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Light at Six
1화
아침 7시, 하드웨어 상점 앞은 이미 서늘했다. 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깃발 대신 늘어뜨린 낡은 온도계를 흔들었다. 톰 래시터가 문고리를 걸어 올리자 기름 냄새와 쇳가루 냄새가 한꺼번에 새어 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진열대 옆에 붙은 수위 게이지 앞에 반원이 만들어졌다. 톰은 벽에 걸린 클립보드를 집어 들고 연필을 귀 뒤에 꽂았다.
'12.4피트.'
노라 켈란이 군화 밑창을 바닥에 한 번 문질렀다. 다른 때 같으면 10피트 초반이다. 옆에 선 마시 알바레즈가 팔짱을 꼈다.
'좀 높네.'
'비 예보는 없었는데.' 톰이 숫자를 종이에 적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낯선 구두 소리가 났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이작 밴스가 문간에 서 있었다. 짙은 회색 양복, 손에는 가죽 서류 가방. 9년 전보다 어깨가 넓어졌고 턱선이 더 날카로워졌다.
노라는 숨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허파 속 공기가 한순간 얇아진 느낌이었다.
'아이작 밴스입니다.' 그가 군중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파인드먼트 은행에서 파견된 자산 감정인입니다. 라스트 라이트 북스 건 때문에 잠시 머물 예정이에요.'
침묵. 톰의 연필이 클립보드에서 떨어져 굴렀다.
노라는 아이작 쪽으로 정확히 3초간 시선을 뒀다가 물렸다. 고개를 까딱하기도 전에 돌아섰다. 문을 밀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아무 말도 따라붙지 않았다.
아이작이 서류 가방을 내려놓는 사이, 톰의 눈이 그의 양복 주머니에 꽂힌 만년필에 멈췄다. 낡은 몽블랑. 금색 클립 옆에 이니셜 J.V.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돌아선 얼굴에 무슨 표정이 스쳤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9시 정각, 라스트 라이트 북스의 문이 열렸다.
노라는 계산대 위에 열쇠를 놓고 창가 쪽 블라인드를 올렸다. 가을 햇살이 먼지 낀 서가 사이로 길게 들이쳤다. 어제 받아 둔 신간 상자를 뜯으려 몸을 숙였을 때 문 종이 울렸다.
아이작이었다. 이번에는 양복 상의를 벗고 소매를 걷어붙인 차림이었다. 오른쪽 팔뚝에 익숙한 흉터가 번쩍였다.
'건물 감정하러 왔습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노라는 칼을 내려놓았다.
'문 닫기 전에는 시간을 잘 몰랐나 봐요. 아직 정식 오픈 전이에요.'
'예전에는 8시 반에 열었잖아.'
예전에는. 그 말이 공기 중에 1초 더 머물렀다.
'지금은 아니에요.' 노라가 상자를 옆으로 밀며 말했다.
아이작이 서서히 서가 쪽으로 걸어갔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훑는 동작이 거의 조심스러웠다.
'구조는 그대로군.'
'겉모습만.'
아이작이 멈춰서 그녀를 돌아봤다. 그때만큼은 목소리에서 예의 바른 껍질이 벗겨졌다.
'노라.'
한마디였다. 그녀의 이름. 어조는 그가 오늘 아침 누구에게도 쓰지 않은 종류의 부드러움이었다.
노라는 손가락을 목걸이로 가져갔다. 얇은 은색 로켓을 만지작거렸다. 엄지가 뚜껑 테두리를 따라 움직였다.
'추석 축제 전까지 감정 끝내야 한다더군요.' 아이작이 말을 이었다. '은행에서 마감을 그렇게 잡았어요.'
'그럼 시간이 넉넉하지 않네.'
'그래서 오늘 바로 시작하려고요.'
노라가 로켓을 살짝 놓았다. 쇠줄이 목에 닿아 차가웠다.
'서점은 6시 정각에 닫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 전에 끝내세요. 예외는 없어요.'
아이작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햇빛이 두 사람 사이 먼지 속으로 기울어져 들어왔다.
'알겠어요.'
말투는 다시 정중해졌지만, 그 끝에 뭔가 걸린 소리가 있었다. 노라는 돌아서서 남은 상자들을 열기 시작했다. 칼날이 테이프를 가르는 소리만 잠시 이어졌다.
