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잊힌 신전의 계약 결혼

2화

통로는 이어질수록 낮아졌다. 리에타는 천장 돌에 어깨를 스칠 때마다 몸을 약간 숙였다. 뒤에서 테오도르의 로브가 바닥을 쓸리는 소리가 일정했다.

“중간쯤 왔소.”

넬라가 앞에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말했다. 리에타는 품의 합의문을 한 번 만졌다. 종이가 눌린 자리는 체온으로 차 있었다.

“서약석은 신전 뒤쪽이지?”

“동쪽 옆문으로 들어가면 곧장입니다.”

테오도르가 대신 답했다. 리에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서명만으로는 모자란다. 배우자 신분이 법정에서 서려면 서약석에 피를 올려야 하오.”

그가 말했다. 리에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구간이 무너져 천장이 기울었다. 그녀가 먼저 허리를 낮춰 지나갔다.

“1년 갱신이지. 갱신하지 않았을 때 왕실로 귀속된다는 조항까지 넣었소.”

그녀가 말했다.

“확인했나.”

“후견인이 가문 재산을 못 건드리는 이유지. 내게는 유리해요.”

테오도르가 대답 없이 그녀 뒤로 따라왔다. 통로 끝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안쪽 신전 특유의 낡은 돌 냄새가 겹쳤다. 넬라가 먼저 나가 옆문을 밀었다.

잊힌 신전 동쪽 옆문은 반쯤 열린 채 굳어 있었다. 그 너머 서약석이 있는 방은 벽에 낀 이끼가 은빛으로 마를 정도로 건조했다.

“넬라는 여기까지만.”

리에타가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알아요. 입구를 지켜야 하니까.”

넬라가 물러섰다. 리에타는 그녀의 손을 잠깐 보았다. 촛대를 쥐었던 자리가 그대로 빨갛게 남아 있었다. 리에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테오도르가 서약석 앞에 섰다. 납작한 돌이 바닥에서 두 뼘쯤 솟아 있었다. 그 위에 금이 간 자리가 옅은 선으로 남아 있었다.

“여기서 하면 되오.”

테오도르가 로브 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폈다. 서약석 등본이었다. 봉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조건부터 새기겠다. 배우자로서 상속 심사에 입회하고 증언한다. 1년 갱신. 갱신 거부 시 이 혼인은 조건에 따라 해제된다. 서명은 그 아래.”

리에타가 다가가 두루마리를 내려다봤다.

“서명의 법적 강제성은?”

“서약석에 피를 올리면 신전 기록으로 남는다. 법정에서는 이 등본이 혼인 증명서보다 우선해.”

“서약석이 깨지면?”

테오도르가 잠시 그녀를 보았다.

“계약이 깨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때는 조건부 합의문이 먼저 효력을 잃어.”

“그러면 나는 왕실 귀속 조항을 못 써먹는 거군요.”

“계약을 지키면 상관없다.”

리에타는 등을 곧게 세웠다.

“지키지.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공적 배우자요. 신부님도 여기서 얻는 게 있지 않소?”

테오도르가 대답 대신 두루마리에 먼저 이름을 적었다. 리에타가 그 아래 서명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서로 다른 굵기로 돌에 비쳤다.

“피를 올려야 합니다.”

테오도르가 작은 은침을 내보였다.

“먼저.”

리에타가 손을 내밀었다. 그가 그녀의 왼손 셋째 손가락 끝을 짧게 찔렀다. 피가 맺혔다.

“서약석에.”

리에타가 몸을 숙여 서약석 위로 손을 뒤집었다. 핏방울이 돌 표면에 떨어졌다. 테오도르가 자기 손가락도 찔러 피를 올렸다.

서약석의 금 자리가 먼저 반응했다. 옅은 금색이 스며 나오다가 은빛으로 밀려났다. 서약석 전체가 부풀 듯 빛을 토해냈다. 리에타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빛이 그녀의 발등까지 닿았다.

테오도르의 오른손등이 밝았다. 신전 문양이 은빛으로 한 번 떠올랐다. 리에타가 그쪽을 보았다. 그는 손등을 뒤집어 감췄다.

“계약은 성립했다.”

테오도르가 말했다. 서약석 빛이 한 차례 더 번졌다. 그 순간 신전 정문 쪽에서 돌문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

“안에 있을 줄 알았다. 절도 현행범에, 신부님은 상속인 납치에.”

칼로스가 신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서약석 빛에 눈을 찌푸리며 한 손을 뻗었다. 수행원 셋이 그 뒤를 따랐다.

