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원수의 제자, 멸문의 막내

2화

위소연이 약방 안쪽 침상 앞에서 멈췄다. 아침이 오기 전, 문틈으로 마을 쪽 흙먼지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문린의 팔이 침상 밖으로 조금 나와 있었고, 손끝에 묻은 핏물은 이미 검게 굳었다. 위소연은 그의 손등을 한 번 내려다봤다. 왼쪽 손목 안쪽에 있는 낡은 흉터까지 시선이 닿았다.

밖에서 장화 끄는 소리와 칼집이 허벅지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순찰대였다. 노크가 아니라 문지방을 발끝으로 차는 소리였다.

“약방 문 열어. 진무영 사형 못 봤나.”

위소연은 침상 옆 약장에서 두꺼운 약포를 꺼내 서문린의 몸을 눕힌 채 다리부터 덮었다. 이미 피를 닦아낸 약포 한 겹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깨 윤곽이 남았다. 두 번째 약포를 겹쳐 가슴께까지 올렸다.

서문린이 짧게 숨을 들이쉬었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위소연은 약포 끝을 침상 다리 밑으로 밀어 넣고 진찰대로 몸을 돌렸다.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걸어 여는 순간, 순찰대원 둘이 한 발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앞선 자가 진찰대에 손을 짚었다.

“사람 냄새가 나네. 피 냄새도.”

“곪은 상처를 짼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진찰대 위에 환자는 없습니다.”

뒤에 있던 자가 약장 쪽을 돌아보며 코를 벌름거렸다. 위소연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서서 그 시선을 따라갔다. 어두운 약장 안쪽, 약초 뭉치 몇 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 앞에는 밤새 식은 탕기가 아직 손잡이를 눕힌 채 놓여 있었다.

“새벽까지 탕약을 달인 게 이거요?”

“네. 이제 꺼뜨렸습니다.”

“진무영 사형 이야기 못 들었소? 어젯밤부터 행방이 묘연해. 나루 쪽에서 검 흔적이 나왔다고 하니 아는 게 있으면 지금 대.”

뒤에 있던 순찰대원의 시선이 침상 쪽으로 움직였다. 약포가 아래까지 늘어져 사람이 누운 것보다 조금 두터워 보였다. 위소연은 침상 앞으로 반 걸음 물러서며 약포 자락을 눌렀다. 약초 쌓는 선반에서 마른 잎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벽에 약방 문 닫고 불 켠 것 말고는 본 게 없습니다. 이제 아버님께 올릴 약챙김이 있어 문을 닫아야 합니다.”

“한 번만 더 묻소. 못 본 게 확실해?”

“못 봤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덜미로 땀이 한 방울 내려갔다. 위소연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앞선 대원이 그녀의 얼굴을 잠시 훑다가 문 쪽으로 물러났다. 밖 회랑 쪽에서 다른 발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시선을 한 번 교환하고 물러났다. 문틈으로 여명이 더 넓게 들었다.

위소연은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잠시 서서 침상 쪽을 보았다. 약포 아래에서 서문린의 발이 조금 움직였다. 위소연이 가까이 가 약포를 목 아래까지 걷어냈다.

서문린의 눈이 반쯤 떠져 있었다. 위소연의 얼굴을 보고도 초점이 바로 잡히지 않았다. 입술이 움직이기까지 몇 호흡이 걸렸다.

“약을 마셨나.”

“네. 아직 열이 있습니다. 상처는 봉합했지만 움직이면 안 됩니다.”

서문린이 팔꿈치로 몸을 밀어 올리려다 배에 힘이 들어가자 인상을 조금 구겼다. 위소연이 어깨를 짚어 눕히려 하자 서문린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소란이 있나.”

“순찰대가 다녀갔습니다. 진무영··· 사형을 찾고 있습니다. 당분간 이 문을 여는 것도 위험합니다.”

서문린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위소연은 손을 거둬들이지 않고 약포 위에 올려둔 채 그를 내려다봤다. 서문린이 다시 눈을 떠 위소연의 손과 자기 어깨를 번갈아 보았다.

“문을 잠그는 게 낫겠다. 연결된 뒤쪽이 있나.”

“지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연결된 뒤쪽.”

