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회귀한 공녀의 재계약

5화

마차가 프리드리히 후작 저택의 정문을 통과할 때, 리아나는 소매 안쪽으로 접어 넣은 쪽지를 손끝으로 한 번 더 눌렀다. 엘레나가 보낸 첫 제보와 초청장의 타이밍은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했다.

“긴장했나.”

칼렌의 시선이 마주 앉은 그녀의 손목으로 내려갔다. 붉은 띠 위를 스치듯 훑는 눈빛이었다.

“아니요. 오히려 기대됩니다.”

그가 더 묻지 않았다. 마차가 멈추고 하인이 문을 열었다.

대연회장은 이미 수십 명의 귀족으로 채워져 있었다. 현악 4중주가 흐르는 가운데 하인들이 은쟁반에 샴페인을 받쳐 들고 손님들 사이를 오갔다. 공작 부부의 등장에 몇몇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프리드리히 벨몬트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가왔다. 은발을 뒤로 넘긴 오십 대 남자로, 웃음기 어린 눈매 속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클라우스 하인겔 공작님, 이렇게 응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그가 허리를 숙이고는 리아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인사치레보다 반 박자 길게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이분이 연회장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셨다는 리아나 벨루아 영애시군요. 듣던 대로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벨루아 가문에 이런 분이 계셨다니, 제 정보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리애나는 입가에 정중한 미소를 걸었다.

“과찬이십니다, 후작님. 연회의 소동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도 실력의 일부지요. 오늘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질문 형식이었지만 거절을 상정하지 않은 어조였다. 리아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기꺼이.”

프리드리히가 만족한 듯 웃으며 칼렌을 향해 팔짱을 풀었다.

“공작님, 동부 변경의 무역 문제로 라스펠 백작이 잠깐 뵙길 원하십니다. 제 서재를 빌려드릴 테니 편하게 대화 나누시지요.”

칼렌의 시선이 리아나에게로 잠시 머물렀다. 그녀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뒤돌아섰다.

“잠깐이면 된다.”

두 남자가 군중 속으로 사라지자 리아나는 천천히 테라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프리드리히가 칼렌을 그녀에게서 분리시킨 방식이 노골적이었다. 후작이 원하는 건 단둘이 마주할 시간이다.

테라스로 통하는 프렌치 도어를 밀고 밖으로 나서자 초겨울 공기가 볼을 스쳤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벨루아 영애님.”

돌아보니 하인 복장을 한 사내가 쟁반을 든 채 서 있었다. 스물 중반, 갈색 머리에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어깨에 실린 긴장이 일반 하인과는 달랐다.

“후작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잠시 후 서재로 모시라고 하셨는데,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저는 베일 상회에서 왔습니다. 벨루아 가문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리애나의 손가락이 멎었다. 베일 상회. 제국 동부에서 암시장 정보를 전문으로 중개하는 곳. 회귀 전, 프리드리히가 자신의 정보망으로 삼았던 바로 그 조직이었다.

“이런 장소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제 신분으로는 이렇게밖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모임이 끝난 뒤, 저택 동쪽 온실에서 30분만 시간을 내주신다면 증거 서류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벨루아 가문의 몰락에 개입한 인물들의 명단도 포함되어 있고요.”

사내가 쟁반 밑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건넸다. 접힌 종이에는 약속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리애나는 쪽지를 받아 천천히 펼쳤다.

“이런 위험한 정보를 왜 제게 주시려는 거죠.”

“공정한 대가만 지불하신다면. 상회는 대가 없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내의 눈빛이 잠시 반짝였다. 리아나가 덫을 의심할 거라 생각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의심해도 거절할 수 없는 미끼라고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리애나는 쪽지를 접어 손바닥 안에 감췄다. 손끝으로 종이의 질감을 확인하며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베일 상회의 민트. 프리드리히 후작이 가장 아끼던 첩자. 겉으로는 독립 정보상이었지만 실제로는 후작의 지시로 움직이며 표적을 함정에 빠뜨리는 자였다. 회귀 전에도 이 남자는 똑같은 방식으로 리아나에게 접근해 가문의 비밀을 빌미로 사적인 접촉을 시도했었다. 그때 그녀는 응했고, 그 선택은 파멸의 시작이었다.

