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매화검독(梅花劍毒)

3화

달이 구름에 완전히 가린 시각이었다.

강유신은 오솔길 입구에서 발을 돌렸다. 수풀 쪽 인기척은 사라졌지만, 그것이 물러난 방향이 숲 깊숙한 곳이 아니라 은거처를 빙 둘러 우회하는 동선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발소리 듣는 법은 청성파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다.

은거처 정면으로 돌아와 문 앞에 섰다. 빗장이 걸린 문 너머는 조용했다. 당소란의 발걸음은 이미 안쪽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강유신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등을 문에 기대고 선 채로 검을 품에 안았다. 눈을 감지 않았다.

한 식경쯤 지났을까. 바람이 멎었다. 숲의 밤벌레 소리가 일제히 끊겼다. 그 정적은 인위적인 것이었다. 강유신이 눈을 떴다.

동시에 은거처 지붕 서쪽에서 기와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가벼웠다. 바람에 굴러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무게가 실린 발이 디뎠다가 급히 뗀 자리였다.

그다음, 앞쪽 수풀에서 쇳소리가 세 번 울렸다. 표창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날아오는 소리. 하나는 창문 틈을 뚫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둘은 벽에 박혔다.

강유신은 몸을 문 옆으로 붙였다.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안에서는 이미 움직임이 들렸다. 맨발로 마룻바닥을 밟는 경쾌한 소리. 당소란의 발걸음이었다.

그 소리가 선반 쪽에서 멈추더니, 작은 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직후, 은거처 바깥의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푸른 연기가 땅에서 치솟았다. 당소란이 미리 묻어둔 독초 가스였다.

연기는 허리 높이까지만 퍼지고 그 위로는 올라오지 않았다. 바닥을 기는 짐승처럼 수풀 사이로 번져갔다. 바람 없는 밤이라 가스는 흩어지지 않고 은거처 주변을 감쌌다.

서쪽 수풀에서 비명이 짧게 터졌다. 곧바로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둘이었다.

기침 사이사이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헐떡임이 섞였다. 발걸음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다.

은거처 정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당소란이 문을 반만 열고 강유신을 들여보냈다. 남색 배자 안쪽에는 이미 작은 독침 통이 채워져 있었고, 왼손에는 갈색 약병을 쥐고 있었다.

“다섯이다. 둘은 가스에 걸렸고, 셋은 피했다.”

당소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사람 같지 않았다.

“정문과 지붕.”

강유신이 말했다.

“그렇겠지.”

당소란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약병을 강유신에게 건네며 덧붙였다.

“지혈초와 마황을 섞은 거다. 독가스 중화제. 네 검엔 바르지 마라. 내 독을 나중에 쓸 거니까.”

강유신은 대답 대신 약병을 받아 손등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따끔한 감각이 피부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지붕이 찢어졌다. 기와 세 장이 한꺼번에 안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파편이 거실 탁자를 때리고 흩어졌다. 동시에 정문 바깥에서 발소리가 두 개, 동시에 달려들었다. 강유신과 당소란은 등을 맞댔다.

강유신이 검을 뽑았다. 날에 촛불이 반사되어 당소란의 얼굴을 한 번 스쳤다.

지붕에서 첫 번째 자객이 떨어졌다. 검은 복면에 짧은 단도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있었다. 착지와 동시에 바닥을 굴러 강유신의 왼쪽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정문이 박살났다. 두 번째 자객이 장검을 세워 들고 뛰어 들어왔다. 당소란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른 손목을 한 번 틀자 소매 안에서 쇠침 세 개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왼쪽 놈은 내가 맡는다. 앞쪽을 맡아라.”

강유신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앞쪽 자객의 장검이 거실 중앙을 가로질러 찔러 들어왔다. 청성파 검법과 비슷한 궤적이었지만, 중간에 팔목을 꺾어 칼끝을 약간 비트는 버릇이 있었다.

오독문의 검술에 청성파의 겉모양만 덧씌운 가짜였다. 강유신은 한 걸음 왼쪽으로 비켜섰다. 상대의 검이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강유신이 검을 들어 올리지 않고 오히려 낮게 내리깔았다. 매화검법 제5초, 낙매의 시작 자세였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았다.