서문린이 낮게 되물었다. 의식을 붙들고는 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고, 문장 끝이 조금씩 갈라졌다. 위소연은 잠시 뜸을 들이다 약장 뒤 좁은 문과 방으로 통하는 벽을 도려낸 자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서문린은 그쪽을 한 번 보고 다시 베개에 등이 닿도록 몸을 뉘였다.

밖에서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검을 차지 않은 전령의 걸음이었다. 약방 문앞에 멈춰 숨을 고르며 두드렸다.

“위소연 아씨. 문주 전갈입니다.”

위소연이 빗장에서 손을 떼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오늘이 이르게 연무장에 모이랍니다. 직속 제자 전원이요. 짐작 가는 일이 있으시겠지만···”

전령이 목소리를 낮췄다. 위소연은 서문린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분부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진무영 사형 일로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고 보신답니다. 그래서 직속 제자 전원에게 혈영독공을 검증하는 시험약을 먹이신답니다.”

위소연의 손끝이 빗장 고리 위에서 멈췄다. 서문린의 침상 쪽에서 약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알겠습니다. 챙겨서 가겠습니다.”

전령의 발소리가 약방 앞을 벗어났다. 위소연이 문에서 돌아서자 서문린이 침상 가장자리에 다리를 내리고 앉아 있었다. 배를 감싼 붕대 위로 잿빛 기운이 퍼져 있었다.

“연무장에 가야 한다.”

“그렇지만 움직일 몸이 아닙니다. 그 시험약은 독을 조금 태우는 거라 몸이 버틸 수 없어요.”

“버티는 게 아니라 반응해야지.”

서문린이 위소연을 올려다봤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에만은 정신이 붙어 있었다. 그가 침상 옆 기둥을 짚고 일어나려 하자 위소연도 한 걸음 다가왔다.

“제자 전원이 받는 시험이면 빠지면 오히려 의심받습니다. 저를 여기 숨긴 것도 그때는 덮을 수 없어요.”

위소연의 시선이 서문린의 가슴께로 내려갔다가 다시 그의 얼굴로 올라갔다. 서문린은 그 시선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약방 문은 걸어두십시오.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열지 마십시오.”

위소연이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그녀는 약장 서랍에서 작은 청색 약봉지 하나를 꺼내 허리춤에 밀어 넣었다. 서문린이 이마를 한 번 짚고 검을 허리에 고쳐 찼다.

“같이 가지 마십시오. 제보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연무장 앞에서 서로가 보이면 이 깊은 새벽에 오해를 만듭니다.”

위소연이 약방 문에 손을 대다 말고 뒤를 보았다. 서문린은 그제야 몸을 곧게 세우고 걸음을 시작했다. 첫 세 걸음이 어설펐지만 곧 보폭이 정리됐다.

문이 열리자 새벽빛이 방 안으로 밀물처럼 들었다. 위소연이 먼저 약방을 나섰다. 뒤에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혈영단 연무장은 오시 직전, 모래판이 햇빛에 하얗게 떠 있었다. 직속 제자들이 서른 명 가까이 열 지어 섰다. 가운데에 흑의를 입은 위무극이 섰다. 아침부터 내려앉은 소문 때문인지 무인들 사이에도 대화가 없었다.

위소연이 약방 쪽 돌계단을 걸어 올라 무대 뒤 그늘에 섰다. 위무극의 눈이 그녀를 한 번 스쳤지만 곧 정면으로 돌아갔다. 늦게 들어오는 제자 셋이 대열 옆을 따라 자리를 잡았고, 그중에 서문린이 있었다.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넓었고 허리춤 손의 위치는 깊었다. 위소연은 그를 보다가 시선을 아버지에게 옮겼다.

위무극이 모래판 가운데로 한 걸음 나섰다. 왼손 검지가 굽은 채로 뒤쪽을 그는 손을 들자 잡념이 없는 침묵이 깔렸다.

“너희도 들었겠지. 진무영이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는다.”

위무극의 목소리가 깔리자 앞줄 제자들이 시선을 땅에 두었다.

