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녀는 잊힌 신전의 마지막 사제와 계약 결혼한다
3화
회의장 문이 닫히자 서기가 남긴 검은 함 자물쇠가 시야 끝에서 반짝였다. 그 함에는 서약서 원본이 없다. 원본은 리에나의 품 안에, 어머니의 기록과 함께 접혀 있었다. 복도는 어둡지 않았지만 회의장 안의 숨 막히는 공기보다 오히려 낮설게 느껴졌다. 해 질 무렵의 붉은 빛이 높은 창을 지나 돌바닥을 물들였다.
리에나가 걸음을 멈췄다. 앞서 걷던 이드리스도 반 보폭 뒤에서 발을 세웠다. 복도 끝 기둥 뒤로 그림자가 둘로 갈라졌다.
“가시죠. 문이 아니라 저쪽으로.”
이드리스가 리에나의 팔꿈치를 끌어당겼다. 장갑 너머 손의 힘이 짧고 정확했다.
기둥 뒤에서 세 명이 걸어 나왔다. 귀족회 하인 복장이었지만 손에 든 봉과 단검은 그에 어울리지 않았다. 가운데 서 있던 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약서 원본, 내려놓으시면 그냥 보내드립니다.”
리에나가 대답하지 않고 품을 한 번 짚었다. 이드리스가 그녀 앞으로 반 걸음 들어서며 기둥과의 거리를 좁혔다.
“원본은 없다. 지나가라.”
공격자 하나가 웃었다.
“그럼 저 아가씨한테 있겠네.”
“막아.”
이드리스가 낮게 말했다. 리에나는 뒷걸음으로 창가 쪽 벽을 등졌다. 세 명이 동시에 움직였다.
첫 번째 공격이 옆구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이드리스가 어깨를 틀어 리에나 앞을 막고 상대의 손목을 쳐냈다. 봉이 돌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두 번째가 왼쪽에서 단검을 들고 파고들었다.
리에나가 숨을 참았다. 이드리스는 물러나지 않고 상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밀어냈다. 공격자 하나가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 틈에 셋째가 벽 쪽으로 돌아 리에나에게 다가왔다.
“뒤로.”
이드리스가 짧게 외쳤다. 그가 몸을 날려 다가오는 자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러나 그 순간 첫 번째가 다시 일어나 봉을 휘둘렀고, 그것은 이드리스의 오른팔 바깥쪽을 스치며 지나갔다. 검은 소매가 찢어지고 붉은 선이 번졌다.
“신관님!”
리에나가 소리쳤다. 이드리스는 팔을 내리지 않았다. 피가 장갑 끝을 타고 떨어졌지만 그는 리에나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복도 바깥, 회의장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위쪽 차양 아래에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카시우스가 반쯤 열린 창틀에 팔을 얹고 있었다. 해가 진 뒤라 차양 안은 약간 어두웠지만, 손가락은 보였다. 그가 왼손 검지를 들어 까딱였다. 한 번은 계단 앞, 다음 번은 리에나 쪽이었다.
리에나는 공격자 뒤편으로 그 실루엣을 보았다. 카시우스가 입술을 움직인 것도, 같은 순간 공격이 방향을 바꾼 것도.
“서약서보다 저 쪽이 먼저지.”
한 명이 낮게 중얼거렸다. 즉시 세 명이 동시에 리에나를 향했다. 이드리스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알아들었지. 이제 서류가 목적이 아니야.”
“그럼 어쩌죠.”
“뛰어.”
리에나는 돌계단이 아니라 복도 안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한 명이 벽을 돌아 먼저 들어와 길을 막았다. 단검이 손등 높이로 번쩍였다.
리에나가 허리춤에서 서약서 원본을 꺼내 들었다.
“원본은 여기 있어요.”
그녀가 계단 밖을 향해 종이를 치켜올렸다.
“이걸 가져가려면 저부터 지나가야 합니다.”
그 순간 한 명이 벽을 박차고 리에나 쪽으로 쇄도했다. 손에 든 단검이 옆으로 짧게 그어져 허리 높이를 베려고 들어왔다.
이드리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듯했다. 그가 서류를 낚아채듯 리에나의 손에서 빼앗아 자신의 뒤로 던졌다. 종이가 돌바닥 위를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는 빈손이 된 리에나를 두 팔로 감쌌다.
“가만히 계십시오.”
두 몸이 부딪히기 직전, 이드리스의 등 앞에서 공기가 떨렸다. 은빛 선이 리에나의 쇄골 아래에서부터 퍼져 나가, 두 사람을 감싸는 반투명한 벽처럼 부풀었다. 공격자의 단검이 그 표면에 닿자 마치 뜨거운 쇠에 물을 뿌린 듯 칼끝이 튕겨 나갔다.
복도 전체가 밝아졌다. 은빛이 사라진 뒤에도 리에나의 쇄골 아래 문양은 옷 위로도 느껴질 만큼 따뜻했다.
이드리스가 천천히 몸을 폈다. 공격자 셋은 몇 걸음 물러서 있었고, 한 명은 단검을 놓친 채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복도 옆 회의장 문이 열리고 귀족회 경비 두 명이 달려 나왔다.
