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시간 사이
2화
서점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서연은 사무실 책상 위에 편지를 펼쳐 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낡아서인지 가끔 깜빡였다. 깜빡일 때마다 편지 글씨가 어른거렸다.
유정은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였다.
“언니!”
이서연이 편지를 급히 서랍에 넣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며 일어섰다.
“벌써 왔어? 오늘 수업은……”
“교수님이 몸살 나셔서 휴강이래. 그런데 언니 목소리 왜 그래?”
유정은은 카운터 앞에 서서 이서연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보다 눈가가 붉었다.
“괜찮아. 먼지 때문에 그래.”
“거짓말.”
유정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낡은 캔버스 에코백을 카운터 위에 올리며 태블릿을 꺼냈다.
“그 은행원, 다녀간 거지? 오늘 감정 결과 나온다고 했잖아.”
“……응.”
“표정이 안 좋네. 뭐래?”
이서연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담보 가치가 부족하대. 이대로면 다음 갱신 때 경매로 넘어간대.”
“뭐라고?”
유정은의 두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그게 말이 돼? 건물이 이렇게 좋은데?”
“건물주가 따로 있고…… 우리는 세입자일 뿐이니까.”
이서연은 담담하게 말하려 애썼지만 끝이 갈라졌다. 유정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모자란대?”
“구체적인 액수는 말 안 해줬어. 감정인이 결정할 문제도 아니래. 그냥…… 규정대로 진행될 거래.”
“그 감정인, 혹시 그 사람이야? 언니 아는 사람이라며. 좀 봐달라고 할 수 없나?”
이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 사람 자기 일에 꽤 엄격한 성격이야.”
유정은이 팔짱을 끼고 카운터 주변을 서성였다. 이마가 찡그려졌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아! 이벤트!”
태블릿을 집어 들고 화면을 이서연에게 내밀었다.
“언니, 우리 빈티지 도서 이벤트 대박 났어! 내가 어제 올린 게시물 조회수 삼천 넘었고 참가 신청 마흔두 건이야!”
“……마흔두 건?”
“응! 동네 카페 주인아저씨가 공유 열심히 해주셨고, 독립서점 동호회에서도 퍼 나르고…… 그것보다 지역 신문사에서 연락 왔어!”
이서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신문사?”
“내일 오전에 취재 온대! 이거 진짜 잘하면 분위기 확 달라질 수도 있어. 사람들이 이 서점을 기억한다는 증거라니까.”
유정은은 빠르게 말을 쏟아내며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댓글창에는 “여기 아직 있네!”, “10년 전에 자주 갔는데” 같은 말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은행에서도 이런 지역 반응 무시 못 할 거야. 담보 가치라는 게 결국 그 공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하는 건데,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나서면——”
“그걸 은행이 인정해 줄까.”
이서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더 힘이 있었다.
“인정하게 만들어야지. 우리가 입증하면 되는 거야.”
유정은이 주먹을 쥐었다. 그때 서점 문이 열리며 벨이 울렸다.
들어온 건 최명호였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여유롭게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아이고, 또 왔네. 이 동네 오는 길이 왜 이렇게 막히는지.”
유정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무슨 일이세요, 최 사장님.”
“아, 그냥 세입자 점검 차 들른 겁니다. 건물주 분이 워낙 신경을 많이 쓰셔서…… 제가 가끔이라도 눈으로 확인해 드려야죠.”
최명호가 카운터 앞으로 느릿느릿 걸어왔다. 태블릿 화면을 흘끗 보더니 작게 혀를 찼다.
“빈티지 도서 이벤트인가, 뭔가…… 아직도 그런 걸 믿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참가 신청 사십 건 넘었어요. 지역 신문사 취재도 온다니까——”
“신문사 취재요?”
최명호가 과장된 놀람을 표정에 담았다.
“참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그런데 젊은 분들 몇 명 책 산다고 서점 적자가 메워질까요? 임대료 체납분도 아직 남아 있는 걸로 아는데.”
유정은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세요. 임대료는——”
“정은아.”
이서연이 유정은의 팔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최명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시고 싶은 게 뭐죠.”
“아,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십니까. 저는 그냥…… 은행에서도 현실을 아셔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이런 작은 이벤트가 대출 심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최명호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담당 감정인 분께도 제가 참고 자료를 좀 보내드리려고요. 이 건물 시세 변동 추이랑, 서점 쪽 매출 추이를 정리해서…… 객관적인 자료를 보시면 판단이 달라지실 수도 있고.”
유정은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슨 자료요? 그걸 왜 최 사장님이——”
“세입자 관리인으로서 당연한 의무 아니겠습니까. 정보 투명성, 요즘 은행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거잖아요.”
최명호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한 번 더 닦았다. 작은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물론, 제가 왜곡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냥…… 사실만.”
“사실이라고요?”
이서연이 조용히 물었다.
“네, 그럼요.”
최명호의 미소가 깊어졌다.
“가령…… 이 층 임대료 연체 횟수라든지, 월평균 방문객 수 변동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모이면 꽤 흥미로운 그림이 나오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서연이 검지로 안경을 살짝 올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보내실 거면 보내세요. 저희도 준비할 게 있으니까.”
“준비라면…… 설마 이벤트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최명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뭐, 열심히 해보시죠. 저는 그 결과를 지켜볼 뿐이니까.”
그가 돌아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멈춰 서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아, 그리고…… 감정인 분 젊으시던데. 이서연 씨랑 혹시 아는 사이?”
이서연이 대답하지 않았다.
최명호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문을 밀고 나갔다.