“나루 쪽에서 검을 쓴 흔적이 나왔다고, 우리 진무영은 허무하게 당하지 않는 녀석이란 것도 너희가 더 잘 알 것이다. 내게는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안에서 문을 연 자가 있다.”

제자 몇이 고개를 움찔 들었다. 위무극이 그들을 하나씩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오늘 여기 모인 전원이 몸으로 증명하게. 조금 아플 것이다. 혈영독공을 어긋나게 받은 몸이면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올 테니.”

위무극의 발소리가 모래판을 천천히 가로질렀다. 입회 진행관 둘이 길다란 옻칠 함을 받쳐 들고 앞으로 나왔다. 조그만 사발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랫단 제자부터 받아 들기 시작했다. 인적이 없는 진무영 집은 뒤에 있었다.

서문린은 대열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봉해 둔 칼집은 모래에 닿을 듯 말 듯 길어졌다. 이마에 땀이 솟아 있었다. 위소연은 그가 약과 함께 마셔둔 것이 없음을 아까부터 못내 뒤척였는데, 그에게 해독 내공을 돌리지 말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연무장은 이미 출입을 닫은 분위기였다.

사발이 그의 차례에 이르렀다. 시험약은 검은 액이 얇게 고였고 끝에 쓴 냄새가 이슬처럼 배어 있었다. 서문린이 양손으로 사발을 받고 한 번 마셨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위소연은 나무 난간을 붙들었다. 서문린은 두 손으로 사발을 든 채 호흡만 조금 다스렸다. 위무극이 그를 흘깃 보며 대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문린의 발이 모래를 두 뼘쯤 밀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삼켰다. 붕대 아래 상처보다 약독이 먼저 올라오는 표정이었다. 위소연은 약포를 품에 넣은 채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서문린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어 반대쪽 다리도 무너졌다. 주변 제자 두엇이 다가가려 했으나 위무극이 손을 번쩍 들어 막았다.

“내버려 두게. 반응이 끝나야 안다네.”

서문린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 모래에 어깨를 찍었다. 손가락 끝이 모래를 조금 움켜쥐다가 풀렸다. 위무극이 걸어와 쓰러진 서문린 앞에 섰다. 그의 그림자가 서문린의 붕대 위까지 덮였다.

“이 녀석은 언제부터 그런 상처가 있었나.”

“수일 전 문 밖에서 깊은 상처를 꿰맸다고 들었습니다.”

입회 진행관이 낮게 답했다. 위무극이 자세를 낮춰 서문린의 손목을 짚고 잠시 맥을 보더니 내려놓았다.

“독을 밀어내는 기운은 없다. 상처에 난 열이 섞인 것뿐이야. 이물은 아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진행관에게 말했다.

“약방으로 옮기게. 열이 오르기 전에 위소연이 처치해야 이 녀석이 내일 다시 제 앞에 서 있을 수 있게.”

진행관 둘이 서문린의 양팔을 들어 끌어 올렸다. 서문린의 검은 모래에 걸리다가 한 진행관이 챙겨 꽂았다. 위소연이 그늘에서 나와 그들 뒤로 따라섰다.

모래판 가운데에, 넘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사발은 모래 위에 똑바로 놓여 반쯤 남은 검은 액이 햇빛 아래 가늘게 흔들렸다.

연무장에서 약방까지 옮겨지는 동안 해는 비스듬히 기울어 복도 끝 창살이 진찰대 위로 길게 드리웠다. 위소연은 문지방을 넘으며 뒤따르던 진행관들이 돌아가는 발소리를 들었다.

위소연은 이송대를 약방 안쪽까지 들여보내고 문을 걸었다. 진찰대 위의 서문린은 몸을 옆으로 눕힌 채였다. 혈영단 하급 제자 두 명이 옮겨 놓고 간 자세 그대로, 한쪽 팔이 진찰대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손끝이 푸르게 변해 있었다.

위소연은 약장에서 해독약을 꺼냈다. 혈영독공 계열은 증상이 늦게 퍼지고 깊게 남는다. 아버지가 시험약을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한 약재였다. 그녀는 물에 탄 가루를 서문린의 입가에 가져갔다.

턱을 눌러 입을 벌리려 하자 서문린이 고개를 돌렸다.

“양진 씨. 들으세요.”

