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꽃잎은 독을 머금고
3화
밤이었다. 독왕곡 외곽 습지, 썩은 물풀 냄새가 허공에 가라앉아 있었다.
조운휘는 일부러 물이 고인 곳을 밟았다. 첨벙, 소리가 주변보다 크게 났다. 오른손은 검자루에 가지 않았다. 왼쪽 어깨를 약간 처뜨리고, 부상을 입은 낭인처럼 보폭을 좁혔다.
습지 가장자리에서 횃불 두 개가 동시에 켜졌다.
“멈춰라.”
어둠 속에서 검은 무복의 순찰조 셋이 튀어나왔다. 선두가 검을 반쯤 뽑으며 다가왔다.
“이 앞은 독왕곡이다. 출입 금지 구역.”
조운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네 걸음 더 걸어 그들과 일곱 자 거리까지 좁힌 뒤에야 멈춰 섰다.
“길을 잘못 들었다.”
사과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순찰조장이 턱짓을 하자 나머지 둘이 좌우로 퍼졌다.
“몸에 지닌 것을 내려놔라.”
조운휘는 검집을 천천히 풀어 땅에 던졌다. 단도도 꺼내 같은 자리에 놓았다. 순찰조장이 다가와 횃불을 그의 얼굴 가까이 들이댔다. 불빛이 목 왼쪽의 붉은 흉터를 비추자,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파문 낙인이군. 정파 도망자?”
조운휘는 침묵했다. 사내가 검을 완전히 뽑아 그의 가슴께에 겨누었다.
“네놈이 뭘 들고 오든 독왕곡 경계를 넘었으니 규칙대로다.”
그가 왼손을 올리자 손가락 사이로 쇠로 된 침 세 개가 보였다. 일반 무인의 기를 일시적으로 봉쇄하는 독기침이었다.
“움직이면 기혈을 찌른다.”
조운휘는 숨을 고르게 들이쉬었을 뿐,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침이 날아왔다. 좌측 견정혈, 우측 완골, 등허리 중추혈. 그는 피하지 않았다. 침 셋이 전부 박혔다.
무릎이 먼저 꺾여 진흙 속에 박혔다. 왼팔이 축 처지고 호흡이 짧아졌다. 독기침의 한기가 경맥을 타고 내려갔다.
“쉽군.”
순찰조장이 다가와 양 손목을 뒤로 꺾어 차가운 쇠수갑을 채웠다. 조운휘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눈빛이 영 개운치 않은 놈이네.” 순찰조장이 허리를 펴며 내뱉었다. “곡주님께 보고할 만한 물건일지도 모르겠군. 목의 흉터며 저 낙인은 청운검문 것이다.”
조운휘의 시선이 진흙 위에 드리운 제 그림자에 고정됐다. 계획대로였다.
순찰조 둘이 그의 양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독기침이 박힌 오른팔이 힘없이 흔들렸으나, 조운휘는 억지로 끌려가며 걷는 시늉을 했다.
습지를 벗어나자 바위 벽과 쇠문이 나타났다. 문지기가 다가와 짧은 말을 주고받았다.
“정체는?”
“청운검문 파문자. 독기침 세 개 맞았다. 경비를 뚫고 들어오다 붙잡혔어.”
문지기가 목의 낙인을 재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쇠문이 열렸다. 바위를 파서 만든 긴 복도에는 푸른 불꽃을 뿜는 소형 화로가 일정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독왕곡의 공기에는 독성 기운이 미세하게 섞여 있다는 소문을 기억하며, 조운휘는 호흡을 최소한으로 얕게 가져갔다.
복도를 지나자 곡주의 거처가 나타났다. 검은 대리석 바닥, 희귀 약재와 독초가 진열된 장식장들, 중앙의 낮은 탁자 위에는 서찰 두어 장이 흩어져 있었다.
순찰조장이 조운휘를 벽 쪽으로 밀치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곡주님께서 곧 오신다.”
쇠사슬이 바닥의 철환에 연결되며 그는 무릎 꿇은 자세로 고정됐다. 순찰조장이 몸을 대충 수색해 품속에서 접힌 종이 더미를 꺼냈다. 이재혁의 서신 사본이었다.
“이게 뭐지.”
사내가 종이를 펼치자 푸른 불꽃 아래로 독왕곡과 청운검문 사이의 문자들이 드러났다.
“이거…… 이건 우리 곡주님께서 보내신……”
순찰조장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
“이 자, 그냥 도망자가 아니야.”
그때, 복도 저편에서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리석 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순찰조 셋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문이 열리고 독왕곡주가 들어왔다.