“행사 인장이 어디 있지? 뒤져.”

칼로스가 발로 낡은 기도석을 걷어찼다. 리에타는 서약석 앞에 그대로 섰다. 테오도르가 돌아서며 말했다.

“여긴 성소다.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마라.”

“성소? 지금 내 눈에는 계약 무효를 보러 온 자리야. 사제 혼인은 성립 당사자가 아니면 증명 못 해.”

칼로스가 리에타를 향해 턱짓했다. 수행원 하나가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리에타가 물러나는 대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피를 올렸소. 서약석이 증명했고.”

그녀가 차객게 말했다.

“그게 증거야? 돌 하나 빛났다고?”

칼로스가 비웃었다. 그가 수행원에게 눈짓하자 다른 하나가 리에타의 품으로 손을 뻗쳤다. 테오도르가 그 앞을 막아섰다.

“성소 안에서 신체 접촉을 시도하면 신전 기록이 남는다.”

“기록? 네가 남기면 되지. 말 한마디면 그만이잖아.”

칼로스가 한 걸음 더 들어왔다. 서약석의 은빛이 갑자기 좁게 수축했다가 퍼져 나갔다. 칼로스가 무릎을 굽혔다. 빛이 그의 가슴께를 밀어냈다.

“이게 무슨...”

수행원들이 칼을 뽑으려다 신전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약석쪽에서 바람 없는 파동이 퍼져 그들의 횃불을 꺼뜨렸다. 칼로스가 팔로 얼굴을 가리며 뒷걸음쳤다.

“계약이 신전에 등록됐다. 이 빛은 서약을 승인한 거고.”

테오도르가 낮게 말했다. 칼로스가 이를 악물었다.

“혈인장은 내놔. 그게 가문 물건이야. 사제가 계약을 등록했다고 해서 상속 규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야.”

리에타가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상속 규정은 증표 행사 때 후견인 서명을 요구하지. 내 배우자 서명이 먼저 효력이 있소.”

칼로스가 웃었다. 입술만 움직이는 웃음이었다.

“그 서명, 법정에서 인정받기 전에 위조로 신고하면 그만이지.”

“서약석 빛을 본 증인이 있다. 네가 데려온 사람들까지.”

리에타가 말했다. 칼로스의 수행원들이 기어서 신전 입구로 물러났다. 한 명은 횃불을 든 채 손을 데인 듯 떨고 있었다.

“네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신부가 끌어들인 건지 두고 볼 거야.”

칼로스가 소리쳤지만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다. 그가 신전 문턱을 넘어서며 마지막으로 리에타의 품을 보았다. 그 시선이 혈인장 있는 곳에 박혔다.

“그 물건, 법정에서는 내가 원본이라 하면 너는 절도범이야.”

칼로스가 문밖으로 밀려났다. 서약석 빛이 그가 있던 자리까지 번졌다가 걷혔다. 신전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리에타는 숨을 한 번에 내쉬지 않았다. 테오도르가 서약석 뒤쪽 벽감으로 걸어갔다. 거기 낡은 돌판을 밀자 안쪽으로 공간이 보였다.

“다음 절차는 공개 상속 심사다. 어디로 가면 되지?”

리에타가 물었다.

“저택 중앙 청사. 배우자 서명 원본이 있어야 해.”

“지금 필요한 건, 심사장 출석 표시와 등본 원본이지.”

“챙겨라. 내일 아침, 심사장 앞에서.”

테오도르가 서약석 등본을 말아 그녀에게 건넸다. 리에타가 받아 품에 넣었다.

“심사장에서 뭘 열게 될까?”

그녀가 물었다.

“후견인 서명과 배우자 서명의 대조. 혈인장 원본 확인이 따라올 거야.”

테오도르가 벽감을 닫으며 말했다. 은빛이 꺼지고 얼마 안 된 손등을 그는 로브 소매로 가렸다. 그 손이 서약석 뒤 벽감에서 마지막으로 시선을 거두는 데 시간이 걸렸다.

리에타는 그것을 보았다. 서약석은 여전히 열을 남긴 채 바닥에 있었다. 그녀는 그가 손등을 감춘 손으로 벽감을 닫는 모습에서 신전의 서약이 한 가지 목적만으로 열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빛이 꺼졌는데도, 손등을 가리는군요.”

리에타가 낮게 말했다. 테오도르는 몸을 돌려 그녀 앞에 섰다.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러나 리에타는 서약석 뒤 벽감을 닫은 그 손을 기억했다. 그 손은 이미 다른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잊힌 신전의 계약 결혼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