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매귀도
3화
주점 안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마지막 손님 둘이 구석에서 잔을 기울일 뿐, 나머지 탁자는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톱밥이 깔려 있었고 벽면에는 값싼 등롱이 걸려 있었다.
주방에서 걸어 나온 백운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청현을 훑었다. 시선이 남궁소리에게 옮겨갔다가 다시 청현에게 돌아왔다.
“오늘 장사 접었어. 저쪽 골목에 하나 더 있으니 거기로 가슈.”
청현은 한 걸음 더 들어갔다. 남궁소리는 문 옆에 선 채 팔짱을 꼈다.
“청풍이 지는 계절에 산을 넘는 물건을 찾는다.”
백운의 손이 멈췄다. 앞치마를 쥔 손가락이 천천히 풀렸다.
“그 말. 어디서 들었나.”
“서풍이 분다고 답하면 계단을 보여줘.”
백운이 앞치마를 벗어 탁자 위에 던졌다. 입가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주방 입구 옆 벽에 걸린 등롱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안쪽에서 빗장이 열리는 남궁소리가 들렸다.
“올라가게. 차는 따라 올리지.”
나무 계단은 좁고 삐걱거렸다. 청현이 먼저 올랐고 남궁소리가 뒤를 따랐다. 계단 꼭대기에는 두 평 남짓한 방이 있었다. 탁자 하나와 의자 넷, 벽면은 두꺼운 포목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밖에선 새 울음소리도 안 들리겠군.”
남궁소리가 벽을 손등으로 톡 쳤다.
잠시 뒤 백운이 올라왔다. 손에 작은 차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문을 닫으며 빗장을 걸었다. 차를 따르는 손은 침착했지만, 찻잔을 내려놓는 위치가 평소보다 조금 더 멀었다.
“만천문 은어를 정확히 구사하는 젊은이가 멀쩡히 살아 있다니. 처음 보는 광경이야.”
백운이 자리에 앉으며 청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문은 지금 없어. 남은 인간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내가 아는 정보라고 해봐야 지난 계절 낙엽 정도야.”
청현은 품에서 독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당가의 표식이 찍힌 빈 병이었다.
“당가 하급 마비독. 오금독이 섞인 변형이다.”
백운의 시선이 독병에 닿았다. 찻잔을 든 손이 한순간 멎었다.
“이걸 누구에게서 얻었나.”
“만천문 밀사.”
“남은 밀사가 아직….”
백운의 목소리가 약간 어두워졌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한 번 쳤다.
“당가 독을 만천문 경로로 빼돌리는 건 나도 아는 이야기야. 그런데 이 병을 가져왔다고 내가 모든 문을 열어줄 거라 생각했다면 실수다. 나는 정보상이지, 공짜로 일하는 무림맹이 아니거든.”
“강휘.”
청현이 말했다. 이름 한 글자 한 글자가 탁자 위에 떨어졌다.
백운의 낯빛이 미세하게 굳었다.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이고 멈췄다. 그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손목 각도가 조금 빨랐다.
“강휘라면… 청풍파의 그 서열 2위.”
“안다면.”
“알아. 안다고. 그런데 그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이 거래는 끝이야. 미안하지만 돌아가 주게.”
백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청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강휘가 청풍파 비무에서 패배한 적이 있다.”
백운의 몸이 멈췄다.
“청풍파 비무는 공식 기록으로만 남는다. 외부인은 결과조차 모른다. 그런데 패배?”
청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 전 가을. 입문한 지 이 년밖에 안 된 후배에게 삼 초식 만에 졌다. 기록에는 무승부로 남아 있지만, 현장에 있던 세 사람은 봤다.”
백운이 천천히 앉았다. 이번에는 찻잔을 들지 않았다. 손끝이 탁자 모서리를 더듬고 있었다.
“자네… 그 현장의 생존자인가.”
청현은 답하지 않았다. 백운은 한참을 그를 바라봤다. 시선이 시험하듯 청현의 눈가, 손등, 검집의 마모 상태를 훑고 지나갔다.
