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 새겨진 공녀, 얼음 공작의 손을 잡다
6화
관리소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다만 그 불빛이 비추는 탁자는 조용했다. 에레디아는 하우젠 맞은편에 앉아 장부를 펼쳤다. 검은 레이스 장갑을 낀 손가락이 한 줄을 짚었다.
“사고 당일, 당신은 제7수송로에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우젠은 의자에 묶인 채 고개를 들었다. 옷소매에 검댕이 묻어 있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순찰 지시였소.”
“누가.”
“광산 사무장 명의로 온 전갈이오. 서명도 있었소.”
에레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부의 한 모서리를 접어 탁자 위에 놓았다. 그 위로 흰 리본 초커 조각을 올렸다.
“이건 수레가 떠나기 전에 잠금틈에 끼워 넣은 물건입니다.”
“그건 나도 처음 보오. 내가 끼워 넣은 게 아니오.”
“순찰 지시가 있었다면, 왜 장부는 그 시간보다 먼저 조작됐습니까. 반출 수량이 지워진 시각이 당신이 도착했다는 시각보다 앞섭니다.”
하우젠의 눈이 장부로 향했다. 손가락이 다섯 번쯤 움직였다. 마치 무엇을 세는 듯했다.
“장부는 납품업자가 관리하오. 광산 쪽에서 손댄 적 없소.”
“납품업자는 수량만 적습니다. 승인 도장은 관리소에서 찍지요.”
그녀가 장부를 조금 밀었다. 하우젠의 무릎 곁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이 면의 먹이 마르지 않은 채 덧칠됐습니다. 시간을 속일 때 생기는 자국입니다.”
하우젠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턱이 굳었다.
“오래전부터 된 줄 알았소.”
“당신이 그린 선입니다. 수레가 떠나기 전에.”
에레디아는 몸을 뒤로 젖히지 않았다.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하우젠을 내려다보았다.
“순찰 지시를 믿게 하려고, 당신 자신이 먼저 온 겁니다. 그 위증이 장부의 조작 시각보다 늦습니다.”
하우젠은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반박이 아니었다. 에레디아는 흰 리본 조각을 들어 탁자 중앙에 다시 놓았다.
“이 조각은 광산 쪽 물건이 아니에요.”
“그것까지 내게 묻소?”
“묻는 게 아닙니다. 확인시켜 드리는 거예요. 당신이 감추려던 게 하나가 아니라는 것만.”
하우젠은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뒤 그가 낮게 말했다.
“순찰 지시가 없었다 칩시다. 그렇다면 나는 사고를 막으러 간 거요.”
“어떤 사고요.”
“수레가 떠나기 전부터 점화석 보관에 문제가 있었소. 광부 사이에서도 말이 있었소.”
“검사 기록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순찰 기록에도.”
하우젠이 고개를 숙였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렸다.
“그러니까, 미리 확인했어야 했소. 내가 놓친 거요.”
에레디아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등잔이 연기를 냈다. 하우젠의 호흡이 점점 얕아졌다.
“당신이 숨기는 건 사고가 아닙니다. 갱도 인감을 찍은 경위요.”
하우젠의 어깨가 멈췄다.
“황실 통행증 없이 갱도 인감을 찍으려면, 관리소의 비품 인장이 아니라 광산 청원 인장이 필요합니다. 그건 관리인이 따로 보관하죠. 당신은 순찰 지시만 받았다고 하면서, 그 시간에 광산 청원 인장을 꺼냈어요.”
하우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천장의 불빛이 어른거렸다. 에레디아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누가 그 인장을 쓰라고 했습니까.”
“공녀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아시고 있지요. 가족이 납치되어 있다는 것도.”
하우젠은 숨을 삼켰다. 탁자 아래서 발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오른쪽 손목을 묶은 끈이 의자에 긁혔다.
“가족에 관한 말씀은 접어 주시오.”
“접지 못해요. 당신이 무너지는 방식이 그쪽입니다. 지금도.”
에레디아는 장부의 다른 면을 펼쳤다. 거기에는 그가 승인한 화물 명세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 면을 보지 않았다. 다만 손끝으로 찍힌 도장 자국 하나를 덮었다.
“수레 한 대를 희생해서라도, 항로를 옮기려던 거지요. 제가 수레를 막지 않았다면 수송로는 반나절 안에 막혔을 겁니다. 사고사로 기록되면 광산 쪽 감사는 수레와 인부 문제로 끝나고, 갱도 인감이 화물 명세와 어긋난 정황은 짐 속에 묻혔겠지요.”
