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서점
4화
핸드폰을 내려놓은 손이 떨렸다. 이여름은 카운터에 손끝을 대고 세 번 숨을 들이켰다. 떨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철거 권고.
가게 안의 공기가 한꺼번에 무거워졌다. 2층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양동이를 비우러 가야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시집 코너. 할머니의 바랜 간판. 삼십 년 동안 이 거리를 지켜온 나무판과 먹글씨.
이여름은 휴대폰을 집고 가게 문을 열었다. 빗발이 곧바로 어깨를 때렸다. 우산을 가져올 생각도 못 했다.
고은숙의 액세서리 가게는 골목을 하나 끼고 오른쪽이었다. 도보 이 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가게 앞에 서자 쇼윈도 너머로 고은숙이 마네킹 귀걸이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을 밀었다.
“고은숙 언니.”
고은숙이 고개를 들었다. 이여름의 젖은 어깨와 맨손을 보더니 곧장 카운터에서 나왔다.
“우산도 없이 왔나, 이 비에.”
고은숙이 수건을 꺼내 건넸다. 이여름은 받아들었지만 닦지 않았다. 손에 쥔 채로 가게 한복판에 섰다. 물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철거래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높았다. 고은숙이 움직임을 멈췄다.
“안전 진단 결과가 오늘 나왔는데…… 철거 권고래요.”
고은숙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잠시 입을 다물고 이여름을 보더니, 팔을 잡아 의자로 이끌었다.
“앉아. 차라도 한 잔…….”
“삼십 년이에요. 할머니가 평생 지킨 곳인데.”
이여름은 앉지 않았다. 수건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등급이 D등급 아래래요. 위험하다고요. 곰팡이 포자가 기준치 넘고, 지붕 접합부가 노화됐다고…….”
“여름아.”
“그게 철거할 이유가 돼요? 수리하면 되는 걸. 고치면 되는 걸 왜…….”
“여름아!”
고은숙이 두 손으로 이여름의 어깨를 잡았다. 따뜻한 손바닥이 젖은 블라우스 위로 체온을 전했다.
“숨 쉬자. 응? 일단 숨부터 쉬고.”
이여름이 멈췄다. 들이켠 숨이 떨려서 나왔다. 고은숙이 천천히 어깨를 주물렀다.
“그래. 말해 봐. 다 토해내.”
“……없어질지도 몰라요.”
이여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은숙의 손이 잠시 멎었다.
“서점이. 그냥. 없어져요.”
말로 꺼내자 현실이었다. 더 무서웠다. 이여름은 이를 악물었다.
울면 안 된다.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참았다.
고은숙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여름의 손에서 수건을 빼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알았다. 앉아. 할머니가 아는 것도 있고, 네가 모르는 이야기도 있어.”
이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고은숙의 눈빛이 평소보다 진지했다. 마네킹 귀걸이 정리하던 손놀림과는 완전히 달랐다.
“십 년 전 일이다.”
고은숙이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말을 꺼냈다. 빗줄기가 쇼윈도를 두드리는 소리가 배경을 채웠다.
“그날도 비가 이렇게 왔어. 장마 끝무렵이었지.”
이여름은 어깨에 걸친 수건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여전히 차가웠다. 고은숙이 무릎에 손을 포갰다.
“서진우…… 맞지? 그 안전 진단 왔던 청년.”
“……네.”
“그 아이네가 갑자기 이사 간 날, 가게 정리하느라 늦게까지 깨어 있었어. 한밤중이었는데 창밖을 보니까 누가 서 있더라고.”
고은숙이 쇼윈도 쪽을 턱짓했다.
“바로 저 앞. 종이비 앞. 그 아이가 우산도 없이 서성이고 있었어.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문 앞까지 갔다가.”
이여름의 손이 멎었다.
“들어갈까 말까…… 그렇게 한참을 망설였어.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고은숙이 이여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냥 돌아갔어. 비 맞으면서. 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는 내가 다 답답하더라.”
이여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천천히 조여들었다. 서진우가 그냥 떠난 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날 밤만은, 문 앞에서 망설였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왜…….”
입술이 바짝 말랐다. 말이 목에 걸렸다.
