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매귀도
2화
굉음이 석실 전체를 흔들었다. 쇠사슬이 돌벽을 긁는 남궁소리가 천장을 타고 번졌다. 통로 입구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청현이 균열 너머로 몸을 밀어넣었다. 폭이 좁아 숨을 멈춘 채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뒤에서 남궁소리의 발소리가 바짝 붙었다.
통로는 예상보다 길었다. 열 발짝쯤 갔을까, 바닥이 갑자기 경사졌다. 좁은 계단이 암반을 깎아 만든 동굴 천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셋. 빠르고 규칙적이었다. 가죽 장화 바닥이 돌을 짚는 남궁소리.
청현이 검을 뽑았다. 좁은 통로에서 찌르기만 가능했다. 남궁소리의 손도 허리춤으로 갔다.
첫 번째 밀사가 계단 모퉁이를 돌았다. 회색 무복에 검은 복면. 오른손에 협도, 왼손 소매는 부풀어 있었다. 독침 발사기였다.
밀사의 눈이 청현을 포착했다. 동시에 왼쪽 손목이 젖혀졌다.
청현이 바닥을 박찼다. 전생의 감각이 허벅지 근육을 기억했지만, 지금 육체는 한 박자 느렸다. 쇠침 세 개가 귀 옆을 스쳐 지나가며 돌벽에 금속음을 박았다.
밀사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청현이 그 틈을 찔렀다. 매화초현.
검 끝이 수직으로 떠오르며 작은 원을 그리는 간결한 궤적. 기는 실렸지만 전생의 삼 분의 일도 안 됐다. 검 끝이 밀사의 손목을 얕게 베었다.
밀사가 협도를 가로로 그었다. 청현은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들어갔다. 위험한 선택이었다. 전생의 몸이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거리 계산이 손끝에 식은땀을 남겼다. 협도가 옷깃을 찢고 지나갔다.
청현의 왼쪽 손바닥이 밀사의 가슴을 쳤다. 약했다. 하지만 밀사는 계단 아래로 밀리며 균형을 잃었다.
두 번째 밀사가 그 위로 뛰어내렸다. 소매에서 독침 다섯 개가 발사됐다. 청현은 검을 세로로 세워 셋을 튕겨냈다. 나머지 둘은 어깨와 벽 사이로 지나갔다.
전생의 감각이 속삭였다. 내공이 받쳐주지 않으니 연속 초식을 전개할 수 없다.
그때 남궁소리가 움직였다. 계단 벽면을 발로 차고 밀사의 왼쪽 측면으로 돌아들었다. 두 자루의 단검이 하나는 옆구리를 찔렀고, 다른 하나는 독침 발사기의 끈을 베었다. 남궁소리 하나 없었다. 소요문 보법이었다.
밀사가 비틀거렸다. 청현이 넓적다리 바깥쪽을 찔렀다. 깊지 않았다. 정확히 근육만 노렸다. 밀사가 무릎을 꿇었다.
세 번째 밀사가 계단 위에서 멈춰 섰다.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대롱이었다. 인화약 냄새.
“막아.”
남궁소리의 단검이 날아갔다. 밀사가 손목을 뒤로 젖혔지만, 대롱은 떨어뜨렸다. 청현이 계단을 세 발 뛰어올라 오른발로 대롱을 밟아 으스러뜨렸다.
그때 왼쪽 어깨에서 둔통이 번졌다. 독침 맞은 부위였다. 경락의 세 군데 혈이 다시 막히며 손끝이 시렸다.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덜 실렸다.
밀사가 그 미세한 변화를 읽고 협도를 다시 올렸다.
청현은 숨을 내쉬며 검을 세웠다. 석실 벽을 뚫었던 '매화초현'의 변형. 더 적은 기, 더 짧은 궤적.
현재 육체가 방금 가르쳐준 방법이었다. 손목과 손가락의 작은 경락만으로 기를 집속했다. 전생 같으면 초식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양이었다.
청현이 앞으로 찔렀다. '매화초현'의 궤적을 그대로 밟았지만 반만 접힌 동작이었다. 밀사의 협도가 쳐내려 했지만 느렸다. 청현의 검은 이미 손목 안쪽을 스치고 있었다. 협도가 손에서 떨어졌다.
청현이 검을 거두며 어깨로 밀사의 가슴을 쳤다. 놈이 계단 아래로 굴러 머리를 돌벽에 부딪혔다. 둔탁한 남궁소리가 났다.
