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처형된 공녀는 집행관과 계약 결혼한다

1화

아침 햇살이 서재 창틀에 걸린 먼지를 하얗게 떠올릴 무렵, 벨리시아는 잠옷 위로 겉옷만 걸치고 복도 끝 서재 문을 밀었다.

열쇠는 손에 없었다. 첫 생에서 이 시각,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지금도 손잡이는 힘없이 돌아갔다.

안쪽에서 불이 꺼지기 직전처럼 공기가 움찔했다. 책장 옆 두 번째 캔들스탠드 앞에 등을 보인 남자. 검은 수행원 복장, 손에는 두루마리. 남자는 벨리시아를 보자 손목을 틀어 두루마리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거기서 멈추십시오.”

벨리시아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로질렀다. 남자가 답 대신 캔들스탠드를 걷어찼다. 은빛 기둥이 바닥에 부딪히며 촛농과 함께 푸른 액체 방울이 튀었다.

벨리시아는 한 걸음 들어와 탁자 위 은 촛대를 집었다. 남자가 창 쪽으로 몸을 돌리자 촛대를 휘둘러 남자의 옆구리를 때렸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손에서 두루마리가 떨어졌다.

벨리시아가 두루마리를 밟았다.

“밀사시군요. 어느 쪽입니까.”

남자가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창밖으로 몸을 던지려다 벽에 부딪혀 무릎을 꿇었다.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벨리시아가 촛대를 들어 다시 겨냥했다.

남자의 손가락이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다른 손으로 뚜껑을 따자 검은 액체가 입술에 닿기 전에 벨리시아의 촛대가 남자의 손목을 때렸다. 유리병이 바닥에 부딪혀 굴렀다.

남자는 이미 입 안에 머금었던 것을 삼켰다.

벨리시아가 소매 끝으로 남자의 턱을 쳐 올렸지만 늦었다. 남자의 숨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눈이 흰자위를 드러내고 목이 뒤로 꺾였다. 몇 초 뒤 목젖이 세 번 경련하고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벨리시아는 촛대를 든 채 허리를 굽혀 남자의 숨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식어가는 손등을 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바닥에 떨어진 두루마리를 집었다. 반쯤 펼쳐진 문서 위, 날인되지 않은 제국 이미지가 찍힌 절반은 습기가 있었고 가장자리는 갈색으로 번져 있었다. 흑연꽃. 은 촛대 밑동에 남은 푸른 얼룩과 같은 색이었다.

벨리시아는 문서를 다시 말아 서랍에 넣고 은 촛대를 탁자 위에 세워 두었다. 유리병은 남자의 손이 닿지 않도록 발끝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종을 세 번, 아르덴 가의 비상 신호로 쳤다.

\[...\]

심판관 일행이 서재로 들이닥친 것은 그로부터 아홉 걸음 뒤의 일이었다. 벨리시아가 현관에 전갈을 보내기 전에 집사가 이미 문을 열었고, 검은 코트의 그림자가 복도에 길게 눕고 있었다.

벨리시아는 서재 안에서 일행을 맞지 않았다. 문 옆 벽을 등지고 서서 심판관이 방 안을 먼저 보는 구도를 만들었다. 뒤따라 들어오는 이의 발소리는 두어 걸음마다 정확히 끊어졌다.

검은 제복에 은실 단추, 왼손 손등에는 집행관 직인이 푸르스름한 잉크로 박혀 있었다. 짧게 넘긴 검은 머리 아래 옅은 회색 눈이 바닥의 시체를 스치고 은 촛대를 훑었다. 목 오른쪽 맥이 뛰는 자리에 옅은 화상 자국이 빛에 드러났다.

벨리시아는 그 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첫 생의 기억이 옷자락처럼 다리에 감겼다. 서늘했다.

그러나 그 서늘함이 목소리에 묻어나기 전에 입을 열었다.

“현행인을 제가 제지하는 사이 독을 삼켰습니다. 반역 문서와 흑연꽃입니다.”

심판관은 촛대의 푸른 얼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직접 만지지는 않았다.

“심판관 카르엘 레벤하르트.”

짧은 신원 표시였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라.”

벨리시아는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런 다음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조항처럼 끊어 말했다.

“증거는 보존했습니다. 문서는 서재 서랍, 촛대는 그대로, 밀반입된 독약은 바닥의 유리병입니다.”

카르엘이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시체의 위치와 촛대의 각도를 번갈아 보았다.

“네가 이 남자를 제지했나.”

“그렇습니다.”

“흑연꽃 도포는 네가 밝혔고.”

