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날카로운 꽃잎은 독을 머금고

2화

이튿날 아침이었다. 취풍루는 중립 감시탑 남쪽 상단 거리 한가운데 자리 잡은 2층 주루였다. 장사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벌써 탁자 세 개가 차 있었다.

조운휘는 2층 구석 자리에 앉아 찻잔을 손에 쥐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는 식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 무거운 장화에 울리는 판자 소리. 팔찌와 염주가 허벅지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뒤섞였다.

우대협이 2층에 올라서며 손을 비볐다. 손가락 다섯 개에 반짝이는 가짜 보석이 아침 햇살에 번득였다. 그는 조운휘를 발견하자 굳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른 아침부터 이런 자리에 우대협 같은 분이 웬일이신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다가왔다.

“내가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조운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빈 자리 건너편으로 턱을 움직였다.

우대협이 앉으며 점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이층에 술 한 병 더! 그리고 안주는 돼지귀 편채로, 식초 많이 쳐서.”

그는 탁자 위에 팔꿈치를 올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염주가 탁자 모서리에 부딪혀 딸깍거렸다.

“우대협께서 나 같은 장사치를 찾을 일이 뭐가 있겠나만…… 그래도 귀한 걸음 하셨으니 일단 한잔하시지요.”

조운휘는 여전히 차를 쥐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우대협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정보를 산다.”

목소리는 앳되고 메마른 음색. 감정 없이 뱉은 세 글자.

우대협의 눈빛이 반 순간 날카로워졌다가 이내 호탕한 웃음으로 덮였다.

“허허, 그런 일이야 거리마다 넘쳐나지 않습니까. 나 같은 늙은이가 뭘 알겠나…… 우대협께서는 대체 무슨 정보를 찾으시는데?”

“청운검문이다.”

조운휘가 말했다. 공기 중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술을 나르는 점원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우대협의 손가락이 콧수염 밑에서 멈췄다.

“청운검문이요…… 그건 또 갑자기 왠……”

“흥정할 생각 없으면 자릴 떠라.”

조운휘는 말을 자르며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어깨가 돌아가고 왼팔 붕대가 살짝 비쳤다. 일어난 김에 벽에 기대 세워둔 검집을 들 기세였다.

우대협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trazia. 그가 급히 허리를 숙여 말했다.

“아, 잠깐잠깐만 기다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청운검문이라면…… 내가 알 만한 게 있을지도 모르지요. 앉으세요 우대협. 일단 술이나 한잔……”

점원이 술병과 돼지귀 편채를 탁자에 내려놓고 물러났다. 우대협은 손수 술을 따라 조운휘 앞에 내밀었다.

조운휘는 술잔을 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하나 묻지.”

“말씀하시지요.”

“십 년 전, 청운검문에서 파문당한 제자가 있었다.”

우대협의 술잔을 채우던 손이 멈칫했다. 술이 탁자 위에 두세 방울 튀었다.

“아…… 그게…… 그런 일이 있었던가 모르겠네……”

우대협이 고개를 갸웃하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술을 삼키는 동안에도 그의 눈동자는 곁으로 흔들렸다.

“파문 낙인은 목 왼쪽에 새겨졌다. 사유는 독왕곡과 내통.”

조운휘의 손가락이 제 찻잔을 한 번 두드렸다. 찻잔이 미세한 소리를 냈다.

“그 문파에서 그 사건의 속내를 아는 자는 문주와 대사형뿐. 그런데 그날 밤…… 후원 서고 바깥을 청소하던 하인이 한 명 있었다.”

우대협의 술잔이 탁자 위에 떨어졌다. 술이 그의 화려한 청록색 비단 앞섶으로 쏟아졌다. 우대협은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의 콧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걸 어떻게……”

말은 존대였지만 목소리는 이미 반쯤 무너져 있었다.

조운휘가 말을 이었다.