“알겠습니다.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니, 모임이 끝나기 전에 답을 드리죠.”

민트가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스치는 걸 리아나는 놓치지 않았다. 덫에 걸렸다고 믿는 자의 만족감이다.

그가 물러나자 리아나는 쪽지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고 천천히 연회장 안으로 돌아왔다. 등 뒤의 긴장이 날개뼈 사이로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프리드리히가 그녀를 서재로 부르기 전에, 칼렌을 먼저 찾아야 했다.

연회장 구석, 기둥 옆에 서 있던 칼렌은 그녀가 다가오자 대화 중이던 귀족에게 짧게 목례하고 몸을 돌렸다.

“후작의 심부름은 끝났나.”

“그 심부름이 후작의 심부름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칼렌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리아나를 따라 연회장 북서쪽 복도로 발을 옮겼다. 구석 객실은 소형 피아노와 작은 탁자가 놓인, 평소엔 쓰이지 않는 방이었다.

칼렌이 문을 닫자 리아나는 곧바로 말을 꺼냈다.

“베일 상회의 정보상이 접근했습니다. 하인으로 위장했어요. 동쪽 온실에서 벨루아 가문에 관한 정보를 팔겠다고요.”

“이 자리에서? 프리드리히의 저택 안에서?”

“네. 후작과 무관할 리 없습니다.”

칼렌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탁자 모서리에 손을 짚은 채 리아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정보상에 대해 당신이 확신하는 이유는.”

질문은 짧았지만 칼렌의 어조에는 이미 단순한 의심이 아니었다. 그가 본 것 이상을 아는 여자에게 보내는, 절제된 압박이 담겨 있었다.

리애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말이 있었다.

“연회 사건 이후, 제 나름대로 동부 정보망의 구성원들을 조사했습니다. 베일 상회가 프리드리히 후작과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다는 정황을 확보했어요. 그리고 그 상회의 대표 정보상 얼굴은 별도로 확인해둔 바입니다.”

칼렌이 한 걸음 다가섰다. 리아나의 왼손을 집어 올려 손목의 붉은 띠 바로 아래를 엄지로 스치듯 눌렀다.

“확인해둔 바, 라.”

그 손길은 압박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맥박을 읽는 손가락의 온도가 붉은 띠 너머로 번졌다.

리애나는 팔을 빼지 않았다.

“베일 상회의 정보상이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가 제안한 면담 장소는 동쪽 온실입니다. 저는 거기에 가지 않을 겁니다. 대신, 그가 혼자 기다리는 동안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는지 추적하면 됩니다.”

칼렌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의 시선이 리아나의 얼굴에서 소매 속 쪽지로, 다시 그녀의 눈으로 옮겨갔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작전인지 증명해.”

“민트가 저를 함정으로 유인하는 데 실패하면, 후작은 다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른 수단’이 움직일 때 증거가 생깁니다. 오늘 밤 온실 주변에 당신의 감시병을 배치하고, 민트가 떠난 뒤 그가 접촉한 인물을 추적하는 겁니다.”

“당신은.”

“저는 후작의 서재로 갑니다. 그가 절 부른 건 제게 경고와 동시에 관찰을 하기 위해서예요. 그 시간 동안 제가 예정된 표적처럼 움직이면 민트는 방심할 겁니다.”

칼렌이 팔짱을 풀었다. 코발트빛 눈동자가 좁혀졌다.

“당신이 틀렸다면.”

“그럼 민트는 그냥 정보상일 뿐이고, 저는 새 정보를 얻은 셈이 됩니다.”

잠시 멈춤. 칼렌이 입을 열었다.

“세르지오를 온실 쪽에 붙이겠다. 저택 밖까지 추적할 수 있게 인원을 배치하지.”

그는 한 번 더 리아나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붉은 띠가 촛불 아래서 어른거렸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후작의 서재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신호를 보내. 당신이 판단할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일 시간을 벌어야 한다.”

리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렌의 조건은 보호가 아니라 작전의 일부였다. 그녀의 안전이 아니라 작전의 성공을 위한 말. 그것이 그녀에게 더 신뢰가 갔다.

