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라이넨의 느린 여관

1화

빗소리가 천장을 때렸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기가 어디지’였다. 낡은 나무 천장.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 냄새. 그리고 왼쪽 손목에 남은 얇은 흉터.

유하람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뒤섞였다. 회사 책상에서 밤샘 작업을 하다 쓰러진 기억. 그리고 이곳에서 눈을 뜨기까지의 긴 공백. 파편처럼 떠오르는 건 전생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를 희미한 조각들뿐이었다.

“여관…….”

입 밖으로 꺼내보니 더 실감이 났다. 라이넨의 느린 여관. 주인은 유하람. 이게 지금 내 신분이었다.

접견실은 좁았다. 카운터 겸 탁자 하나, 소파 하나, 벽에 붙은 게시판. 거기까지였다.

눈에 띈 건 촌장 이름으로 된 공지였다.

‘마차 운행 시간표: 정오, 오후 5시. 악천후 시 결행 여부는 마부가 결정한다.’

그 아래 빨간 글씨로 강조된 문구. ‘오늘 폭우 예보 — 마지막 마차 도착 후 마부는 즉시 회송한다.’

유하람은 창밖을 봤다. 어둑한 하늘.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벌써 저녁 무렵이었다.

“손님은 없겠네.”

익숙한 체념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날은 매출이 바닥이었다. 마차가 끊기면 누가 오겠나.

그때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탁자 위로 똑, 똑.

고개를 들자 천장 한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유하람은 한숨을 쉬었다.

“지붕부터 손봐야 하는데.”

전생의 기억으로 건축 지식은 없다. 손에 쥔 건 낡은 열쇠 꾸러미와 어렴풋한 경영 감각뿐. 그것도 이 세계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그리고 바깥에서 마차 바퀴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비에 흠뻑 젖은 여자가 들어왔다. 은백색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왼쪽 귀에는 은색 귀걸이 하나.

“방.”

짧은 말이었다.

“네?”

“빈 방 있냐고.”

린이었다. 떠돌이 상인 출신이라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순간에도 몸에 밴 실용적인 분위기는 느껴졌다. 가죽 조끼와 린넨 바지.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 손에는 여행 가방 하나.

“아, 네. 있습니다.”

유하람은 황급히 카운터로 갔다. 열쇠 꾸러미를 뒤적였다.

“하룻밤이면 돼.”

린은 덤덤하게 말했다. 비에 젖은 옷자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차가…….”

“방금 떠났어. 마지막이래.”

마부가 바깥에서 소리쳤다. “폭우라서 바로 돌아갑니다! 더 오면 길이 막혀요!”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다.

유하람은 열쇠 하나를 꺼냈다. 순간 손이 멈칫했다. 저 여자가 오늘의 첫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라는 걸 깨달았다.

“2층 방입니다. 따라오세요.”

“……여관 주인 맞아?”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동작이 어색해서.”

“……새로 맡은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린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는 표정이었다.

계단으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우지직.

천장에서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먼지가 떨어졌다.

유하람이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쾅.

접견실 한쪽 천장이 무너졌다. 빗물이 쏟아졌다. 나무 파편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아이고!”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다. 한국어.

린이 파편을 피해 한 걸음 물러서며 눈을 좁혔다.

“……뭐라고?”

“아, 아니. 그냥 놀라서.”

유하람은 식은땀을 닦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생의 버릇이 튀어나올 뻔했다. 린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지붕 일부가 완전히 내려앉았다. 접견실의 3분의 1이 파편으로 뒤덮였다. 빗물이 계속 들이쳤다.

“이거…….”

유하람은 말을 잇지 못했다.

린은 무너진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여관 맞아?”

“……죄송합니다.”

“사과 말고 상황 파악.”

린은 가방을 구석으로 옮기며 말했다. 이미 젖은 머리카락을 한 번 훑었다. 손끝이 왼쪽 귀걸이를 스쳤다.

“마차는 떠났고, 마을까지 걷기엔 비가 너무 세.”

그녀는 창밖을 봤다. 시야가 흐릿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을 진입로가 원래 어떤 상태야?”

“모릅니다. 제가 온 지도 얼마 안 돼서.”

“……쓸모없네.”

린은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말 속에 담긴 체념은 유하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다.

“일단 치워. 통로 확보.”

“도와드릴게요.”

“그래.”

둘이서 파편을 옮겼다. 젖은 나무 조각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빗물이 쏟아지는 구역은 피해야 했다.

“마을 회의에 신고해야 하는데.”

유하람이 중얼거렸다.

“폭우 끝나면 해. 지금은 아무도 못 나가.”

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손을 뻗어 큰 파편 하나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잠시 귀걸이에 닿았다.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불안할 때 나오는 버릇 같았다.

“이 여관, 손님 없었지.”

“네.”

“며칠째야?”

“……들어본 지 며칠 안 돼서.”

린은 잠시 멈췄다.

“요리도 못 하겠네.”

“요리는 할 수 있는데, 이 상태로는.”

“주방도 점검해야겠다.”

그녀는 파편 더미를 한쪽으로 밀며 말했다. 단정적이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인 사람의 말투.

유하람은 그런 그녀가 낯설었다. 전생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상황에서 불평하거나 화를 냈다. 린은 달랐다.

“며칠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린이 일어서며 말했다.

“방값은?”

“받을 상황이 아닌데요.”

“미리 정해둬. 나중에 딴말 말고.”

“……숙박 요금은 마을 조례 상한선 내에서.”

유하람은 아까 봤던 공지를 떠올렸다.

“정해진 금액 있으면 그대로. 바가지 쓰기 싫어.”

“조례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빗물이 계속 들이쳤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움찔거렸다.

“임시 수리는 가능해?”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빗물 받을 통이라도.”

“찾아볼게요.”

유하람은 뒤편 수납장으로 갔다. 양동이 하나를 찾아 들고 왔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 받쳤다.

똑, 똑, 똑.

빗물이 양철 양동이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이걸로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했네.”

린은 파편이 치워진 바닥에 짐을 내려놓았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벽에 기댔다. 여행 가방에 손을 얹은 채.

“방으로 안 가세요?”

“천장 무너진 소리 듣고 자겠냐.”

“……그렇군요.”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양동이에 물이 떨어지는 간격이 일정했다.

유하람은 어색했다.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손님에게 이런 꼴을 보인 게 신경 쓰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는 한 번으로 충분.”

린은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보다 조금 더 피곤해 보였다.

“내일 마을 상황 봐서 움직일게. 오늘은…….”

그녀는 말을 마치지 않았다.

유하람은 그녀가 체념했다는 걸 알았다. 달리 선택지가 없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창밖은 여전히 폭우였다.

양동이에 빗물이 고이고 있었다.

라이넨의 느린 여관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