키가 큰 그는 온통 검은색 두루마기에 얼굴 절반을 가린 철가면을 썼다. 가면에는 제 꼬리를 무는 독사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었으나, 그 걸음걸이는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호신용임을 알 수 있었다. 깊고 누런 눈동자는 비정상적으로 세로로 길었다. 독공 수련이 극에 달한 자의 징후였다.
곡주가 조운휘 앞에 멈춰 서서 목의 낙인에 시선을 두었다가, 바닥에 흩어진 서신을 내려다봤다. 순찰조장이 급히 아뢰었다.
“곡주님, 이 자의 품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외곽 습지를 넘다 붙잡혔고, 목에는 청운검문 파문 낙인이……”
곡주의 왼손이 올라가자 말이 뚝 끊겼다. 그는 손가락 하나로 서신을 집어 들었다.
“이 서찰.”
쇠를 갈아 만든 듯 낮고 거친 목소리였다.
“어디서 났지.”
조운휘가 대답하지 않자, 곡주가 지팡이를 그의 턱 밑에 갖다 댔다. 차가운 금속 끝이 피부에 닿았다.
“말해라.”
“알아서 판단해라.”
조운휘의 음성은 담담했다. 곡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팡이가 내려가고, 왼손 검지가 조운휘의 이마에 닿았다.
손가락 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독공의 내공을 시험하려는 순간, 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하급 제자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곡주님, 급보입니다. 감시탑 측에서 우리 동쪽 경계로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곡주의 손이 멈췄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감시탑이 왜.”
“확인 중입니다. 다만 이 낭인을 포획한 시각과 거의 일치하여……”
곡주가 조운휘를 내려다봤다. 계산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가 순찰조장을 향해 말했다.
“이 자를 여기에 묶어둬라. 나는 동쪽 경계를 확인하고 오마. 독기 제압 장치를 추가해라. 움직이면 즉시 독이 퍼지게.”
“예, 곡주님.”
곡주는 지팡이를 한 번 두드렸다. 복도로 나가기 전, 잠시 발을 멈추고 조운휘를 돌아봤다.
“서찰을 가져온 낭인이라…… 흥미롭군.”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순찰조가 거처 밖으로 물러나 문 앞에 두 명이 지키고 섰다.
조운휘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기침에 막힌 혈도는 열리지 않았지만, 그는 내공 없이도 몸을 움직이는 데 익숙했다. 허리와 어깨 근육을 순차적으로 수축시켜 쇠사슬 범위 안에서 몸을 기울였다. 오른손가락이 바닥에 닿자 굳은살이 박인 검지와 중지로 대리석 틈을 더듬었다.
아까 곡주가 이마에 손가락을 댔을 때 드러난 손목의 움직임. 왼손 검지 공격은 검술의 변형이었다. 청운검문에는 왼손 검술을 구사하는 이가 거의 없었으나, 선대 기록에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파문된 숙적. 문파에서 이름조차 지워진 자.
조운휘는 이를 악물고 쇠수갑의 이음새를 더듬었다. 독왕곡은 독기 제압 장치에만 신경 썼을 뿐, 물리적 포박은 일반적이었다.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쇠수갑과 피부 사이로 비집어 넣고 손가락을 비틀어 쇠붙이 틈을 벌렸다. 관절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왼쪽 손목이 조금씩 빠져나왔다.
바로 그때, 시선이 탁자 위에 멈췄다. 곡주가 읽던 서찰이었다. 종이의 재질과 먹의 광택이 달랐다. 원본이었다.
조운휘는 오른손을 완전히 빼냈다. 왼손은 아직 묶인 채였으나, 상체를 최대한 숙여 탁자 쪽으로 기어가 손가락으로 서찰 모서리를 집어 들었다.
읽었다. 이재혁의 글씨가 아닌 곡주의 필체였다. 독왕곡주가 이재혁에게 보내는 회답이었다.
*……보내온 데이터는 확인했다. 쌍극합일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그 체질이 진정한 쌍극이라면 단순 독공으로는 제어할 수 없다.
잠룡독의 기반을 심는 것은 대사형 네게 맡기겠다. 초기 주입 후 독의 진행 속도는 체질에 따라 예상의 몇 배로 빨라질 것이다. 그 전에 충분한 데이터를 모아라.……*
손가락이 멎었다. 이재혁이 파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체질을 알고 있었다. 잠룡독은 형벌이 아니었다. 체질의 오작동을 유도해 데이터를 모으는 실험이었고, 그 데이터의 첫 수혜자는 독왕곡주였다.
조용히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도구를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서찰 원본을 반듯하게 접어 품속에 밀어 넣자 접힌 모서리가 옷깃 안쪽에서 살에 닿았다.