“파문된 제자는 후원 서고에서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하인은 그걸 보았다. 독왕곡과의 서신을 사부에게 올리려던 찰라, 대사형이 서신을 빼앗아 불태우는 걸.”

우대협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가 술병을 집어 잔도 없이 입에 직접 털어 넣었다. 술기운이 얼굴로 올라왔다. 두 뺨이 붉어지고 눈자위가 충혈되기 시작했다.

“아…… 우대협도 참…… 옛날이야기 좋아하시네……”

술기운에 어미가 허물어졌다. 이제 존대가 아니라 반말이었다.

“그 하인 말이지…… 나는 그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아마 그 뒤로 바로 산에서 내려왔을 거야. 겁에 질려서…… 문파의 일은 절대 밖에서 말하지 말라던데……”

우대협이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오래된 두려움이 술에 녹아 혀끝으로 흘러나왔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대사형 그 양반…… 그때 서고 안에 누군가 있었거든. 그림자…… 검은 무복을 입은 자…… 서찰을 주고받았어. 그 하인이 담벼락 틈으로 봤는데…… 봉함에 붉은 독충 문양이……”

우대협이 문득 제 말에 스스로 놀라 말을 멈췄다.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술기운이 확 가셨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나는 무슨……”

조운휘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대협이 더듬거리는 동안, 그는 천천히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술을 묻혀 글자를 하나 썼다.

서(書)

문자 모양을 그려내는 굳은살이 손가락 마디에 또렷이 드러났다.

“그 서찰이다. 사본을 내놔라.”

우대협은 술잔을 떨어뜨린 채 탁자 가장자리로 물러앉았다. 염주가 덜컹거렸다.

“아…… 그게 무슨 소린지…… 나…… 나는 정보상일 뿐이야. 글자라고는 장부에 숫자나 쓰는 인간이…… 그런 서찰을 왜 갖고 있겠어……”

그의 말은 이미 부정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조운휘는 손가락을 내려 탁자를 한 번 더 두드렸다. 건너편 계단 아래 주방에서 냄비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점원들이 장사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청운검문 하인이 산 아래로 내려와 정보상이 되기까지는 자금이 필요했다. 그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알고 있다.”

조운휘의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대협은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의 구레나룻이 젖어 있었다. 땀인지 술인지 모를 액체였다.

잠시 뒤 우대협이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한참 만져대더니 낡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서 접힌 종이 뭉치가 나왔다.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려 종이를 탁자 위에 깔았다.

“이건…… 사본이야. 진짜 원본은 불탔지. 그 하인이…… 아니, 내가…… 다시 베껴 적은 거…… 이재혁 대사형이 독왕곡에서 올라온 자에게 건네받은 서찰 내용이야.”

종이는 누렇게 바래고 접힌 자리마다 섬유질이 해어지기 시작했다. 조운휘는 손을 내밀었다. 집게와 중지 사이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눈으로 훑었다. 글씨는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붉은 독충 문양이 사선으로 찍혔다는 묘사, ‘약속한 약재는 청운검문 경비로 조달한다’는 문장, 그리고 맨 아래 작은 글씨.

곧 수습한다. 눈에 띄는 자는 없앤다.

조운휘의 손이 종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도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도 없었다. 다만 종이를 쥔 두 손가락 마디만 하얗게 질렸다.

우대협은 고개를 숙인 채 침을 삼켰다.

“이재혁 대사형은…… 이제 문주 대리잖아…… 독왕곡이랑 연결된 증거를 쥐고 있다는 걸 그자가 알면…… 나는 끝장이야…… 우대협, 제발……”

“하나 더.”

조운휘가 서찰 사본을 접어 품에 넣으며 말했다.

우대협의 눈이 공포로 젖었다.

“그…… 그게 뭔데……”

“청옥 반지.”

