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두 번 피다
3화
화개루 이층의 등불이 흔들렸다. 철호가 계단 입구에 서서 서문경을 올려다보았다. 화소월은 찻잔을 든 채 창가에 기대어 둘을 번갈아 보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문경은 몸을 반쯤 돌렸다. 손가락 끝이 검을 쥐는 각도로 굽어 있었다.
“순찰대가 파문된 자와 나눌 말은 적을수록 좋다.”
“흑풍림의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철호의 숨소리가 말 사이를 메웠다. “검흔은 사십오 도에서 오십 도 사이. 매화검법 외엔 그런 흔적을 남기는 초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뭘 듣고 싶으냐.”
“당신 검이 진짜라면, 전수 기록은….”
“전수 기록.”
서문경이 철호의 말을 잘랐다. 철호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제가 입을 다물었던 게 잘못이었습니다.”
“그걸 지금 입증할 수 있느냐.”
철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비전각 열람 기록을 구해오겠습니다. 백무영이 전수 기록을 수정한 날짜와 원본을 대조하면….”
“장담하느냐.”
“못 구하면 평생 순찰대를 벗겠습니다.”
서문경이 한 걸음 다가섰다. 철호는 물러서지 않았으나 숨을 삼키는 소리가 적막을 찢었다.
“가라. 네가 가져올 기록은 ‘빚’이 아니라 ‘증거’여야 한다.”
철호가 포권을 취했다. 주먹을 감싼 손가락이 마디마다 창백했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자 화소월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순찰대원을 손에 넣은 건가.”
“손에 넣은 게 아니라 빚을 준 거다.”
“빚을 줘서 무얼 받을 셈이지.”
서문경이 창가로 걸어갔다. 밤거리의 붉은 등불이 이층 바닥에 긴 그림자를 깔았다.
“기록. 백무영이 전수 기록을 조작한 증거. 그리고 침묵의 대가를 갚을 기회.”
“철호가 실패하면.”
“실패해도 백무영에 대한 의심은 이미 퍼진다. 기록을 찾으러 움직인 순간부터 누군가는 묻는다. 왜 순찰대가 옛날 파문 기록을 뒤지느냐고.”
화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가 탁자로 돌아가 찻잔을 챙겼다.
“그럼 이제 우리 쪽 말을 퍼뜨릴 차례군. 전달 경로는 확보했느냐.”
“화개루 하인 중 낭인 술집과 거래하는 이가 셋이다. 한 사람이 오늘 밤 객주에게 이 말을 건네면 사흘 안에 서문 밖 주막까지 퍼질 거야.”
“사흘은 길다. 백무영이 내일 오시에 진장로 회의를 연다.”
화소월의 손이 찻잔을 든 채 멈췄다.
“그걸 어떻게 알지.”
“짐작이다. 만독지환이 사라졌고 내 생존이 확인됐다. 서두를 수밖에 없는 쪽은 그쪽이다.”
화소월은 벽장에서 손가락 길이의 종이와 얇은 붓을 꺼냈다. ‘매화 두 번 피다’라는 다섯 글자를 썼다.
“누구에게 전달하나?”
“진장로 중 한 명. 전수 의례를 주관하는 자.”
“곽장로로군. 의례 절차를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인물이다.”
“매화 두 번 핀다는 말이 의례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으로 읽히게 해야 한다.”
“그가 이 말을 듣고 백무영의 검술을 검증하려 들 거라는 거지.”
“그럴 확률이 높다.”
화소월이 종이를 접어 도포 소매에 넣고 손뼉을 두 번 쳤다. 열서넛의 잡역부가 올라왔다.
“이걸 여관 골목 세 번째 문의 술장수에게 전해. 손에서 손으로, 말은 덧붙이지 말고.”
잡역부는 종이를 품에 넣고 사라졌다.
“내일 아침이면 곽장로의 귀에 들어가겠군.”
“의례를 앞둔 문파 안에선 한 가지 의문이 따라붙을 거다. 첫눈이 오기 전에 매화가 두 번 피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 말은 의례 절차 중 어딘가가 틀어졌다는 뜻이 아니냐고.”
서문경이 검 손잡이를 만졌다. 왼쪽 손등을 흰 천이 감싸고 있었다. 천 밑으로 새살이 돋은 흉터가 희미했으나, 검을 쥘 때면 그 부위로 내공의 흐름이 한 박자 늦었다.
“얼굴이 창백하군.” 화소월이 문설주에 기대어 그를 보았다. “만독지환의 부작용은 없고.”
