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Last Light at Six

3화

새벽, 서점. 폭풍이 잦아들고 편지는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노라는 말없이 깨진 창문과 물 피해를 확인하며, 이미 진실을 알고 있던 태도로 담담하게 움직인다.

아이작은 무너진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만, 노라는 비난 대신 “이걸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조용히 묻는다. 아이작은 선뜻 답하지 못한 채 손을 뻗지 못하고, 9년간 자신이 노라를 지켰다는 신념이 산산조각나 그 자리에 멈춘다. 두 사람 사이에 증거물 처리에 대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노라가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노라가 창가에 서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 푸른 여명이 실루엣을 감싸고, 창틀에 올린 손가락은 흰색으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죽는 날까지.”

말이 공기 중에 가라앉고 나서야 노라가 손을 풀었다. 창틀에서 손바닥을 떼며 천천히 돌아섰다.

아이작은 탁자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랜턴의 마지막 연기가 심지 위에서 가늘게 흩어지고 있었다.

“노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두 음절에 불과했지만, 그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노라는 그를 보았다. 눈물은 없었다. 오래된 피로가 눈가에 쌓여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지 않겠어.”

시선이 탁자 위 편지로 향했다. 네 번 접힌 종이는 랜턴의 그을음 자국 옆에 놓여 있었다.

아이작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친필 서명. J.V. 금색 클립에 새겨진 것과 같은 이니셜이 종이 아래쪽에 눌려 찍혀 있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9년 동안 네가 날 지켰다고 믿었지.”

노라가 말했다. 놀림도, 비난도 아닌, 사실을 확인하는 말투였다.

아이작의 어깨가 다시 낮아졌다. 그는 9년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만년필을 보았다. 그 펜을 쥐고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불안할 때마다 클립 옆 이니셜을 엄지로 문지르며 아버지의 무게를 짊어졌다. 그 모든 시간이 잘못된 방향으로 박혀 있었다.

“네가 가져.”

손가락이 만년필 쪽으로 움찔했지만, 닿지 않았다.

노라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 9년 전 서점 카운터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 손. 그때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서 문을 나갔다.

“둘 다 가져.”

아이작이 반복했다.

노라가 탁자로 다가왔다. 오른쪽 다리의 경직을 감추지 않은 걸음걸이였다. 그녀의 손이 편지를 집었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한 번 접고, 두 번 접었다. 스웨터 주머니 안으로 편지가 사라질 때까지.

“만년필은 네 거야.”

그녀가 말했다.

“이건 네 아버지가 아니라, 네가 9년간 붙들고 있던 거니까.”

아이작이 숨을 들이쉬었다. 손이 펜을 감쌌다. 금색 클립이 손가락 사이로 스쳤다. 그는 펜을 집어 양복 안주머니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새벽빛이 서점 안으로 더 깊이 밀려들었다. 책등들이 푸른빛을 받아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진열대 사이 통로에 물기가 흘러든 자국이 보였다. 노라는 그 흔적을 훑었다.

“창문 확인할게.”

돌아서며 말했다. 구두 밑창이 젖은 바닥에 닿아 가볍게 끌리는 소리를 냈다.

“도와줘.”

아이작이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두 걸음 만에 노라의 뒤를 따라잡았다.

“저쪽 구석이 제일 취약해. 작년 겨울에 실리콘으로 때웠는데.”

노라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봤어.”

아이작의 대답이 짧게 떨어졌다. 그가 서점 구석을 본 것은 작년이 아니라 9년 전이었다. 폭풍이 올 때마다 노라의 어머니가 걱정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둘은 나란히 구석으로 걸어갔다. 유리창 아래쪽에 손바닥만 한 균열이 번져 있었다.

노라가 무릎을 굽혀 균열을 살폈다.

“판 하나 갈아야 해.”

“오늘 오전에 톰에게 연락할게.”

아이작이 말했다. 노라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네가?”

“하드웨어 상점이 유리도 다루니까.”

목소리가 평범함을 가장하려 애쓰고 있었다. 노라는 잠시 그를 보다가 다시 유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일어서는 그녀의 손이 젖은 벽지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손가락 끝에 묻은 물기를 무심코 작업복 바지에 닦았다.

창밖 거리는 폭풍이 휩쓸고 간 자취로 가득했다. 찢어진 나뭇가지들이 길 한복판에 널려 있었고, 구름 사이로 처음으로 분홍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둘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9년 만에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었다.

노라의 손이 스웨터 주머니 가장자리를 만졌다. 편지가 천 안쪽에서 바스락거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작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둘 다 피하지 않았다. 9년 전이었다면 노라는 먼저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아이작은 그보다 더 빨리 시선을 거뒀을 것이다.

아이작의 눈에는 아직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9년간 잊지 못했던 방식이 드러나 있었다. 기억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노라의 손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천천히 올라가 그의 뺨 가까이에서 멈췄다.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허공에 떠 있었다.

“노라.”

그가 낮게 불렀다. 전과 같은 갈라짐은 없었다. 다만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볼에 닿았다. 차갑고 거친 손끝이었다. 아이작의 눈이 감겼다 떠졌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 위로 올라갔다.

입술이 거의 닿을 거리까지 좁혀졌다. 호흡이 섞였다.

“난 안 돼.”

아이작이 물러섰다. 반 걸음 뒤로, 그 거리는 다시 9년 치 무게를 회복했다.

노라의 손이 허공에 잠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알아.”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은 흔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작이 주먹을 쥔 손을 풀었다. 손바닥에 만년필 자국이 붉게 눌려 있었다. 그는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그만두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이미 편지 한 장으로 전부 무효가 되어 있었다.

노라는 창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로 걸어가 열쇠 꾸러미를 집었다.

“셔터 수동 레버, 폭풍 뒤에 점검해야 해.”

