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별에 새겨진 공녀, 얼음 공작의 손을 잡다

7화

에레디아는 월백초 뿌리를 막자사발에 눌러 갈았다. 흰 분말이 바람에 흩어지지 않도록 사발 가까이 숨을 죽였다. 대접견실 옆 별실이었다. 창밖으로 사절단 마차가 정문을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칼릭스가 문가에 서서 손을 뻗었다.

“해독약은 몇 인분이 필요하지.”

“열여섯 명분입니다. 사절단 여덟에 공작성 배석 다섯, 시종 셋.”

“시종까지.”

“독은 잔을 가리지 않습니다.”

에레디아는 분말을 무게 단위로 나눠 봉지에 담았다. 손끝에 서리가 맺힌 듯 차가웠다. 지난밤 대접견실에서 테온이 감춘 서류 한 장과 하우젠 자백서 원본이 떠올랐다. 곧이어 별의 서고에서 에드릭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던 장면이 겹쳤다.

칼릭스가 그녀 앞에 무릎을 낮추지 않고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이 독은 무미무취다. 차에서 나기 전에 누가 알아채야 하는지 네가 정해야 한다.”

“급수 통제점을 하나로 묶겠습니다. 찻물과 식수가 지나는 곳에 접근 기록을 남기는 인원을 세우고, 제가 직접 검수하겠습니다.”

“병참경비는 몇이나 떼지.”

“넷. 다만 로그는 제가 두 번 확인합니다.”

칼릭스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검은 제복 자락이 별실의 등불 아래에서 조금 움직였다.

“좋다.”

그가 짧게 허가했다. 에레디아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정오 무렵, 대접견실.

손님들이 착석하고 차가 돌기 시작하자 접대석 왼편에 차린 찻단지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에레디아는 급수 통제점의 접근 로그를 다시 확인했다. 병참경비 넷이 움직인 시각과 손댄 위치가 적혀 있었다. 그녀가 월백초 분말 봉지를 안쪽 주머니에 넣고 대접견실 남쪽 복도로 나섰다.

중앙 식수단지 앞에 하급 시종 하나가 서 있었다. 새로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침에 부엌에서 물그릇을 닦던 이였다. 열여섯 잔 중 아홉 잔까지 물이 차올랐고, 나머지는 차를 우릴 주전자로 옮겨지고 있었다.

“저, 시종장께서 물을 한 번만 다시 걸러 오라 하셨습니다.”

시종이 고개를 숙였다. 에레디아는 그가 든 작은 채반을 보았다. 채반 밑에 젖은 천이 덮여 있었다.

“거기, 손을 얹은 게 언제입니까.”

“방금입니다. 통제점 쪽 병참경비께 확인받았습니다.”

“기록에는 없습니다.”

에레디아가 로그지를 곧게 폈다. 시종의 눈빛이 그 종이 위에서 잠시 흔들렸다.

“추가 점검은 시종장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을 대십시오.”

시종이 대답 대신 반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채반 밑에서 흰 가루가 떨어졌다. 찻단지 쪽으로 바람이 불자 에레디아가 손을 뻗어 찻단지 뚜껑을 눌렀다.

“물은 그대로 두고, 뒤로 물러서십시오.”

칼릭스가 대접견실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제복 자락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움직였다. 그의 눈이 시종의 손에 먼저 닿았다. 채반을 쥔 손가락이 가늘게 경련하고 있었다.

“채반을 내려라.”

시종이 채반을 안았다. 흰 가루가 옷섶으로 번졌다.

“이건, 순찰용 밀가루입니다. 급수관 틈 막는 데 쓰는······.”

“백야초는 무미무취다.”

칼릭스가 말을 끊었다. 대접견실 안의 귀족들이 술렁였다. 로베르토 벨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을 바라보았다. 제복이 아니라 검은 사절단 예복이었다. 허리춤에 밀명 문서함이 붙어 있었다.

“공작 전하. 접대석에서 시종 하나가 밀가루를 쏟은 것만으로 맹독 공격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밀가루면 그걸 검수하면 됩니다. 그게 무색 가루라면 더 간단하지요. 시료로 봉인해 시험하겠습니다.”

에레디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통제점 쪽에서 미리 옮겨 둔 빈 잔 두 개에 식수와 찻물을 조금 덜어 냈다. 봉지에 담긴 월백초 뿌리 분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백야초 반응을 확인할 시약 천을 꺼냈다. 그 천이 물에 닿자 식수 쪽에서는 옅은 회색으로, 찻물 쪽에서는 거의 검게 물들었다.

“두 군데 다 반응이 있습니다.”

“누가 그 물을 마셨습니까.”

칼릭스가 낮게 물었다. 대접견실 안의 좌중이 잔에서 손을 뗐다. 잔을 든 사람은 로베르토뿐이었는데, 그도 잔을 천천히 내려놓지 않고 들고 서 있었다.