“없다.”
서문경의 대답은 빨랐다. 화소월은 더 묻지 않고 창문을 닫았다.
“움직이지. 서문 밖 주막. 밤이 깊을수록 옥기린은 술 말고 다른 걸 판다더군.”
서문경이 다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등불 아래로 두 사람이 지나갔다. 술 취한 낭인 행색이었으나 걸음걸이가 정갈했다. 하나는 오른쪽 어깨를 절고 있었다.
“기다려.” 서문경이 낮게 말했다.
“왜.”
“저 아래 남자. 허리춤에 순찰대 패옥을 찼다. 같은 골목을 두 바퀴째 돈다.”
화소월이 창틀에 손을 얹고 시선을 좁혔다.
“백무영이 사람을 풀었나.”
“아니면 철호가 붙들린 거다.”
서문경이 검을 한 치 뽑았다. 금속 마찰음이 가느다랗게 울렸다. 화소월이 다시 손뼉을 쳤으나 계단 아래서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계집아이가 사라졌어. 내려간 지 한참인데 돌아오지 않아.”
“종이를 가지고 갔다면 붙잡혔을 확률이 높다.”
“어떻게 찾지.”
서문경이 검을 완전히 뽑았다. 검신에 이층 등불이 얇은 등선 하나를 드러냈다.
“내가 먼저 나간다. 뒤는 네가 맡아라.”
“백무영의 부하라면 널 노릴 거야.”
“오히려 잘됐다. 의심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게 내 쪽 전략이다.”
그가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래층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두 명의 인기척.
하나는 탁자 근처, 다른 하나는 주방 쪽. 둘 다 호흡이 고르지 않았다. 무인이다.
“화소월.”
“말해.”
“암호가 담긴 종이. 그게 곽장로에게 닿으면 백무영의 검술 정통성은 오늘 밤을 기점으로 의심받기 시작한다. 그 의심이 내일 회의에서 그의 목을 죌 거다.”
“종이를 지키려는 거냐.”
“아니. 잡역부를 지키려는 거지. 한 번 빚진 자의 목숨으로 내 일을 시작할 생각은 없다.”
서늘한 공기가 발목을 감았다. 서문경은 검을 든 손목을 틀어 초식을 취했다. 검날의 각도는 사십칠 도. 흑풍림에서 백무영의 어깨를 벤 그 각도 그대로였다.
백무영의 거처는 촛불 하나만 깜박이고 있었다. 어깨 붕대를 갈아매던 손이 멎었다. 초인종도 없이 문이 열렸다. 절룩이는 발소리. 사영이었다.
“진장로 회의는 내일 오시라며.”
사영은 대답 없이 탁자 위의 천 조각을 집었다. 흑풍림 현장에서 회수한 옷감이었다. 가장자리에 검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사영이 천을 백무영 앞에 던졌다.
“네 녀석 검술로는 이 각도가 안 나온다.”
“무슨 소리요.”
“매화검법. 사십오 도에서 오십 도 사이로 휜 검흔이 시체 세 구에 남았다. 죽은 놈들 전부 한 방이었다.”
백무영의 손이 붕대를 움켜잡았다.
“서문경은 죽었소. 내 손으로 파문시키고 확인까지——”
“시체를 찾았느냐.”
백무영의 입이 닫혔다.
사영은 손등의 칼자국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만독지환도 사라졌다. 거래 현장에 매화 흔적을 남긴 자가 누구냐. 네놈이 파문제자에게 전수 의례를 제대로 시켰다면, 그 초식은 나올 수 없었다.”
“의례 없이도 구사할 수——”
“거짓말.” 사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매화검법은 의례 없이 초식만 익히면 속도가 반으로 떨어진다. 검흔 각도가 흐트러진다. 현장의 각도는 정확했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백무영은 어깨 통증을 참으며 일어섰다.
“서문경이 살아 있다 해도 문파는 내 편이다. 내일 진장로 회의에서 그를 사파 첩자로——”
“문파 안에서 암호가 돌고 있다.” 사영이 말을 끊었다. “‘매화 두 번 피다’. 장로들 사이에서다. 네 검술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뜻이다.”
백무영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붕대를 쥔 손가락이 떨렸다.
“서문경이 퍼뜨렸다. 문파 밖 낭인 거점에서 시작됐다. 정보 출처를 추적해보니 네놈을 파문 회의 때 증언하지 않은 자와 접촉한 흔적이 있다. 철호라는 순찰대원이다.”
