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처형된 공녀는 집행관과 계약 결혼한다

2화

“들어가 앉으시지요, 심판관님.”

벨리시아가 응접실 문을 닫으며 카르엘보다 반 발 앞서 말했다. 다음 날 오전의 햇빛이 창문 두 개를 비껴 바닥을 얇게 데웠다. 오르시노가 그 뒤를 따라와 테이블 앞에 섰다.

“이미 공개 자리에서 말씀드렸고, 계약 등기 증명은 여기 있습니다.” 벨리시아가 접어 둔 등기 사본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종이 모서리가 조금 눌려 있었다.

오르시노는 곧장 손대지 않았다. “계약서 원본을 열람하게 해 주십시오. 증명이 아니라 원본입니다.”

벨리시아가 사본을 손등으로 밀었다. “등기소 제출본으로 충분한가요?”

“충분하지 않습니다. 원본의 부속 조항과 증인 서명 위치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르시노가 말했다.

카르엘이 창가 쪽으로 반 걸음 옮겼다. 검은 제복 소매가 테이블 모서리를 스쳤다.

“원본은 심판관께서 맡으셨습니다.” 벨리시아가 오르시노를 똑바로 보았다. “열람을 청하시려면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권한부터 보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르시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 방문은 황실 연회 참석 확인을 위한 사절단입니다. 신분과 권한은 사절 명단에 기재됐습니다.”

“황실 연회 참석은 다시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벨리시아가 말했다. “참석은 하겠습니다. 신혼 부부가 연회를 거절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오르시노가 테이블 위 등기 사본을 집어 번졌다. 종이 끝이 살짝 위로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참석 의사를 이렇게 분명히 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별관 인원 명단도 주십시오.”

벨리시아가 카르엘 쪽을 돌았다. 그는 여전히 창가에 서서 손을 뒤로 모으고 있었다. 말을 보탤 기색이 없었다.

“축하 사절이 무슨 권한으로요.” 벨리시아가 다시 오르시노를 향했다.

오르시노의 검지가 등기 사본 모서리를 한 번 눌렀다. “수행원 배치를 위한 확인입니다. 연회에 모실 분들의 명단 표기가 있어야 저희도 자리를 정합니다.”

“그 명단은 공식 연회장 입장 절차로 요구하십시오.” 벨리시아가 말했다. “이 저택의 별관은 연회장이 아니니, 사절단 수행이 머물 곳도 아닙니다.”

오르시노가 접었던 등기 사본을 반으로 꺾어 안주머니로 넣으려다 멈췄다. “사본은 받아 가도 되겠습니까.”

“가져가십시오.” 벨리시아가 말했다.

오르시노가 사본을 넣은 뒤 몸을 일으켰다. 시선이 계단 쪽 통로에 잠시 머물렀다. “그럼 별관 출입은 저택 측 안내를 받는 선에서 하겠습니다.”

“출입이 아니라 방문조차 지금은 필요 없습니다.” 벨리시아가 응접실 문을 가리켰다. “연회 준비 연락은 서면으로 받지요.”

오르시노는 한 번 더 입을 열려다 이내 닫았다. 카르엘에게 고개를 조금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응접실 문 밖으로 나가며 그의 구두 소리가 복도를 두 차례 울리고 잦아들었다.

카르엘이 창가에서 돌아섰다. “오르시노가 별관 명단을 다시 들고 올 거다.”

“알고 있습니다.” 벨리시아가 테이블 위에 손을 내려놓았다. “그전에 제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카르엘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일부터는 이름을 부른다. 여기서는 아르덴 영애로 부르다가 무슨 소리가 나갈지 모른다.”

벨리시아가 잠시 그를 올려다봤다. “그게 부부로서 합당한 호칭이군요. 좋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벨리시아의 등 뒤로 카르엘의 목소리가 따랐다. “나는 먼저 집무실로 간다. 서류는 미리 둔다.”

벨리시아는 대답 없이 계단 끝을 밟았다. 복도 바닥의 얇은 카펫이 오르시노가 남긴 구두 소리만큼 차갑게 깔려 있었다.

별관 개인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벨리시아가 두드리기 전에 안쪽에서 루이제의 발소리가 먼저 났다.

“언니야?”

문이 열리고 루이제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연한 수선화색 드레스 소매에 손을 감춘 채였다.

“혼인은 성립됐다.” 벨리시아가 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가문을 두고 서두른 일이야.”

루이제가 문 앞에 그대로 멈췄다. “그걸 지금 나한테 말해 주는 거야.”

“아침 일찍 발표했고, 축하 사절도 다녀갔다. 네가 별관 문을 닫고 있으니 듣지 못했을 테니 왔다.”