검의 궤적을 중간에 비틀어 상대의 칼등을 타고 미끄러지듯 밀어 올렸다. 상대가 균형을 잃은 순간, 강유신은 상대의 손목을 밟고 뛰어올랐다. 떨어지면서 상대의 오른쪽 옆구리에 검을 박았다.

날이 갈비뼈 사이로 파고들었다. 자객이 비명을 질렀다. 허파에 바람이 새는 숨소리였다. 장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왼쪽에서 당소란의 쇠침이 날아갔다. 첫 자객이 단도로 침을 쳐냈다. 한 개는 단도에 맞고 튕겨 나갔다.

그러나 당소란은 그걸 예상한 듯, 첫 침이 날아가는 동시에 두 번째 침을 더 낮은 각도로 던졌다. 자객의 허벅지에 박혔다. 자객이 움찔했지만, 곧바로 단도를 쥔 손을 풀지 않았다.

“오독문 출신이로군.”

당소란이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독침을 맞고도 버티는 걸 보면. 내가 아는 얼굴인가.”

자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침에 발린 독이 신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지붕에서 세 번째 자객이 뛰어내렸다. 이번에는 비수 한 자루만 들고 있었다. 칼날에는 검푸른 액체가 얇게 발려 있었다. 강유신이 옆구리에 박힌 검을 뽑았다. 쓰러진 자객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세 번째 자객이 비수를 역수로 고쳐 쥐며 말했다.

“매화검법…… 청성파 놈이 여기 왜 있어.”

강유신은 묻는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상대의 발놀림을 보았다. 오른발을 앞으로, 왼발을 사선으로 두는 자세. 찌르기보다는 베기에 특화된 오독문 단도술이었다.

당소란이 강유신의 등 쪽에서 낮게 속삭였다.

“검을 조금만 내려 보십시오.”

강유신은 말없이 검을 허리 높이까지 낮췄다. 당소란의 손가락이 날의 중간쯤을 스치며 지나갔다. 손끝에 묻은 무색의 액체가 검푸른 빛을 띠며 강철 날 위에 얇게 번졌다.

“일곱 호흡 안에 놈의 피부에 닿지 않으면 날에 묻은 독이 증발한다.”

당소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객이 달려들었다. 비수가 허리를 향해 수평으로 그어졌다. 강유신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대신, 몸을 낮춘 채 앞으로 파고들었다.

자객의 비수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유신의 검이 상대의 오른쪽 팔뚝을 베었다. 옷이 찢어지고 살갗이 벌어졌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소란의 독이 묻은 날이 스친 자리였다.

자객이 팔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신경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손가락이 굳으며 비수를 떨어뜨렸다.

독이 퍼지는 속도가 빨랐다. 오독문 출신이 익히 아는 독이 아니었다. 당소란이 직접 조제한 신경 마비 계열이었다.

자객이 무릎을 꿇었다. 강유신이 검을 내렸다.

거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옆구리가 베인 자객은 숨이 멎어가고 있었고, 신경 독에 당한 자객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머지 둘은 독초 가스에 노출되어 은거처 바깥에서 기어 나가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다섯 중 하나만이 지붕 너머로 도주했다.

당소란의 손이 다시 소매 속으로 들어가 독침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쓰러진 자객의 맥을 짚어보며 말했다.

“오독문. 맞군. 수법은 옛날 그대로다. 독을 쓸 생각은 하고, 독에 당할 생각은 안 한.”

강유신이 검을 천으로 닦으며 돌아섰다. 그때 오른손 검지가 살짝 저렸다. 낮은 각도로 들었던 검날이 상대의 비수를 쳐냈을 때,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보기에는 작은 상처였다. 새끼손톱 너비만 했다. 베인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천천히 맺혔다.

문제는 비수에 묻어 있던 독이었다. 그리고 당소란이 자신의 독을 강유신 검에 발랐다는 사실이었다.

강유신이 검을 내리고 오른손을 들여다보는 사이, 상처 주변의 피부가 빠르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검붉은 빛에서 푸른빛으로, 다시 검은빛이 섞였다. 당소란이 다가왔다. 강유신의 손목을 잡고 상처를 보았다.