남궁소리가 벽에 기댄 채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의 시선이 청현의 뒷모습에 머물렀다. 십 년 전 입문 이 년 차 후배라면, 청현의 현재 나이와 거의 맞지 않았다.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좋아.”
백운이 손바닥을 탁자에 올렸다.
“자네가 무슨 정보를 원하는지 말해 보게. 조건은 그다음에 정하자.”
“강휘가 당가 독을 구매하는 경로. 그리고 다음 거래.”
백운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오른손 검지가 탁자 위를 두세 번 두드렸다.
“만천문은 원래 당가의 하급 독을 정파에 유통하는 징검다리였어. 양쪽 어느 편도 아닌 조직이니까 의심을 덜 샀지. 그런데 작년에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면서… 남은 인간들이 개별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강휘는 그 틈을 탄 거야.”
백운은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물방울을 하나 그렸다.
“강휘는 당가령의 어느 조제사 한 명과 직접 연결돼 있다. 만천문의 잔존 조직이 중간에서 거래 암호와 운송을 맡고. 독은 주로 하급 마비독과 오금독을 혼합한 변형을 받아 가더군.”
“거래 주기는.”
“보름마다 한 번. 다음 거래는 보름 후. 장소는….”
백운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게 내가 내놓는 물건의 핵심이야. 여기서부터는 조건이 붙어.”
청현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말해.”
“당가령 입구에서 동쪽으로 십 리. 버려진 기루(妓樓) 터가 있어. 거래는 거기서 매번 밤에 이뤄지더군.”
백운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등롱의 불빛이 그의 반백 머리를 비췄다.
“나는 만천문에서 회계를 맡았던 사람이야. 조직이 무너진 뒤로 이렇게 주점을 하며 숨어 살고 있지. 그런데 이제 놈들이 나를 추적하기 시작했어. 내가 거래 장부를 들고 탈출한 걸 아는 거야.”
그가 찻잔을 밀어냈다.
“장부는 내가 안전한 곳에 숨겨 뒀어. 놈들이 거기 손을 대기 전에 내가 꺼내야 한다. 그러려면 신변 보호가 필요해. 자네들이 이 마을을 떠날 때 나도 데려가 줘. 그게 내 조건.”
청현은 탁자 위 독병을 한 번 바라봤다. 당가의 각인된 문양이 등롱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전생에 이 정보를 얻기까지 삼 년이 걸렸다.
지금은 보름 앞서 확보한 셈이었다. 대가는 적지 않았다. 생존자가 하나 늘면 움직임이 무거워지고, 추적자들이 따라붙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받는다.”
백운의 어깨에서 긴장이 빠졌다. 그는 품에서 작은 대나무 통을 꺼내 탁자 위에 밀었다.
“여기 만천문 거래 암호가 적힌 서찰이 들어 있다. 밀봉을 뜯지는 마라. 당가령에서 이 암호를 제시해야 중간 운송책이 너를 실제 거래자로 인정할 거다. 개봉 흔적이 있으면 무효 처리돼.”
청현은 대나무 통을 집어 품에 넣었다. 독병과 나란히 옆구리에 닿았다.
“한 가지 더.”
백운이 목소리를 낮췄다.
“당가령 주변을 지키는 만천문 잔당 중에 ‘도원’이라는 자가 있다. 오른손 약지가 없는 게 특징이야. 놈이 운송을 총괄한다. 강휘에게 직접 독을 전달한 것도 그 자일 가능성이 높아. 조심해.”
남궁소리가 벽에서 등을 뗐다. 팔짱을 풀며 한 걸음 탁자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이 백운에게 고정됐다.
“그 도원. 만천문의 집행자 중 하나인가.”
백운이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는 만천문을 아시오?”
“만천문은 일 년 전 소요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백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입술이 약간 벌어졌다가 닫혔다.
“소요문 멸문 건은… 내가 모르는 일이 아니야. 그 작전을 기획한 건 문주 직속 집행대였어. 도원은 그중 서열 셋째.”
남궁소리의 손이 허리춤 단검으로 내려갔다. 손가락이 가죽 손잡이를 한 번 감았다.
“살아 있군.”
