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Last Light at Six

2화

라디오가 마지막 경보를 반복하다 잡음에 묻혔다. 스피커에서 들리던 익숙한 목소리가 갈라지며 사라지자, 서점 안은 더 깊은 정적 속으로 가라앉았다. 진열장 유리 너머로 책들의 등뼈만이 희미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이작의 손전등 불빛만이 카운터 아래를 더듬고 있었다. 불빛이 먼지 쌓인 바닥을 훑을 때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습기가 섞인 공기가 흔들렸다. 노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빗줄기가 휘몰아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바람이 간판을 때리는 둔탁한 진동이 벽을 타고 전해졌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9년 전, 태풍이 마을을 덮치던 밤의 기억이 빗소리에 실려 돌아왔다.

“찾았다.”

아이작이 낡은 캠핑용 랜턴을 들어 올렸다. 두 번 시도 끝에 심지에 불이 붙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라이터 불꽃만 허공에서 꺼졌고, 두 번째에 심지가 타는 소리와 함께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황색 빛이 서점 안쪽을 반쯤 비추었다. 빛은 책장의 모서리를 물들이고, 그의 손등 위로 그림자를 길게 늘렸다.

노라는 창가에서 돌아서며 셔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이 낡은 마룻바닥에서 낮은 삐걱임을 남겼다. 문 옆 벽에 달린 수동 레버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두 손으로 힘을 주었지만 레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목에 핏줄이 섰다가 이내 풀렸다.

“고장이야.”

“확실해?”

“이 레버, 작년까지만 해도 무거웠을 뿐이야. 지금은 아예 안 움직여.”

아이작이 랜턴을 들고 다가왔다. 불빛 아래 레버의 연결부가 녹슬어 있었다. 붉은 녹이 벽면까지 번져 오래된 핏자국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레버를 한 번 더 시험했다.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다. 그의 손바닥에 녹 가루가 묻어나왔다. 손을 털지도 않은 채 허리춤에 닦았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노라가 천천히 레버에서 손을 뗐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창가 쪽 의자로 돌아갔다. 두 팔을 가슴 앞에 단단히 모으는 모양새가 스스로를 감싸는 듯했다.

“그러네.”

아이작은 카운터 뒤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랜턴을 둘 사이 탁자 위에 두었다. 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아래에서부터 비추었다. 광대뼈와 턱선을 따라 그림자가 번졌고 눈 밑이 더 깊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9년의 시간을 읽을 수 있었지만, 눈의 윤곽은 여전히 소년 시절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빗소리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물이 홈통을 타고 넘치는 소리, 처마 끝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바람이 유리창을 흔드는 소리까지 수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노라는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며 거리의 희미한 형체들을 일그러뜨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 비에 젖은 신문 가판대, 누군가 두고 간 우산의 잔해 같은 형체들.

그녀의 손가락이 로켓 펜던트를 더듬었다. 엄지손가락이 은색 표면을 반복적으로 쓸었다. 목걸이 줄이 목덜미에 닿는 얇은 감촉에 집중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런 폭풍, 오랜만이야.”

아이작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가까웠지만 공간을 가르지 않았다. 벽을 이루는 책들이 소리를 흡수해 목소리는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계탑이 멈춘 이후 시간은 빗소리의 강약으로만 흘렀다. 어떤 순간은 빗소리가 거세졌고, 어떤 순간은 잦아들었다. 그 차이만이 분과 시간을 구분하는 유일한 척도였다.

한참 뒤, 노라가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찬장 정리나 할 거야. 어차피 못 나가니까.”

그녀는 랜턴을 들어 카운터 뒤쪽 찬장으로 향했다. 랜턴의 빛이 벽에 걸린 오래된 서점 사진들을 번갈아 비추었다. 웃고 있는 사람들, 개업식 리본을 자르는 할아버지, 먼지 낀 유리 뒤로 보이는 어머니의 젊은 얼굴.

하단 서랍을 열자 오래된 영수증 뭉치와 회계 장부들, 그리고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나왔다. 어머니의 것이었다. 상자 표면의 광택은 오래된 손때에 밀려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노라는 잠시 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호흡이 한 번 멈췄다. 뚜껑을 열었다.

편지 봉투들이 빼곡했다. 그녀는 하나씩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손끝이 편지 가장자리를 쓸며 멈칫거렸다.

대부분 거래처 감사 편지나 축전 카드였다. 어머니의 이름이 정갈한 손글씨로 적힌 봉투들 사이로, 그녀의 체취인 라벤더 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 손이 멈췄다.

진한 회색 봉투. 왼쪽 위 모서리에 파인드먼트 은행의 로고가 찍혀 있었다. 노라는 봉투를 뒤집었다.

봉합선이 그대로였다. 접착제가 오래되어 가장자리가 살짝 들떠 있었지만, 개봉된 흔적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이 편지를 받고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뭐야.”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아이작이 몸을 약간 돌렸다. 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직였다.

노라는 편지를 꺼내 펼쳤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종이 접히는 소리가 침묵을 찢었다.

첫 줄. '마로우 크릭 댐 안전진단 결과에 관한 건.'

두 번째 줄. '현재 댐 기초 콘크리트의 균열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며…'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글자 하나하나가 빗물처럼 차갑게 스며들었다. 서명란.

제임스 밴스. 아이작의 아버지였다. 날짜는 9년 전 가을, 그가 마을을 떠나기 석 달 전이었다.