하우젠의 턱이 떨렸다. 그는 두어 번 침을 삼켰다. 갈라진 입술이 벌어질 듯했다.
“아내와 딸을 본 지 사흘이 넘었소.”
그가 목을 젖혔다. 목줄기가 드러났다.
“내가 말하면, 저들은 내 식구부터….”
“누가 그러던가요.”
“이름을 댈 수 없소. 처음에는 전갈뿐이었소. 뒷문에 작은 부적 같은 게 걸려 있고, 거기에 적힌 대로 움직이면 가족을 돌려보내 준다고. 그래서 내가 직접 수레에 점화석을 실었소.”
“그 전갈을 누가 남겼는지는 모릅니까.”
“모든 지시가 종이였소. 남는 것도 없고, 이틀이 지나면 글자가 사라지게 돼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움직였지요.”
하우젠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자백과 같았다. 에레디아는 종이를 반쯤 접어 옆에 둔 접수함에 넣었다.
“기록으로 남깁니다. 가족 협박을 이유로 갱도 인감을 무단 사용하고, 제7수송로에 화약성 광석을 실은 점. 부인할 기회는 지금 한 번 더 드리지요.”
하우젠은 고개를 저었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부인 못하겠소. 더는.”
“밀명을 내린 쪽이 누군지 말할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다만 전갈의 마지막 문구가… ‘별의 서고에서 보았다’였소.”
에레디아가 일어났다. 치맛자락이 등잔 불빛을 스쳤다. 하우젠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그것도 기록하겠습니다.”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하우젠이 말했다.
“공녀님 가문이 이 광산을 그렇게 만든 거요. 공녀님 어머니…….”
에레디아는 멈추지 않았다. 다만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잠시 서 있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당신 가족은 북부가 찾습니다.”
문이 닫혔다. 복도 끝에서 칼릭스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검은 제복의 왼쪽 가슴 위로 공작가 문장이 어둡게 빛났다. 그는 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자백했나.”
“인감 사용과 가족 협박은 자백했습니다. 사주한 쪽은 ‘별의 서고’라는 말만 남겼어요.”
“별의 서고.”
칼릭스가 벽에서 몸을 뗐다. 회청색 눈이 복도 끝을 향했다.
“황실 직계만 드나드는 곳이다. 말로는 자백이 가벼워 보여도, 이제 이 사건은 광산 것만이 아니다.”
“구금은 광산 사무소에서 하지요.”
“그게 안전하다. 하우젠이 지금 황실 쪽으로 넘어가면 자백서가 먼저 묻힌다.”
칼릭스는 손에 든 자백 기록지를 반쯤 접었다. 종이 모서리가 날카롭게 꺾였다. 그가 에레디아 쪽으로 반 걸음 돌았다.
“밤새 여기 있었다. 서명은 내가 받는다. 공녀는 성으로 돌아가라.”
“기록 사본은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래. 대접견실로 나오라. 아침부터 볼 사람이 있다.”
에레디아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칼릭스가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다음 일이 가볍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로엔 공작성 대접견실.
창밖은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하우젠의 자백 기록 사본과 봉인 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에레디아가 탁자 앞에 서자 칼릭스가 맞은편 의자를 끌지 않고 서서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렸다. 중년의 여인이 두 손을 모으고 들어왔다. 짙은 갈색 머리는 습기에 눌려 있었고, 외투의 소맷단이 젖어 있었다. 에레디아는 그 얼굴에 잠시 시선을 멈췄다. 벨리언 저택의 옛 시녀 마르타였다.
마르타는 탁자 위의 흰 리본 초커 조각을 보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무릎이 먼저 꺾였다. 바닥에 닿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마르타.”
에레디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르타는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
“공녀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서야 갖고 왔습니다.”
그녀가 외투 안쪽에서 낡은 가죽 서류철을 꺼냈다. 끈이 두 겹으로 감긴 물건이었다. 마르타는 그걸 두 손으로 들어 에레디아 앞에 내밀었다.
“저택의 은폐 장부입니다. 그리고 그 옛 시녀의 증언서 원본이 함께 있습니다.”
“누구의 증언이지요.”
“세라핀 아가씨의 친모와 마님의 사고를 함께 지켜본 여자입니다. 벨리언 저택에서 평생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제가 숨겨서 데리고 있었어요.”
마르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에레디아는 서류를 받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손끝이 조각난 초커 위에 잠시 닿았다.
