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매귀도
4화
새벽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산길이었다. 북쪽으로 난 길은 협곡을 끼고 돌아 폐광촌으로 이어졌다. 청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왼쪽 어깨의 마비는 거의 풀렸지만, 하단전의 기운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숨결이 미세하게 짧았다.
남궁소리는 세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그녀의 발소리는 바람 소리보다 작았다.
청현이 걸음을 멈췄다. 남궁소리도 멈췄다.
길 아래쪽 덤불이 흔들렸다. 바람이 아니었다. 청현의 오른손이 검집으로 내려갔다. 손가락이 가죽 끈을 한 번 감았다.
덤불 사이에서 소년 하나가 기어 나왔다. 열서넛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옷은 진흙투성이였고, 왼쪽 눈썹 위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소년은 청현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백운 아재가……”
소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잡혀갔어요.”
청현의 손가락이 검집 끈에서 떨어졌다.
“언제.”
“한 시진 전쯤. 문신한 놈들 넷이었어요. 팔뚝에 산 세 개 겹친 거……”
소년이 자기 팔뚝을 더듬으며 문양을 그리려 했다. 만천문이었다. 청현은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
“백운은.”
“술통 뒤에 숨겨주면서…… 이거 전하라고.”
소년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비단처럼 접힌 작은 쪽지였다. 청현이 받아 폈다. 갈필로 급하게 쓴 글씨.
‘북쪽 길 끊김. 골짜기로 돌아.’ ‘입 열기 전에 움직여.’
글씨는 거기서 끊겼다. 마지막 획이 아래로 번져 있었다. 누군가 팔을 잡아챈 듯했다.
청현은 쪽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저는 마을로. 이장님 집에 숨을 거예요.”
소년은 말을 마치자마자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발소리는 금세 멀어졌다.
남궁소리가 청현 옆으로 왔다.
“추적.”
“그래. 생각보다 빠르다.”
청현은 북쪽 길을 바라봤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며 바위투성이 협곡이 드러나고 있었다. 길은 여전히 한 가닥이었다. 우회로는 없었다.
“골짜기다. 따라붙으면 막는다.”
남궁소리가 단검을 뽑았다. 칼날에 아침 햇살이 한 줄 박혔다. 그녀는 대답 대신 검을 쥔 손목을 한 번 꺾어 보였다.
협곡 입구에 들어서자 바람이 좁아졌다. 양옆 절벽이 어깨를 압박했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였다.
청현이 앞장섰다.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느리게, 더 조용하게. 발바닥으로 땅의 울림을 읽었다.
세 번째 굽이를 돌 때쯤, 뒤쪽에서 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나. 둘. 세 개의 발소리가 바위를 박차는 소리. 추적자들이 협곡에 진입했다. 거리는 백 보 남짓.
청현은 멈추지 않았다. 앞쪽 바위가 큰 덩어리로 갈라진 틈을 봤다. 한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틈이었다.
“여기.”
남궁소리가 먼저 들어갔다. 청현도 몸을 밀어넣었다. 틈은 생각보다 깊었다. 안쪽으로 한 길쯤 들어가자 조그만 빈 공간이 나왔다. 바위가 지붕을 덮은 자연 동굴이었다.
청현은 바위에 등을 붙였다. 호흡을 낮췄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세 명이었다. 무인들 특유의 가벼운 걸음걸이가 분명했다.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목소리 하나가 바위에 부딪혀 울렸다.
“갈림길도 없었는데 어디로 샌 거야.”
“더 올라가자. 골짜기 끝까지 가면 막다른 길. 거기서 대기하는 놈들이 잡겠지.”
발소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틈 앞을 지나쳐 북쪽으로 이어졌다.
청현은 손가락 셋을 펼치고, 하나씩 접었다. 세 명 지나감. 남은 움직임 없음.
남궁소리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바위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 빛이 그녀의 오른손을 비췄다. 단검의 손잡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백운.”
그녀가 짧게 말했다.
“산다.”
청현의 대답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백운은 정보상이었고, 입이 무거운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청현은 그렇게 말했다. 전생에서 봤던 모습이 떠올랐다. 배신당한 후에도 끝까지 기록을 쥐고 있던 늙은 회계사.
