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 새겨진 공녀, 얼음 공작의 손을 잡다
4화
먼지 냄새가 옷깃에 배어 있었다. 사흘 동안 마차를 달려도 가시지 않은 벨리언 저택의 냄새였다. 에레디아는 손끝으로 소매를 한 번 털어냈다.
북부 로엔 공작성 집무실, 저녁 무렵이었다.
탁자 위에 장부 세 권이 포개져 있었다. 하나는 광산 반출 원본, 하나는 황실 상납 기록, 마지막은 카이텔이 베낀 요약본이었다. 에레디아는 원본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왼손 검지를 반출 날짜 줄 위에 올렸다. 칼릭스의 검은 반지가 촛불에 반사되어 손등 위로 얇은 빛을 던졌다.
“지난달 출하량이 황실 상납 기록보다 닷새 늦게 잡혀 있습니다.”
칼릭스가 맞은편에서 팔짱을 풀었다.
“닷새가 문제냐.”
“닷새가 아니라 빈 구간입니다. 출하 시각과 상납 시각 사이에 누가 광석을 옮겼는지 적히지 않았습니다.”
에레디아가 요약본의 한 줄을 짚었다. 카이텔이 벽 쪽에서 한 걸음 다가왔다.
“공녀님 말씀대로 출하 서명은 광산 관리인, 상납 검수는 황실 파견관입니다. 중간 운송자는 기록이 없습니다.”
“세 달 전 기록도 같은가.”
칼릭스가 묻자 카이텔이 요약본을 넘겼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만 짧게 났다.
“두 달 전에는 이틀, 지난달에는 닷새. 공백이 늘고 있습니다.”
“운송 경로를 알면 사람이 나옵니다. 장부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에레디아가 말했다. 칼릭스가 그녀의 손이 멈춘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현장 조사를 요구한다.”
“내일 광산에 내려간다. 오늘 밤에는 이 문서들을 이 방에 두는 것이 낫겠다.”
“카이텔 경은 표시 필사본을, 저는 원본을 보관하겠습니다. 최소한 이 구간은 놓치지 않으려면 사본이라도 지금 나누어 두어야 합니다.”
카이텔이 필사본을 들어 가슴 안쪽에 넣었다. 에레디아는 원본을 반으로 접어 품에 두었다. 칼릭스가 잠시 그녀의 품을 보았다. 아무 말 없이 벽난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몇 시간 뒤, 달의 눈물 광산 입구 사무소.
제복 차림의 하셸이 랜턴을 든 채 문을 열었다. 외투 깃에 광석 가루가 얇게 앉아 있었다. 눈은 졸린 듯 가늘었지만, 탁자 위 펼쳐진 장부를 보자 시선이 한곳에 멎었다.
“밤에 어인 일이십니까.”
“반출과 상납 사이 기록이 비어 있다. 운송자를 확인하러 왔다.”
칼릭스가 대답했다. 하셸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운송은 갱도 입구에서 황실 수레로 바로 옮깁니다. 별도 기록이 없던 것으로 압니다.”
“그것이 거짓일 가능성을 조사한다.”
에레디아가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하셸의 손이 랜턴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갱도 일부가 오늘 오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 들이시면 위험합니다.”
“그럼 아침에 구조를 확인하고 들어가면 됩니다.”
“그래도 지금 광석 이동 경로는 문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사무소에 탈리 흔적을 적은 별지가 있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하셸이 안쪽 서랍으로 몸을 굽혔다. 칼릭스가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서랍을 열기 전에 갱도를 먼저 확인한다. 그 별지는 갱도에서 나온 뒤에 받겠다.”
하셸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그는 곧 몸을 펴고 랜턴을 들어 올렸다.
“알겠습니다. 제가 안내하지요.”
외곽 갱도는 바람이 길게 지나가는 낮은 굴이었다. 랜턴 불빛이 벽을 타고 흔들리며 셋의 그림자를 앞으로 눕혔다. 카이텔이 지형을 살피며 반 발짝 앞에서 걷고, 에레디아는 장부 원본을 품에 두른 채 하셸의 뒤를 따랐다.
“여기부터 황실 수레 적재 지점입니다.”
하셸이 갱도 안쪽 벽을 손바닥으로 한 번 짚었다. 그 동작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에레디아가 걸음을 멈추었다.
“손에 광석 가루가 반쯤 묻었습니다. 저 벽은 만지지 않았어야 할 곳 아닙니까.”
“공녀님. 보시다시피 지지대 옆 흙입니다. 이 근처는 낙반이 잦아 표시가 남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머리 위에서 흙 부스러기가 흩어졌다. 카이텔이 먼저 물러서며 소매 끝으로 에레디아를 밀었다.