“비수에 발린 건 오독문의 사혈독. 내 검에 발린 건 신경 마비 계열의 한소산. 이 둘이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강유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팔뚝까지 변색이 번지고 있었다. 어깨 쪽으로 푸른빛이 실핏줄을 타고 올라갔다. 체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었다. 반응은 빠르고 조용했다.

“나도 모릅니다. 이런 혼합은 본 적이 없어요.”

당소란이 강유신을 침상 쪽으로 밀었다. 강유신이 앉으려다가 오른팔을 짚지 못하고 옆으로 기울었다. 당소란이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받쳤다.

“누우십시오.”

당소란은 이미 소매에서 해독침을 꺼내고 있었다. 바늘 네 개. 굵기가 달랐다.

첫 번째 침은 어깨 안쪽 움푹 파인 곳에 꽂혔다. 팔을 타고 올라가는 독기를 내려가게 하는 당문의 침법이었다. 두 번째는 팔꿈치 위, 세 번째는 팔 중간, 네 번째는 손등으로 흐르는 핏줄을 찔렀다.

강유신의 호흡이 조금 느려졌다. 독의 확산은 멈췄지만, 이미 번진 부위는 여전히 검푸른 색이었다.

당소란이 자신의 왼쪽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소매를 약간 걷었다. 손톱으로 손목 안쪽을 살짝 긋자 얇은 핏줄이 나타났다. 그녀는 작은 침 하나를 꺼내 자신의 혈관에서 피를 빼냈다. 몇 방울이 침통에 고였다.

“혈청을 조제할 시간이 없습니다. 당문의 타고난 내성 체질에 기대는 수밖에.”

당소란이 자신의 피를 강유신의 상처에 떨어뜨렸다. 상처 가장자리에서 연기가 살짝 올랐다. 강유신의 팔 근육이 경련하듯 한 번 수축했다 이완됐다. 독의 확산은 멎었지만, 이제 그가 앓아야 할 몫이었다.

“회복은 보장하지 못합니다. 해독침은 시간을 번 것뿐이니까.”

강유신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눈동자의 초점이 약간 풀렸다가 다시 돌아왔다.

“청성파.”

짧은 한 마디였다. 당소란은 침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었다.

“지금 상태로 어딜 간다는 말입니까.”

“가야 한다.”

강유신의 목소리는 흐릿했지만, 발음만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의식이 가라앉았다 떠오르는 파도 같았다.

“곽영주가 지금 오독문 잔당 처리를 핑계로 당신 은거처를 쳤다. 다음은 청성파 내부의 흔적을 없애려 들 거다. 그전에 닿아야 한다.”

당소란은 침상을 떠나지 않았다. 강유신의 팔에 꽂힌 침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독의 색이 손등까지는 옅어졌지만, 팔뚝과 어깨 쪽은 여전히 짙었다.

“가시겠다면 말리지 않을 겁니다. 이 은거처도 오늘부로 끝이니까.”

당소란은 일어나 죽은 자객 쪽으로 걸어갔다. 허리춤에서 작은 청동 병을 꺼내 시체의 옷자락에 내용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부패 촉진 독. 옷과 살갗이 닿은 부분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남은 둘도 밖에서 처리하십시오.”

강유신이 말했다.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는 귀곡으로 간다. 거기서 이 혼합독의 해독법을 찾을 거요.”

당소란이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목소리는 앞서보다 오히려 가벼웠다. 위기가 지나간 뒤의 그 가벼움이 아니라, 결정을 내린 뒤의 건조함이었다.

“찾으면 보낸다. 당신이 죽든 살든, 그건 당신 몫.”

강유신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고개를 움직일 힘조차 아끼는 듯했다. 눈만 감았다.

당소란은 두 번째 시체에 부패 촉진 독을 떨어뜨리며 덧붙였다. 말투는 여전히 정중했으나 그 안에는 어떤 여운도 담기지 않았다.

“방해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첫 만남에서.”

강유신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당소란은 밖으로 나갔다. 가스에 쓰러진 자객 둘의 숨통을 먼저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독병이 깨지는 소리.

침묵. 발소리가 저만치 숲 쪽으로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 그녀가 은거처 문턱에 다시 섰을 무렵, 동녘 하늘이 짙푸른 색에서 회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침상 위에서 강유신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네 개의 은침이 오른팔에 꽂혀 있었고, 상처에서 스며나온 독혈이 침상을 적셨다. 호흡은 느리되 규칙적이었다.