왼손을 쇠수갑에서 빼낸 후, 천천히 일어서 벽의 진열장을 훑었다. 더는 정보를 캘 여유가 없었다. 이 서찰 하나면 충분했다.
바로 그때, 복도 저편에서 느린 걸음이 들려왔다. 곡주가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조운휘는 거처 뒤쪽의 작은 환기구를 찾아냈다. 바위 틈으로 난 좁은 통로였다. 독기침에 막힌 혈도 탓에 내공은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순수 근육의 힘으로 올라야 했다.
그는 손가락을 바위 틈에 걸었다. 굳은살이 돌에 긁히며 하얀 자국을 남겼다. 오랜 단련이 이런 순간에 쓸모 있었다. 조운휘는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곡주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거처 문 앞에서 멈추는 소리와 함께 문지기가 아뢰는 목소리가 들렸다.
“곡주님, 감시탑 동향은……”
“조용히. 포로는.”
곡주의 음성이었다.
조운휘는 마지막으로 팔을 당겨 환기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품속에 접힌 서찰이 흔들리며 갈비뼈를 쳤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거처 안으로 울려 퍼졌다.
새벽 숲길은 안개가 허리 높이까지 차 있었다. 조운휘는 길가 느티나무 아래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뻗고 있었다.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 감각도 둔해져 땅바닥 돌부리를 손바닥으로 누르고서야 겨우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호흡이 짧았다. 들숨보다 날숨이 길었다.
잠룡독이 견정혈에서 천천혈 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느낌이 뚜렷했다. 독기가 경맥을 타고 퍼질 때마다 피부 아래로 차가운 것이 기어가는 듯했다. 목 왼쪽의 파문 흉터가 붉게 부풀어 올랐다. 낙인의 잔류 기운이 독경의 기 전이 성질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낙엽을 밟는 가볍고 빠른 걸음이었다. 허리춤에서 약통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따라왔다.
당예린이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자주색 당삼 소매가 이슬에 젖어 진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왼손에는 대나무 통, 오른손은 이미 손가락 사이로 네 개의 침을 꽂아 쥐고 있었다.
“진시 약속까지 기다리기엔 네 상태가 좀 급하더라.”
당예린은 조운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톱에 말라붙은 약재 가루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가 왼쪽 손목을 집어 올리자 조운휘는 자신의 살갗이 얼마나 식었는지 깨달았다.
“독이 경맥 절반쯤 왔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진통이 두 번은 왔을 텐데.”
조운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예린은 침을 좌측 견정혈 주변에 차례로 꽂았다. 침이 피부를 뚫을 때마다 검은 액체가 침 끝을 따라 배어 나왔다. 씁쓸한 냄새가 새벽 공기 속으로 번졌다.
비단 주머니에서 작은 옥패를 꺼냈다. 독충 문양이 푸르게 변색했다. 잠룡독 반응이었다. 당예린은 옥패를 목 흉터 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푸른 빛이 더 짙어졌다.
“파문 낙인이 이렇게까지 독을 증폭시킬 줄은 몰랐다.”
그녀는 침을 한 개 더 꺼내 천천혈 방향으로 찔러 넣었다. 이번에는 침을 돌리지 않고 곧바로 손바닥을 그의 어깨 위에 얹었다. 손바닥에서 열이 올랐다. 독공이 발동되고 있었다.
조운휘는 그 열이 경맥을 타고 퍼지며 차가웠던 독기가 견정혈 방향으로 후퇴하는 것을 느꼈다. 손끝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이것도 대가다.”
당예린이 손바닥을 뗐다. 이마에 얇은 땀이 맺혀 있었다. 독공을 시전하는 데 적지 않은 내공을 소모한 모양이었다.
조운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기록하지.”
당예린은 품에서 접은 책자를 꺼내 무릎 위에 펼쳤다. 이미 준비된 가는 붓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빗금이 빠르게 종이를 스쳤다.
“파문 낙인과 잠룡독의 증폭 비율, 침술에 대한 독기 역류 속도, 독공 제압 시 체온 회복 패턴까지. 네 체질 데이터는 정말 쓸모가 많아.”
그녀는 붓을 말아 넣고 책자를 접어 품에 넣었다. 옥패도 비단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네 다리는 해가 뜰 때쯤 움직일 거다. 다만 이건 응급 처치일 뿐이고 근본 치료는 아니야. 잠룡독은 재발한다. 그것도 더 빠르게.”
조운휘는 오른손을 폈다 쥐었다. 감각이 돌아왔다. 검지와 중지의 굳은살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는 검집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데이터는 충분히 받았으니 됐다.”