“그동안 왜 지금입니까.”
“그 일이 있고 저택을 떠날 수 없었어요. 시녀장의 눈이 저에게 남아 있었소. 하우젠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제가 이걸 들고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등이 터지고 손가락 마디가 부어 있었다.
“도망이 아니라 보호를 청한 거요.”
칼릭스가 처음으로 말했다. 낮고 짧았다.
“공작 전하께서 절 보호해 주십사 감히 청합니다. 제가 아니면 장부의 저자 표기를 증언할 사람이 없습니다.”
칼릭스는 에레디아를 보았다. 그녀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접견실 밖 경비를 세우겠다. 증언서와 장부는 분리하고, 사본을 봉인한다.”
칼릭스가 문 밖의 호위에게 손짓했다. 그 사이 에레디아는 마르타가 내민 장부의 끈을 풀었다. 종이 냄새와 함께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다. 서류철 안에는 저택의 지출과 봉인 불하 목록, 그리고 출생 기록으로 보이는 문서들이 섞여 있었다.
탁자 정리를 맡은 테온 헤인리히는 장부 다발을 하나씩 나누기 시작했다.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기록이 흩어지는 소리만 방에 울렸다.
테온의 손이 어느 서류에서 멈췄다. 출생 기록 한 건이었다. 그가 한 손으로 종이를 집었다. 손가락 마디가 굽어졌다.
쇠로 된 서류함이 미끄러졌다. 다발이 탁자 아래로 쏟아졌다. 봉인 끈이 끊어졌다.
“테온.”
칼릭스가 한 걸음 다가섰다.
테온은 금세 고개를 숙였다. 쏟아진 서류를 모으는 손이 빨랐다. 그는 한 장을 재빨리 다른 무더기 속에 밀어 넣었다.
“왜 흔들렸지.”
칼릭스의 물음에 테온은 서류를 탁자 위에 피며 짧게 답했다.
“벨리언 문장이 낯설어서.”
“몇 번이나 본 문장이다.”
칼릭스가 탁자 위를 훑었다. 테온은 서류 다발을 정렬할 때 쓰는 끈을 품에서 꺼냈다. 그의 손놀림은 여전히 빨랐다.
“혼자 정리하겠다. 금방 치운다.”
테온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에레디아는 그가 문장이 아니라 출생 기록을 보았다는 걸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묻지 않았다. 테온은 다발을 세 묶음으로 나누고는 탁자에서 물러났다. 이윽고 복도로 나갔다.
칼릭스가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테온이 문 밖으로 사라진 뒤, 그가 낮게 말했다.
“서류 한 장. 정리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하셔야 합니다.”
“그래. 이미 압수 서류 감시 목록에 메모했다.”
에레디아는 장부 위에 검은 벨벳 리본이 드리워질 만큼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와 세라핀의 친모, 그리고 벨리언 저택의 은폐. 이제 그 기록이 손에 있었다.
별의 서고는 새벽에도 어두웠다.
에드릭 라셀은 흰 예복 자락을 끌며 서가 사이로 들어갔다. 그가 직접 서고의 문을 닫자, 바깥의 불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검은 왕관 인장 탁본을 품에서 꺼내 선반 위에 펼쳤다.
탁본의 곁가지 문양이 푸르스름한 광석 등 아래에서 검게 번졌다. 에드릭은 두 번째 미래 단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열람석에 놓인 단편은 종이처럼 얇은 수정판이었다. 그가 붓에 단편의 표면을 문지르자, 그 안에서 어느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이었다.
작은 잔을 든 채, 입술에 와인을 대는 남자. 목이 타 들어가고, 잔이 기울었다. 배경에는 검은 왕관.
에드릭은 수정판에서 손을 떼었다. 숨을 들이켰다.
“독살, 이군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걸 지우려면 북부 사절단이 오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탁본을 다시 집어 광석 등 가까이 들었다. 검은 왕관의 능선을 따라 제7수송로가 지나는 길이 겹쳐 보였다. 에드릭은 탁본을 단편 옆에 하나 더 두고, 이를 사본으로 옮겼다. 눈동자는 침착했고, 손가락은 종이를 배는 듯했다.
에레디아와 칼릭스를 향한 선제 공격 — 그는 그 순간 그걸 계획이라 부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목숨에 대한 정당한 방어라고 규정했다.
서고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에드릭은 오래 서서 검은 왕관과 붓과 수정판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광석 등이 타들어가며 노랗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