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매화에 핀 독

4화

함곡관 앞 길목은 이른 아침부터 적막했다. 관문으로 통하는 돌길 양옆으로 키 큰 잡목이 늘어서 있고, 바람 한 점 없이 정적만 쌓여 있었다.

강휘는 길에 접어들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발소리가 끊기자 석중원도 반 보 뒤에서 멈춰 섰다. 두 사람 사이로 미세한 먼지가 가라앉았다.

“매복이다.”

강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시선은 정면의 바위 뒤쪽을 향했다.

그 순간 바위 그림자 속에서 인영이 일어섰다. 하나가 아니었다. 좌우 잡목 사이로 검은 무복 차림의 무인들이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모두 청성파의 녹색 인을 허리춤에 매고 있었다.

다섯이었다. 앞쪽에 셋, 뒤쪽으로 돌아 둘.

선두에 선 사내가 걸어 나왔다. 나이는 서른 안팎. 청성파 정예대 특유의 각진 어깨에, 얼굴 왼쪽 볼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검흔이 있었다.

묵영건. 전생에서 강휘가 세 번 마주친 적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에는 부적대 부대장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청성파 정률원 묵영건입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묵영건의 손이 허리춤 검병에 닿았다.

“사형. 파문된 자가 청성파 경계에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사형입니다. 아시지요.”

강휘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으로 묵영건 뒤에 선 대원들의 배치를 훑었다. 셋은 보법을 살짝 틀며 좌우 간격을 벌렸다. 나머지 둘은 뒤쪽에서 천천히 보폭을 좁혀 오고 있었다.

연환합격진. 전생에서 수도 없이 겪은 진형이었다.

강휘의 손이 검집으로 내려갔다.

그때였다. 뒤에 있던 발소리가 한 걸음 물러났다.

반 박자 뒤, 다시 한 걸음.

강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 위로 스치는 바람의 결이 바뀌었고, 등 뒤에 있던 인기척이 잡목 너머로 희미해졌다.

석중원이 사라졌다.

묵영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시 석중원이 물러난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더니, 입가에 엷은 웃음이 올라붙었다.

“쥐새끼는 도망이 빠르군요.”

그 말에 좌우 대원들의 발걸음이 더욱 재빨라졌다. 다섯이 동시에 움직였다. 앞의 셋은 검을 빼들며 반원을 그렸다. 뒤의 둘은 오른쪽 측면으로 돌아 포위를 완성했다.

다섯 자루의 검이 같은 각도로 강휘를 겨누었다. 칼끝이 아침 햇살을 받아 깜빡였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묵영건이 검을 들어 강휘의 미간을 겨누었다.

“순순히 포승을 받으시겠습니까.”

강휘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물 빠진 청색 도포의 소매를 스치며 매화 자수가 잠깐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덫을 놓을 거면 제대로 놓으라고 전했을 텐데.”

목소리는 건조했다.

“전언은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준비했습니다.”

묵영건이 검을 치켜올렸다. 합격진 개시 신호였다.

앞의 셋이 동시에 찔러 들어왔다. 세 개의 검이 강휘의 상체 왼쪽, 오른쪽, 중앙을 각각 겨누며 한 호흡에 뻗어 왔다. 검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도 간격은 오차 없이 일정했다.

반 박자 뒤, 뒤의 둘이 낮은 자세로 뛰어들며 다리를 노렸다.

다섯 방향에서 온 공격이었다.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이 뚫리는 구조였다. 전형적인 연환합격진의 시동 초식이었다.

강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왼발을 반 보 앞으로 내디뎠다.

오른쪽에서 오는 검을 검등으로 쳐내는 동시에 몸을 반 바퀴 틀었다. 중앙을 향하던 검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왼쪽 검은 그대로 흘려보내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아래에서 들어오는 두 개의 검을 허리 높이에서 한 번에 막아 올렸다.

다섯 대원의 호흡이 동시에 흐트러졌다. 이 진형의 첫 합격을 이렇게 파훼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강휘의 검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아 올린 그 자세 그대로, 검끝이 오른쪽 대원의 손목으로 떨어졌다.

