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비 오는 서점

1화

천장에서 물방울이 또 떨어졌다.

미리 받쳐둔 양동이 안으로 톡, 하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한 박자 뒤 두 방울이 연달아 떨어지고, 다시 잠잠해졌다.

이여름은 양동이 옆으로 쪼그리고 앉아 물기를 닦았다. 걸레를 짜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닥 나무결 사이로 스며든 습기가 손끝을 차갑게 적셨다.

일어서서 허리를 폈다. 1층 천장 구석, 작년에 갈아놓은 방수 시트가 또 들떠 있었다. 장마는 이제 겨우 일주일째였다.

카운터 옆 탁자 위에는 동네 부동산에서 받아온 전단지가 놓여 있었다. '재개발 사업 설명회'라는 붉은 글씨가 반으로 접힌 채 눈에 들어왔다.

이여름은 전단지를 집어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서점은 할머니가 삼십 년 넘게 지켜온 곳이었다. 벽에 꽂힌 책들, 계단 난간에 밴 손때, 이여름이면 습기로 살짝 부풀어 오르는 목재 서가까지 전부 할머니의 몫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몫이기도 했다.

문턱 근처 하단 서가 앞으로 가서 시집 코너의 책들을 한 권씩 빼냈다. 누수 지점 바로 아래라 습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책등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니 축축한 감촉이 묻어났다.

“이것들만 2층으로 올리자.”

혼잣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이여름은 책을 품에 안고 계단 쪽으로 향하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유리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렸다.

검은 우산이 접히는 소리. 긴 우비를 벗어 터는 그림자. 문 손잡이가 돌아가고, 빗물에 젖은 구두 한 켤레가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이여름은 본능적으로 안고 있던 책 묶음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들어온 사람은 서른 즈음의 남자였다. 흰 셔츠 소매가 살짝 접혀 있고, 왼손에는 두꺼운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오른손으로 우산을 문 옆 통에 꽂았다.

동작 하나하나가 익숙했다. 돌아서서 시선을 드는 각도, 비에 젖은 머리칼을 털지 않고 그냥 두는 버릇.

서진우.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서진우는 이여름을 향해 고개를 약간 숙였다. 공적인 목례였다.

“안전 진단 왔습니다.”

낮고 짧은 목소리. 십 년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약간 더 깊어진 음색 정도였다.

이여름은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입술을 다물었다. 안고 있던 책 묶음을 옆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의 습기를 원피스 옆구리에 살짝 닦아냈다.

“네.”

겨우 한 마디가 나왔다. 서점 주인으로서의 사무적인 톤. 손님을 맞을 때 쓰는 정갈한 존댓말을 애써 붙들었다.

서진우는 서류 봉투에서 클립보드를 꺼냈다. 붙박이 펜을 손에 쥐고, 천장을 한 번 훑었다.

“누수?”

“예, 장마철마다 저쪽 구석이.”

서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시선이 구석 들뜬 방수 시트에 멎었다. 잠시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여름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서진우의 구두 주변으로 빗물이 얇게 번지고 있었다.

“전체 점검 일정은 3일 정도입니다.”

서진우가 클립보드 위에 무언가를 짧게 적으며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천장에 둔 채였다.

“오늘은 1층 구조 확인만.”

이여름은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질문이 목까지 올라왔다. 왜 여길 왔는지. 언제부터 이런 일을 했는지.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필요하신 서류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하고 덧붙였다.

서진우의 펜이 잠시 멈췄다.

반 박자. 짧은 침묵이 지나고 다시 펜이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둘 다 알고 있었다.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게 어색하다는 걸. 하지만 아무도 먼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서진우는 구석 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수 지점 아래 양동이 옆에 쪼그려 앉아 벽과 바닥이 맞닿은 틈새를 손으로 짚어봤다.

이여름은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봤다. 등이 곧았다. 어깨가 십 년 전보다 넓어졌다. 왼손 손목이 소매 안으로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 위 작은 라디오에서는 장마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 주 내내 비 예보라는 익숙한 목소리.

서진우가 일어서며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이여름은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가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계단은 좁고 삐걱거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십 년의 침묵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계단을 다 올라서자 2층 복도는 한낮인데도 어두웠다. 이여름이 먼저 복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진우가 카운터 앞에 멈춰 서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빗물에 젖은 소매를 한 번 털고 나서 화면을 켰다.

“오늘 점검 항목은 크게 셋이다.”

터치펜으로 목록을 짚으며 설명했다. 구조부 균열, 누수 흔적, 배선 노후도 순서. 목소리는 사무적이고, 시선은 태블릿에만 고정돼 있었다.

“시간은 1시간 정도. 중간에 사진 촬영이 들어간다.”