아이작이 벽 쪽으로 걸어가 기초 콘크리트를 살폈다. 노라는 그가 등을 보이는 순간 다시 로켓을 쥐었다. 꼭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가 풀렸다. 9년 만에 들은 자기 이름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더 머디 컵의 점심 시간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루스 펨블이 창가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옷깃에는 왜가리 모양 브로치가 낡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 앉아, 노라.”
마시 알바레즈가 이미 라테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노라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치며 자리에 앉았다.
“로켓이라도 만지면 점심이 더 맛있어지나?”
마시의 농담에 노라는 무심코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가 멈췄다.
“습관이야.”
루스는 브로치를 한 번 쓸어내렸다. 노라의 시선이 거기에 잠시 머물렀다. 어머니도 저런 브로치를 갖고 있었다. 비슷한 시절에, 비슷한 상점에서 샀을 것이다. 유리창 너머로 가을 햇살이 들어와 루스의 왜가리 날개에 닿았다.
“축제 준비는 어때?”
루스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실내 장식은 아직 손도 못 댔어.”
노라는 숟가락으로 수프를 천천히 저었다.
“서점 일정에 감정까지 겹쳐서.”
“감정?”
마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작 밴스가 왔어. 은행 감정을.”
마시의 눈썹이 올라갔다. 루스는 여전히 차를 홀짝이고 있었지만, 찻잔을 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작이 돌아왔구나.”
루스의 목소리에는 노래를 확인하는 듯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언제부터?”
“오늘 아침부터.”
“하.”
마시가 한 마디로 정리했다.
문이 열렸다. 바람이 아니라, 누군가 들어서면서 생기는 정적이 먼저 밀려들었다. 노라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카페 안의 대화 소리가 한 겹 얇아졌다.
아이작 밴스가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검은색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서류 가방은 없었다.
“저게 진짜야? 아이작이야?”
마시가 목소리를 낮췄다.
루스는 노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머그컵이 테이블에 놓이는 소리가 났다.
“어떤 일은 변하지 않지.”
루스가 중얼거렸다.
노라는 로켓을 만지고 있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익숙한 감촉을 따라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나는 이미 알아야 할 건 알고 있어.”
그 말은 테이블 위에 떨어져 조용히 가라앉았다. 마시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은 커피를 받아 들고 창가 반대편 자리로 향했다. 노라 쪽을 보지 않았다.
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코트를 입었다. 그녀의 브로치가 잠시 빛을 받아 반짝였다.
“서점 불 좀 켜둬, 노라. 가을 축제까지는 아직 어둡지 않게.”
루스가 카페 문을 밀고 나갔다. 종이 한 번 울렸다.
다섯 시 사십오 분이었다. 창밖 하늘은 납빛으로 무거웠다. 노라는 반납 도서를 정리하며 시계를 흘낏 보았다. 육 시까지 십오 분.
문이 열렸다. 아이작 밴스였다.
“폐점 십오 분 전이야.”
노라는 책을 선반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짧았다.
“감정 보고서 초안을 마무리해야 해.”
아이작이 만년필을 손에서 굴리며 말했다. 오전보다 서류가 얇아져 있었다.
“아침에 말한 수치 중에 재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육 시에 문 닫아.”
“알고 있어.”
아이작이 카운터 옆 탁자에 서류를 펼쳤다. 만년필로 숫자 몇 개를 짚으며 조용히 메모를 적었다. 노라는 그를 등지고 진열대의 책들을 정렬했다.
육 시를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노라는 카운터로 돌아와 열쇠 꾸러미를 집었다. 아이작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지.”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노라는 문을 잠갔다.
그 순간,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방울도 아니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였다.
아이작이 문을 향해 다가섰다. 노라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길은 이미 물이 고여 있었다. 수로가 빗물을 삼키는 소리가 요란했다.
“지금 나가면 안 될 것 같아.”
노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덜 딱딱했다.
아이작은 유리창에 손을 대고 거리를 살폈다. 가로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라디오 틀어볼까.”
노라가 카운터 뒤의 작은 라디오를 켰다. 잡음이 섞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지역에 폭풍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마로우 카운티 전역, 강 수위가 빠르게 상승 중이며 저지대 주민께서는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목소리는 반복해서 같은 문장을 읊었다. 강 수위 상승. 즉시 대피.
가로등이 마지막으로 한 번 깜빡이고 완전히 꺼졌다.
서점 안은 순간 완전한 어둠이 되었다. 라디오만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상 랜턴을 찾을게.”
아이작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카운터 아래 수납장을 비추었다.
노라는 창가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로켓을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차가웠다.
라디오가 다시 경보를 반복했다. 강 수위가 빠르게 상승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