루이제가 두 손을 앞으로 꼽았다. 손가락이 리본 매듭을 누르고 있었다. “나한테는 짐이라는 얘기를 들으러 온 거지.”

벨리시아가 침대 옆 의자까지 걸어갔다. “루이제.”

“언니는 멋대로 정하고 다 들켰으니까 이제 와서 알려 주는 거잖아.” 루이제의 말이 빨라졌다. “그동안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잖아.”

루이제가 옷장 서랍을 열었다. 편지 뭉치가 절반쯤 두께로 쌓여 있었고, 그 위에 미개봉 봉투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루이제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

벨리시아가 서랍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봉투 겉면에 황태자 문장이 눌려 있었다. 뜯긴 자국은 없었다.

“그 편지는 언제 온 거니.”

루이제의 손이 봉투를 아래로 내렸다. “조금 전에.” 그녀가 말을 흐렸다. “아니다. 어제인가……”

“네가 서랍에서 꺼낸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지.”

루이제가 고개를 들었다. “언니는 결혼으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나는 왜 여기 있는데.”

“너는 여기서 내가 지켜야 할 아이다.”

“그게 싫어.” 루이제가 손에 쥔 봉투를 편지 뭉치 아래로 밀어 넣었다. 서랍 깊숙이, 손이 닿는 마지막 자리까지 들어갔다. “언니는 늘 그렇게 다 안다는 듯 말해.”

벨리시아가 의자에 앉지 않고 섰다. “루이제, 그 봉투는 지금 여는 것이 아니다.”

“언니한테 보여 줄 생각 없었어.” 루이제가 서랍을 닫았다. 경첩이 세게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혼자 다 정해.”

루이제가 등을 돌려 창가 쪽으로 갔다. 작은 어깨가 드레스 천 위로 굳어 올라와 있었다.

“가문의 위기를 넘기려 하는 거야.” 벨리시아가 말했다. “계약 결혼은 그 수단이고.”

루이제가 창문에 이마를 대지도 않고 한 발 떨어져 섰다. “알았어.”

벨리시아는 조금 더 서 있다가 서재이던 서고 쪽을 떠올렸다. 증거 보관 상태부터 점검해야 했다. 루이제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벨리시아가 방문을 잡았다. “황태자 문장은 내게 바로 알려야 해. 다음에 그런 봉투가 오면 가장 먼저.”

루이제가 창밖을 향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벨리시아는 문을 닫고 나왔다. 복도 끝에서 별관 쪽 찬 공기가 천천히 흘러왔다. 그녀의 손 안에서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고를 향하는 바람이 얇아졌다. 벨리시아는 열린 문틈으로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보며 그 앞에 잠시 멈추었다.

별관 복도 끝 서고 문이 열려 있었다. 오후 햇살이 서고 안으로 길게 누워, 벨리시아가 등기소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확인한 봉인 증거함 위를 비스듬히 잘랐다.

밀사가 남긴 첫 흑연꽃 시료는 잠금장 안에 그대로였다. 봉인 밀랍도 온전했다. 벨리시아는 증거함 문을 닫고 손을 거두었다.

그때였다. 왼쪽 서가 뒤에서 날이 번뜩였다. 침입자의 단검이 어깨 높이로 내려꽂혔다. 벨리시아가 몸을 틀 새도 없이 오른쪽에서 손이 뻗어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카르엘이 뒤로 끌어당겼다. 단검 끝이 벨리시아의 소매를 스쳐 서가 모서리에 꽂혔다. 그 접촉의 순간 벨리시아의 목이 갑자기 시렸다. 사형장의 쇠 냄새가 목젖 뒤로 치밀었다.

그녀는 헛숨을 한 번 들이켰다. 발이 서고 바닥에서 밀렸다. 카르엘의 팔이 그녀를 완전히 자기 쪽으로 당긴 뒤에야 움직임이 멎었다.

카르엘의 왼손이 그녀의 팔을 놓지 않았다. 손등이 저 밑에서부터 저려 오르는 것을 그는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손아귀의 힘이 한 번 더 조여졌다.

침입자는 단검을 뽑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어깨에 걸친 짧은 외투, 얼굴 하반부를 가린 천. 손에 움켜쥔 무향 액체 병이 기울었다.

“물러서.” 카르엘이 낮게 말했다.

침입자가 병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유리병이 깨지기 전, 그는 벨리시아 쪽으로 반 걸음 내디뎠다. 그러나 카르엘이 먼저 벨리시아의 팔을 놓고 침입자의 앞길을 막아섰다.

“쫓아가 봐야 소용없다. 서고 창문은 열려 있다.”

침입자는 곧장 창문을 넘었다. 쇠틀 긁는 소리가 짧게 났고, 밖에서 경비대 구두 소리가 몰렸다.