셋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남궁소리가 각각의 목 혈을 눌러 완전히 기절시켰다.
고요해졌다. 약포를 뗄 수 있을 정도로 공기가 맑아졌다.
남궁소리가 바닥의 단검을 주우며 청현을 돌아봤다. 시선이 왼쪽 어깨에 닿았다가 검을 쥔 오른손으로 내려갔다.
“실전 감각. 신체 능력을 앞섰다.”
청현은 검을 집어넣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째 놈을 찌른 동작. 초식 종료 전에 궤적을 접었다.” 남궁소리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매화검이 그렇게 운용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청현이 계단을 오르며 짧게 답했다. “응용이야.” 그 이상 말할 의사가 없는 어조였다.
남궁소리가 한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발소리가 없었다.
“네 나이. 스무 살 안팎. 그 나이에 저런 응용을 익히려면 몇 년은 실전에서 굴러야 한다.”
청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심장이 한 번 더 뛰었다. 남궁소리가 진짜로 묻는 것은 무공의 출처가 아니었다. '왜 청풍파 출신 검객이 이런 실전 감각을 가졌는가'였다.
“오래 굴렀어.” 거짓도 진실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말이었다.
남궁소리의 시선이 등을 뚫었다. 침묵이 세 걸음 이어졌다.
“너. 만천문을 미행한 이유는.”
청현이 발을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네가 먼저 말해.”
통로 끝에서 달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었다. 남궁소리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원한.” 한 글자 한 글자가 돌 위에 떨어지는 칼날 같았다.
청현은 고개를 약간 돌렸다. 시선은 전방을 향했다. 전생에서 알고 있던 사실이 혀끝까지 올라왔다.
소요문의 마지막 후계자. 멸문의 밤에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그는 그 정보를 삼켰다. 대신 다른 것을 말했다.
“네 검은 소요문의 '쌍월검법'이다.” 남궁소리의 손이 단검 손잡이로 갔다. “초식 전개 없이 두 자루를 동시에 썼다. 오른손은 찌르기, 왼손은 베기. 쌍월의 일곱 번째 초식 '월파쌍영'의 변형.”
남궁소리의 호흡이 미세하게 변했다.
“청풍파가 소요문 검법을 어떻게.”
“기록으로. 청풍파는 폐쇄되기 전 문파 간 교류가 활발했어.”
남궁소리의 손이 단검에서 떨어졌다. “소요문. 망했어.” 그녀가 앞으로 걸으며 말했다. “만천문과 관련 있다.” 혼잣말에 가까운 낮은 소리였다.
“나도.” 청현의 대답이었다. 두 글자.
출구는 바위틈 사이로 난 좁은 통로였다. 바깥은 협곡 중턱이었다. 주변에 추가 병력은 없었다.
“놈들. 추가 지원 부르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청현이 말했다. 남궁소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청현은 왼쪽 어깨를 만졌다. 마비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방향은.” 남궁소리가 물었다.
“북쪽. 사흘 거리. 낭인촌. 거기서 정보를 산다.”
남궁소리의 눈빛이 약간 움직였다. 낭인촌은 중립 지대였다.
“네 목적.” 구체적인 질문이었다.
청현은 협곡 벽을 손으로 짚었다. “만천문.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자.” 말을 아꼈다. 복수 대상의 실체를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
“길이 겹친다.” 남궁소리가 단언했다. “낭인촌까지 동행. 그 후에 다시 결정.”
청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남궁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살았을 여인. 이번 생에서는 달랐다.
남궁소리가 먼저 협곡 바닥으로 내려갔다. 보법이 가벼웠다. 청현은 검을 확인했다. 칼날에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아직 쓸 수는 있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위 위에 길게 늘여놓았다. 앞장선 자와 뒤따르는 자. 거리는 다섯 걸음. 한 번에 메울 수 없는 거리였다.
월령협곡 임시 접선지 근처에서 청현은 부서진 나무 판자를 밀어 올렸다.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협곡 바닥이 드러났고, 바람에 굴러다니는 돌확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밀사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도망쳤군.”
남궁소리가 따라 나오며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청현은 대답 없이 강휘가 밀서를 건네던 바위 그늘로 걸음을 옮겼다. 바위 아래 검은 천 조각과 함께 작은 도자기 병이 굴러다녔다. 길이 두 치 남짓, 표면에 붉은 유약으로 박힌 '당(唐)' 자가 선명했다.
