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넨의 느린 여관
4화
아침 해가 로비 창문을 비스듬히 찔렀다.
나는 카운터에 서서 어젯밤 린이 정리해둔 약초 꾸러미를 만지작거렸다. 캐모마일과 페퍼민트. 이름만 들어도 코끝이 간질거리는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린은 주방에서 찻주전자를 꺼내는 중이었다. 물 끓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때였다.
“주인장~!”
릴라의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관 문이 활짝 열리고 릴라가 특유의 통통 튀는 걸음으로 들어왔다. 등에는 늘 메고 다니는 약초 바구니. 그 뒤로 낯선 중년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
“약속대로 손님 모셔왔어요!”
릴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손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에델이라고 합니다. 약초상을 하고 있소.”
남자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어깨에 멘 가죽 가방이 꽤 묵직해 보였다. 여행자 특유의 먼지 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는 겨우 인사를 건넸다. 예상보다 빨랐다. 정오 마차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릴라는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마차가 오늘 좀 일찍 왔어요. 마부 아저씨 말로는 길이 좋아서 그렇대요.”
“아, 네.”
그 순간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객실은 2층입니다.”
린이 내 옆으로 다가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접은 행주가 들려 있었다. 언제 주방에서 나왔는지 발소리도 못 들었다.
린은 손님의 가죽 가방을 한 번 가리키며 말했다.
“짐은 제가 들어 드리죠.”
“아닙니다. 이 정도는.”
“손님은 객실만 확인하세요.”
린의 말투는 여전히 짧고 건조했다. 하지만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함이 있었다. 에델 씨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쪽 업계 경력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능숙했다.
린은 가방을 들고 계단으로 향했다. 손님이 뒤를 따랐다. 중간에 내게 짧게 한마디 던졌다.
“주인장, 차 준비하죠.”
“……알겠습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분류해둔 약초 세 무더기가 선반 위에 그대로 있었다. 물은 이미 린이 끓여둔 상태였다.
찻주전자에 캐모마일과 페퍼민트를 반반씩 넣었다. 어젯밤 린이 가르쳐준 대로였다. 뜨거운 물을 붓자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적어도 망치진 않았다.
“오, 벌써 차를?”
릴라가 부엌 문간에 기대서서 말했다.
“응. 허브티.”
“와, 주인장 직접 우려낸 거예요?”
“린이 어젯밤에 가르쳐줬어.”
릴라가 내 어깨 너머로 찻주전자를 들여다봤다. 눈이 반짝였다.
“색깔 괜찮은데? 캐모마일이 제대로 우러났어요!”
“……다행이네.”
그때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린과 에델 씨가 로비로 내려왔다. 에델 씨는 외투를 벗고 로비 테이블에 앉았다.
“좋은 방이군요. 이 가격에 이 정도 전망이면 훌륭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쟁반에 찻주전자와 찻잔을 올려 테이블로 가져갔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전생에서도 남 앞에서 차를 따라본 적이 별로 없었다.
린이 살짝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뚜껑.”
“……아.”
뚜껑을 열지 않고 차를 따르려던 참이었다. 나는 얼른 찻주전자 뚜껑을 열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 연한 황금빛 액체가 찻잔 바닥에서 소용돌이쳤다.
에델 씨는 찻잔을 들어 코 가까이 가져갔다. 눈을 감고 향을 음미하는 표정이었다. 이쪽 세계 사람들은 차 마실 때 다들 이런가.
한 모금 들이켠 에델 씨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거…….”
나는 숨을 멈췄다. 린은 무표정으로 손님을 바라봤다.
“정말 좋은데요. 페퍼민트랑 캐모마일 배합이 아주 정확해요. 누가 블렌딩한 겁니까?”
에델 씨가 린을 쳐다봤다. 린은 짧게 대답했다.
“내가 했어.”
“대단하군요. 이런 맛은 처음이오.”
에델 씨가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릴라가 테이블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린 언니 솜씨는 믿음직스러워요!”
에델 씨는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돌아가는 길에 동료 상인들에게 꼭 소문을 내겠소. 이런 차를 내는 여관이 있다는 걸 알려야지.”
“감사합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커졌을지도 모른다.
에델 씨는 숙박비와 차 값을 합쳐 동전 여러 닢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깔끔하게 계산된 정확한 금액이었다.
“하룻밤 목고 내일 마을 약초상도 둘러볼 생각이오. 릴라 양에게 좋은 정보를 얻었거든.”
릴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제가 이 동네 숲은 꿰뚫고 있으니까요!”
에델 씨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이 계단 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방 번호는 3번입니다. 필요하시면 불러 주세요.”
“예, 편히 쉬겠소.”