“입이 가벼운 놈은 아냐. 시간은 벌어줄 거다.”
남궁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검을 허리춤에 꽂았다. 가죽 손잡이가 옷감에 닿으며 작은 마찰음을 냈다.
두 사람은 바위틈에서 빠져나왔다. 골짜기 위로는 아침 하늘이 좁게 이어져 있었다.
폐광촌은 협곡을 벗어난 지 한 시진쯤에서 나타났다.
버려진 지 오래였다. 갱도 입구는 무너져 내렸고, 광부들의 막사는 지붕이 꺼진 채 썩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쇠 녹슨 냄새와 약재 냄새가 번갈아 실려 왔다.
남궁소리가 코를 찡그렸다.
“독.”
“당가령의 은신처다. 마을 뒷편 옛 약재창고.”
청현은 폐광촌을 가로질렀다. 바닥에는 깨진 도자기와 녹슨 곡괭이가 흩어져 있었다. 광부들이 버리고 간 흔적이었다.
약재창고는 마을 북쪽 끝에 있었다. 돌로 지은 낮은 건물이었고, 벽면에는 덩굴이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 언뜻 보면 버려진 헛간 같았다.
청현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먹으로 문틀을 세 번 두드렸다.
긴 침묵.
다시 두 번.
문틈으로 녹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은 다 떨어졌다. 돌아가라.”
청현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백운이 건넨 밀봉 서찰이 아니었다. 낭인촌을 떠나기 전 백운이 따로 준 작은 약포였다. 겉면에 붉은 인주로 ‘당(唐)’ 자가 찍혀 있었다.
문틈에 약포를 밀어넣었다.
“백운이 보냈다. 독병을 볼 사람이 왔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당가령은 생각보다 젊었다. 스물대여섯 정도. 짧은 흑발은 군데군데 약재에 그을린 듯 누르스름했다. 손가락은 길었고, 손톱은 어둡게 착색되어 있었다. 허리에는 작은 약통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청현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남궁소리를 한 번 흘겨봤다. 그리고 뒤돌아서며 말했다.
“들어와. 문 닫는 것 잊지 말고.”
내부는 온갖 약재 냄새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약초 다발이 걸려 있었고, 선반 위에는 크기가 다른 도자기 병들이 빼곡했다. 방 중앙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약절구와 놋쇠 저울, 여러 개의 유리병이 흩어져 있었다.
당가령은 탁자 앞에 서서 팔짱을 꼈다.
“독병. 보여줘.”
청현이 품에서 독병을 꺼냈다. 석실에서 입수한 만천문 밀사들의 것이다. 짙은 갈색 유리병이었고, 뚜껑은 납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당가령이 독병을 받아 들었다. 빛에 비춰보고, 흔들고, 뚜껑에 귀를 갖다 댔다.
“만천문 거. 여섯 중 하나. 마비 계열.”
“성분을 알고 싶다.”
“보수는.”
청현은 미리 준비한 답을 내놓았다.
“매화검법. 검 끝으로 독을 주입하는 초식이 있다. 분석이 끝나면 보여준다.”
당가령의 눈이 반짝였다. 독에 미친 자만이 보이는 빛이었다.
“좋아. 두 시진.”
당가령은 독병을 탁자 위에 올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유리 접시에 한 방울 떨어뜨리고, 작은 숟가락으로 다른 약재를 섞었다. 손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남궁소리는 창문 옆에 서서 바깥을 살폈다. 그녀는 팔짱을 끼지 않았다. 오른손은 언제든 단검으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청현은 탁자에서 세 걸음 떨어진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단전의 기운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전생 같았으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 번은 더 기를 회복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두 시진이 지났다.
당가령이 탁자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혼란이 섞여 있었다.
“이거.”
그녀가 면포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당가 비전 독이야. 오금독 계열. 하단전으로 올라가기 전에 경락을 태우는 방식. 정확히 말하면, 그걸 개량한 독.”
남궁소리의 호흡이 한 번 멎었다.