“왜 들어오지 않았대요.”
“그건 나도 몰라.”
고은숙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냥 간 게 아니었다는 거야. 그 아이도 아마…… 할 말이 있었겠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 있었거나.”
이여름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림이 멎어 있었다. 대신 가슴속 어딘가가 묘하게 저렸다. 십 년 동안 켜켜이 쌓인 버림받은 기억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조용하게, 한 겹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 아이도 얼마나 힘들었겠니.”
고은숙이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이여름은 고개를 들었다. 고은숙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가게 문 닫고 나올 때까지 계속 비 맞고 서 있더라.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 못 걸었어. 지금도 그게 마음에 걸려.”
이여름은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물건 좀 치우고 올게요.”
“여름아.”
“서점에 양동이 비워야 해요. 2층에 놔뒀거든요.”
고은숙이 한숨을 쉬며 따라 일어섰다.
“우산 줄게. 잠깐만.”
카운터 뒤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건넸다. 이여름은 받아들고 문고리를 잡았다.
“언니.”
이여름이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고마워요.”
문을 열고 나가자 빗소리가 다시 온몸을 감쌌다. 우산을 펴지 않았다. 손에 쥔 채로 걷다가, 서점 앞에 멈춰 섰다. 할머니의 간판이 빗물에 번들거렸다.
바로 이 앞이었다.
서진우가 섰던 자리. 손을 올렸다 내렸다던 바로 그 앞.
이여름은 서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우산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2층 양동이는 아직 비우지 않았다. 물방울 소리가 여전히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비가 그치면 바로 구청에 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서점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하기로.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2층의 정적을 깼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창문을 통해 책장 사이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여름은 구석 책장 앞에 멈춰 섰다. 손을 뻗어 시집을 꺼냈다. 1987년판 김춘수 시집. 표지가 습기에 약간 불어 있었다.
책을 펴자 편지가 나왔다. 반으로 접힌 봉투. '서진우에게'라는 붓펜 글씨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열아홉 겨울에 쓴 글씨.
봉투를 열지 않았다. 내용을 다시 읽을 필요는 없었다. 이여름은 편지를 손에 쥔 채 2층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밖은 여전히 비였다. 창문 너머로 '종이비'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고은숙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날 밤 서진우가 문 앞까지 왔었다는 것. 주머니에 진단서를 넣고, 빈 메모지를 넣고. 들어오지 못한 채 돌아섰다는 것.
열아홉의 자신은 그걸 몰랐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고 믿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이여름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서진우가 떠난 건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역시 어떤 기로에 서 있었고, 말할 힘이 없었을 뿐이었다.
시집을 다시 펼쳤다. 편지를 원래 자리에 끼우려다 손끝이 떨렸다. 손가락이 시집의 한 구절 위에 닿았다. 네가 나를 부르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눌렀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혼자였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시집을 닫아 책장에 꽂았다. 편지는 그 안에 있었다. 이제는 아는 채로.
같은 시각, 사무실의 형광등이 긴 복도 끝까지 켜져 있었다.
서진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안전 진단 보고서 초안을 열었다. 화면 왼쪽에는 측정 데이터, 오른쪽에는 건축 연도별 내구성 기준표가 띄워져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철거 권고. 그 결론을 위한 근거는 충분했다. 외벽 균열 4mm, 지붕 접합부 실리콘 전면 노후화, 2층 습도 기준치 초과. D등급 이하 판정을 뒤집을 수치는 하나도 없었다.
서진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멈췄다. 사무실 안은 금연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키보드를 한 번 쳤다. 지역 신문 아카이브 데이터베이스가 열렸다. 검색창에 '종이비 서점'을 입력했다. 세 건이 떴다.
첫 번째 기사는 1985년 3월. 상가 거리 최초의 문화 공간 '종이비' 오픈, 지역 주민 독서 모임 북적. 두 번째는 1997년. 종이비 이선희 대표, 10년간 어린이 무료 독서교실 운영. 마지막은 2008년 지면의 작은 칼럼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운치 있는 골목 서점.
서진우는 세 기사를 프린트했다. 프린터가 낡은 소리를 내며 용지를 밀어냈다.