눈꺼풀이 떨렸다. 위소연은 약을 조금씩 흘려 넣었다. 서문린이 사레에 걸린 듯 숨을 토했다.

“누우세요. 지금 움직이면 독이 심장으로 갑니다.”

서문린의 손이 진찰대 모서리를 잡았다. 힘이 없는 손이었다. 그는 상체를 세우려다 옆으로 기울었다.

“여긴…… 약방이지.”

“네. 제 약방입니다.”

“가야 합니다.”

위소연은 그의 어깨를 짚어 눕혔다.

“가면 죽어요.”

서문린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무언가 대꾸하려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몸이 한 번 크게 튕겼다. 손가락이 진찰대를 긁는 소리가 났고, 등이 활처럼 휘었다. 혈독 경련이었다.

위소연은 물약 그릇을 옆에 놓고 서문린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 기도를 확보했다. 이 사이로 거친 숨이 드나들었다.

“여기서 숨만 쉬세요. 그게 먼저입니다.”

경련이 잦아들자 서문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위소연은 맥을 짚었다. 느리고 약했지만 규칙은 있었다. 해독약이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창가 쪽 작은 탁자로 가서 해독 기록지를 펼쳤다. 투약 시각, 증상, 반응을 차례로 적었다. 붓끝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약실 안이 조용해졌다. 서문린은 다시 혼수에 빠져 있었다.

한 시진쯤 지나 심부름 온 하급 조제사가 문을 두드렸다.

“약재 정리 도울까요?”

“괜찮아요. 환자가 있어서요.”

“진찰실에 환자가 있습니까?”

“독중입니다. 아버님 지시로 이송돼 왔어요. 접촉을 줄여야 해서 문을 걸었어요.”

위소연은 문틈으로 반쪽 얼굴을 내밀었다. 조제사가 목을 빼 안쪽을 보려다 말았다.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부르세요.”

발소리가 멀어졌다. 위소연은 다시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밤이 되자 약방 앞 길이 조용해졌다. 위소연은 해독 기록 여백에 다시 붓을 댔다. 두 번째 투약은 반응이 더뎠고, 세 번째 투약 뒤에는 손끝의 푸른 기가 물러났다. 기록이 길어졌다.

그녀는 촛불을 한 번 돋우고 서문린의 상태를 살폈다. 왼쪽 손목 안쪽에 칼자국이 가로로 나 있었다. 봉합하지 않고 덧살이 올라붙은 낡은 흉터였다. 검을 쥐고 오래 쓴 손이었다.

위소연은 그 자국을 기록지 여백에 작게 본떴다. 그리고 목덜미 쪽을 보려다 손을 멈췄다.

약초 냄새와 핏기가 섞인 방 안에서 서문린의 숨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그녀는 옷깃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고개를 옆으로 조금 기울여 목덜미 경계를 살폈다. 피부를 덧살로 지운 자국이 있었다. 칼로 그은 선은 아니었다. 무언가 불로 지진 듯 흩어진 흉터가 목덜미에서 어깨 쪽으로 약간 내려가 있었다.

위소연은 붓을 다시 잡았다. 목덜미에서 시작된 흉터의 위치와 형태를 기록지 여백에 옮겼다. 아버지가 밀지에서 먹으로 지운 자리는 늘 같은 위치였다. 해당 문양이 남는 자리. 칼을 겹친 매화 가지.

스케치가 끝난 기록지를 들어 촛불에 비췄다. 흉터 위치가 그 문양의 남는 부위와 닮았다.

청명검문의 낙인 자리와도.

위소연은 기록지를 말아 진찰대 아래 약보자기 옆에 놓았다. 약실 안쪽 벽에 걸린 작은 진열장 너머로 약병들이 촛불을 받아 흔들렸다.

해독 기록은 이제 두 장이었다. 한 장은 혈독 반응과 투약 시각. 다른 한 장은 승인 없는 기록이 되어 약보자기 밑으로 들어갔다.

서문린이 낮은 신음을 한 번 냈다. 위소연은 촛불을 낮추고 그 쪽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혼수였다. 그녀는 약실 문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록지를 손으로 짚은 채 숨을 멈췄다.

원수의 제자, 멸문의 막내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