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넨의 느린 여관
8화
아침이 왔다. 종소리가 멎은 지 몇 시간이 지났고, 나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주방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났다. 린이 평소보다 먼저 내려와 반죽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내가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 식탁에는 이미 검은 빵과 허브티가 놓여 있었다. 린은 별말 없이 찻물을 따라주고는 곧바로 부엌으로 돌아갔다. 눈 밑이 그늘져 있었다.
아침 식사는 조용히 끝났다. 투숙객 셋이 접시를 비우고 짐을 챙겼다. 창밖에서는 마차의 방울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인이 계단을 내려왔다.
검은 코트를 입고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멈춰 서더니 로비를 훑었다. 시선이 접수대 옆에 서 있던 린에게 멈췄다.
“아침, 보내주더군. 어젯밤 일은 좀 생각했나.”
린이 돌아섰다. 그녀의 손에 든 빈 쟁반이 살짝 기울었다.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인은 천천히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짐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왼쪽 귀걸이. 카론도 변경백의 문장과 똑같아.”
식당 안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다른 투숙객 하나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았고, 창가 쪽에서는 누군가가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어제는 그냥 넘어갔지만, 오늘은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네. 자네, 가문에서 도망친 건가?”
린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쟁반을 든 손이 가늘게 떨렸다.
상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로비 전체에 퍼질 만큼 또렷했다.
“실종된 혈육이 있다는 소문이 돌지. 그리고 지금 이 마을에 문양을 단 여자가 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맞아떨어지지 않나.”
릴라가 며칠 전 약초를 배달하며 불안해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베른이 대장간 앞에서 무뚝뚝하게 건넨 경고도. 마르타가 시몬 주점의 소문을 전하며 목걸이를 만지던 손.
내가 접수대 뒤로 돌았다. 서랍을 열어 지난달 매출과 지출을 정리한 장부를 꺼냈다. 토비가 허브티 정기 구매에 서명한 기록도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장부를 끼고 접수대 밖으로 걸어나갔다.
“손님.”
상인의 시선이 내게 옮겨졌다.
“아직 체크아웃 안 하셨지요.”
“아…… 그게 지금 중요한가.”
“중요하죠.”
나는 접수대에 장부를 펼쳐 올렸다. 손가락으로 지난 시즌 매출 항목을 짚었다.
“린은 이 여관에 온 지 한 달 반 만에 고객 만족 기록을 바꿨습니다. 허브티 시음회를 기획했고, 식재료 마법 해제 작업도 혼자 도맡아 처리했어요. 이 매출 곡선은 린이 합류한 시점부터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인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나는 장부 옆에 고객 기록지를 펼쳤다.
“첫 고정 손님이 생긴 것도 린 덕분입니다. 지금 이 여관에서 린 없이 영업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가문 이야기로 제 동료를 이 자리에서 몰아세우는 건…….”
나는 고객 기록지를 탁 접어 장부 위에 올렸다.
“영업 방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식당 구석에서 중년 남성 투숙객 하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노인이 차를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네.”
상인의 입술이 비틀렸다. 손가락으로 여행 가방 손잡이를 한 번 쥐었다 놓았다.
“뭐야, 이제 와서 장사 이야기인가.”
“여긴 장사하는 곳입니다.”
내가 말했다.
상인이 잠시 말을 잃었다. 식당 안의 침묵이 조금씩 성질을 바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상인의 목소리에 기울던 분위기가 서서히 다른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접수대 옆에 여전히 서 있었다. 하지만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놀란 눈이었다. 한순간 입술을 열었다가 그대로 다물었다.
“……주인장.”
린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깨의 긴장이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쟁반을 쥔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상인이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영업 방해라…… 재미있군. 하지만.”
그가 발걸음을 돌렸다. 여행 가방을 집어 들고 입구로 걸어가다 멈춰 섰다.
“문양은 사라지지 않아. 그리고 그걸 아는 자가 나 하나만은 아닐 거야.”
린의 어깨가 다시 뻣뻣해졌다.
상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식당에 가라앉았다.
마차 방울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멈췄다. 마부가 밖에서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접수대에서 체크아웃 기록을 마무리할 때쯤, 의자에서 일어난 마르타가 내 앞으로 왔다. 그녀의 손이 목걸이 배지를 한 번 만졌다 놓았다.
“주인장,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무게는 오래 묵혀 둔 빵 반죽 같았다.
“마을 회의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적절히 설명할 테니…… 린 양에게도 전해 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타가 작게 인사를 하고 여관 문을 밀고 나갔다.
식당 안의 투숙객들이 하나둘 짐을 챙겼다. 로비에는 지워지지 않은 긴장이 얇게 깔려 있었지만, 더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나는 접수대 옆으로 다가갔다.
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손으로 빈 쟁반을 가슴 앞에 붙들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색 눈이 조금 붉어 있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음 가까이 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왜, 저런 걸.”
린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져 나왔다. 뒤쪽에 붙어 있던 점막이 떨리는 소리.
“매출 자료를 꺼내든 대가.”
나는 접수대 위에 장부를 정리하며 말했다. 촛농 묻은 라이터를 서랍에 밀어 넣는 소리가 작게 났다.
“아니, 그게 아니라.”
린이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나라는 사람…… 알잖아. 보통 경영 방식으로 감당하려면 감정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
나는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린.”
이름을 부르자 린의 어깨에서 미세하게 숨이 빠져나갔다.