“비전 독은 외부 유출이 금지되어 있어. 당가 내부에서도 문주 직계만 취급하는데, 이게 여기 있다는 건……”
당가령의 손가락이 유리 접시 위의 잔여물을 가리켰다.
“당가 내에 배신자가 있다는 뜻.”
“얼마나.”
청현이 물었다.
“수년. 이 독은 숙성 기간만 해도 일 년은 걸려. 그런데 접시에 남은 침전물을 분석해 보니, 다섯 번 이상의 구매 흔적이 있어. 구매자도 같은 놈.”
당가령이 탁자 구석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분석 결과를 급히 적은 듯 글씨가 빽빽했다.
“정확히 만천문이 중간 유통이야. 구매자는 청풍파의 누군가. 강휘라는 이름도 언급된 기록이 있어.”
남궁소리가 움직였다. 단검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깨가 경직됐다. 그녀의 눈이 한 순간 도검이 되었다.
“내 문파를 멸문시킨 독.”
당가령이 그녀를 돌아봤다.
“소요문. 그 독도 이 계열이었지.”
질문이 아니었다. 당가령의 목소리가 약간 낮아졌다.
“그래. 소요문주에게 쓴 독은 이 오금독을 더 개량한 것이었어. 나는 그 사건 때문에 수년간 당가에서 외부로 나와 있었다.”
“왜.”
남궁소리의 말은 한 마디였다.
당가령은 면포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내가 만든 독이 아니었는데, 모든 증거가 나를 가리켰다. 누군가가 조작했지.”
청현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말을 듣고 있었다. 연결고리가 분명해졌다. 강휘가 만천문을 통해 독을 사고, 그 독으로 소요문을 멸문시키고, 책임을 당가령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지금, 이 탁자 위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해독제는.”
청현의 말에 당가령이 다시 선반으로 갔다. 약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기본 배합은 있어. 완전 해독제는 아냐. 하지만 오금독의 진행을 일시에 막을 수 있어. 다만……”
그녀가 약포를 청현에게 던졌다.
“한 번 막는다고 끝이 아니야. 경락을 태우는 독이라, 치료 후에도 흔적은 남아.”
청현은 약포를 품에 넣었다.
“증거. 기록은.”
“여기.”
당가령이 분석서를 접어 내밀었다. 청현이 받아 폈다. 독 성분, 유통 경로, 구매 주기, 만천문의 중간 역할, 그리고 강휘의 이름까지.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남궁소리가 청현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회색 눈이 분석서를 훑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였다. 지금까지의 억제된 분노가 고개를 들었다.
“강휘.”
그녀가 이름을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검 손잡이를 쥔 손등에는 핏줄이 섰다.
“내가 죽인다.”
청현은 분석서를 접어 품에 넣었다.
“순서가 있다. 놈들은 아직 이걸 모른다. 증거를 살려서 움직여야 해.”
남궁소리의 단검이 칼집에서 반쯤 빠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창문 쪽으로 돌아섰다. 어깨 너머로 희미하게 떨림이 남아 있었다.
청현은 탁자에서 물러나 벽 쪽 빈 공간으로 걸어갔다.
“잠시 자리를 비운다.”
당가령은 약재 정리에 몰두하며 대답했다. 남궁소리는 여전히 창문을 보고 있었다.
청현은 오른손으로 검집을 풀었다. 잔월을 바닥에 놓고, 상의를 벗었다. 왼쪽 어깨의 독침 자국은 이미 아물었지만, 주변 경락이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하단전의 기운이 그 자리에서 걸리는 느낌이었다.
잔매도향.
매화검법의 일곱 번째 초식. 상대의 경락을 직접 끊는 검이다. 전생에서도 그 경지는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혼에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검 끝에서 기가 실처럼 뻗어나가 적의 경락을 타고 흐르는 감각.
청현은 두 눈을 감았다. 하단전에 남은 미약한 기를 끌어올렸다.