당소란은 선반 위의 약재들을 천으로 싸기 시작했다. 몇 가지는 버리고, 몇 가지는 품속 주머니에 나눠 담았다. 은거처는 더 이상 은거처가 아니었다.

새벽 안개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은거처 안은 이미 빈집처럼 쓸쓸해졌다. 약 냄새와 독혈의 비릿함만 남은 공간에서, 강유신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텅 빈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무렵, 당소란은 마지막 남은 약병 하나를 식탁에 내려놓고 문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새벽 안개가 은거처 마당을 반쯤 채웠다. 당소란은 이미 짐을 꾸렸다. 약재 단지들은 빈 석회 구덩이에 쏟아부었고, 선반 위에는 먼지만 남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식탁 위에 올려둔 것은 푸른 빛이 도는 사기병 하나였다.

강유신이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오른쪽 소매를 걷자 팔꿈치 아래로 검붉은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손가락은 움직였다.

당소란은 그 손을 보지 않고 말했다.

“해독은 안 됐다. 독이 핏줄을 탔어. 지금은 팔꿈치 아래지만, 열흘 안에 심장에 닿을 거다.”

그녀는 사기병을 탁자 끝으로 밀었다.

“임시 해독제야. 이틀에 한 번씩 복용하면 독의 확산을 늦출 수 있다. 완치는 못 해.”

강유신은 병을 집어 품에 넣었다. 묵직했다. 그가 침상에서 내려서자 당소란은 한 걸음 물러섰다. 거리는 두 팔 정도.

“나는 귀곡으로 간다. 어머니 비급에 해독의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당소란은 보자기를 집어 허리춤에 묶었다. 해독침 세트가 담긴 가죽 주머니가 허리띠에 닿아 가볍게 부딪혔다. 그녀는 소매를 한 번 털고 어깨에 멘 작은 괴나리봇짐을 고쳐 맸다.

“당신은. 네 복수를 해라.”

강유신은 검을 집어 허리에 찼다. 칼자루에 손이 닿자 오른쪽 손목이 살짝 저렸다. 무시했다.

“해독제 다 떨어지기 전에.”

당소란이 문고리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돌아보지 않았다.

“찾아낸다.”

강유신의 대답은 짧았다. 당소란의 손이 문고리에서 잠시 멈췄다. 무슨 말을 더 할 듯했으나, 입술을 다물고 문을 열었다.

바깥 안개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당소란은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빠르고 가벼웠다. 안개가 금세 그녀의 남색 배자를 삼켰다.

강유신은 오른쪽 길로 나섰다. 그는 세 걸음쯤 걷다가 발을 멈추고, 품에서 전서구 쪽지를 꺼내 손바닥 위에 펼쳤다. 바람이 쪽지의 모서리를 접으려는 것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용당할 각오. 당소란의 전날 말이 떠올랐지만 곧 접었다. 쪽지를 다시 품에 넣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개 속으로 그의 회색 낭인복이 사라졌다. 은거처 마당에는 빈 탁자와 쓸린 흙바닥만 남았다.

이틀 뒤. 해는 중천에 걸려 있었다.

은거처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당소란이 불 질러 떠난 자리는 검게 그을린 돌담과 무너진 서까래만 남았다. 바람이 불자 재 냄새가 날렸다.

곽영주는 부하 둘만 대동하고 잔해 앞에 섰다. 한 명은 청성파 복장의 중년 검수였고, 다른 하나는 귀곡에서 고용한 사내였다.

“문주님, 이곳입니다.”

사내가 잔해 속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곽영주는 도포 자락이 재에 닿지 않도록 살짝 걷어 올렸다. 흰 비단 신발이 검게 그을린 돌을 밟자 미세한 소리가 났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전문 내용은.”

곽영주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중년 검수가 답했다.

“청성파 검술을 쓰는 자와 당문의 독을 쓰는 여자가 있었다 합니다. 오독문 잔당 소탕하러 온 본가 자객들이 전멸했고, 저 혼자 도주하여 연락처에서 전문을 띄웠다고.”

“검술.”