얕은 상처였다. 하지만 오른손 검을 떨어뜨리기엔 충분했다.

검 한 자루가 돌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진형을 바꿔라!”

묵영건이 외쳤다. 목소리에 당혹이 섞여 있었다.

대원들이 재빨리 발을 옮겼다. 검을 잃은 대원은 뒤로 물러서고, 나머지 넷이 전후좌우로 포진을 바꿨다. 네 개의 검이 동시에 회전하며 압축해 들어왔다.

강휘는 숨을 들이마셨다.

전생에서 이 진형을 상대할 때 청성파 정통 검법으로는 최소 반 시진이 걸렸다. 합격진은 청성파 검법의 정형화된 초식에 맞춰진 방어 체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강휘의 검이 움직였다. 매화검법의 초식은 분명했다. 매화가 가지를 틀듯 검끝이 위로 솟았다. 하지만 완성형으로 가지 않았다. 초식의 중간에서 궤적을 비틀어 수평으로 찔러 들어갔다.

왼쪽 대원이 허둥지둥 검을 들어 막았다. 그 순간 강휘의 검이 다시 위로 꺾였다. 원래의 초식이라면 없는 움직임이었다.

검등이 대원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원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네 명의 합격에 금이 갔다. 나머지 셋이 당황한 기색으로 간격을 좁히려 했지만, 이미 틈이 벌어졌다.

강휘의 왼손이 허공에 떴다. 검을 쥐지 않은 손. 손가락이 짧게 꺾이며 매화검법의 또 다른 초식을 암시했다.

오른손 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초식은 ‘매화만지’의 첫 동작이었다. 하지만 허리 높이에서 멈춰야 할 검이 그대로 올라가 대원의 턱을 강타했다.

피가 튀었다. 대원 하나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묵영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강휘가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전진했다. 물러나는 대원들의 틈새를 그대로 파고들어, 중앙에 선 묵영건에게 접근했다.

남은 두 대원이 양옆에서 협격을 걸어왔다. 강휘는 오른쪽 검을 검끝으로 받아내며 몸을 숙였다. 왼쪽 검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 자세에서 일어서며, 검을 수직으로 찔러 올렸다. 매화검법이 아니라 짧은 찌르기. 묵영건의 오른쪽 어깨를 겨눈 초식이었다.

묵영건이 급히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한 박자 늦었다. 강휘의 검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복이 찢어지며 붉은 선이 번졌다.

묵영건은 이를 악물었다. 부상 부위를 감싸 쥐며 뒤로 물러나는 대신, 남은 왼손으로 검을 고쳐 쥐고 내려쳤다.

강휘는 받아내지 않았다. 대신 왼발로 땅을 박차고 오른쪽으로 피했다. 묵영건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돌바닥에 불꽃을 튀겼다.

그 틈에 강휘의 검이 묵영건의 손목을 내리쳤다.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묵영건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휘는 검끝을 그의 목에 겨누었다.

숨소리만 들렸다. 전투 시작부터 끝까지, 길어야 한 식경이 걸렸을 뿐이었다.

쓰러진 대원 셋은 움직이지 못했다. 하나는 무릎을 꿇은 채 신음을 흘렸고, 다른 둘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남은 대원들은 검을 잃고 뒤로 물러서 있었다.

묵영건은 목에 닿은 검끝을 노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소매를 적시고 있었다.

“청성파 정통 매화검법이 아니군요.”

묵영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고통과 분노,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톤이었다.

“파문된 지 며칠 만에 검로를 바꾼 겁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묵영건의 시선이 강휘의 눈을 파고들었다. 강휘는 대꾸하지 않았다. 검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섰다.

묵영건이 쓰러진 채로 갑자기 웃음을 흘렸다. 피가 섞인 거친 숨소리였다.

“석중원. 그 자식.”

그가 고개를 돌려 석중원이 사라진 방향을 턱으로 가리켰다.

“쥐새끼는 결국 제 주인을 알더군요.”

강휘의 눈빛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장 사형의 개새끼라는 걸 알면서도 붙여준 겁니까. 아니면 몰랐습니까.”

