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매화검독(梅花劍毒)

2화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흙길을 지나, 당소란의 은거처는 골짜기 안쪽에 숨어 있었다. 약초 냄새가 바람보다 먼저 다가왔다. 달고 쓴 향이 겹쳐 코끝을 찔렀다. 강유신은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독초 특유의 비릿한 감촉이 혀뿌리에 맴돌았다.

작업실은 안채보다 넓었다. 벽 선반마다 질그릇과 백자병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탁자 위에는 약재를 빻던 막자사발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검게 그을린 작은 화로에서는 식은 재 냄새가 배어 나왔다.

“비급.”

강유신은 품에서 기억을 옮겨 적은 종이를 꺼냈다. 당소란은 보자기를 풀었다. 누렇게 바랜 비급 반쪽이 반듯하게 접힌 채 나왔다. 종이 가장자리는 불에 그슬린 듯 오래전 잘려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 조각을 탁자 위에 나란히 펼쳤다. 당소란의 비급은 오른쪽 면이 칼로 벤 듯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강유신이 전생의 기억으로 적은 부분은 왼쪽에서 시작하는 서두였다. 종이 질감은 달랐다. 당소란의 것은 닳아서 올이 보일 정도였고, 강유신의 묵은 사흘 전 귀곡에서 산 먹물 자국이 선명했다.

“글씨가 맞물리는지 보자.”

당소란이 작은 램프를 가까이 당겼다. 불빛이 비급의 글자를 핥았다.

강유신이 기억한 서두를 천천히 읽었다. “독은 맥을 타고 기를 멈춘다. 기가 멈춘 곳에 꽃이 핀다.”

당소란의 손가락이 자기 비급의 끊긴 부분을 짚었다. “…그 꽃은 피를 빨아 자라며, 열매는……”

“이어지긴 한다.” 당소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를 스치며 살짝 떨렸다.

강유신은 말없이 이어지는 부분을 훑었다. 기억 속 페이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열매는 독을 품고 씨를 흩뿌린다.

그 씨는 사지 끝에 맺히고……* 그 다음은 비급의 기호들이 나왔다. 세 개의 사선이 원을 가로지르는 문양. 톱니처럼 굽은 능선과 그 위에 찍힌 점 세 개.

당소란이 기호를 가리켰다. “당문의 방식이 아니다.”

“중원 것도 아니야.” 강유신이 짧게 답했다. 전생에서 남궁세가의 서고를 뒤질 때 본 적 없는 문양이었다.

당소란은 자기 비급의 뒷면을 뒤집어 모서리에 작게 새겨진 글자들을 더듬었다. “결정구를 찾아야 해. 어머니가 남긴 주석이다. 독공의 입문은 기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 풀이를 적어두지 않았다면……” 말을 맺지 않았다.

강유신은 두 조각을 문장 순서대로 포개 읽기 시작했다. “독은 맥을 타고 기를 멈춘다…… 꽃은 피를 빨아 자라며…… 씨는 사지 끝에 맺히고…… 거기서……”

말문이 막혔다.

당소란의 비급에는 ‘거기서 가지를 내려 심장을 향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강유신의 기억 속에는 거기서 뿌리를 내려 단전으로 흐른다였다.

“갈라진다.” 당소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장과 단전. 하나는 혈도를 통한 급소 공격의 논리였고, 다른 하나는 내공 자체를 오염시키는 심법의 경지였다. 같은 독초로 시작했지만 수련법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네 기억이 틀린 건가.”

“기억은 정확해.” 강유신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럼 내 어머니가 틀린 건가.” 당소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낮아졌다. 차분해진 말투 속에 칼날이 숨었다.

강유신은 대답 대신 두 구절을 번갈아 짚으며 기호의 배치를 살폈다. 당소란의 비급에는 심장으로 향하는 경로에만 해독 가능한 주석이 붙어 있었다. 강유신의 기억 속 구절은 해독의 반대였다. 독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독으로 무공을 완성하는 쪽.

“의도된 거다.”

“무엇이?”

“원본 자체가 두 갈래였다. 누군가 일부러 두 길로 적었다. 하나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게.”

당소란은 비급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가 남긴 쪽은 ‘심장’을 택했고, 강유신이 기억하는 다른 반쪽은 ‘단전’을 서술했다. 두 길은 상반됐다. 하나를 버리지 않고는 다른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구조였다. “반쪽끼리 연결되는 것만 확인하고 끝인 건가.” 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

당소란은 비급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가 보자기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반쪽을 조심스럽게 접어 소매 안쪽 주머니로 밀어 넣었다. “보관은 각자 하는 편이 낫겠군.” 싸늘하게 가라앉은 어조였다. 실패를 받아들인 목소리였다.

강유신은 자기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탁자 위에는 해독을 위해 옮겨 적은 사본들이 흩어져 있었고, 먹물이 마르지 않은 종이 몇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당소란은 줍지 않았다. 등을 돌리고 선반으로 걸어가 약재 단지들을 손끝으로 밀며 정리하는 시늉만 했다. 어깨가 평소보다 반 치쯤 올라가 있었다.