곽영주가 그 말을 곱씹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이 잠시 좁아졌다. 그는 천천히 잔해를 둘러보았다. 무너진 벽, 깨진 약병들, 바닥에 흩어진 탄화된 약초들.

그러다 걸음을 멈췄다.

쓰러지지 않은 나무 기둥 하나가 잔해 한가운데 서 있었다. 불길이 닿았으나 끝까지 타지 않은 심재 부분이었다. 기둥 표면에 길고 가는 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깊이는 손톱 두께만 했고, 각도는 비스듬했다.

곽영주는 기둥 앞에 무릎을 굽혔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검흔을 따라 천천히 더듬었다. 입구에서 중간쯤까지 오자 손가락이 멈췄다. 검흔의 깊이가 그 지점에서 갑자기 얕아져 있었다. 초식의 전환점이었다.

“매화검법 제7초식, 매화낙설.”

곽영주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말은 독백처럼 작았다. 그는 일어서서 검흔의 각도를 다시 보았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베인 자국. 그러나 완전한 매화낙설이 아니었다. 초식의 말미가 미세하게 틀어져 있었다.

그 변형을, 곽영주는 알고 있었다. 십 년 전 대련장에서 강유신이 물었다. “매화낙설 마지막 동작에서 손목을 비틀면, 상대의 왼쪽 옆구리를 칠 수 있습니다. 교본과 다르지만 실전에선 유용할 겁니다.” 곽영주는 그 변형을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교본에 실린 적 없는, 강유신이 혼자 몸으로 익힌 검로였다.

현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중년 검수는 곽영주의 어깨 너머로 검흔을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곽영주는 손수 허리춤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기둥에서 검흔이 있는 부분을 도려냈다.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그는 조각을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런 다음 도포 자락을 털며 일어섰다. 표정은 평온했다.

“청성파로 가는 모든 길목을 감시하라.”

곽영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했다. 중년 검수가 허리를 굽혔다.

“몇 명이나 배치할까요.”

“넷. 각 길목마다 한 명씩. 얼굴을 아는 자들로.”

“목격 즉시 어떻게 할까요.”

곽영주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초승달 모양의 눈매가 잔해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향하고 있었다.

“직접 연락해라. 체포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곽영주는 뒤돌아 걸었다. 재를 밟는 발걸음은 소리 없이 매끄러웠다. 품속의 나무 조각이 옥으로 만든 관과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그는 그 소리에 한 번 걸음을 멈췄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무의식중에 상처 쪽으로 올라갔다. 과거 강유신에게 베인 검상이었다.

등불 하나가 탁자 위에서 흔들렸다. 곽영주는 도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평상에 앉았다. 품에서 나무 조각을 꺼내 등불 가까이 가져갔다.

불빛에 비친 검흔의 요철이 선명했다.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다시 더듬었다. 입구에서 중간까지, 깊이가 일정하다가 갑자기 얕아지는 지점.

거기서 손목이 틀어진 각도. 그것은 교본으로 가르칠 수 없는 습관이었다. 몸에 밴 버릇. 단 한 사람의 버릇.

곽영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초승달 눈매가 잠시 사라지고, 등불에 비친 눈동자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강유신.”

이름은 소리 없이 입술에 걸렸다. 확신이었지만, 아직 입 밖의 말은 아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벼루 옆의 작은 종을 한 번 쳤다. 방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문밖의 제자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곽영주는 나무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린 채, 온화한 음성을 회복했다.

“길목 감시 인원을 두 배로 늘려라.”

“예, 장문인님.”

“그리고.”

바람이 등불을 흔들었다. 곽영주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두 번 일렁였다.

“내일 아침, 청성파 외곽의 모든 주점과 객잔에 사람을 풀어라. 낭인 차림에 검을 찬 스물셋 남자. 왼쪽 눈 밑에 칼자국이 있다.”

“기록하겠습니다.”

발걸음이 멀어지자 곽영주는 다시 나무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불빛이 검흔의 주름을 따라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듬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나무 조각이 손바닥 안에서 눌렸다.

강유신이 검을 뽑았다. 날에 촛불이 반사되어 당소란의 얼굴을 한 번 스쳤다.

지붕에서 첫 번째 자객이 떨어졌다. 검은 복면에 짧은 단도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있었다. 착지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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