전생의 기억이 몸을 스쳤다. 십 년 후의 자신이 이 초식을 펼칠 때, 팔꿈치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검 끝으로 흐르던 기의 길. 지금 이 육체에는 그 길이 없었다. 경락은 닫혀 있었고, 근육은 기억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허공에 오른손 검지를 내밀었다. 검 대신 손가락 끝에 기를 모았다. 아주 미세한 실 한 가닥. 그것을 앞으로 밀었다. 손끝에서 떨어진 기운이 허공을 한 치쯤 나아갔다.
그리고 역류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뒤틀렸다. 마치 뜨거운 바늘이 경락을 거슬러 올라가는 감각. 청현의 숨이 한 번 끊겼다. 시야 가장자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무릎이 먼저 무너졌다. 손을 짚으려 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닥이 비스듬히 기울며 다가왔다.
당가령이 먼저 눈치챘다.
“뭐야 이거.”
그녀가 약통을 집어던지고 달려왔다. 손가락이 청현의 목과 손목을 짚었다.
“미친. 기운 역류. 경락이 뒤틀렸어.”
청현의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천장의 약초 다발이 겹쳐 보였다. 숨을 들이쉬자 갈비뼈 안쪽이 뜨거웠다.
“해독제.”
당가령이 약포를 찢고 가루를 물에 섞었다. 청현의 입에 부어 넣었다. 쓴맛이 혀에서 목으로 번졌다.
남궁소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서 내려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손에는 물수건이 들려 있었다.
당가령이 청현의 가슴 혈도를 눌렀다.
“내공이 아직 제대로 안 잡혔는데 무리했구나. 경락이 약간 찢어졌어. 며칠은 운기 금지.”
청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왼쪽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다. 여전히 가슴 깊숙한 곳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은 선명했다.
잔매도향의 감각은 전생과 똑같았다. 다만 이 육체가 그 감각을 견디지 못했다.
“며칠.”
청현이 벽에 등을 기댔다.
“내겐 그 시간이 없다. 보름 안에 검을 완성해야 해.”
당가령은 약포를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경락이 찢어진 상태에서 운기하면 다음엔 진짜로 못 일어나.”
남궁소리가 물수건을 건넸다. 청현은 받아 이마에 올렸다. 차가움이 조금 번졌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바뀌었다.
남궁소리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녀는 단검을 완전히 뽑았다. 창문 밖으로 눈을 향했다.
“발소리. 여럿.”
당가령도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가 재빨리 약병을 챙겼다.
“얼마나.”
청현이 물었다. 자신의 검집을 당겼다. 손끝이 여전히 저렸지만, 잔월의 손잡이는 익숙했다.
“열 명쯤. 포위 중.”
바깥에서 첫 번째 함성이 들렸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발소리가 흙바닥을 박차는 소리.
순간, 창문 위쪽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회색 비둘기 한 마리가 천장을 한 바퀴 돌고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다리에는 작은 대나무 통이 묶여 있었다.
당가령이 비둘기를 잡아 통을 열었다. 안에는 얇은 비단 천에 그려진 지도가 들어 있었다.
“백운이다.”
당가령이 비단을 식별하며 말했다.
“청풍파 뒷문 비밀 통로 약도. 전서비둘기로 보낸 걸 보면, 구금되기 직전이거나…… 아니면 더 나쁜 상황이겠지.”
남궁소리가 약도를 받아 펼쳤다. 회색 눈동자가 지도를 빠르게 훑었다.
“통로는 사방으로 통한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두 시진 거리.”
청현이 약도를 바라봤다. 전생에서 본 적이 있었다. 청풍파의 비밀 통로. 배신당하던 밤, 그는 이 통로를 몰랐다. 알아도 그때는 몸이 부서져 있었을 것이다.
“출발이다.”
청현이 약도를 품에 넣었다. 검집을 풀고 잔월을 완전히 뽑았다. 칼날에 약재창고의 어둠이 반사됐다. 손끝이 여전히 약간 떨렸다. 경락 찢어진 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열었다.
“뚫는다.”
짧은 한 마디였다. 남궁소리도 검을 뽑았다. 당가령은 약병을 허리춤에 둘러메고 독침 방어용 약포를 집었다.
바깥, 함성이 동시에 터졌다. 발소리가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나무 문짝이 요동쳤다. 첫 번째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