우대협이 뒷걸음질치듯 의자를 밀었다. 다리가 탁자 아래에 걸려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건…… 그건 지금 문주 대리 왼손에 꿰어 있는 물건 아닌가…… 내가 어떻게 그걸……”

“정보로 좋다. 반지 안쪽 글자를 확인할 방법만 대라.”

우대협의 손이 콧수염을 움켜잡았다. 거의 뜯을 기세였다. 그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반지…… 원래는…… 문주 대리 인장이 아니야. 독왕곡에서 보내온…… 청운검문의 정수 비급과 교환한 독공 방어구 중 하나였어. 안쪽에 독왕곡 증표가 새겨졌다는 소문은 들었지…… 하지만 요즘 이재혁은 그걸 빼지 않아. 함께 먹고 자는 모양이야. 확인하려면 그자가 반지를 벗을 때뿐인데……”

조운휘는 잠시 침묵했다. 취풍루 1층에서 행인의 웃음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알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집을 집어 왼손에 쥐었다.

우대협이 급히 일어서며 말을 막았다.

“우대협! 대관절…… 대관절 뭘 하시려는 겁니까……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운휘는 허리춤에서 작은 나무쪽을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거기에는 성도 외곽 대나무 숲 중턱의 표식이 칼로 새겨져 있었다.

“열흘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발견한 정보를 이곳까지 보내라.”

“열…… 열흘이요?”

“네 목숨을 살리는 방법이다.”

조운휘가 등을 돌렸다. 그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우대협은 탁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식은 술병이 넘어지고 쏟아진 잔이 굴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웅얼거렸다.

“하…… 하늘에 맹세코…… 나는 그날 밤…… 그냥 청소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 눈물이 가짜 보석 반지를 적셨다.

조운휘는 이미 상단 거리로 사라졌다. 그의 손에 쥔 검집이 바람에 실린 먼지를 가르며 흔들렸다. 왼팔 붕대 아래로 잠룡독의 어두운 기운이 잠시 꿈틀거렸다가 가라앉았다.

정오 무렵, 대청의 가마솥은 식은 지 오래였다. 당예린은 책상을 창가로 옮겨 놓고 혈액 샘플이 든 작은 도자기 병을 빛에 비춰 보았다.

어제 해질녘 채취한 조운휘의 혈액이었다. 병 속에서 검붉은 액체가 천천히 점성을 바꾸고 있었다. 그녀는 병을 내려놓고 책자를 펼쳤다. 전날 기록한 쌍극합일 체질 데이터 옆에 새 줄을 그었다.

잠룡독 진행 속도 측정 — 1일 차.

좌측 견정혈에서 천천혈 방향 이행 거리: 예상치 대비 삼 할 증가.

붓끝이 멎었다. 당예린은 다시 병을 집어 들었다. 독기 반응은 어제보다 짙어져 있었다. 쌍극합일 체질 때문일 터였다. 두 상반된 기운이 경맥에서 충돌할 때마다 독이 경로를 넓혀 가는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사천 말씨가 짧게 튀어나왔다. 그녀는 붓을 탁자에 내려놓고 허리춤 약통 하나를 열었다. 손톱으로 청색 가루를 조금 집어 병 속에 떨어뜨렸다. 혈액이 미세하게 부글거리더니 검은 김을 한 가닥 뿜었다.

김은 곧 사라졌다. 당예린의 눈이 좁아졌다.

잠룡독이 단순히 빠른 게 아니었다. 문파에서 파문할 때 찍는 낙인과 체질이 서로 증폭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낙인의 잔류 기운이 독경 이론에서 말하는 '기 타고 전이되는 독'의 성질을 배가시키는 중이었다.

“이러다 한 달 안에 천천혈 뚫리겠네.”

당예린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약통을 닫았다. 책자를 접어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추가 진단이 필요했다. 지금 가진 샘플만으로는 정확한 속도 곡선을 그릴 수 없었다.

