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라이넨의 느린 여관

12화

다용도실 창문으로 새벽빛이 희끄무레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린이 주전자에 물을 올리며 말했다.

“한숨도 못 잤네.”

“자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안 듣더라고.”

내가 대답할 때, 현관문이 빠르게 두드려졌다. 세 번, 그리고 한 번 더. 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빨리요!”

내가 로비로 나가 빗장을 풀자 릴라가 바구니를 가슴에 안은 채 뛰어들다시피 들어왔다. 신발과 옷자락이 흠뻑 젖었고, 머리카락에서는 이슬과 흙냄새가 났다.

“이거, 이거 봐요!”

바구니 안에는 칼렌 뿌리와 은잎풀 사이로 은빛 서리이끼 한 뭉치가 얹혀 있었다. 만지지 않아도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깊은숲 약초 지대가 진흙밭이 돼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숲 정령들이 길을 알려줬어요. 서리이끼 있는 곳만 피해서 빛이 움직이더라고요. 제가 마음속으로 환자들 생각했더니, 거기로 가라고……”

“그 후에 이 밤새도록 달려왔단 말이지.”

내 말에 릴라는 밝게 웃었다.

“당연하죠! 해독제는 빨리 만들어야 하니까!”

린이 서리이끼를 받아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끓인다. 냄비 준비해.”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다용도실 임시 침상에서는 환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릴라가 재료를 씻고 분류하는 동안 린은 칼렌 뿌리를 얇게 저며 냄비에 넣었고, 서리이끼와 은잎풀을 올리자 물이 은색으로 우러났다. 냄새는 겨울 아침 서리처럼 차갑고 맑았다.

“한 번 끓으면 불 줄이고.”

린이 국자로 거품을 걷어내자 해독차는 연한 청회색이 되었다. 릴라가 작은 그릇에 따라 첫 환자의 입술에 가져갔다.

“천천히, 조금씩…… 네, 잘 마시고 있어요.”

환자 다섯 명 전원에게 차를 먹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중년 남성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더니 눈꺼풀이 열렸다.

“여긴……?”

“라이넨 여관입니다. 중독되셨는데 해독제를 드렸어요.”

릴라가 밝게 대답했다. 옆의 젊은 여성도 신음을 내며 몸을 뒤척였고, 곧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의식을 되찾았다. 다른 셋도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린이 환자들의 손목을 짚어 맥박을 확인하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안정됐어.”

나도 한 환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이 확실히 내리고 있었다.

릴라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제가 돌아올 때 마르타 의원님 집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렸다. 마르타였다. 목걸이 배지가 아침 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의 시선은 곧바로 다용도실로 향했다.

“환자분들은……?”

“다섯 분 모두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옆으로 비키자 마르타는 침상 곁으로 다가가 환자들의 안색을 살폈다. 창백함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해독제를 만드셨군요.”

“릴라 씨 덕분입니다.”

마르타가 릴라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릴라가 얼굴을 붉히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 혼자 한 일도 아니고……!”

마르타는 다시 환자들을 둘러보고 문가에 서서 입을 열었다.

“식중독 사유가 해결됐습니다. 환자들도 회복했고요.”

내가 일기장과 위조 확인서를 든 채 기다리자 마르타가 접견실로 자리를 옮기자고 손짓했다. 린과 나는 그녀를 따라 접견실로 들어갔다.

마르타가 먼저 앉아 배지를 만지작거렸다가 손을 내렸다.

“여기에는 더 이상…… 숨길 일도 없겠네요.”

린이 내 옆에 섰다. 마르타는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이 여관의 전 주인은 제 약혼자였습니다. 당시 마을은 대규모 상단 유치로 술렁였고, 그는 여관을 상단 숙소로 내주자는 쪽이었어요. 저는…… 찬성했습니다. 둘이 함께 키우려던 계획이었으니까.”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상단 측에서 조례의 빈틈을 악용해 요금 상한선을 속이고, 허위 장부까지 만들더군요. 마을 회의가 개입하기 전에 이미 일은 터졌고…… 책임은 그 사람이 다 뒤집어썼습니다. 조례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르타는 말을 이었다.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침 햇살이 먼지 낀 창문을 겨우 뚫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마르타가 두고 간 찻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린이 찻잔을 치우며 말했다.

“마르타 할멈, 많이 흔들리셨네.”

“오래 묵은 돌을 치우신 거야. 본인 몫이지.”

내가 대답하며 확인서와 일기장을 접견실 탁자 서랍에 넣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절뚝이는 보폭. 베른이었다. 오른손에는 천으로 감싼 길쭉한 물건이, 왼손에는 접힌 편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들어와.”

베른은 들어와 문을 닫고 빗장까지 걸었다. 천을 풀자 녹슨 검이 탁자 위에 드러났다. 손잡이 가죽이 바랬고 날 중간에 작은 이빠짐이 있었다. 옛 동료의 답신은 탁자 구석에 펼쳐졌다.

“옛날 거다. 북쪽 변경에서 썼다.”

린이 그을린 셔츠 소매와 바지 아래로 드러난 왼쪽 의족을 번갈아 보았다. 베른은 검을 집어 들었다.

“내 다리는 얼음 동굴에서 묻혔다. 동료 셋은 거기 있고.”

철과 가죽이 정밀하게 맞물린 의족이었다.