리에나가 돌계단을 올려다봤다. 카시우스가 마차 창문을 닫는 것이 보였다. 그가 왼손으로 지팡이처럼 문틀을 짚으며 안으로 몸을 옮겼다. 손가락이 검지의 반지를 한 번 꼭 쥐었다. 그것은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리에나의 시야에 작게 남았다.
공격자들이 계단 반대쪽 복도로 흩어졌다. 이드리스가 그들을 쫓지 않고 리에나의 팔을 잡아 벽 쪽으로 돌렸다.
“다친 데 없습니까.”
“신관님이 다쳤어요.”
리에나가 이드리스의 찢어진 오른쪽 소매를 가리켰다. 이드리스는 잠깐 팔을 들여다보고는 장갑을 고쳐 쥐었다.
“얕아요.”
“피가 났는데.”
“이 정도는 피가 아니라 흠이에요.”
이드리스가 그녀의 팔꿈치를 놓았다.
“신고부터 하죠.”
귀족회 경비 두 명이 복도 중간에 무릎을 굽혀 바닥의 단검과 봉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드리스가 그 중 한 명에게 사건을 알렸다.
“회의장 퇴장 직후 복도에서 세 명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목격자는 회의장 문 앞의 하인과 계단 아래 마부도 있을 겁니다.”
그가 덧붙였다.
“공격 도구는 바닥에 두 개, 계단 아래로 도주한 방향은 서쪽 복도입니다. 오른팔 열상도 보고합니다.”
리에나는 그 사이 벽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쇄골 아래가 여전히 뜨거웠다. 그 열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두 번 크게 뛸 때마다 문양이 따라서 뛰는 것 같았다.
경비 하나가 카시우스의 마차가 떠난 계단을 가리켰다.
“방금 그 마차, 벨테인 가문의 것이었는데. 저희가 불러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드리스가 리에나를 돌아봤다.
“선택하세요.”
“일단 기록만 남겨 주세요. 그 마차를 세웠다간 내일 증명 전에 가문 쪽에서 무슨 말을 만들지 몰라요.”
리에나가 경비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리에나 벨테인입니다. 습격은 제가 직접 신고한 것으로 기록해 주세요.”
경비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귀족회 기록관에게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이드리스가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서약서 원본을 집었다. 종이 모서리가 조금 접혔지만 문서는 온전했다. 그는 묻은 먼지를 장갑으로 두 번 털어 내 리에나에게 건넸다.
“왜 서류를 던졌어요.”
리에나가 받아 들며 물었다.
“그게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이드리스는 짧게 답하고 팔을 붙잡았다.
“여기서 계속 서 있으면 기록관이 먼저 올 겁니다. 대기실로 가죠.”
그가 복도 안쪽의 작은 문을 밀었다. 부속 대기실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세 개, 낡은 등불 두 개가 있었다. 이드리스가 리에나를 먼저 들여보냈다.
리에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품에서 어머니의 조제 기록을 꺼내 탁자 위에 폈다. 접힌 부분이 습기에 눌려 옅은 잉크가 번져 있었지만, 손으로 쓴 필기는 아직 선명했다.
“처음에는 그냥 약재 목록인 줄 알았어요.”
그녀가 한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거기에는 수선화 뿌리와 사리풀, 두 가지가 함께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조합은 해열제가 아니에요. 어머니는 아픈 사람을 위한 처방이 아니라, 특정 약물에 반응하는 조합을 써 두신 거예요.”
이드리스가 테미르 신전 증표를 탁자 끝에 내려놓고 맞은편에 섰다.
“확신할 근거가 있습니까.”
“이 두 가지를 함께 쓰면, 벨라돈나 계열 독약에 반응해서 잿빛으로 변해요. 해독 성분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독약을 추적하는 데 쓰는 방식이에요.”
리에나가 기록의 맨 아래를 천천히 손끝으로 눌렀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독약을 조제하는지 확인하려고 이 조합을 남기신 거예요. 치료 기록이 아니라, 감시 기록이에요.”
그녀는 잠깐 숨을 들이켰다.
“이걸 다음 가문 회의에서 내세워야 해요.”
이드리스가 탁자 위의 기록을 내려다봤다.
“카시우스의 왼손 반지를 봤습니다. 도망치면서도 그 손만 움켜쥐었어요.”
리에나가 천천히 말했다. 의심은 확신이 되지 못한 채 목소리 끝에 남았다.
“독약 반지일 거란 보장은 없지만, 어머니가 이 기록을 남긴 이유와 따로 놓고 볼 수 없어요.”
그녀가 기록을 반으로 접어 다시 품에 넣었다.
“내일이 아니라 가문 회의가 열릴 때, 이 기록을 정식으로 제출하겠어요. 카시우스가 준비한 서류가 과연 무엇과 연결되는지, 그 자리에서 저를 막는 근거가 되는지 확인하게요.”
이드리스가 말했다.
“그 자리엔 알릭 공작도 있겠죠.”
“그래요.”
리에나가 약하게 웃었다.
“두 번 다 도망치진 않으실 거예요. 어머니의 기록 앞에선.”
등불이 파르르 떨렸다. 리에나가 접힌 기록을 품에 넣은 손을 그대로 얹었다. 쇄골 아래 수호 축복의 문양은 아직 몸의 열기와 겹쳐 있었다. 그녀는 문양 위로 손을 얹지 않았다. 다만 손끝으로 서약서 원본의 모서리를 한 번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