사영이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서문경의 예상 이동 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흑풍림 이후 화개루, 그리고 서문 밖 주점까지. 옥기린의 거처다.”
“옥기린이면 독을….”
“그래. 빼돌린 만독지환을 분석 중일 거다. 사흘 내 회수하라던 시한은 없다. 조건이 바뀐다.”
백무영의 시선이 사영에게 꽂혔다.
“진장로 회의 계획은 그대로 간다. 다만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사파에서 전사 열 명을 지원한다. 매복은 네가 설계해라.”
“대가는.”
“만독지환과 서문경의 시체, 그리고 옥기린의 분석 기록 전부를 사파에 넘긴다. 거부하면 너의 정체가 내일 진장로 회의 안건이 될 것이다.”
백무영의 턱이 굳었다. 왼손이 주먹을 쥐었다. 사영은 그 손을 보며 덧붙였다.
“네놈이 직접 죽여야 한다. 서문경을 네 손으로.”
“사흘 안에 못 찾으면 손가락 하나를 자르겠다던 그 말, 철회하는 것이냐.”
“손가락 대신 네놈의 매화검법 전수 기록을 문파 전체에 공개하겠다. 의례 없이 검술을 가르친 증거, 네가 조작한 전수 기록까지 포함해서.”
백무영이 탁자를 내리쳤다. 통증이 어깨를 찔렀다. “그건 나만 무너지는 일이 아니다. 사파와의 거래 전모가 드러나면——”
“우리는 빠진다. 네놈 혼자 파문당하고 끝이다.”
사영이 문 쪽으로 돌아섰다. 절룩이는 발걸음이 멈췄다.
“명심해라. 서문경을 찾는 것은 이제 사파의 공식 지시다. 전사 열 명은 내일 자정까지 네 거처 뒤편 숲에 도착한다. 실패는 없다.”
문이 닫혔다. 백무영은 선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 붕대 사이로 붉은 얼룩이 번지고 있었다. 상처를 손으로 눌렀다. 아팠기 때문에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서문경이 살아서 매화 흔적을 남겼다. 만독지환을 빼돌렸다. 낭인 거점에 암호를 퍼뜨렸다. 사영의 지원 병력은 통제를 벗어난 칼날이었다.
탁자 위에는 서문경의 예상 거처와 옥기린의 주점 위치가 적힌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백무영은 오른손으로 검을 집었다. 검집을 쥔 손이 떨렸다. 사파의 조건은 가혹했지만, 서문경을 죽여야 한다는 결론만은 같았다.
촛불을 불어 껐다. 어둠 속에서 발걸음이 문을 향했다.
밤이 깊어 서문 밖 묘지 쪽 길은 인적이 끊겼다. 화소월이 서문경의 반보 뒤를 따랐다. 그녀의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간판 없는 주막의 등불이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약초 썩는 냄새가 밤공기보다 짙게 감돌았다. 서문경이 문을 밀자 안쪽에서 놋쇠 저울 추 부딪는 소리가 멎었다.
“닫았네. 다음 날 해 질 녘에 오게.”
옥기린의 목소리였다. 탁자 위엔 약재 포장지와 유발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선반 위 병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약속보다 빨리 왔다.”
서문경이 문을 닫았다. 옥기린이 몸을 돌렸다. 화소월을 보자 그의 손이 저울 추 위에서 멈췄다.
“화소월.”
“오랜만이군, 옥기린.”
화소월은 탁자 옆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옥기린이 서문경을 바라봤다. “청성파 파문자가 화개루 정보주를 데리고 오다니. 거래 조건이 바뀐 건가.”
“아니다.” 서문경이 품에서 만독지환 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분석을 의뢰한다. 기한은 변함없다.”
“약재는.”
“낮에 전령이 가져올 거다. 루트는 확보했고.”
옥기린이 병을 집어 들었다. 유리병 안에서 짙은 자줏빛 액체가 흔들렸다. 그가 마개를 열려 하자 서문경이 손목을 잡았다.
“맨손으로 열지 마라. 냄새만으로 반응할 수 있다.”
“만독지환을 다룰 줄 아는 모양이군. 특정 향 말인가. 그걸 안다는 건 이미 노출 경험이 있단 뜻인데.”
서문경은 답하지 않았다. 몸을 굳히지도 않았다가, 이내 손을 거두었다. “분석에 필요하다면 이후에 다루겠다.”