책상 위로 기사를 펼쳐 놓았다. 30년 넘게 이 동네에 있던 공간이었다. 측정 수치만으로는 적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보고서 파일을 닫았다.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을 치지 않고 커서만 깜빡이는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여름에게 전화할까. 생각이 스쳤다. 바로 접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었다. 말했다가 또 무너지면, 그때는 정말 끝이었다.
서진우는 새 문서의 첫 줄을 쳤다. 서점의 건축 연도, 구조적 특성, 그리고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문화적 가치에 관한 기록. 별도 소견서의 뼈대였다.
프린트된 기사 한 장이 슬라이딩 유리창 틈으로 새어든 바람에 책상 밑으로 떨어졌다. 줍다가 손목 안쪽이 책상 모서리에 스쳤다. 흉터가 드러났다. 서진우는 소매를 다시 단단히 잡아당겨 단추를 채웠다.
비는 밤새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오전, 빗소리는 잦아들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이여름은 서점 1층 카운터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고은숙이 들어왔다. 머리에 맺힌 빗방울을 털며 앞치마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대추차야. 어젯밤 잠은 잤냐.”
눈 밑이 그늘져 있었다. 이여름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
“좀 잤어요.”
잠시 뒤 윤지혜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카페 오픈 전이라 앞치마를 접어 가방에 넣고 있었다.
“일단 앉아. 나 시간 별로 없어.”
세 사람은 서점 중앙의 낡은 원탁에 둘러앉았다. 이여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철거 권고 나왔어. 어젯밤에 통보 받았어.”
고은숙의 손이 입가로 갔다. 윤지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이여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서점 보존 서명 운동.”
탁자 아래에서 손가락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목소리는 반듯했다.
윤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카페에 서명대 둬. 손님들 책 좋아하는 사람 많아.”
“진짜?”
“오픈 시간엔 내가 맡고,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한테도 설명할 수 있어.”
고은숙이 대추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앞 골목 상인들부터 돌게. 빵집 이 사장님, 약국 김 약사님은 원래 단골이셨으니까.”
이여름은 노트북을 열었다. SNS 계정에 들어가 새 게시물을 작성했다. 제목은 '종이비 서점을 지켜주세요'. 짧은 소개글과 함께 2층 창가에서 찍은 서가 사진을 올렸다.
인쇄용 전단지도 초안을 뽑았다. 노트북 옆 작은 프린터가 잉크젯 소리를 냈다. 종이를 들어 세 사람 앞에 펼쳐 보였다. 서점 외관 사진 아래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30년간 이 거리에 책을 두었습니다. 함께 지켜주세요.
“좋은데?”
윤지혜가 전단지를 집어 들었다.
“딱 이만큼이면 충분해. 더하면 안 읽어.”
고은숙이 전단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보시면 좋아하시겠다.”
이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 얘기엔 아직 괜찮을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전단지 묶음을 반으로 나누어 테이블에 놓았다. 윤지혜가 한 묶음을 가방에 넣었다. 고은숙이 나머지 반을 집으며 이여름의 어깨를 한 번 토닥였다.
“갈게. 오후에 다시 와서 얘기하자.”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서자 서점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여름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SNS 반응을 확인했다. 공유 세 건, 댓글 두 개. 작은 숫자였다. 그래도 시작이었다.
오후에 다시 전단지를 정리하며 인쇄 매수를 세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렸다.
낯선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네이비 점퍼에 클립보드를 들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서점 내부를 한 번 훑었다.
“이여름 씨?”
“네, 접니다.”
남자가 클립보드의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재개발 조합에서 나왔습니다. 안전 진단 건으로요.”
이여름의 손에 쥔 전단지 묶음이 조금 기울었다.
“서진우 씨 건 때문에 확인차 들렀습니다.”
“……서진우 씨요?”
“네. 보고서에 이상한 소릴 적고 있어서요.”
남자가 클립보드를 내려놓으며 무미건조한 어조로 덧붙였다.
“이 건물, 철거 확정입니다.”
이여름의 손에서 전단지가 미끄러졌다. 종이가 바닥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