당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춤의 약통을 정리했다. 뒤돌아서서 대나무 숲 쪽으로 두어 걸음 걷다가 멈췄다.
“아, 맞다. 네 오른손 굳은살 말인데.”
고개만 살짝 돌렸다. 황금빛 눈이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빛났다.
“매화검법 익힌 사람에게서 나는 굳은살과는 위치가 다르더라. 네 검은 청운검문의 검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미세하게 비껴 나간 변형이 가해져 있어. 그게 뭔지는 다음 대가로 받기로 하지.”
조운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예린의 발소리가 대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약통 부딪히는 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안개가 다시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채웠다.
조운휘는 허리띠를 조였다. 검을 왼쪽으로 약간 틀어 위치를 바로잡았다. 걸음을 뗐다. 왼쪽 다리는 아직 무거웠지만 땅을 짚을 수는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중립 감시탑 동쪽 은신처는 폐기된 염색 공방이었다. 뒷방 벽에는 오래된 염료 자국이 얼룩져 있었고 천장 한쪽이 무너져 빛이 비스듬히 들었다. 바깥에서는 감시탑 순찰대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오갔다.
조운휘는 낡은 탁자 위에 독왕곡 서찰 원본을 펼쳐 놓았다. 붓을 들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글자를 하나씩 짚어가며 읽었다. '처리', '잔여', '곡주'.
먹압이 강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획마다 미세하게 왼쪽으로 기우는 버릇. 이재혁의 글씨였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다시 짧게 두 번.
조운휘는 서찰을 접어 품에 넣었다.
“열었다.”
우대협은 문을 밀고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우대협, 부르셨습니까. 아직 해가 중천도 안 떴는데 이렇게 급히 찾으라 하시니 무슨 일이신지…”
조운휘는 탁자 위에 작은 종이 조각을 올려놓았다. 은어로 된 간략한 지시문이었다. 우대협은 종이를 집어 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재혁의 서신 습관… 최근 3년간 청운검문 밖으로 보낸 모든 서한…”
콧수염이 움찔거렸다. 손가락 다섯 개에 끼운 가짜 보석 반지들이 탁자에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그걸 조사하라니, 우대협. 이건 중립 감시탑의 서고 기록까지 뒤져야 하는 일입니다. 그쪽은 구파일방의…”
“네가 이미 감시탑 서기보에게 빚을 받을 게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우대협의 입이 다물어졌다. 쥐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청옥 반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왕곡 증표가 안쪽에 새겨졌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다. 하지만 그 반지가 어떤 대장간에서 만들어졌고 같은 문양이 찍힌 다른 물건이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건…”
“삼 일.”
조운휘는 탁자 위에 염료 방 출입 목패를 하나 더 올려놓았다. 감시탑 관할 구역의 염색 공방 노동자들이 쓰는 것이었다.
“조사가 끝나면 이 목패를 제시하고 염색 공방으로 와라. 취풍루는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우대협의 손이 목패와 은어 서신을 더듬어 쥐었다. 반지들이 다시 한 번 딸깍거렸다. 그는 허리를 더욱 숙였다. 등에서 땀이 배어 비단 옷감이 등에 들러붙었다.
“목숨 걸고 해내겠습니다, 우대협.”
“목숨은 네 것이다. 정보만 가져와.”
우대협은 뒷걸음으로 문 쪽으로 물러났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문틀에 어깨를 부딪혔지만 사과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발소리가 공방 바깥 골목으로 멀어져 갔다.
조운휘는 의자를 빼서 앉았다. 오른손으로 느리게 칼자루를 감아쥐었다. 굳은살이 손잡이의 오래된 천에 닿았다. 품속에서 독왕곡 서찰 원본을 다시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천장의 부서진 틈 사이로 오전 햇살이 비스듬히 떨어졌다.
왼쪽으로 기우는 마지막 획들. 먹이 짙게 눌린 세 단어. 약속한 약재는 청운검문 경비로 조달한다는 문장까지.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 그 손이 지금 청운검문 문주 대리의 청옥 반지를 끼고 있다.
조운휘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이재혁의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릴 계획이 마음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갔다. 서찰의 필적과 청옥 반지의 내력, 그리고 독왕곡과 청운검문 사이의 은밀한 거래 정황이 증거로 연결되는 지점들이 하나씩 분명해졌다.
“네가 쌓은 명성은 네 손으로 쓴 이 종이부터 무너질 것이다.”
목소리는 빈 벽에 부딪혀 금세 사라졌다. 바깥 골목으로 감시탑 순찰대의 발소리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조운휘는 서찰을 접어 품속 깊이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