“좋아. 삼 일 안에 향 반응 데이터를 뽑지.” 옥기린이 병을 쟁반 위에 올리고 천으로 덮었다.
화소월이 팔짱을 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이 거래가 단순 감정 의뢰가 아니란 뜻이야. 서문경이 생산한 정보는 나를 통해 흐른다. 네 분석 결과도 같은 흐름에 태울 수 있다. 조건은?”
옥기린이 그녀를 마주 봤다. “분석료 외에 네가 중간에 뗄 몫을 따로 요구한다는 건가.”
“정보선을 하나 더 확보하는 거지. 만독지환이 백무영 몫으로 넘어간 경로와 관련된 사파 쪽 움직임. 네가 듣는 대로 내게도 전해줘.”
옥기린이 입꼬리를 당겼다. “백무영이 빼돌린 물건에 사파가 개입했다. 인과가 복잡한데, 그걸 추적하면 위험도 따라온다.”
“이미 들어가기로 했어.” 화소월은 손바닥을 펼쳐 탁자 위를 가리켰다. “네가 아는 사파 독물 거래 루트 일곱 개. 그중 만독곡과 겹치는 건 셋이다. 그 셋에 공통으로 드나드는 낭인들 명단을 뽑아줘. 대가는 옛날처럼 정보 교환으로.”
“옛날처럼.” 옥기린이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삼 년 전 남만 밀무역 정보 이후 처음 듣는 말이군.”
서문경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로막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 유발을 집어 안쪽에 묻은 백색 가루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사향초 뿌리다. 어젯밤 조제한 건가.”
“약재 목록을 읽을 줄 아는 검객이라. 흥미롭군.”
옥기린이 선반 쪽으로 걸어가 작은 자물쇠가 달린 서랍을 열었다. 거기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내 화소월에게 건넸다.
“네가 말한 세 루트 명단. 지난달까지 갱신된 것이다. 대가는 이 물건을 문파 안에서 쓰일 정보로 가공해 나한테 사흘 안에 돌려주는 걸로.”
화소월이 명단을 접어 품에 넣었다. “충분해. 명단 가공은 내가 맡겠다. 빈방이 있나, 옥기린.”
옥기린이 안쪽 복도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곁방을 써라. 여기서 일하는 편이 너도 빠르겠지.”
“암호는.”
“매화 두 번 피다. 잊지 않았어.”
화소월이 자리에서 일어나 곁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잠시 발을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
“서문경. 네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는 거 알아. 그 독에 관해 네 몸에 벌어진 일.”
서문경의 손등이 순간 경직됐다. 화소월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좋아. 대신 필요할 땐 숨기지 마. 정보 동맹이 무너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녀가 곁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옥기린이 쟁반 위 천을 걷어내고 만독지환 병을 다시 들었다. 등불에 비춰 액체의 결을 살폈다.
“화소월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 처음 봤다. 네게는 꽤 진심인 모양이군.”
서문경은 대답 대신 옥기린이 가리킨 안쪽 방으로 걸어갔다. 좁은 방이었다. 침상 하나와 작은 탁자가 전부였다.
문을 닫기 전 옥기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해 뜨면 분석을 시작한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방에서 나오지 마라.”
서문경은 침상에 걸터앉았다. 주머니에서 만독지환 원본 병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병은 차가웠다. 전생에 이 독이 혈관을 타고 퍼지던 그 밤, 왼팔 전체가 얼음처럼 식어가던 감각이 지금은 없었다. 대신 병을 쥔 손끝만이 조금씩 저렸다.
서문경은 병을 품 깊숙이 넣고 눈을 감았다.
바깥에서 유발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옥기린이 분석을 위한 시료를 갈기 시작한 것이다. 약초와 광물성 가루가 섞이는 특유의 냄새가 문틈으로 스몄다. 한동안은 익숙한 냄새였다.
그러다 은은한 향 하나가 방 안으로 번졌다. 서문경의 감았던 눈이 떠졌다.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저리던 감각이 순간 날카로운 통증으로 변하며 손끝부터 검은 기운이 올라왔다. 혈류를 타고 독기가 급격히 요동쳤다.
서문경이 비틀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나려 했다. 탁자가 쓰러졌다.
곁방에서 화소월이 뛰쳐나왔고, 유발을 멈춘 옥기린이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서문경의 손끝이 일시적으로 검게 변해 있었다.
“이건…!” 옥기린이 숨을 삼켰다.
화소월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문경은 십 년 전 죽음의 고통을 떠올리며 비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