강휘는 답하지 않았다. 묵영건이 피 묻은 입술을 비틀었다.

“모르고 붙였다면 순진한 거고, 알고 붙였다면 목적이 있는 거고. 어느 쪽이든 재미있군요.”

묵영건이 엎드린 자세로 강휘를 올려다봤다. 비웃음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 자식, 전투 직전에 사라졌습니다. 지금쯤 장 사형에게 보고를 올렸겠죠. 강휘란 자가 정통 검법이 아닌 다른 검을 쓴다고.”

강휘는 검을 검집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보고하게 둬라.”

묵영건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미 알았나 보군요.”

강휘는 등을 돌렸다. 쓰러진 대원들 사이를 지나 함곡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묵영건의 목소리가 등을 때렸다.

“대사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강휘는 죽어야 한다고. 제대로 죽이지 않으면 이번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강휘의 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말씀하셨죠. 석중원은 믿지 말라고.”

묵영건은 마지막 말을 뱉고 바닥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어깨의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강휘는 잡목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등 뒤로 묵영건의 거친 신음과 대원들의 움직이는 기척이 점점 멀어졌다.

함곡관의 그림자가 아침 안개 너머로 나타났다. 관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문 앞에는 장사치 몇이 짐을 정리하며 개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석중원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키 큰 잡목들이 바람 없이 서 있었고, 새 한 마리 울지 않았다.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묵영건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석중원은 믿지 말라고.’

입가에 씁쓸함이 스쳤다.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우스웠다. 그는 전생에서도 믿은 적 없었고, 이번 생에서도 믿지 않았다.

다만 이용할 뿐이었다.

손가락이 허공에서 짧게 꺾였다. 매화 검리 하나가 주먹 안으로 접혔다.

강휘는 함곡관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석중원이 여기서 사라졌다면, 장한걸에게 첫 보고가 아니라 두 번째 보고였을 것이다.

전서구가 북쪽으로 날아갈 시간을 계산하며 강휘는 천천히 걸었다. 복수는 아직 개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꽃잎은 이미 바람을 타고 있었다.

석양이 함곡관 주막의 기와지붕을 붉게 물들였다. 강휘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찻잔을 손에 쥔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전투 후 경미한 피로가 어깨에 얹혀 있었지만, 허리는 곧았다.

주모가 다가와 술잔을 내려놓았다. “손님, 주문하신 술입니다.”

강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술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전장에서 묵영건이 흘린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석중원의 배신을 암시하는 듯한, 그러나 확정할 수 없는 말.

문이 열렸다. 발걸음 소리. 가벼운데도 리듬이 정확했다. 강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혼자 마시기엔 좋은 술이네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붉은 저고리에 금박 장식이 달린 손님이 맞은편에 앉았다. 고월이었다. 손님을 접대하는 말투였지만, 입가에는 경계가 풀린 미소가 감돌았다.

“혼자 온 것도 아닌데.” 고월이 술잔을 집어 들며 말했다. “동행자는 어디 갔어?”

강휘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잠시라.” 고월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손가락이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전장에서 청성파 추격대를 박살 냈다는 소문이 벌써 사방에 퍼졌더라. 파문당한 지 며칠 안 된 사람이, 매화검법으로 말이야.”

강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소문이 빠르군.”

“이 부근에 모르는 소식이 별로 없어서.” 고월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붉은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궁금한 게 있어. 장한걸이라는 사람, 알지?”

강휘의 손가락이 찻잔 가장자리에 멈췄다.

“청성파의 유망주. 검술도 뛰어나고, 사람도 좋고.” 고월의 말투에서 비웃음이 스쳤다. “헌데 그 사람, 재미있는 버릇이 있어. 상대와 겨눌 때 항상 오른쪽으로 발을 살짝 비틀어. 왼쪽 어깨가 미세하게 열리지.”

강휘는 술잔을 집어 들었다. 마시지 않았다.

“왼쪽에 신경 쓰지 않는 자는 오른손을 믿지 못하는 법이거든.” 고월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검사라면 누구나 알 만한 상식인데, 그걸 고치지 못한다는 건... 뭔가 있어서겠지.”