유정은이 곧바로 카운터를 탁 쳤다.
“저 양반 지금 협박한 거야? 은행에 자료 보내겠다는 건 사실상 방해 공작이잖아!”
“정은아, 진정해.”
“진정이 돼? 저 인간이 무슨 자료를 어떻게 왜곡할지 뻔한데!”
유정은의 눈가가 붉어졌다. 두 손으로 태블릿을 꼭 쥐고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가 하는 걸 다 망치려는 거야…… 서점이 사라져야 자기네가 이득이니까.”
“알아.”
이서연이 유정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최명호한테 화내는 게 아니야. 이벤트 준비에 집중하고, 신문사 취재도 잘 받고……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언니는 진짜 대단하다.”
유정은이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나도 속으로는 무서워 죽겠어.”
이서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서점 비우고 나가라고 할 순 없잖아.”
유정은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태블릿 화면에 알림이 하나 떴다. 신청자 마흔세 번째. 유정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열대 쪽으로 뛰어갔다.
“오늘부터 전시할 책 고르자! 내일 신문사 촬영 각도 생각해서 배치도 다시——”
신이 난 목소리가 서점 안에 울렸다.
이서연은 그 뒷모습을 보며 조금 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30분쯤 지나서였다.
이서연은 구석 코너에 쌓인 고서 더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유정은이 전시할 책을 고르는 동안, 이쪽은 버릴 책과 보관할 책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문득 손끝에 익숙한 책등이 닿았다.
『시인의 마을』.
10년 전, 외삼촌이 추천해 줬던 시집이었다. 강지오와 함께 읽었던.
표지가 많이 낡았다. 모서리가 닳고 종이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됐다. 이서연은 망설이다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 외삼촌의 글씨가 있었다. “서연이에게, 네가 좋아할 마을.”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책…… 아직 있었군요.”
이서연이 흠칫 놀라 돌아섰다. 입구 쪽에 강지오가 서 있었다.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아직 안 가셨어요?”
“차를 부르려다…… 서류 하나 놓고 간 것 같아서요.”
강지오의 시선이 이서연의 손에 든 책에 닿았다. 미간에 얕은 주름이 잡혔다.
“그 시집…… 기억나.”
“……네. 외삼촌이 좋아하시던 시집이었어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강지오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때 읽던 것 중에…… 마지막 장 기억나세요?”
“잠의 마을이요.”
이서연은 대답해 놓고 당황했다. 너무 빨리 대답했다. 강지오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맞아요. 그 시.”
강지오가 서류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렸다. 지퍼를 열고 서류를 찾는 손이 무언가에 걸렸다. 그 순간, 가방 안에서 작은 물건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제 책갈피였다.
10년 전 그 날의 것. 누렇게 변색됐지만 꽃잎 모양은 그대로였다. 이서연이 본능적으로 몸을 굽혀 집어 들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거.”
강지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이서연은 책갈피를 손에 든 채 강지오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손끝이 책갈피의 닳은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이 디자인을 본 적이 있었다.
외삼촌의 편지 더미 속에, 비슷한 꽃잎 무늬가 있었다.
“……돌려주세요.”
강지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사무적인 어조였지만 끝이 약간 갈라졌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서자 이서연이 손을 올려 책갈피를 건넸다.
강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갈피를 가방 안쪽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지퍼를 닫는 손이 평소보다 서둘렀다.
“……추억이 많은 물건이라.”
짧게 변명 같은 말을 던지고 강지오가 시선을 돌렸다. 이서연도 고개를 숙였다. 손에 아직 들린 시집을 책 더미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이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 그 책…… 나한테 빌려준 이유가 있었어요?”
강지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냥……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것뿐이었어요?”
이서연은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마음속 깊은 곳이 조여드는 걸 느꼈다. 자꾸만 혀끝까지 올라오는 말들. ‘편지’라는 단어를 가까스로 삼켰다.
“……꼭 물어볼 이유라도 있어요.”
강지오가 되물었다. 이번엔 날카로웠다.
이서연은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강지오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의심이 담긴 시선이 이서연에게 고정되었다.
“이서연 씨. 혹시……”
“언니!”
유정은이 서점 안쪽에서 뛰어나왔다. 한 손에 검은색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이 포스터 디자인 좀 봐 봐! 신문사 촬영 때 같이 걸어두면 어울릴까——”
유정은이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알아채고 걸음을 멈췄다.
“어…… 나 방해했어?”
“아니.”
강지오가 짧게 대답하며 가방을 들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눈가가 굳어 있었다.
“서류 찾았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강지오 씨.”
이서연이 불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다음에 올 땐 미리 연락하죠.”
그 말을 남기고 문이 닫혔다.
유정은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 있었어? 분위기가 왜 이래.”
“아무것도.”
이서연은 식은땀이 배어 나온 손바닥을 살짝 쥐었다. 유정은이 뭐라 말을 이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 강지오의 질문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혹시……’
그 ‘혹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서연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언젠가 터질 거라는 것도.
서점 바깥은 저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지오의 뒷모습이 상가 앞 가로등 불빛에 길게 늘어졌다. 한 손에 서류 가방을 쥐고, 다른 한 손은 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주머니에는 책갈피가 있었다.
“언니?”
유정은이 이서연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 이서연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강지오의 실루엣이 길 건너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편지’라는 말 한마디.
그 한마디가 던져 놓은 실타래가, 이제 그의 발끝을 따라 굴러가고 있었다. 언젠가, 아마도 곧, 그가 그 실을 잡아당기면…….
이서연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몸을 돌렸다.
진열대 너머로 외삼촌의 낡은 시집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