노라의 손끝에서 떨림이 멈췄다. 심장 박동이 귀까지 올라와 울렸지만,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편지를 든 채로 허리를 폈다.

“아이작.”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평온해서 아이작이 완전히 돌아앉았다. 등뼈가 곧추서는 모양새였다. 노라가 편지를 탁자 위에 밀어 넣었다. 종이가 나무 표면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읽어.”

아이작이 편지를 집었다. 첫 줄에서 그의 얼굴이 굳었다. 눈썹 사이에 주름이 깊게 패였다.

두 번째 단락까지 읽자 손이 편지 모서리를 구겼다. 종이가 그의 손아귀에서 뭉개지는 소리가 났다. 서명을 보는 순간, 그의 호흡이 짧게 끊어졌다.

아버지의 서명. 집필하던 만년필의 잉크색과 같은, 짙은 청회색이었다.

그는 편지를 내려놓지 못했다. 손에 쥔 채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랜턴 불빛 너머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알고 있었어.”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아버지가… 이 편지를 보냈어. 그리고 아무 조치도 없었어.”

노라는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이제 탁자 모서리를 가볍게 짚고 있었다. 나무의 나뭇결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내가 떠난 건…” 아이작의 말이 끊어졌다. 그가 만년필을 주머니에서 꺼내 만지작거렸다. 9년 동안 같은 버릇이었다. 불안할 때면 이 펜을 손에 쥐고 클립을 손톱으로 밀었다. 지금도 엄지손톱이 금색 클립의 가장자리를 반복해서 쓸고 있었다. “널 지키려고. 아버지가 한 일이 밝혀지면…”

“그 펜.”

노라가 만년필을 가리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손가락은 곧게 펴져 있었다.

“댐 서류에 서명했던 펜이지.”

아이작의 손이 멈췄다. 만년필을 쥔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그는 만년필을 내려다보았다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금속이 나무에 닿는 가벼운 소리. 금색 클립 옆 이니셜이 희미하게 빛났다. J.V. 제임스 밴스.

“네가 알 리 없다고 생각했어.”

“9년이야, 아이작.”

노라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랜턴 불빛이 그녀의 얼굴 절반을 감추었다. 불빛이 닿은 오른쪽 뺨은 따뜻한 색조를 띠고 있었고, 그림자 속의 왼쪽은 윤곽조차 불분명했다.

“누군가는 매일 아침 강 수위를 읽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래도 사람들은 알아. 나도 알고 있었어. 어머니도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

아이작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9년 만의 직시였다. 노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동자 안에서 랜턴의 불꽃이 작게 흔들렸다.

“그날 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한 톤 내려가, 마치 고백실의 문을 닫듯 조용해졌다. “아버지 서재에서 네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어. 전화 통화였는데… 댐 얘기였어. '보고서는 무시해도 됩니다. 제가 처리할 테니.' 그 한마디였어. 일부만 들었지만, 충분했어.”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마을이 무너질까 봐. 엄마가 마지막으로 지킨 이 서점까지.”

노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마지막 단어에서 잠시 숨을 쉬었다. 그녀의 눈이 찬장 위에 놓인 어머니의 사진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빗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지붕을 때리던 굵은 빗방울이 잔잔한 이슬비로 바뀌는 소리, 바람이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 랜턴의 기름이 바닥을 보이며 불빛이 가늘어졌다.

불꽃이 심지 안쪽에서 파르르 떨렸다. 아이작은 편지를 접었다. 손의 움직임이 기계적이었다.

반듯하게 접고, 또 접었다. 봉투 안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질 때까지.

“나는 네가 떠나서,” 노라가 다시 말했다. “네가 선택한 거라고 생각했어.”

“선택이 아니었어.”

“이젠 알겠네.”

노라가 접힌 편지를 집었다. 네 번 접힌 종이는 손바닥 안에 작게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스웨터 주머니에 넣었다.

천 안쪽에서 편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작은 말리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 속으로 사라지는 편지를 눈으로 쫓을 뿐이었다.

“이제 우리 둘 다 알게 됐다.”

그녀의 말이 방 안에 가라앉았다. 아이작은 주먹을 쥔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가 폈다. 손금을 따라 흐르는 랜턴 불빛이 손바닥의 오래된 굳은살을 비추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어벽이 무너진 자리에는 당혹감과 풀리지 않은 죄책감만 남아 있었다. 그의 어깨가 9년 만에 처음으로 낮아졌다.

창밖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폭풍이 완전히 지나갔다. 구름 사이로 새벽빛이 길게 뻗어 내려와 물웅덩이 위에서 부서졌다.

노라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거리에는 나뭇가지가 흩어져 있었고, 물웅덩이가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녀는 로켓을 만지지 않았다. 그냥 두 손을 창틀에 올렸다. 유리창 너머로 새벽 공기가 손바닥에 닿는 듯 서늘하게 전해졌다.

“우리 엄마는 네가 떠난 이유를 몰랐어.”

그녀가 말했다. 돌아보지 않았다. 창틀 위의 손가락이 흰색으로 변할 만큼 힘을 주고 있었다.

“죽는 날까지.”

아이작은 그 말을 정면으로 맞았다.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지만, 그 어떤 변명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이 감겼다 떠졌다. 탁자 위에 놓인 만년필의 금색 클립이 새벽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노라의 뒷모습이 창밖의 푸른 여명과 겹쳐졌다. 그 실루엣이 빛 속에서 천천히 또렷해져 갔다. 랜턴이 마지막 한 번 깜빡이고 꺼졌다. 심지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새벽이 서점 안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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