“뒤로!”
칼릭스가 하셸의 외투 깃을 잡아챘다. 하셸은 뿌리치지 않고 오히려 칼릭스의 팔에 매달린 채 외곽 갱도 쪽으로 몸을 그대로 틀었다. 흙과 돌가루가 무너지며 굴이 어둠에 덮였다. 먼지가 목구멍을 찔렀다.
붕괴는 짧았다. 무너진 천장은 지지대 두 개를 꺾고 돌무더기로 입구를 반쯤 막았다. 칼릭스가 팔을 뻗어 에레디아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하셸은 무릎을 굽힌 채 기침을 했다. 카이텔이 랜턴을 들어 터진 갱도 천장을 비췄다. 피는 보이지 않았다. 흙과 목재 조각만 섞여 있었다.
“부상자는 없습니다. 갱도 한 곳은 통제 필요합니다.”
카이텔이 낮게 보고했다. 칼릭스가 하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너는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해라. 광산 입구 사무소로 돌아가서.”
“저는 그저 안내했습니다.”
“안내가 천장을 무너뜨리진 않는다. 조사는 내일 다시 시작한다.”
칼릭스가 에레디아의 팔을 놓았다. 그녀는 장부 원본을 품에서 꺼내 흙이 묻었는지 잠깐 살폈다.
“광산 관리인이 먼저 사무소로 돌아가면, 저는 갱도 밖에서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에레디아가 말했다. 하셸은 먼지를 털며 일어섰고, 얼굴에는 아무 굴복도 없었다. 그저 방어하는 자의 표정뿐이었다. 카이텔이 하셸의 뒤를 따라갔다.
“관리인이 다른 동선을 쓰지 못하게.” 칼릭스가 짧게 덧붙였다.
머지않아 하셸은 사무소로 돌아갔고, 갱도 입구에는 공작가 소속 광부 둘이 와서 무너진 구간을 통제했다. 자연 붕괴로 기록될 것이다. 에레디아는 속으로 그렇게 정리했다.
이 사고가 하셸의 입을 막는 데 쓰였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다만 장부의 빈 구간이 갱도에 닿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가 멈춰 선 곳이 바로 그 지점이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에레디아는 로엔 공작성 별관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광산 방향에서 짙은 회색 안개가 성벽을 반쯤 가렸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넬리가 들어왔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짙은 갈색 머리를 뒤로 틀어 올렸고, 검은 외투를 벗지 않은 채였다.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서는 자세가 불안으로 굳어 있었다.
“벨리언 저택에서 온 넬리라고 합니다. 공녀님 소식을 듣고 새벽에 마차를 탔습니다.”
“먼 길을 혼자 왔습니까.”
“네. 제가 가진 이야기를 드리려고요.”
에레디아가 손을 내밀지 않고 턱짓으로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넬리가 앉았다. 그녀의 손은 꽉 쥔 채 무릎 위에 있었다.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날, 넬리는 뭘 봤습니까.”
“저는 그때 시녀장의 지시로 별관 복도를 닦고 있었습니다. 공작부인께서는 온실 쪽에서 오셨고요. 제가 공작부인의 외출 망토를 받아 걸었습니다.”
“목에 두른 초커는 어땠습니까.”
넬리의 손끝이 무릎 위에서 처음으로 움직였다.
“흰 리본 초커요?”
“그래요. 어머니가 늘 하시던 것. 그날도 하고 계셨습니까.”
“하고 계셨지요. 그런데 망토를 받을 때 초커 뒤쪽이 조금 비틀려 있었습니다. 제가 바로잡아 드리려 했는데 공작부인께서 손을 들어 제지하셨어요. 가려운 부위라며.”
에레디아의 속눈썹이 한 번 젖혀졌다.
“부인께서 돌아가신 뒤 초커는 어디로 갔습니까.”
넬리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약간 떨구었다.
“그건 저택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았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럼 왜 그걸 확인시키려고 이곳까지 온 겁니까.”
“세라핀 공녀가 목에 한 것이 그 초커와 너무 닮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리본을 여러 번 만져 봤습니다.”
넬리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런데 사고 이후에 제 옷가지를 넣은 궤에서 같은 봉제의 초커가 나왔습니다. 벨리언 가문의 시녀들이 의심을 다섯 저에게 씌우려 한 물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넬리가 외투 안쪽에서 천 보자기를 꺼냈다. 흰 리본 초커였다. 안쪽 얇은 가죽에 옅은 반점처럼 색이 배어 있었다.
에레디아는 그것을 받아 손끝으로 펼쳤다. 표면은 매끄러웠고 가장자리 실밥이 눌려 있었다. 어머니가 앓고 난 뒤 목에 붉은 흔적을 남겼을 때, 가죽에 그 흔적이 옮은 것은 아니었다.