벨리시아는 서가 모서리에 꽂힌 단검을 보았다. 끝이 반 뼘쯤 박혀 있었고, 자루에는 아무 문장도 없었다. 곧 저택 경비대가 서고 앞 복도에 이르렀다.

“수색 시작한다.” 카르엘이 복도 쪽으로 말했다. “별관 뒤편부터 잡아라.”

경비대가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벨리시아는 아직 목을 감쌌다.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손끝은 차가운 채였다.

카르엘이 깨진 병 근처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유리 파편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서고 바닥의 돌 틈을 타고 번졌다.

“은 접시를 가져와라.” 그가 밖에 있는 하인에게 말했다.

잠시 뒤 하급 조제사 한 명이 은 접시를 들고 왔다. 카르엘이 유리 파편을 피해 액체 한 방울을 떠올렸다. 은 접시에 닿은 순간 푸르게 변했다.

벨리시아의 손가락이 봉인 용기 뚜껑에서 굳었다. 같은 색이었다. 아침에 밀사의 입술을 덮었던 그 청색과, 서재 은 촛대에 묻었던 색과.

“두 번째 흑연꽃.” 벨리시아가 말했다.

카르엘이 접시를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푸른 반점이 은빛 위에서 천천히 번졌다.

“첫 시료와 별도로 봉인한다.”

벨리시아는 진열장 아래에서 빈 봉인병을 꺼냈다. 장갑을 낀 조제사가 유리 파편 사이에서 남은 액체를 조심스레 떠서 병에 담았다. 벨리시아가 뚜껑을 닫고 밀랍을 눌렀다.

카르엘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이 침입자는 흑연꽃을 들고 왔다. 밀사 사건과 같은 배후가 별관까지 사람을 보낸 셈이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벨리시아가 말했다.

그녀는 서류 탁자 위에 한 장을 펼쳤다. 침입 시간, 흑연꽃 재검출, 경비대 수색 지시까지 간결하게 적었다. 서명란에 이름을 쓰고 카르엘에게 펜을 넘겼다.

카르엘이 확인 없이 서명했다. 펜을 내려놓는 손이 잠시 멎었다.

“어디 아픈가.”

벨리시아는 목 언저리에서 손을 거두며 고개를 저었다.

“냄새가 났을 뿐입니다.”

카르엘은 더 묻지 않았다. 봉인병을 서고 잠금장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때 서고 입구 쪽에 인기척이 났다. 테오도르가 문간에 서 있었다. 숨을 가볍게 몰아쉬고 있었고, 외투 앞섶이 평소보다 부풀어 있었다.

“심판관님. 경비대가 별관 뒤편을 수색 중입니다.” 테오도르가 말했다. “아직 침입자를 놓쳤습니다만, 담벼락 쪽에서 외투 조각 하나를 찾았습니다.”

“가져와라.”

테오도르가 안쪽으로 들어오려다 움찔했다. 왼손이 외투 안쪽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품 쪽 깊이 눌러 넣었다. 가죽 공책의 모서리가 손바닥에 잠깐 눌렸다 사라졌다.

그는 이내 손을 빼냈고, 옷 매무새를 바로 했다. 시선은 벨리시아 쪽으로 가지 못하고 서고 바닥의 유리 파편 위를 맴돌았다.

“조사반이 유리 파편을 수거한 뒤에 증거품을 옮기겠습니다.” 테오도르가 말을 빠르게 이었다. “제가 먼저 서고 출입 기록을 남기겠습니다.”

벨리시아는 그가 외투 안쪽에서 손을 뺀 직후의 자세를 그대로 기억했다. 오른쪽 품이 아직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가죽 공책 모서리가 안감에 눌린 자리였다.

“그 기록은 제가 합니다.” 벨리시아가 말했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들었다. 벨리시아는 그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서류 탁자 위 기록지를 당겨 마지막 줄을 덧붙였다.

“입회 진행관은 수색 경과를 보고만 하셨습니다. 출입 명단에는 벨리시아 아르덴과 심판관, 그리고 조제사 한 명만 남기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안경을 고쳐 썼다. 손끝이 안경테에서 조금 미끄러졌다.

“알겠습니다. 저는 복도에서 대기하지요.”

그가 한 걸음 물러섰다. 서고 출입구 쪽으로 돌아설 때, 외투 주머니 끝에서 가죽 공책 모서리가 다시 빠져나왔다. 짙은 갈색 가죽이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벨리시아는 그 모서리에 시선을 멈췄다. 테오도르는 빠르게 안으로 밀어 넣고 손으로 그 자리를 덮었다.

“이만.” 테오도르가 짧게 인사하고 복도로 나갔다.

벨리시아는 기록지 위에 펜을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이 방금 전과 달리 뜨거웠다. 서고 문 너머로 테오도르의 구두 소리가 복도 끝으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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