“은에 닿아 푸르게 변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카르엘이 벨리시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선이 목선을 훑고 내려가 손을 확인했다.

“검거 절차를 밟겠다. 반역 혐의 현장이다.”

벨리시아는 문을 등진 자세 그대로였다. 손가락은 서로 깍지를 끼어 옷소매 안에 감춰져 있었다.

“심판관님께서는 단독 기소권을 가지십니다. 이 사건에서 아르덴 가 전체를 기소할 권한도.”

카르엘의 얼굴에 주름이 잡히지 않았다.

“협박인가.”

“계산일 뿐입니다.”

벨리시아가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카르엘과의 거리를 세 걸음에서 두 걸음으로 줄였다. 냉기가 밀려드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오늘 서신이 오기 전에 이 밀사가 문서에 독을 바르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가문 전체의 공모를 지시했다면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카르엘이 대답하지 않았다.

“가문을 묶어 조사하는 대신 저와 혼인 계약을 맺으십시오.”

방 안 어딘가에서 보좌가들의 숨이 멈추었다. 벨리시아는 사람들의 반응을 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계약이 성립하면 심판관의 배우자는 기소 대상에서 분리됩니다. 아르덴 가는 그 혼인 관계를 근거로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현장의 모든 증거를 심판관님의 수사에 제공합니다.”

카르엘이 팔짱을 풀었다. 왼손 손등의 푸른 직인이 흔들렸다.

“신뢰할 이유를 아직 못 들었다.”

“신뢰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가문 보호가 필요합니다. 심판관님께는 지금 이 사건의 온전한 증거가 필요하겠지요. 서로 물건을 주고받는 계약입니다.”

카르엘이 벨리시아의 눈을 정면으로 보았다. 옅은 회색 눈동자는 마치 온도를 재는 것처럼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내 권한의 대가는.”

“단독 기소권을 혼인 기간 동안 저에게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넣겠습니다. 그 이상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카르엘이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벨리시아도 재촉하지 않았다.

“결혼 계약이라면 서명과 증인이 필요하다.”

“이동 중에도 서명은 가능합니다.”

“지금 집무실로 가서 계약서를 만들겠다. 네가 조건을 불러라.”

벨리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카르엘이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아니다. 이동 중에는 만들지 않는다. 집무실에서 계약서 초안을 확인하고 서명한다.”

벨리시아는 서랍에서 문서를 꺼내 심판관 일행의 하급 조제사 한 명에게 방향을 지시했다. 그가 문서를 유리판에 올려 밀봉할 때까지 카르엘은 촛대 옆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벨리시아는 겉옷을 여미고 복도를 걸었다. 첫 생에서 이 시간, 이 서재의 종은 세 번 울렸지만 열리지 않은 문은 오늘 열렸고, 지금 그 남자는 한 명의 시체가 되어 증거로 남아 있었다.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그 바뀜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여전히 카르엘인 것은 벨리시아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서재 문을 닫기 전, 카르엘이 뒤에서 말했다.

“벨리시아 아르덴.”

멈추지 않았지만 발끝이 바닥에 붙었다.

“계약서를 확인하고도 네가 설명한 조항이 없으면, 나는 이 건을 처음 계획대로 집행한다.”

벨리시아가 돌아보며 답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말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의 끝이 한 자락 낮게 갈라졌고, 벨리시아는 그 틈새로 차가운 공기를 들이켰다.

레벤하르트 심판관 집무실은 창이 좁았다. 오전 햇살이 책상 위 서류 뭉치를 반만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카르엘이 먼저 들어가 집무실 한가운데 놓인 마호가니 책상을 짚었다. 검지 두 개로 서류 끄트머리를 밀어내고 잉크병과 펜 두 자루를 가지런히 놓았다.

“여기서 끝낸다.”

벨리시아는 그가 짚은 책상 반대편에 섰다.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오르시노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겨드랑이에 낀 가죽 서류 가방이 끈으로 한 번 더 묶여 있었다.

“서명 전에 두 가지만 남긴다.” 벨리시아는 등기소에서 받은 양식이 아니라 아르덴 가문이 준비한 계약 초안을 펼쳤다. “파기 위약금과 침소 출입.”

“읽어라.”

“혼인 기간 중 배우자는 서로의 침소 문 앞에서 구두 허락 없이 출입하지 않는다. 위반 시 계약 파기 사유가 된다.”

카르엘이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건 이미 넣었다.”

“금액은 비워뒀다.” 벨리시아는 펜대를 집어 들지 않고 그에게 보였다. “심판관이 정하라.”