강유신은 그 등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더 시도해 보자.”

당소란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검과 독.”

당소란이 돌아보았다.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비급의 글이 두 갈래로 갈린다면, 실제 움직임에서 답이 나올 수도 있다.”

“글을 비틀어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이제 몸으로 비틀어 보겠다는 겁니까.” 비꼬는 말투가 아니었다. 진짜 궁금해하는 어조였다.

강유신은 끄덕였다. 당소란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강유신의 오른손으로 내려갔다. 검지와 중지의 굳은살이 탁자 위로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앞마당을 쓰시죠.”

아침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바위와 마른 나무가 흩어져 있는 공터는 해가 들기 전까지 습기가 차 있었다. 당소란은 마당 귀퉁이로 물러섰다. 등 뒤로 바위 하나가 그녀의 체구를 반쯤 가렸다.

강유신은 공터 중앙에 서서 장검을 뽑았다. 매화검법, 낙화. 검끝이 흐트러지며 부서지는 꽃잎을 그렸다.

마비독을 검풍에 실었던 귀곡 골목의 우연을 떠올리며, 의도적으로 독을 상상했다. 검초가 바뀌었다. 열한 번째 초식, 잔매.

열두 초식 중 내공이 낮으면 시전할 수 없는 마지막 셋 중 하나였다. 전생에서도 익히지 못한 초식이었지만, 전생의 기억이 근육에 남아 있어 뼈대는 알고 있었다.

그 뼈대를 비틀었다.

검을 휘두르는 궤적에 독을 실었다. 내공을 검 끝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독기를 타고 흐르는 기의 흐름을 역이용하려 했다. 검날이 공기를 갈랐다.

첫 번째 원을 그렸다. 두 번째 원을 그리려는 순간—— 팔뚝의 경맥이 뒤틀렸다. 내공이 손목에서 막혔다. 독기를 머금은 기운이 역류하여 팔꿈치 안쪽을 타고 어깨로, 척추로 타고 올라갔다.

강유신의 등이 굳었다. 검을 쥔 오른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검끝이 바닥을 향해 축 처졌다.

내공을 거둬들였다. 역류한 기운이 가슴 한복판에서 멈춰 버렸다. 몇 번 호흡을 가다듬자 열기는 식었지만, 검지와 중지에는 미세한 저림이 남았다.

당소란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입을 열기까지 잠시 사이가 있었다. “정파의 검법은 원래 그런 겁니까.” 목소리는 차분했다.

“모든 걸 바로 세우려는 태도. 독이라는 건 본래 비뚤어진 흐름을 타는 겁니다. 곧은 검에 비뚤어진 기운을 싣겠다고 하면서, 정작 검법의 궤적은 단 하나도 버리지 않더군요.” 바위에서 등을 떼며 한 걸음 다가왔다.

“처음부터 틀렸습니다. 매화검법을 변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절반만 비틀겠다는 거죠. 독을 다루는 자라면, 자신의 가장 완성된 초식을 버리거나 망가뜨려야만 독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는 걸 왜 모르시는지.”

당소란의 시선이 강유신의 오른손에 멈췄다. “그 손, 오늘 중으로 약초를 달여 씻으십시오. 독기가 경맥에 남았습니다.”

자리를 돌아 안채로 향하려는 그때, 날갯짓 소리가 났다. 회색 비둘기 한 마리가 공터로 내려앉았다. 오른쪽 다리에 가느다란 대롱이 묶여 있었다.

당소란의 눈이 좁아졌다. “전서구.”

비둘기는 당소란의 발치에 내려앉아 다리를 들었다. 당소란은 대롱을 풀어 말아 넣은 쪽지를 꺼냈다. 펼쳐서 읽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온 겁니다.”

강유신이 받아 들었다. *남궁의 꼬리가 움직인다. 방향은 귀곡.

이틀 안에 당도할 것이다. 오독문 쪽에서 새는 냄새를 따라 너희 쪽으로 붙을 공산이 크다. — 방심은 접어둬.* 철위령의 글씨였다. 장난기라곤 없는 건조한 필체였다.

강유신은 쪽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당소란은 이미 몇 걸음 물러서서 바위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다시 꼈다. “남궁세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말은 가늘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내게 묻고 싶은 게 없습니까.” 강유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보상은 당신에게 뭘 줬습니까. 아니, 무엇을 약속했습니까.”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당신의 복수. 거기에 내 목숨도 끼워 넣을 셈입니까.”

강유신은 쪽지를 품에 넣은 손을 그대로 두었다.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묵비권이로군요.” 당소란은 바위에서 몸을 뗐다. 걸어서 강유신의 옆을 지나쳐 안채로 향했다. 발걸음 소리가 삭정이를 밟으며 바스러졌다.

안채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먼저 손이나 씻으십시오. 그 정도 독기라도 방치하면 경맥이 굳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문이 닫혔다.

비둘기는 벌써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공터에는 검을 쥔 적 없는 바람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강유신은 품에서 쪽지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해질녘 빛이 판자 틈새로 얇게 갈라져 들어왔다.

당소란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강유신이 탁자 앞에 앉은 지 한참. 전서구 쪽지는 이미 탁자 구석에 놓여 있었다.