목소리는 이미 서점 주인의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녹슨 부분을 갈아야 할 거야.”

“그것도 톰에게 말할게.”

아이작이 대답했다. 그도 평범한 말투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닿을 듯 말 듯했던 공간이 조용히 닫혔다.

바깥에서 마지막 빗방울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폭풍이 완전히 멈췄다.

아침 해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왔다. 서점 진열대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노라는 열쇠를 허리춤에 걸고, 아이작은 양복 안주머니의 만년필을 무의식적으로 한 번 눌렀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폭풍의 잔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닿지 않았지만, 공기는 더 이상 칼날 같지 않았다.

아침 7시, 하드웨어 상점 앞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체인톱을 멘 남자, 빗자루를 든 여자, 빈손으로 온 노인까지. 전선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노라와 아이작은 나란히 걸었고, 말은 없었다. 깨진 벽돌을 피해 걸을 때 노라의 오른쪽 다리가 살짝 느려졌고, 아이작이 그 속도에 맞췄다.

톰 래시터가 수위 게이지 판을 들고 나왔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14.2피트.”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위험 수위보다 0.3피트 낮았다. 누군가 댐 상태를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톰의 시선이 군중을 훑다가 멈췄다. 노라와 아이작을 한 프레임 안에서 본 순간, 게이지 판을 든 손이 떨렸다. 아이작은 그 떨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톰이 판을 옆에 세우고 다가왔다.

“서점 창문이 깨졌다는군.”

“네.”

“오전 중에 확인하러 가겠네.”

“고마워요.”

어색한 침묵. 톰은 아이작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노라의 왼쪽 어깨 너머에 고정했다. “누수도 있을 테니 지붕도 봐야 해.”

아이작이 돌아섰다. 노라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행에 연락해야 한다.” 기다렸다는 듯 톰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아이작이 군중 사이로 사라지자 톰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재빨리 외면했다. 수위 판을 집어넣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서점 사무실 전화기는 충전이 남아 있었다. 아이작은 앉지 않고 서서 수화기를 들었다. 업무용 톤으로, 짧고 정확했다.

“파인드먼트 자산 관리팀 밴스입니다. 라스트 라이트 북스 건으로—”

문간에 노라가 서 있었다. 등을 문틀에 기댄 채 들었다.

“폭풍 피해 있습니다. 창문 파손, 일부 누수. 구조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고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아이작의 턱선이 굳어졌다. “자산 가치 하락 판단은 시기상조입니다. 복구 후 재평가를—” 또 목소리. 더 길게.

“연장 거절 검토 중이라… 알겠습니다. 서면으로 받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이작과 노라의 눈이 마주쳤다.

“조건이야.”

“들었어.”

현관 벨이 울렸다. 톰이 공구함을 들고 서 있었다. 노라를 보자마자 목부터 풀며 말했다. “창문부터 할까.”

“사무실 쪽은 괜찮아요. 진열장 세 칸이 문제예요.”

노라는 일부러 느리게 말했다. 톰이 아이작의 책상을 힐끔 보았다. 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J.V. 톰의 시선이 튕기듯 돌아왔다. “지붕 먼저 보지.”

“창문 먼저 하시죠.”

노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유예가 없었다. 톰이 침을 삼키고 진열장 쪽으로 향했다. 공구함을 옮겨 쥔 손에 땀이 밴 것이 보였다.

“나는 견적서 쓸게.” 아이작이 서류를 꺼냈다. 노라는 고개만 끄덕였다.

오후 내내 망치 소리가 이어졌다. 톰은 필요한 말만 했다. “못.” “실리콘.” 4시 전에 공구함을 챙겨 나가며 현관에서 노라와 마주쳤을 때, 고개를 숙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노라는 문이 닫힌 뒤에도 한동안 서 있었다.

5시 반. 깨진 유리창을 댄 합판에 주황빛이 길게 누웠다. 루스 펨블의 카디건 깃에는 왜가리 브로치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그녀는 책장 사이를 걸으며 습기로 불룩해진 책등을 손끝으로 쓸었다.

“마시가 커피 보내더라.”

루스가 종이컵 두 개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노라는 로켓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네 엄마랑 약속한 게 있어.”

노라는 기다렸다.

“그런데 요즘 자꾸… 지키는 게 항상 옳은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루스는 브로치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노라를 보았다.

노라는 종이컵을 루스 쪽으로 조금 밀며 말했다. “엄마가 원한 건 침묵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붙잡는 거였을 거예요.”

루스가 숨을 들이켰다. 고개를 돌려 깨진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합판 틈으로 저녁 빛이 가느다랗게 새어 들어왔다.

“네 엄마는—”

문이 열렸다. 아이작이 피해 견적서를 손에 든 채 멈춰 섰다. 루스가 일어나며 얼굴을 돌렸다. “내일 다시 올게.”

“루스 이모.” 노라가 불렀지만 루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가리 브로치가 카디건 깃에서 반쯤 빠져 있었다.

노라와 아이작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견적서가 미세하게 바스락거렸다. 노라가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견적 어때요.”

“생각보다 낮아.”

아이작이 서류를 카운터에 올렸다. 노라는 읽지 않았다. 멈춘 시계탑 대신 벽시계가 5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라가 현관문으로 걸어가 열린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거리는 조용했다. 복구 작업의 흔적만 나뭇더미와 진흙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6시.”

잠금 장치가 딸깍 소리를 냈다. 아이작은 카운터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창문 합판 사이의 빛줄기가 기울며 두 사람 사이의 바닥을 가로질렀다.

노라의 손이 로켓에 닿았다 떨어졌다. 아이작의 만년필은 사무실 책상 위에 그대로였다. 서점은 6시에 문을 닫았고, 그 사실만이 온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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