“편지는?”

“읽어라.”

편지에는 거친 글씨로 프란츠 쪽 변경 도로에서 문장 없는 무장 상인 행세를 하는 무리가 목격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흘 전 관측, 라이넨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린이 편지를 읽으며 눈을 좁혔다.

“위조 문장 쓴 놈들이랑 같은 쪽이냐.”

“그럴 거다. 청문회 소식을 들었거나, 사전에 움직이거나.”

내 머릿속은 이미 두 가지 가능성을 굴리고 있었다. 청문회를 방해하려는 움직임, 아니면 린을 찾는 귀족 쪽 사람들. 어느 쪽이든 마을로 접근 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몇 명이었어?”

“셋. 대장간에서 경계 설 거다. 필요한 도구 만들겠다.”

베른은 검을 다시 천으로 감고 문을 열었다. 빗장 푸는 소리가 한 번 났고, 절뚝이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린이 입을 열었다.

“베른, 저거 꺼낸 거 각오한 거다.”

“알아.”

오후 햇살이 접견실 창문을 비스듬히 통과했다. 나는 청문회에 제출할 증거 목록을 초벌로 적고, 린은 찬장을 정리했다. 한참 뒤, 린이 걸레를 개며 물었다.

“손님들 퇴원은 언제쯤이래.”

“내일 중. 릴라가 마지막 체크만 하면 끝이래.”

“그럼 오늘 밤은 빈 여관이네.”

나는 연필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어? 2층에서.”

린의 손이 허공에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나란히 올랐다. 2층 복도는 오후의 약한 빛이 창문 하나로 얇게 깔려 있었다. 복도 끝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먼저 왼쪽 손목을 올렸다. 얇은 흉터가 손목 안쪽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거, 전생에서 생긴 거야. 과로로 쓰러졌을 때, 병원에서 링거를 오래 맞았어. 그 자국. 이쪽 세계에 와서도 남아 있더라고.”

린의 손이 내 손목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그녀 손을 잡아 흉터 위에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흉터를 따라 움직였다.

“죽을 때까지 일했어. 사무실 책상 앞에서.”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쪽에 와서도 처음엔 무서웠어. 잘못하면 또 죽겠다 싶어서. 그런데 지금은 달라. 전생의 나는 혼자였어. 여기선 아니야.”

긴 침묵 끝에 린이 입을 열었다.

“나도 줄 게 있다.”

그녀가 왼쪽 귀의 은귀걸이를 집어 손가락으로 문양을 더듬더니 내게 기울여 보였다.

“이거, 내 가문의 유일한 증표다. 열다섯 살 때 받았어. 직계에만 주는 거래. 열여섯에 혼약이 잡혔고, 넷 뒤에 도망쳤다.”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그녀가 손을 무릎 위에 올리자 관절이 하얘졌다.

“이 귀걸이 하나만 갖고. 다른 건 전부 가짜 이름으로 살려고 버렸어. 가문이 날 찾는 이유는 그 혼약 때문이야, 나 자체가 아니라.”

“그 귀걸이를 왜 안 버렸어.”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몰라. 증오하면서도 떼어낼 수 없었어. 나를 만든 모든 걸 부정하는 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거라서.”

린의 시선이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움츠렸지만, 곧 내 손바닥 안에서 힘을 풀었다.

“이제는 알아. 여기가 내 마지막 정거장인지 아닌지.”

“린.”

내가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몸을 기울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입술이 닿았다. 짧고 부드러운 접촉이었다. 린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았고, 나는 그녀의 등을 살며시 받쳤다. 그녀의 어깨에서 오래 묵은 긴장이 풀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잠시 그러다 떨어졌다. 린의 볼이 약간 붉어져 있었다.

“……됐다.”

더 이상 딱딱함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오며 손을 놓지 않았다. 접견실로 돌아오자 오후의 빛이 더 길게 늘어져 있었다. 탁자에 앉아 증거 자료 목록을 마저 다듬었다. 린은 맞은편에 앉아 해독제 조제 기록을 손질했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했고, 더 이상 혼란은 없었다.

밤이 되자 촛불을 켰다. 탁자 위엔 조례 초안이 펼쳐져 있었다. 린이 연필로 조항 하나를 가리켰다.

“이 문구, ‘사전 통보 없이 폐쇄할 수 있다’는 조항. 수정해야지.”

“‘위생 조사 결과 집단 발병이 의심될 경우’로 바꾸고, 사전 청문을 의무화하자.”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온 약초 검수 항목도 넣어.”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린이 적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촛불이 그녀의 하늘색 눈에 작게 반사되어 흔들렸다.

“이제 이 여관은 우리 둘의 거래처가 아니라 집이야.”

목소리가 낮고 고요했다. 나는 연필을 내려놓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위조 확인서며 일기장, 귀족의 하수인, 그 모든 것이 내일이면 다시 우리를 덮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택한 말은 ‘집’이었다.

“우리.”

내가 작게 되뇌었다. 린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다시 연필을 집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촛불 아래서 우리는 묵묵히 종이를 메웠다.

마을 회관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마르타는 의원 배지 목걸이를 손으로 감싼 채, 탁자 위에 펼쳐진 진술서 더미 앞에 앉아 마지막 페이지를 손끝으로 한 줄 한 줄 짚어 읽고 있었다.

라이넨의 느린 여관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