그녀는 벽장에서 작은 대나무 통을 꺼냈다. 전서를 보내는 도구였다. 종이 조각에 붓을 대고 몇 글자를 눌러 썼다.

중립 감시탑 동쪽 삼 리. 버려진 약재 창고. 내일 진시.

붓을 거두고 종이를 대나무 통 안으로 밀어 넣었다. 통 바닥에 앉힌 훈련된 작은 박쥐가 날개를 폈다. 당예린은 박쥐의 등에 종이를 묶고 창문을 열어 주었다. 박쥐는 대나무 숲 사이로 사라졌다.

그녀는 문틀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거래는 이제 단순한 체질 데이터 교환 이상이 되고 있었다. 독이 예측보다 빠르면 치료 횟수도 늘어난다. 매번 침과 해독제가 들어가고, 매번 그녀의 기록은 두꺼워진다. 대가도 다시 산정해야 했다.

당예린은 눈을 뜨고 약통들이 달린 허리띠를 만지며 대청을 나섰다. 폐가로 가기 전에 부족한 해독제 재료를 챙겨야 했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오후의 객잔은 한산했다. 중립 감시탑 동쪽 사거리 모퉁이, 지붕 낮은 찻집이었다.

조운휘는 구석 탁자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찻잔이 아닌 종이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우대협에게서 받은 이재혁의 서신 사본이었다.

종이는 이미 몇 번 접었다 폈다 한 흔적이 역력했다. 가장자리가 땀에 절어 물결무늬로 구겨져 있었다. 조운휘는 서신을 다시 펼쳤다.

필체를 보았다. 이재혁의 글씨였다. 획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반듯했지만, 마지막 획마다 미세하게 각도가 틀어져 있었다. 왼쪽으로 기우는 버릇. 청운검문 대사형 시절부터 고치지 못한 습관이었다.

조운휘는 서신의 내용이 아닌 필획의 압력 차이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떤 글자는 유독 먹이 짙었다. '처리', '잔여', '곡주'. 먹압이 강해진 자리마다 의미가 겹쳤다.

독왕곡.

손가락이 종이 모서리를 밀었다. 종이가 반으로 접혔다.

청옥 반지의 문양은 서신에 직접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혁이 문주 대리 추대식에서 받은 반지 안쪽에 독왕곡의 증표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서신의 필체와 반지의 존재는 별개가 아니었다. 같은 손이 썼고, 같은 손이 그 반지를 끼고 있었다.

조운휘는 종이를 다시 반으로 접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직각이 정확히 맞게 접었다. 접힌 종이가 탁자 위에 작은 사각형으로 놓였다.

그때 객잔 바깥에서 작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대나무 통에서 풀려난 박쥐가 창틀에 앉았다. 박쥐의 등에는 종이 조각이 묶여 있었다.

조운휘는 종이를 풀어 읽었다. 당예린의 글씨였다.

중립 감시탑 동쪽 삼 리. 버려진 약재 창고. 내일 진시.

한 줄이었다. 잠룡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진시까지 기다리라는 것은 진단이 그만큼 시급해졌다는 뜻이었다.

조운휘는 전서를 접어 품에 넣었다. 서신 사본도 함께 집어넣으려다 멈췄다. 종이를 다시 펼쳐 접힌 자국 반대 방향으로 반듯하게 접었다. 흔적이 남지 않게 네모로 정리했다. 품속에 밀어 넣고 찻값을 탁자 위에 놓았다.

객잔을 나섰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길 위에 비스듬히 깔렸다.

조운휘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쯤, 객잔 맞은편 이층 건물의 처마 밑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감시탑 소속의 낮은 복면을 한 인영이었다. 인영은 조운휘가 사라진 골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안의 작은 목패를 만지작거렸다. 목패에는 구파일방의 감시탑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인영은 그림자 속으로 다시 녹아들었다. 골목은 텅 비었다.

날카로운 꽃잎은 독을 머금고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