“더 사적인 곳에서 말하라.”

당소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여긴 벽이 얇다.”

그녀가 먼저 들어가 탁자 위 촛불을 켰다. 습기 냄새가 방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둘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침묵. 촛농이 탁자에 떨어지는 소리만 두 번.

강유신이 손가락을 펴서 탁자 위를 짚었다. 마른 나무 결을 따라 선을 그었다.

“곽영주. 지금은 청성파 장문인이다. 전생에서 내 사형이었다.”

선 하나를 짧게 긋고, 그 끝에 작은 점을 찍었다.

“이 자가 넘긴 건 청성 비전 세 초식과 해독법이다. 받은 쪽은 남궁세가.”

당소란이 탁자 위의 선을 내려다보았다. 습기로 손가락 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그 남궁세가와 오독문. 무슨 관계지.”

“오독문은 이미 궤멸됐다. 청성파가 주도했고, 곽영주가 지휘했다.”

당소란의 시선이 강유신의 얼굴로 옮겨붙었다.

“곽영주가 오독문을 없앴고, 그 공으로 남궁세가에 비전을 넘겼다. 그런 말인가.”

강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궁세가는 이미 귀곡 외곽에 사람을 풀었다.”

전서구 쪽지를 탁자 중앙으로 밀었다. 남궁, 귀곡 외곽 정찰대 목격. 철.

“네 복수가 내게 무슨 기회인지.”

“남궁세가가 오독문을 추적하고 있다. 그들이 찾는 건 오독문 잔당이다. 당신도 그중 하나.”

당소란의 입술이 얇게 다물렸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림자가 벽에 일렁였다. 그녀가 어깨에 걸친 남색 배자를 한 번 여몄다. 손끝이 충분히 느렸다.

“추적받는 자가 추적자를 공격한다. 그 논리라면 당문 방계에겐 무리다.”

“혼자면. 내 검과 당신의 독. 추적자는 매복자가 된다.”

당소란의 손가락이 탁자에서 떨어져 무릎 위로 내려갔다.

“네 복수심에 내 목숨을 거는 꼴이군.”

“당신 은거처도 이미 안전하지 않다. 오늘 철위령이 보낸 정보 하나로 남궁 정찰대의 위치를 알았다. 다음은 당신 은거처다.”

당소란의 호흡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녀가 탁자 위의 선들을 응시했다. 손가락 자국은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증명하라. 말만으로는 안 된다. 네가 말한 그 연결고리.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강유신이 손을 뻗어 촛농이 굳은 자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하얀 조각이 탁자에 떨어졌다.

“내일 새벽 귀곡을 떠난다. 당신 은거처로 가는 길에 남궁 정찰대의 흔적을 보여주겠다.”

“보여주지 못하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당소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탁자 위 인맥도에서 촛불로 옮겼다. 그녀의 손이 배자 안쪽 주머니를 짚었다. 작은 종이 봉투 하나가 스치는 소리만 났다. 밖에서는 이미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당소란이 은거처 입구까지 걸어갔다. 문턱에 서서 바깥 어둠을 등졌다. 달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강유신이 그 뒤를 따라 문턱까지 왔다.

“그 정보상.”

당소란이 문고리를 짚으며 말했다. 밖을 보지 않고.

“네게 배신할 이유가 없는 자인가.”

강유신의 발걸음이 멈췄다.

당소란은 몸을 반쯤 돌렸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옆얼굴에 희미한 촛불이 닿았다.

“그가 남궁세가를 미워하는 이유와 네 복수가 겹칠 뿐이라면. 넌 그의 칼일 뿐이다.”

강유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문틈으로 울었다.

당소란은 그 침묵을 더 기다리지 않았다. 문을 닫았다. 빗장 걸리는 소리. 그다음 발걸음이 안쪽으로 멀어졌다.

강유신은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품속에서 전서구 쪽지를 꺼내 손에 쥐었다. 바람이 손등을 스치고, 쪽지 한쪽 끝이 접혀 올라갔다. 손가락으로 다시 눌러 접었다.

그가 왜 이 정보를 흘렸는지.

당소란의 질문이 귀에 남아 있었다. 배신할 이유가 없는 자인가. 그 말은 강유신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물음이었다.

달이 구름 사이로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가려졌다. 숲 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오솔길의 낙엽을 굴렸다. 강유신은 은거처에서 몇 걸음 떨어져 오솔길 입구에 섰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닿았다. 미세했다. 바람에 실려 온 것인지, 실제로 숲 저편에 사람이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강유신이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틀었다. 수풀 사이 나뭇잎 하나가 바람 없는 곳에서 살짝 흔들렸다.

그 순간, 은거처 안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대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짧은 소리 하나. 그러고는 다시 정적.

수풀 쪽 인기척이 뒤로 물러났다. 발걸음은 숲 깊숙이 사라졌다. 지켜보는 자의 움직임이었다.

강유신은 전서구 쪽지를 품에 도로 넣었다. 오른손이 검자루에 닿았다 떨어졌다.

외부의 감시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매화검독(梅花劍毒)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