“마시기 전입니다.”

시종 하나가 대답했다. 다른 시종들은 고개를 저었다. 에레디아가 해독약 봉지를 풀었다. 그녀는 먼저 로베르토에게 다가갔다.

“백작님의 잔, 비우지 않으셨군요.”

“식수 반응이 독이라면 공작성 모두가 위험한 것 아닙니까. 나만 마신 게 아니라.”

“그래서 지금 전원에게 해독약을 돌립니다. 월백초 뿌리 분말입니다.”

로베르토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 해독약이 독이 아닌지 누가 검증합니까.”

“제가 직접 마시겠습니다.”

에레디아는 잔에 물을 붓고 월백초 분말을 섞었다. 그 잔을 단번에 비웠다. 손등의 화상 흉터가 등불 아래 잠깐 드러났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찬물을 마신 뒤의 목울대를 곧게 세웠다.

“독이면 지금이 해독 시간입니다.”

조용한 문장이었다. 로베르토가 그녀를 보았다. 그의 입가에서 조소라기보다 불쾌감이 지났다. 그가 잔을 내려놓았다.

“해독약은 반응이 끝난 뒤에도 나눠주십시오.”

칼릭스가 말했다. 병참경비가 그 명령을 받아 잔 열여섯 전부를 새 물로 바꾸기 시작했다. 에레디아는 그 사이 시종의 채반을 봉지째 봉인하고, 접근 로그에서 그가 찍은 이름을 가리켰다.

“이름이 로그에 없습니다. 순찰 기록을 위조했군요.”

시종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병참경비가 팔을 결박했다. 흰 가루가 묻은 옷섶에서 작은 종이 봉지 하나가 떨어졌다. 아직 봉하지 않은 백야초 소량이었다.

“뒤에서 지시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칼릭스가 시종 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시종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로베르토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공작 전하. 이 시종이 황실 사절단의 외곽 수행원으로 붙은 자입니다. 공작성이 바로 처벌할 권한은 없습니다.”

“범죄 현장은 공작성입니다.”

칼릭스가 막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이 단단했다.

“백작이 데려온 사절단의 수행원이 공작성 급수에 독을 풀었습니다. 여기서 권한이 없다면 어디에 문의해야 하지요.”

로베르토가 웃지 않았다. 그는 문서함을 열었다. 노란 끈으로 묶인 밀명 하나를 꺼냈다. 봉인 왁스가 두 겹이었다.

“테러 시각과 경로를 어떻게 그리 정확히 알았습니까. 이건 공작성 통제 실패를 뒤집으려는 연출로 보입니다.”

“봉인 로그를 보면 압니다.”

에레디아가 대답했다.

“접근 기록과 식수 출처를 맞추면, 누가 들어왔고 어느 순간 봉지가 비었는지 남습니다.”

“그 로그를 사전에 조작했다면.”

“조작했다면 이 시종의 지문이 찍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가 조사용 천으로 시종의 채반 위 인영을 찍어냈다. 젖은 천에 손가락 자국이 이미 배어 있었다. 로베르토가 그 천을 바라보았다.

그가 밀명을 높이 들었다.

“황제 폐하의 밀명입니다. 본 사절단은 이 접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안전 문제를 조사하고, 공작가의 통제 실패가 확인되면 북부 출입 관리를 황실이 임시 대리하게 됩니다.”

대접견실이 조용해졌다. 잔을 닦던 시종의 손이 멈췄다. 칼릭스만 로베르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본을 보관하겠습니다.”

“밀명 원문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사 권한은 지금부터입니다.”

에레디아가 로그지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밀명 봉인 위에 멎었다. 왁스 두 겹 중 안쪽 인장이 약간 밀려 있었다. 봉인 시각이 적힌 끈이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백작님. 이 밀명의 봉인 시각은 별의 서고 문이 닫힌 직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베르토의 눈매가 좁아졌다.

“확인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생각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접대장 출입대장과 사절단 도착 통지 시각을 대조하면 나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 대목에서 아주 잠깐 뜸을 들였다.

“그리고 지금 이 테러의 백야초 입수 경로는 황실 통과 경로가 아닌 사절단 내부 물자 목록과 겹칩니다.”

“증거를.”

“봉인한 봉지에 남은 포장지를 대조하면 됩니다. 지금 증거 봉인을 뜯을 수 없으니, 두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번만 열겠습니다.”

칼릭스가 병참경비를 호출했다.

“이 자리에서 봉인을 확인하라. 훼손되면 내가 책임진다.”

에레디아가 종이 봉지 겉을 천천히 찢지 않고 물에 띄웠다. 포장지가 젖으며 안쪽에서 옅은 문양이 떠올랐다. 사절단의 부식 물자 표식이었다.