“네가 말하지 않은 게 있어도, 나는 그걸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눈이 안쪽으로 흔들렸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쪽으로 손을 뻗었다. 팔꿈치에서 멈추고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린은 내 손을 바라봤다. 시간이 짧게 멎었다. 한 박자쯤.
그리고 그녀의 왼손이 천천히 내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손가락이 차갑고 가늘었다. 나는 손을 살짝 감았다. 세게 쥐지 않았다. 그냥, 거기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로.
린이 내 손을 조금 힘주어 쥐었다.
좁은 로비 안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접수대 모서리에 갈라진 부분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고마워.”
린이 말했다. 그녀의 손이 내 손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나는 접수대 의자를 돌려 앉았다. 장부를 펴서 방금 전 체크아웃 건을 기입했다. 린은 내 옆에 서서 식당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끝이 접수대 모서리에서 30센티쯤 떨어져 있었다.
마차 방울 소리가 멀어졌다. 로비에는 촛농 냄새와 마른 허브 향이 남았다. 그 침묵 속에서도 그녀의 호흡 소리가 들렸다.
린은 접수대 옆에 멈춰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는 여전히 빈 쟁반이 들려 있었다.
마차 바퀴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로비가 조용해졌다. 한참 동안 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쟁반을 내려놓지도, 자리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장부를 덮고 접수대 구석에 손을 얹은 채 그녀의 호흡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오전 햇살이 접수대를 지나 그녀의 발끝까지 다가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린이 빈 쟁반을 접수대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접수대 서랍에서 장부를 꺼내 펼쳤다.
마차 바퀴 소리가 멀어졌다. 상인의 마지막 마차였다. 로비에 남은 건 나와 린, 그리고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전 햇살뿐.
린은 접수대 옆에 서 있었다. 마르타가 나가면서 작게 끄덕인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앞치마 주름을 꼭 쥔 채.
나는 접수대 서랍에서 장부를 꺼냈다. 펼쳐서 린 쪽으로 밀었다.
“봐.”
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난주 수입. 시음회 이후로 단골 하나 붙었고, 숙박은 사흘 연속 만실이야.”
그녀의 시선이 장부 위를 훑었다.
“네가 블렌딩한 허브티가 주문의 절반이야. 아침 식사 만족도는 전부 최상급 체크.”
“……그래서.”
린의 목소리가 바짝 말랐다.
“내가 누구든 이 숫자가 바뀌진 않아. 네 손으로 만든 차 맛도, 손님이 남긴 평도 진짜야.”
나는 장부를 덮었다.
“네가 여기 필요한 건 경영 수치가 증명하고 있어. 그게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전부다.”
린은 대답 대신 귀를 만졌다. 은 귀걸이를 손끝으로 한 번, 아주 가볍게.
“이건.”
숨을 한 번 들이쉰다.
“……카론도 변경백령의 문장이야. 직계에만 주는 징표.”
나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린은 서 있었다. 창가의 빛이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만 닿았다.
“열다섯 살 때 받았어. 이듬해 정략 혼약이 잡혔고.”
린의 손가락이 귀걸이에서 떨어졌다.
“도망친 지 사 년 됐다.”
질문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꺼낸 말이 아니면 내가 들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린은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말을 잇지 않자, 그녀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상인은 내 얼굴을 몰라. 문양만 안 거야. 가문에서 소문을 돌린 모양이지. 실종된 혈육 찾는다고.”
“받아들일 거야, 문양을?”
“받아들일 거야.”
린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이건 내가 가진 유일한 거니까.”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너한테도 말할 게 있어.”
린이 눈을 깜빡였다.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야.”
린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손바닥을 폈다.
“전생이란 게 있었어. 거기선 회사원이었고, 과로로 죽었다. 깨어나니까 이 여관이었고.”
“……그게 무슨.”
“불완전한 놈이야, 나는.”
나는 셔츠 소매를 걷어 왼쪽 손목 흉터를 보였다.
“전생의 기억은 파편처럼 남아 있고, 이쪽 상식은 아직도 헷갈려. 혼자 중얼거릴 때 쓰는 말도 이 마을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야.”
린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가끔 한국어가 튀어나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겠지.”
“……그 말들.”
린이 잠시 망설였다.
“가끔 들었어. 네가 혼자 있을 때.”
“부끄럽네.”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런 거야. 너처럼 나도 결함 덩어리다.”
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게, 진짜 작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게 너냐.”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모자랐다. 하지만 처음이었다. 내가 본 그녀의 표정 중에 단단함 말고 다른 게 섞인 건.
“같이 하자.”
내가 손을 내밀었다.
“서로 결함 있는 채로. 이 여관, 둘이 운영하는 거다.”
린의 시선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그녀는 한 박자 늦게 손을 올렸다. 내가 가볍게 쥐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투숙객 대기 시간이야.”
린이 손을 빼며 돌아섰다.
“접수대 정리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접수대 서랍을 열고 투숙객 명부를 꺼냈다. 손놀림이 평소보다 반 템포 빨랐다.
오후 마차의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첫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접수대로 걸어가던 중 멈췄다. 마을 회관 쪽에서 마르타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회의 안건지로 보이는 두루마리.
“여관 주인.”
마르타가 로비 입구에 서서 나를 불렀다.
“내일 저녁, 여관 증축 건으로 회의가 열릴 예정이네. 자네도 참석하게.”
나는 어깨 너머로 린을 돌아봤다. 그녀는 이미 손님에게 체크인 용지를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