말소리는 차가웠지만, 단검을 쥔 손등에 핏줄이 섰다. 백운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원은 지금 당가령 인근에 은거 중이야. 강휘의 거래도 그 자가 움직이는 구역 안에서 이뤄지고. 보름 후 기루 터에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왼쪽 가슴 쪽 기운이 한 번 울렁였다. 수련 실패로 생긴 내상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숨을 짧게 고르며 검집을 쥐었다.
“내일 새벽, 마을 북쪽 우물가에서 만난다. 떠날 준비를 끝내 둬.”
백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짐은 이미 싸 뒀어. 한 번 피난 준비를 한 몸이라 빨리 움직일 수 있지.”
남궁소리가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청현은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백운이 등롱의 불심지를 낮추고 있었다. 불빛이 작아지며 벽의 포목이 무거운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백운의 발소리가 계단 위에서 멀어졌다. 지하 은신처의 촛불이 심야의 습기 속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밀봉 서찰을 품에 넣은 청현의 손끝이 약간 굳어 있었다. 거래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확약뿐이었다.
남궁소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낮았다.
“만천문.”
촛불이 흔들렸다. 그녀의 손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손가락이 나뭇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내 문파를 없앤 게 그자들이다.”
청현은 고개를 들었다. 남궁소리의 눈빛은 촛불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삼 년 전. 소요문. 밤 습격이었다. 스물셋이 죽고 문주는 독에 당했다. 내가 묻었다.”
손가락이 멎었다.
“살아남은 건 나뿐.”
청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이미 들은 사실이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호흡이 달랐다. 말끝마다 숨이 짧게 끊겼다.
“증거는.”
남궁소리가 소매에서 만천문 밀사 신패를 꺼내 탁자 위에 밀었다. 나무판에 부딪힌 쇠붙이가 짧은 남궁소리를 냈다.
“시체에서 뽑았다.”
청현은 신패를 집지 않았다. 이미 석실에서 본 것과 같은 문양이었다.
“만천문은 도구다.”
남궁소리의 눈썹이 움직였다. 청현은 말을 이었다.
“뒤에 누가 있다. 청풍파 사형, 강휘.”
처음으로 이름을 입 밖에 냈다. 혀끝이 차가워졌다. 촛불이 한 번 꺾였다.
“그자가 만천문과 손을 잡았다. 독은 당가에서 산다. 청풍파를 통째로 삼키려는 판이다.”
남궁소리의 호흡이 한 번 멎었다. 탁자 위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강휘.”
그녀가 이름을 반복했다. 남궁소리가 아니라 입술 모양에 가까웠다.
“그자가 내 문파를.”
“직접은 아닐 거다. 만천문이 실행했겠지. 하지만 연결고리는 같아.”
청현은 밀봉 서찰이 든 품을 한 번 짚었다.
“보름. 당가령 은신처 인근에서 다음 독 거래가 있다. 거기서 실물 증거를 잡는다.”
남궁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촛불빛이 그녀의 회색 눈동자에 박혔다.
“같이 간다.”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청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소요문의 마지막 후계자. 전생에서도 그 길을 걸었던 여자. 이번에는 뜻이 같았다.
“좋아.”
한 마디로 계약은 성립됐다. 청현은 검집을 짚으며 일어섰다.
“다만 하나. 내 복수는 내가 한다. 네가 끼어들 자리 없다.”
남궁소리의 손이 단검에서 떨어졌다.
“마찬가지. 만천문은 내 몫.”
청현은 입을 다물었다. 서로의 선을 확인했다. 촛불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당가령 길은 북쪽 폐광촌. 새벽에 뜬다.”
남궁소리가 일어나며 밀봉 서찰을 만졌다. 손끝이 왁스 봉인 위를 한 번 쓸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자 주점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백운은 보이지 않았다. 청현은 문을 밀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 안개가 낭인촌의 판잣집들을 지우고 있었다. 북쪽 길은 안개 속으로 가늘게 이어져 있었다.
“보름. 그 전에 내 검은 달라져야 한다.”
청현의 발소리가 안개를 밟았다. 남궁소리는 백운에게서 받은 밀봉 서찰을 한 번 더 만진 뒤, 조용히 뒤를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