이여름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존댓말을 고르자 목이 간질거렸다. 서진우의 손이 태블릿을 내리자, 이여름은 카운터 모서리에 기대어 건물 도면을 펼쳤다. 코팅된 종이가 습기를 머금어 약간 휘어 있었다.

“구조만 먼저 말씀드릴게요. 원래는 단층 건물이었고, 1992년에 2층을 증축했어요.”

손가락으로 벽의 중심선을 따라 그었다.

“하중을 견디는 내력벽은 이쪽 두 군데. 나머지는 석고보드로 막은 비내력벽입니다.”

서진우가 도면을 한 번 훑었다. 눈이 빠르게 도면의 범례와 선들을 스캔했다.

“2층 바닥 재질은.”

“원목 마루 위에 리놀륨을 덧댔어요. 10년 전쯤에.”

말을 마치자 혀끝이 굳었다. '10년 전'이라는 말이 입 안에 모래처럼 남았다. 서진우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 위에서 반 박자 멈췄다.

이내 조용히 화면을 끄며 고개를 들었다.

“2층부터 보죠.”

태블릿을 가방에 넣고, 측정기를 꺼내 들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균열 폭 측정용 게이지가 들어 있는 작은 공구함이었다.

“따라오세요.”

이여름이 앞장서 계단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젖은 나무 계단에 번갈아 박혔다. 한 번, 한 번.

2층은 1층보다 어두웠다. 장마철이라 창문을 열어둘 수 없어 환풍기만 낮게 돌고 있었다. 이여름은 벽 쪽 스위치를 두 번 눌렀다. 형광등이 깜박이다 완전히 켜지기까지 3초쯤 걸렸다.

“안정기가 오래됐네요.”

이여름이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서진우는 대답 없이 벽과 천장의 경계로 다가갔다. 공구함에서 균열 게이지를 꺼내 벽에 댄 채 몇 초간 들여다봤다. 오른손은 벽을 짚고, 왼손은 측정기를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남쪽 벽 상단 균열 폭, 0.8밀리.”

조용히 숫자를 읊고는 태블릿에 메모했다. 그 모습이 마치 혼자 있는 사람 같았다.

“이쪽 창틀은 2년 전에 실리콘 다시 발랐어요. 그 전까지는 비 오면 조금 샜거든요.”

이여름이 북쪽 창가로 걸어가 창틀을 손으로 짚었다. 서진우가 가까이 와 무릎을 굽혀 창틀 아래쪽을 살폈다.

“처리 흔적은 깔끔한데.”

손등으로 실리콘 마감 부위를 한 번 쓸었다.

“틈새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요.”

일어서며 무심하게 말했다. 태블릿에 한 줄 더 기록하고는 벽 쪽으로 돌아섰다.

배선 점검을 위해 콘센트 덮개를 열 때도 둘 사이엔 필요한 말만 오갔다. 전압, 접지 상태, 교체 연도. 대화라기엔 메모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이여름은 주머니 속에서 손을 꼭 쥐었다.

서진우가 마지막으로 천장 누수 흔적을 확인하고 공구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금속 부속들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가 났다.

“여기까지 하죠.”

서진우가 공구함 잠금장치를 돌리며 말했다.

“보고서는 사무실에 돌아가서 정리하겠습니다. 조합에 제출하는 건 다음 주 중.”

이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한 마디쯤 물어보고 싶은 게 목까지 올라왔다. 건물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등급은 어떻게 나올 것 같은지.

그러나 입술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안전 진단이란 이름의 절차는 언제나 결론을 정해 놓고 시작한다는 걸.

“……네.”

서진우가 공구함 손잡이를 쥐었다.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멈춰 서서 어깨 너머로 짧게 덧붙였다.

“환풍기 필터는 금주 안에 갈아요. 곰팡이 포자가 측정보다 높아요.”

그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서서히 1층으로 사라졌다.

이여름은 창가에 서서 서진우가 가게 앞 거리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검은 우산이 펴지고, 빗소리에 섞여 발걸음이 멀어졌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액정에 희미하게 손금의 습기가 묻었다. 서진우의 뒷모습이 거리 저편으로 사라질 무렵이었다.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액정에 뜬 이름은 박중섭이었다.

“여보세요.”

이여름이 낮게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박중섭 특유의 빠른 말투가 들려왔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서두를 꺼냈다.

“이여름 씨, 나야. 안전 진단 결과 곧 나올 거래. 조합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발표 나는 즉시 철거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일 모양이야.”

이여름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휴대폰을 쥔 손가락이 살짝 굳었다.

“대비 좀 해둬. 가만히 있으면 진짜 밀려.”

전화가 끊겼다. 빗소리만 2층을 가득 채웠다. 이여름은 창틀에 등을 기댄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비 오는 서점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