“반점 흔적이 안쪽에 있습니다. 어머니가 초커를 오래 착용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벨리언 가문이 사고로 덮었다는 말을 다시 하시겠습니까.”
넬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치마를 쥐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닙니다. 덮었습니다. 사고로. 공작부인의 시신에서 초커를 빼고, 리본을 태우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당시 벨리언 후작 저택의 시녀장이었습니다. 이름은 저택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넬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에레디아는 초커를 보자기 위에 내려놓았다.
“그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처음입니다.”
“도망자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서 증언하십시오.”
에레디아가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 넬리가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 시선에는 무언가 간절함이 섞여 있었지만, 말 대신 고개가 크게 한 번 끄덕여질 뿐이었다.
같은 날 낮, 로엔 공작성 서고.
에레디아가 서고 남쪽 책장 앞에 서 있었다. 광산 상납 고문서가 연대순으로 꽂혀 있었다. 칼릭스가 사다리 위에서 낡은 가죽 제본을 꺼냈다.
“어머니가 사고가 아니라는 증언을 받았습니다. 벨리언 가문이 흰 리본 초커를 빼돌리고 태웠다고 합니다.”
칼릭스가 책장에 손을 얹은 채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네가 여기서 찾는 게 뭐지.”
“달의 눈물 광석입니다. 벨리언 가문과 황실이 광산 뒤에서 움직인 흔적이 광석 경로와 닿아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고문서는 상납 수량과 검수 기록뿐이다. 내가 찾는다.”
칼릭스가 책을 펼쳤다. 먼지가 서가 사이로 흩어졌다. 에레디아는 그의 곁으로 가지 않고, 창가 등불 곁에서 초커를 감싼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잠시 뒤였다. 칼릭스의 손이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종이가 오래되어 글자가 마치 물결처럼 읽기 어려웠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달의 눈물 광석이 별의 서고 시선을 왜곡한다는 구절이 있다.”
에레디아가 고개를 들었다.
“누가 쓴 기록입니까.”
“제작 연대를 알 수 없는 사본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광석을 일정량 이상 한곳에 두면 별의 서고 기록이 찌그러진 모양으로 보인다.”
칼릭스가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사본용 종이를 꺼냈다. 글자를 그대로 베끼는 속도가 빨랐다. 에레디아가 팔을 뻗어 그 사본을 가리켰다.
“그 사본에 오늘 날짜와 서고 위치를 기록해 주십시오. 언제, 어디서 베낀 것인지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게.”
칼릭스가 그녀를 잠깐 바라보고는 요청대로 펜을 놀렸다. 고문서 원본은 다시 서가에 꽂혔다. 사본은 칼릭스가 품에 넣지 않고, 왼쪽 제복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에레디아는 초커를 손에 든 채 서고 밖으로 나갔다.
같은 날 밤, 황실 별의 서고.
에드릭은 서고 등입석 앞에 서 있었다. 사서가 검은 옷깃을 여미며 그에게 예를 갖췄다.
“전하께서 남기신 열람 일시와 목적을 확인합니다.”
“별의 서고 두 번째 미래 단편을 확인합니다.”
사서가 문을 열었다. 서고는 원형이었다. 열린 천장으로 별빛이 직접 내렸다. 에드릭은 희미한 빛 속에서 두 번째 단편이 보관된 받침대로 걸음을 옮기고 장갑을 벗었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두 번째 단편은 반쯤 갈라진 수정판이었다. 미래라기보다 무언가를 눌러 찍은 듯한 잔상이 그 안에서 명멸했다. 에드릭은 허락된 절차대로 탁본지를 올렸다. 검정 탁본지에 인장 모양이 배어들었다. 그가 종이를 들어 올리자 별빛이 그 위를 지나갔다.
검은 왕관 인장이었다. 위에 오래 끊긴 곁가지 문양이 겹쳐 있었다.
에드릭은 탁본지를 반으로 접어 손에 쥔 채 별의 서고를 나서지 않았다. 그는 다음 수정판을 넘기지 않고 그 인장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북부 달의 눈물 광석 경로가 떠올랐다. 수정판에 찍힌 인장의 가운데 홈이, 지난 3일 사이 확보한 광석 경로 기록에 나타난 운송 구간 표기와 겹쳤다.
단순한 유사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미래 단편 속 검은 왕관 인장은 광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경로의 한가운데에 찍혀 있었다.
그가 손에 탁본을 쥔 채 걸음을 멈췄다.
두 번째 미래 단편에서 검은 왕관 인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인장이 북부 달의 눈물 광석 경로와 겹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