남궁소리가 병을 집어 들고 마개에 묻은 잔여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냄새를 맡았다.
“오금독.”
짧게 내뱉고 병을 청현에게 던졌다. 병 안은 비어 있었고, 바닥에 남은 결정체가 달빛에 보랏빛으로 반짝였다. 전생에 그자가 당가 하급 조제사에게 주문 제작시킨 것과 동일한 결정 패턴이었다. 청현은 독병을 허리춤에 밀어넣었다.
남궁소리가 바위 아래를 뒤지다 종잇조각을 끄집어냈다. 불에 그을린 가장자리, 중간 부분 세 줄만 남은 밀서의 일부였다. 필체는 가늘고 빨랐으며 오른쪽 삐침이 유난히 길게 빠져 있었다. '물품은 보름 내 수령—'이라는 글자가 읽혔다. 그자가 임무 서신마다 남기던 바로 그 버릇이었다.
남궁소리의 손이 종이를 움켜쥐며 마디가 하얘졌다.
“만천문만이 아니었어.”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았고 떨림은 없었다. 그녀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청현에게 내밀었다.
“당가 독이다.”
청현이 종이를 받아 품에 넣으며 말했다.
“낭인촌으로 간다. 백운이라는 정보상이 있다.”
남궁소리는 검집을 허리에 차고 먼저 협곡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현은 왼쪽 어깨의 마비를 내공으로 누르며 뒤를 따랐다.
두 시진쯤 지나 낭인촌의 불빛이 언덕 너머로 보일 무렵, 청현은 길가 바위 위에 검을 내려놓았다. 품에서 독병과 밀서 조각을 꺼내 바위 옆에 가지런히 두고 도포를 벗었다. 왼쪽 어깨의 둔한 감각은 여전했지만 움직임은 돌아오고 있었다.
검을 오른손으로 쥐고 매화검법의 기세를 취했다. '매화초현'의 기맥을 떠올리며 발끝으로 지면을 밀어 반원을 그렸다. 검이 느리게 찔러 들어갔다. 전생의 몸이라면 기가 단전에서 경락을 타고 손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기가 어깨 근처에서 막혔다. 독침을 맞은 경락이 아니라 더 깊은 곳, 하단전에서 뿜어 올린 기가 통과해야 할 좁은 길목이었다. 회귀 전에는 넓게 트여 있던 통로가 지금은 실낱 같았다.
청현은 기를 더 밀어넣었다. 상반신이 뜨거워지고 검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초식의 동작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기가 역류하며 가슴 한복판을 철퇴로 맞은 듯한 충격이 들었다. 입술 사이로 숨이 짧게 새어나갔고 오른손 손등에 핏줄이 섰다. 역류한 기가 손목을 타고 검신으로 전해지며 쇠가 우는 남궁소리를 냈다.
나무에 기댄 채 지켜보던 남궁소리가 검집으로 땅을 톡 쳤다.
“기맥이 안 열렸군. 감각만 앞서고 몸이 못 따라가는 꼴이다.”
청현은 검을 내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역류한 기가 흉부에서 불규칙하게 맴돌고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왼쪽 어깨의 마비 위로 새로운 통증이 욱신거렸다. 그는 도포를 집어 어깨에 걸치고 밀서 조각과 독병을 다시 품에 넣었다.
“백운의 주점은 마을 입구에서 세 번째 골목이다.”
남궁소리가 검집을 어깨에 걸치며 걷기 시작했고, 청현은 걸음마다 흉부의 기운이 출렁이는 것을 느끼며 뒤를 따랐다.
언덕을 넘자 낭인촌의 판잣집들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마을 입구에서 장작을 나르던 사내가 두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백운의 주점이 어딘지 아나.”
청현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백운? 그 양반 가게 오늘부로 문 닫았어. 아침에 짐 싸서 어디론가 떠났다던데.”
남궁소리의 걸음이 멎었다. 그녀의 손이 검집 위에 얹혔다.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손님들 말로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눈치였다고 하더군.”
청현은 품 속 독병이 옆구리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만천문의 은어를 알아듣는 유일한 정보상이 사라진 것이다. 바람이 먼지를 일으켜 마을 입구의 등불을 흔들었고, 낭인촌의 불빛이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