로베르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가 밀명을 문서함에 다시 넣지 않고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이건 사절단 쪽 연루를 의심하게 만들기 위한 사전 배치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사절단 내부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조사에 이 증거를 제출하겠습니다.”

칼릭스가 대접견실 한가운데로 나섰다.

“공작성은 이 사건을 자체 종결하지 않는다. 밀명의 사본은 보관하고, 증거는 봉인해 오늘 중 신전 검독관에게 넘긴다.”

로베르토가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결국 밀명 사본을 내밀었다. 칼릭스가 받아 접었다.

“이의는 공식 절차로 접수하지요, 백작님.”

에레디아가 말했다. 로베르토는 그녀를 보며 한 걸음 가까이 왔다.

“공녀께서 오늘 일을 막아낸 게 아니라면, 지금 성 안의 잔은 모두 비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노렸다는 뜻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안다면, 그게 두려운 일이라는 것도 아시겠지요.”

“그래서 이 자리에 증거가 남게 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에레디아는 병참경비에게 증거 봉인본을 넘겼다. 로베르토는 밀명 원본을 품에 넣고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가에 서서 대접견실 안을 훑었다.

해질녘이 다가올 무렵, 북부 신전 지하 고문서고.

아르보 렉투스가 돌계단 중간에서 에레디아를 마중했다. 등불이 그의 흰 신관복 끝을 노랗게 물들였다.

“대접견실 조사가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습니까.”

“네. 다만 오늘 테러 통제의 증거를 직접 옮긴 뒤라 손끝이 좀 저립니다.”

“신전은 급수 문제로 접근 통제를 걸었습니다. 고문서고는 오늘 아침부터 공식 검증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계단 아래 공기가 무거웠다. 에레디아가 한 발 내려서자 어둠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아르보가 앞에서 등을 비추었다.

“달의 눈물 광석을 눈으로 보기 전에 하나 묻겠습니다. 공녀께서 로엔에 온 뒤, 왼쪽 눈밑에 통증이 있었습니까.”

“오늘은 예민합니다. 저녁 바람을 맞으면 눈가가 찌릿합니다.”

“그쪽으로 오시지요.”

고문서고 가장 안쪽이었다. 돌선반 위에 작은 광석 하나가 검은 보자기에 덮여 있었다. 달의 눈물 원석은 겉이 짐승 뼈처럼 매끄러웠고, 표면 아래로 푸른 물이 흐르는 듯 보였다.

아르보가 에레디아의 왼쪽 뺨 쪽으로 램프를 기울였다.

“눈을 감으십시오.”

그녀가 눈을 감았다. 광석의 푸른 빛이 검은 보자기 아래에서도 스며 나와 그녀의 눈물점에 닿았다. 순간, 눈밑이 가늘게 뜨거워졌다. 에레디아는 참지 못하고 손끝을 뺨에 대었다.

“아르보 신관님. 지금······.”

“움직이지 마십시오. 이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르보가 종이를 꺼내 그 자리에 뭔가를 필사했다. 광석의 푸른 빛이 잠시 그녀의 눈물점을 따라 얇은 선으로 그어졌다. 마치 별의 서고에서 본 적 있는 문양과 닮은 곡선이었다.

에레디아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달의 눈물 광석 앞에서 그녀의 신체가 멋대로 반응하는 낯선 감각이 목덜미까지 퍼졌다.

광석의 빛이 사그라졌다. 아르보가 손에 든 필사본을 탁자 위에 펼쳤다. 그 위에 방금 찍은 듯한 검은 문양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신전 고문서에서 본 적 있는 도안과 이어 붙였다.

“별의 서고와 같은 검은 문양입니다.”

아르보의 목소리가 조용히 갈라졌다.

“달의 눈물이 보인 기록의 흔적 같은 것입니다. 공녀의 눈물점이 여기에 반응했습니다.”

“그걸 보존하십시오.”

에레디아가 말했다. 그녀의 눈물점은 아직도 푸른 잔흔을 남긴 채 옅게 일렁였다.

“오늘 이 기록은 신전 인장으로 봉인하겠습니다.”

아르보가 그 문양을 다른 종이에 배껴 내며 고개를 들었다.

“아직 명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뒷부분이 없으면 이 기록은 단순한 접촉 신호로 끝납니다.”

“뒷부분이라면 고문서를 더 대조해야 하는 일이지요.”

“예. 그리고 그건 신전 밖에서가 아니라 여기서 해야 안전합니다.”

달의 눈물 광석 위로 검은 보자기가 다시 덮였다. 보자기 자락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 문양이 필사본 위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빛났다.

아르보가 등을 낮추어 그 빛을 종이에 눌러 담았다. 에레디아는 달의 눈물 앞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못한 채, 눈가에 스민 통증을 손으로 가렸다.

별에 새겨진 공녀, 얼음 공작의 손을 잡다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