“신호 방식은.”

“제가 서재에서 나와 곧장 테라스로 향하면, 그건 모든 게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방향으로 가면 경계 신호로 보시면 됩니다.”

칼렌이 대답 없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고리를 잡기 직전, 그가 잠시 멈춰 섰다.

“베일 상회에 대한 조사 자료를 언제 확보했지.”

“연회 다음 날 밤부터요. 잠을 좀 줄였습니다.”

칼렌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소리에 실린 건 비웃음도 놀라움도 아니었다. 인정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작전 개시다.”

문이 열리고 복도의 빛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통로는 사교 모임의 현악 사중주가 벽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곳이었다.

엘레나는 기둥 뒤에 몸을 붙였다. 열 걸음 앞, 민트가 멈춰 섰다. 베일 상회의 정보상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하녀 치고는 발소리가 꽤 조용하군.”

민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손끝에서 작은 칼날이 반짝였다.

“면담 장소에 리아나 영애는 안 오고, 꼬리만 붙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까.”

엘레나가 허리춤에서 작은 단검을 뽑자 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칼 쥐는 손놀림…… 설마. 역수 그립에 칼등을 팔뚝 안쪽에 붙이는 자세. 그림자 엘레나.”

엘레나의 손이 멈칫했다. 민트가 낮게 웃었다.

“삼 년 전에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귀족 가문 하녀로 위장하다니 꽤 굴러떨어졌군.”

“그 이름, 지금은 쓰지 않아.”

“중요한 건 프리드리히 후작님이 이 사실을 무척 궁금해하실 거라는 점이지.”

민트의 칼날이 엘레나의 옆구리를 겨누었다. 엘레나가 반 걸음 물러나며 자세를 낮췄다.

“리아나 영애가 날 보낸 이유를 알면, 넌 그 칼을 거둘 거야. 베일 상회가 지난 이틀간 동부 상단과 접촉한 횟수까지.”

민트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 정보는 외부로 새어나갈 리 없는 내부 거래 기록이었다. 그 순간 엘레나가 옆으로 굴렀다.

민트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고, 엘레나의 단검이 민트의 소매를 스쳤다. 민트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팔을 휘둘렀다. 칼끝이 엘레나의 어깨를 지나갔다. 천 사이로 얕은 베인 자국이 번졌다.

민트가 엘레나의 손목을 비틀어 단검을 떨어뜨렸다. 돌바닥에 금속이 부딪혔다.

“잡아 와야 했던 건 리아나 벨루아지만, 대용품 치고는 쓸 만하군.”

민트가 엘레나의 팔을 뒤로 꺾어 묶고 통로 끝의 문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응접실의 촛불이 어둠 속에서 일렁였다.

사교 모임이 끝난 응접실에는 와인 잔과 빈 접시가 흩어져 있었다. 하객들이 하나둘 마차에 오르는 소리가 창밖으로 들렸다. 리아나는 입구를 훑었다. 엘레나가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그녀는 없었다.

소매 안의 쪽지를 꺼냈다. 민트의 동선을 표시한 약도와 ‘뒤를 쫓겠습니다’라는 짧은 글씨. 모임 전에 받은 그쪽지는 답장이 없었다.

칼렌이 다가왔다.

“뭔가 문제인가.”

“엘레나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민트도 보이지 않아요. 그가 제안한 면담 장소는 이 저택 안이었고, 엘레나는 그를 추적 중이었습니다.”

칼렌의 시선이 프리드리히에게로 옮겨졌다. 프리드리히는 응접실 건너편에서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민트가 없었다.

“얼마나 확신하나.”

“확신을 증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이 저택 안에 엘레나가 붙잡혀 있을 겁니다.”

“근거는.”

리아나는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회귀 전의 기억 속에서 프리드리히의 저택 지하 구조가 스쳤다. 손님용 응접실 아래, 방음된 공간.

“프리드리히 후작이 민트를 개인적으로 만날 때 쓰는 지하 응접실이 있습니다. 계단은 주방 뒤 복도에 있습니다.”

칼렌의 눈빛이 변했다. 한 번 더 물으려다 멈췄다.

“그 정보의 출처는 나중에 듣겠다.”