펜을 넘겨받은 카르엘의 손가락이 빈칸 위를 지나갔다. 그 왼손 손등에 실핏줄 하나가 푸르게 떠올랐다.

“전 재산.” 그가 적었다. “파기 시 전 재산을 상대에게 양도하고 신분 제재를 받는다.”

오르시노가 책상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전 재산은 과합니다. 아르덴 저택 한 채도 포함됩니다.”

“포함한다.”

“혼인 자체가 수사 목적이라면 그 위약금은 심판관께 불리합니다.”

카르엘이 고개를 들고 보좌관을 보았다. “오르시노. 증인으로 남을 거면 서명해라.”

보좌관은 더 말하지 않았다. 가방을 열고 증인 서류를 꺼냈다. 잉크가 마르기 전 종이 끝을 눌러 두었다.

벨리시아는 초안 아래 아르덴 영애라는 자리를 정자로 눌러 썼다. 카르엘이 그 옆에 서명했다. 서명은 짧고 끝 획이 왼쪽으로 꺾였다. 오르시노가 마지막 칸에 증인으로 눌러 찍고 직인까지 올렸다.

카르엘이 서명된 증서에서 한 장을 떼어 접었다. 증거 보관 확인서와 함께 반대편으로 밀었다.

“받아라.”

벨리시아는 두 종이를 손등으로 끌어당겼다. 확인서에는 서재에서 압수한 증거 목록과 밀봉 상태가 시간순으로 적혀 있었다. 흑연꽃, 은수저가 담긴 접시, 시약병 두 개. 첫 생에서 법정에 올라왔던 물건들이 그대로였다.

“이걸 내게 주는 이유는.”

“서명 조건의 부속이다. 분실하면 네 책임이다.”

“모든 위반이 계약 파기 사유가 되는가.”

카르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좁은 창틀에 어깨가 반쯤 걸쳤다.

“침소 출입만 그렇다. 나머지는 위약금으로 간다.”

“위약금이 전 재산이다.” 벨리시아도 일어섰다. “이 결혼에서 내가 잃을 것이 더 없다는 뜻이군.”

카르엘이 뒤돌았다. 시선이 벨리시아의 목 언저리를 스쳐 바로 책상 위 서류로 돌아왔다.

“너는 이미 잃을 것 없이 시작하지 않았다.”

그 뒤로 대화는 짧았다. 오르시노가 등기소 제출용 사본 두 벌을 만들었고, 벨리시아가 증거 보관 확인서를 가슴 안쪽으로 접어 넣었다. 카르엘은 밀봉된 흑연꽃 증거가 담긴 목재 상자를 직접 들었다.

제국 등기소는 오후가 되자 대리석 바닥이 식어 있었다. 접수 창구 앞에는 세 사람 외에 민원인이 드물었다. 벨리시아가 사본과 증인 서류를 창구에 내밀자, 늙은 서기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날인란이 찍힌 종이를 한 장씩 번겼다.

“계약 혼인 신고로군요.” 서기가 접수 번호를 넘기며 장부에 펜을 찍었다. “이미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서류도 있습니다.”

벨리시아의 손이 창구 가장자리에서 잠시 멈췄다. “어떤 서류인지요.”

“제출 전 안내문입니다. 윗쪽에서 보낸 것이라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서기는 접수증을 벨리시아 앞으로 밀었다. “등재는 당일 처리됩니다. 혼인 성립을 축하드립니다.”

벨리시아가 접수증을 받아 두 번 접었다. 카르엘이 창구에 아직 손을 짚고 있었다. 서기의 말에 아무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접수증은 아르덴 소지로 기록한다.” 그가 뒤늦게 말했다. “진본은 내가 맡는다.”

오르시노가 증인 서명 사본을 품에 넣었다. “등기소 통과는 끝났습니다. 저택으로 돌아가시지요.”

벨리시아는 대답 대신 등기소 정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세 걸음 뒤에 멈추었다. 유리창 너머로 황실 문장이 박힌 마차 한 대가 돌계단 앞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부만 보였지만, 승차석 커튼 사이로 흰 장갑을 낀 손이 걷혔다.

카르엘이 먼저 움직였다. 벨리시아의 팔을 끌어 등기소 문 안쪽 기둥 뒤로 밀어 넣었다. 그의 몸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문 밖으로 나가지 마.”

벨리시아는 기둥에 기댄 채 그 너머의 마차가 완전히 멈추는 것을 보았다. 마차 문이 열리고 축하 사절이라는 방문객이 한 명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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