강휘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짧게 물었다. “왜 알려주지.”

“그냥.” 고월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이용할 수 있고, 장한걸은... 그렇지 않으니까.”

탁자 아래서 강휘의 엄지가 검지 굳은살을 눌렀다. 장한걸의 검술 습관이 그러했다. 전생에서도 똑같았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약점은 이미 파악했다. 이제 정보만 있으면 된다.

“동행하겠다는 뜻이군.”

“똑똑하네.” 고월이 일어섰다. “가는 길에 더 들려줄 이야기도 있고.”

강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잔은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은 채 탁자 위에 남았다.

“어디로 갈 생각이야?” 고월이 물었다.

강휘는 허리춤에 찬 독침 하나를 손끝으로 스쳤다. 전리품이었다. 청성파 추격대에게서 챙긴 사혈독침. 그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다.

“적산 폐사다.”

깊은 밤, 적산 폐사에서 삼 리쯤 떨어진 밀실. 벽면의 등불 하나가 방 안을 어둑하게 비추고 있었다.

장한걸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칠함이 놓여 있고, 그의 손가락이 뚜껑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규칙적인 소리.

문이 열리고 석중원이 들어왔다. 검은 망토 자락에 밤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는 말없이 마주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장한걸이 부드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강휘는 어떤 상태입니까. 전투 후 지쳤습니까? 부상은.”

석중원은 잠시 침묵했다. 등불 그림자가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일렁였다. “지쳤다. 하지만 경미한 타박상뿐이다.”

“매화검법은.”

“파문당한 자 치고는 능숙했다. 초식을 해체해서 썼다.”

장한걸의 손가락이 탁자에서 멈췄다. 미소가 한순간 굳었다. “해체해서요?”

“청성파 정통과는 달랐다. 실전 변형이다.”

“흥미롭군요.” 장한걸이 다시 미소를 회복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탁자 아래에서 살짝 떨렸다. “그것뿐입니까?”

석중원은 시선을 약간 옆으로 돌렸다. 벽면의 등잔불을 응시했다. “지는 않았다. 추격대장을 풀어줬다.”

“풀어줘?” 장한걸의 미소가 얇아졌다. “대체 왜.”

“모른다.”

석중원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허리춤의 단검을 쥔 손에 잠시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장한걸에게 강휘가 추격대장에게서 빼낸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 사혈독침에 대한 추궁도, 장한걸에 대한 경고도.

장한걸은 잠시 석중원을 응시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칠함을 열었다. 옥병이 등불 아래서 은은하게 빛났다.

“적산 폐사에 가십시오.” 장한걸이 말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명령이었다. “함정은 이미 설치했습니다. 독문에서 보내온 물건도 배치했고요. 강휘를 그곳으로 유인하십시오.”

석중원이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살짝 열렸다 닫혔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습니다. 사제를.” 장한걸이 옥병을 다시 칠함에 넣으며 말했다. “당신은 계속 동행하며 보고하십시오. 기회가 오면...”

장한걸이 손가락으로 자기 목을 가볍게 긋는 시늉을 했다. 미소는 여전했다.

석중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화상 흉터가 있는 오른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섭섭하십니까. 동료애라도.”

석중원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표정은 그대로였다. “아니다.”

장한걸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려 손을 뻗었다. 석중원이 반 보 물러서며 피했다. 장한걸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좋습니다. 나는 먼저 폐사로 가서 점검을 하겠습니다. 뒤따라 오십시오.”

장한걸이 칠함을 들고 밀실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석중원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등잔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림자를 길게 늘렸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왼쪽 쇄골 쪽으로 향했다. 옷깃 아래 문신이 숨겨진 자리다.

짧은 숨을 한 번 내쉬고, 석중원은 망토를 여몄다.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밖으로 나서자 짙은 어둠이 그를 감쌌다. 석중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강휘가 향할 길과 같은 방향, 적산 폐사로 향하고 있었다. 두 개의 길이 하나의 덫을 향해 수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매화에 핀 독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