그가 프리드리히에게 성큼 다가갔다. 마지막 하객이 문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후작님. 내 배우자의 시녀가 실종되었습니다. 이 저택 안에서. 지금 바로 저택의 모든 출입문을 폐쇄해 주십시오. 공작 가문의 권한으로 요청합니다.”

프리드리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공작님, 이건 명백한 월권입니다. 저택 수색은 사전 청원이……”

“청원은 나중에 받아 주지.”

리아나는 이미 주방 쪽 복도로 향하고 있었다. 돌계단이 나타났고, 촛불 한 줄이 벽을 따라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단검을 뽑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응접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 낮은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칼렌이 몇 초 뒤 리아나의 뒤에 도착했다. 장검이 뽑히는 소리가 복도에 스쳤다.

“숫자는.”

“최소 둘입니다. 민트와…… 아마 후작의 하급 집사 하나.”

칼렌이 문을 밀어 열었다.

응접실 안에는 민트가 서 있었고, 엘레나는 의자에 묶인 채였다. 왼쪽 어깨의 헝겊이 붉게 젖어 있었다. 뒤에서 프리드리히가 지하 계단을 급히 내려오는 발소리가 울렸다.

“민트, 칼을 내려놔라.”

칼렌의 명령에 민트의 손이 멈칫했다.

“공작님께서 직접…… 이건 그저 오해입니다. 이 여자는 저택에 무단 침입한……”

“내 배우자의 시녀다.”

칼렌의 목소리에 온도가 없었다. 민트의 얼굴이 굳었다.

리아나는 민트를 지나쳐 엘레나에게 다가가 묶인 밧줄을 풀고 어깨의 상처를 확인했다. 표면을 스친 상처였다.

“일어설 수 있어요.”

엘레나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져 있었다. 리아나는 밧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엘레나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프리드리히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이게 무슨……”

“후작님의 부하가 내 시녀를 감금하고 상해를 입혔다. 이 행위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칼렌이 민트에게서 칼을 빼앗아 탁자 위에 올렸다. 프리드리히의 시선이 민트에게로 향했다. 민트가 입을 열려다 프리드리히의 손짓에 멈췄다.

“공작님, 이 모든 것은 제 부하의 독단적 행동입니다. 제가 직접 알지 못했던 일입니다.”

“알고 계셨든 몰랐든, 일어난 일은 같습니다.”

리아나가 엘레나를 부축하며 문 쪽으로 걸었다. 프리드리히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붙었다.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 내내,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의 무게가 떠나지 않았다.

칼렌이 마지막으로 계단을 오르기 전 멈춰 서서 프리드리히를 돌아보았다.

“사과 편지는 내일 정오까지 받겠습니다.”

응접실 문이 닫혔다.

프리드리히는 탁자 위의 칼을 집어 들었다. 민트가 무릎을 꿇었다.

“용서를……”

“그 여자의 하녀가 네 정체를 알았는데, 왜 살려뒀나.”

“정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 암시장에서 ‘그림자 엘레나’로 불리던 중개상입니다. 삼 년 전 잠적했는데, 지금은 리아나 벨루아의 전속 시녀로 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칼을 탁자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칼자루를 느리게 두드렸다.

“삼 년 전에 사라진 암시장 정보상이 하녀로 위장해 벨루아 영애를 보좌한다…… 그리고 그 영애는 내 자금 흐름까지 꿰뚫고 있다. 벨루아 영애가 어디서 정보를 얻는지 이제 알겠군. 하지만 그림자 엘레나조차 모를 정보가 있다. 연회장에서의 그 예측 말이다.”

민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단순한 정보력으로 불가능한……”

“맞아.”

프리드리히의 눈이 가늘어졌다. 접어둔 종이를 책상 위에 펼치자 이단심문 청원서 초안이 촛불 아래 드러났다.

“리아나 벨루아를 이단심문에 넘길 준비를 시작해라. 증거는 그녀가 우리를 위해 증명할 것이다. 미래를 읽는 마녀인지 아닌지, 불 속에서.”

민트가 숨을 멈췄다. 프리드리히의 손가락이 청원서의 마지막 줄을 따라 움직였다.

회귀한 공녀의 재계약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