에델 씨가 계단을 올라갔다. 발소리가 2층 복도에서 멀어졌다. 문 닫히는 소리. 로비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릴라가 바구니를 둘러메며 말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오후에 숲에서 새 약초 좀 캐야 해서.”
“수고했어요, 릴라.”
“내일 또 올게요, 주인장!”
릴라가 손을 흔들며 여관 문을 나섰다. 약초 냄새가 잠시 로비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로비에는 둘만 남았다.
테이블 위의 동전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은화 두 닢과 소액 동전 몇 개. 나는 동전을 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묵직했다.
“린 씨.”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린이 찻잔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봤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숙이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이 여관을 혼자 운영했으면 아마 손님 오기 전에 망했을 거다.
린은 잠시 나를 보다가 찻잔을 쟁반 위에 올렸다.
“나쁘지 않았어.”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내게서 바로 떠나지 않았다. 반 박자 정도.
린은 돌아서서 티팟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이 문간을 지나 사라졌다.
나는 손바닥의 동전을 다시 내려다봤다. 식은 찻잔에서 아직 은은한 허브 향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까 그 짧은 머묾. 나쁘지 않다는 말 한마디.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간질거렸다.
주방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린이 티팟을 씻는 소리였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 소리를 들었다.
오후 해가 장터의 천막들을 길게 늘였다. 정오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아직 더러 남아 있었다. 과일 상자를 정리하는 상인, 빈 수레에 앉아 담배를 말고 있는 마부.
린은 내 반 발짝 뒤에서 걸었다.
“꼭 나와야 했냐.”
“첫 수입 기념인데. 바람도 쐴 겸.”
나는 천천히 장터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허브차를 산 행상이 추천한 꿀을 파는 노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려던 참이었다. 린이 투덜거렸지만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장터 중앙쯤에서 낯선 남자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여행자용 외투에 작은 가죽 가방을 멘 행상이었다. 그는 내 얼굴을 스치듯 훑고는 린에게 시선을 멈췄다.
정확히는 그녀의 왼쪽 귀에.
“그 귀걸이……”
행상이 무심코 내뱉은 목소리엔 호기심보다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 린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오른손이 순간적으로 귀 쪽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걸 본 건 나뿐이었다.
“볼일 없으면 가죠.”
린이 몸을 돌렸다. 내 팔뚝을 잡아끄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행상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 노점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장터 입구에 다다랐을 때쯤 린이 말했다.
“돌아가자.”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아보니 행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린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곧바로 카운터로 가 손을 짚었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차 한 잔 할까요.”
내가 조용히 물었다. 린은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 들어가 아침에 배운 대로 물을 올렸다. 찻주전자에 캐모마일을 한 줌 넣고 페퍼민트를 조금 섞었다. 주전자 뚜껑을 열고 김이 오르는 물을 붓자 허브 향이 천천히 퍼졌다.
로비로 돌아왔을 때 린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해는 거의 졌고 실내 등불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찻잔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린이 아무 말 없이 찻잔을 집어 들었다. 나도 맞은편에 앉았다. 첫 모금을 삼키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아.”
“……다행이네요.”
잠시 침묵. 나는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오늘 행상이 허브차 정기 구매를 약속했죠. 다음 계절에는 마을에서 나는 과일로 간단한 음료라도 추가하면 어떨까 싶은데.”
린은 내 제안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찻잔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쓸었다.
“생각은 해보지.”
평소 같았으면 ‘네가 무슨 메뉴를 알아’ 정도는 덧붙였을 텐데 그런 말은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장터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아까 상인 말이에요.”
내가 조심스럽게 꺼내자 린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멈췄다.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면……”
“아니.”
말을 끊는 속도가 빨랐다. 그녀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더 마셨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질문하고 싶은 건 산더미였지만 린의 어깨가 평소보다 더 굳어 보였다.
린이 빈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도 내 찻잔을 비웠다. 두 개의 빈 찻잔이 희미한 허브 향을 남기고 식어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도 같은 차 우릴 거죠.”
내가 말했다. 린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먼저 올라갈게.”
그녀가 계단을 향해 돌아섰다. 발소리가 천천히 위층으로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잠시 앉아 있었다. 오늘 작은 성공 하나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긴장 하나. 둘이 같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장터 모퉁이에서 마르타는 빵집 앞을 정리하다 행상의 말을 들었다. 방금 전 린과 유하람이 서둘러 지나간 길을 바라보며 행상이 중얼거렸다.
“실종된 귀족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귀걸이를 한 여자…… 분명 저 방금 봤는데.”
마르타의 손이 목에 걸린 의원 배지를 가만히 만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여관 쪽을 바라보았다. 등불이 켜진 로비 창문 두 개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