 잠시 보류됐어요. 먼저 최상층으로.” “……지금?” “네. 이쪽입니다.”

전령이 돌아서서 걸었다. 루안은 잠시 실험장 쪽을 바라봤다.

「이거, 마음에 안 드는데.」 미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그 여자, 꼭대기에서 뭘 하려는 거지.」 「알아내야지.」 「하. 용감하네.」

루안은 전령을 따라 상층 통로로 발을 옮겼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이어져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벽의 룬이 희미하게 반응했다. 한 층 오를 때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상층으로 갈수록 마력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루안.」 「응.」 「나 저쪽에서 뭔가 느껴져. 묘한 기운이야.」

15분쯤 계단을 오르자 전령이 멈췄다.

“이 앞은 마탑주의 집무실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들어가도 돼?” “이미 허가되었습니다.”

전령이 뒤로 물러섰다. 루안 앞에 놓인 문은 문틀에 금박 룬이 새겨져 있었고 손잡이가 없었다. 문이 스스로 열렸다.

내부는 집무실이라기엔 이상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책상 하나, 소파 하나, 창문. 그게 전부였다. 창문 너머로 마탑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벨라가 걸어오고 있었다. 맨발이 대리석 바닥을 스치는데 소리가 없었다.

땅에 닿지 않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백색 실크 로브가 빛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 왼쪽 금색 눈과 오른쪽 은색 눈이 동시에 루안을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루안.”

목소리는 느리고 부드러웠지만 온도가 없었다. 루안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다고.” “네. 앉으세요.”

시벨라가 소파를 가리켰다. 자신은 앉지 않고 창문을 향해 돌아섰다.

「루안, 이 여자——」 미르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잡음처럼 흐트러졌다가 다시 붙었다. 「이상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루안은 소파에 앉지 않았다.

“실험이 곧 시작인데.” “실험은 나중입니다. 지금은 질문이 먼저예요.”

시벨라는 여전히 창문을 보고 있었다. 은회색 머리카락이 발목까지 닿아 바닥을 스칠 듯 말 듯했다.

“당신 정령은 어디서 왔습니까.”

들리는 건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억양.

“대답하기 어려우면 다른 질문을 드릴까요.” “……알고 물으시는 거면 물을 필요가 없지 않나.”

시벨라가 돌아섰다. 오드아이가 루안의 왼쪽 가슴, 낙인을 가린 천 조각에 멎었다.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입으로 듣는 것이 중요해요. 당신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당신의 정령이 어디까지 허락했는지.”

시벨라의 발이 바닥에서 살짝 떠올랐다. 원래 닿아 있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지금 마탑에는 세 가지 소문이 동시에 돌고 있습니다. 무영자가 C급 마수를 단독 제압했다. 그 무영자 주변에서 램프가 일제히 반응했다. 그리고—— 그 무영자와 이야기하는 정령이, 계약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유대를 맺었다.”

루안의 오른손이 저절로 주머니로 향하려다 멈췄다.

“……계약식이 아닌 방식이 존재합니까.” “질문으로 질문에 답하는 건 내 몫인데요.”

시벨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온기가 전혀 없었다.

“그 정령. 말을 합니까.”

루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대답의 한 형태였다.

“흥미롭군요. 10년 동안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입니다.”

시벨라가 책상 쪽으로 이동해 서랍에서 작은 수정구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건 기록용입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마력 파동을 추적해요. 감시라고 불러도 좋아요.” “……무영자를 감시할 이유가.” “무영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정구가 희미하게 빛났다. 루안의 가슴 언저리, 낙인 근처에서 묘한 진동이 울렸다.

「……루안. 저거, 네가 아니라 나를 노리는 거야.」

미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작아졌다.

시벨라가 수정구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계약식에 실패했지만 정령과 유대를 맺은 마법사. 마탑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당신이 처음이에요. 문제가 될지 아닐지는 당신이 증명해야 합니다.”

수정구가 루안에게 다가왔다. 시벨라의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떠올라 루안 앞에서 멈추고 푸른빛을 한 번 깜빡였다.

“내일 밤. 여기로 다시 오십시오.” “……조건이 있습니까.” “진실의 무게를 견딜 것. 그게 전부예요.”

수정구가 루안의 손에 떨어졌다.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에 희미한 마력 흔적이 맴돌았다.

“오늘 실험은 케인에게 연기하라고 전해두었습니다. 가셔도 좋아요.”

루안은 수정구를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이걸로 끝입니까.”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시벨라가 창문으로 돌아서며 말을 맺었다. 문이 열렸다. 전령이 복도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루안은 수정구를 튜닉 안주머니에 넣고 집무실을 나섰다.

「……루안. 그 여자, 뭔가 알고 있어. 근데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저 수정구는——」 「감시야. 맞지?」 「……응.」 「너, 내일 안 갈 거지?」

루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쥔 수정구가 미열을 띠기 시작했다.

거처로 돌아왔을 때, 침상에 몸을 던지려던 루안의 주머니에서 푸른빛이 번졌다. 수정구가 스스로 떠올라 공중에 멈추더니, 내부에 문자가 새겨지듯 빛이 흘렀다.

‘내일 밤, 다시 오라.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된다면.’

문장은 세 번 반복되고 사라졌다. 수정구가 다시 루안의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지 마.」

미르의 목소리가 루안의 귀에 직접 꽂혔다.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그 여자, 이상해. 내가 말했잖아. 이상해.」

루안은 수정구를 침상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붕대 감긴 왼팔이 묵직하게 저렸다.

“생각해볼게.” 「생각할 것도 없어. 안 간다고 해.」 “네가 무서워하는 건가.”

침묵. 촛불이 흔들렸다. 긴 정적 끝에 미르가 대답했다.

「……너, 진짜 바보구나.」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탑의 실패한 천재는 정령의 말을 듣는다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