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위장 성녀와 성기사의 거래

2화

성녀 후보 숙소 별관은 성물고에서 서쪽 회랑을 끼고 반 층쯤 올라간 곳이었다. 새벽이 가까운 시각,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아직 치워지지 않은 촛물 받침이 어둑하게 젖어 있었다.

리에나가 앞장섰다. 카이델의 검이 칼집에 꽂힌 채였지만, 두 걸음 뒤에서 따라붙는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손목은 놓인 뒤였다. 그래도 오른쪽 팔 안쪽이 얼얼했다.

“여기까지입니다.”

리에나가 내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목소리는 성녀 후보답게 낮고 부드러웠으나 끝음이 짧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문고리 위, 나무틀에 낡은 흠집을 한 번 스쳤다. 회귀 전에는 몰랐던 흠집이었다. 선택이 바뀌니 보이는 것도 달랐다.

“열어.”

카이델이 말했다. 리에나는 문을 밀었다. 안에서 다용도실로 이어지는 문이 닫힌 채였다. 촛불 한 자루도 켜져 있지 않았다. 창틀 아래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얇게 났다.

“성물고 침입자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거죠.”

“가능성으로 충분해. 오늘 밤은 이 문 밖에서 지킨다.”

카이델이 문 안쪽 경첩을 짚었다. 다른 손은 정복 안감 쪽을 스치듯 눌렀다. 리에나는 그 손끝을 보지 않으려다, 결국 보았다. 서류가 있는 자리였다.

“저를 가둔다는 통지를 받은 적이 없는데요.”

“통지는 방금 끝났다. 성녀 보호 명목의 근접 경호다.”

카이델이 문을 당겼다. 문이 닫히기 전, 리에나는 손바닥으로 문틀을 짚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내일 아침까진 제가 여기서 나가면 안 된다는 셈이군요.”

“밖에서 봉한다. 문은 내가 연다.”

그가 문틀에 손을 얹은 그녀의 손가락을 보지 않고 말했다. 리에나는 손을 거두었다. 손바닥에 문틀의 옹이가 눌린 자국이 남았다.

문이 닫히고, 바깥에서 빗장 소리가 두 번, 세 번 났다. 리에나는 어둠 속에 서서 문고리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갇혔고, 서류는 저쪽에 있었다. 도주는 내일이면 늦는다.

그녀는 다용도실 쪽으로 돌아섰다. 회귀 전, 이 숙소는 외부 창문 빗장이 헐거워 수리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 기억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다용도실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손끝으로 벽을 더듬지 않고 바닥의 물때 냄새로 위치를 잡았다. 창은 예상대로 닫힌 빗장 없이 걸쇠만 걸려 있었다. 걸쇠를 들어 올리자 금속이 떨리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창을 밀었다.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창틀에 손을 짚고 몸을 부드럽게 밀어 올렸다.

몸이 밖으로 반쯤 나갔을 때,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멈추는 기척이 들렸다. 카이델의 기척은 아니었다. 그보다 가볍고, 옷자락을 끄는 소리가 났다.

리에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발소리가 다시 복도 쪽 배달구 방향으로 멀어졌다가 사라졌다. 제3의 인물도 아니었다. 순찰용 신발 밑창 소리가 아니었으니, 숙소 하인일 터였다.

리에나는 다용도실 밖으로 몸을 낮춰 나갔다. 목표는 담장 근처 작은 문이었다. 그러나 복도를 지나쳐야 했다.

그때, 배달구 앞에 놓인 작은 쟁반이 시야에 들어왔다. 회귀 전에는 이 시각에 차가 배달되지 않았다. 리에나는 걸음을 멈췄다.

쟁반 위의 약초차에서 올라오는 김과 함께 비릿한 기름막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 밤장미 길드에서 맡았던 것과 같았다. 독약 특유의 냄새.

쟁반 가장자리에 손을 대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리에나는 배달구에서 두 걸음 물러났다. 도주를 멈추고 쟁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약초차 표면을 보았다. 수면에 기름막이 번들거렸다. 성녀 후보가 밤중에 받는 차는 전부 검수 후 배달되는 것이 규칙이었다. 검수를 통과했다면 이 기름막은 검수 뒤에 생긴 것이리라.

그녀가 쟁반을 들지 않고, 배달구 바로 아래 마루를 손등으로 눌러 보았다. 배달구 바깥 복도 바닥이 미세하게 젖어 있었다. 기름막이 묻은 방울 자국이 배달구 쪽에서 끌려왔다.

리에나는 일어나 숙소 경보 종이 걸린 복도 벽으로 걸어갔다. 도주는 이미 접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경보 종을 두드렸다.

종이 울리기보다 먼저, 복도 저쪽에서 단단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카이델이었다.

“차를 입에 대진 않았겠지.”

카이델이 멈추어 묻자, 리에나는 손을 경보 종에서 내리며 되물었다.

“당신이 늦게 온 걸 확인했어요.”

“성물고 순찰 보고를 정리한다고 잠깐 물러났다. 빗장은 걸어 뒀으니 들어올 리 없었고.”

카이델이 배달구 쟁반을 내려다봤다. 리에나는 종을 울리려던 손을 쟁반 옆으로 가리켰다. 경보 종은 이미 두어 번 울렸고, 멀리서 발소리가 여럿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쟁반을 들지 않은 채 그 앞에 그대로 두었다. 도주는 없었다. 대신 이 밤이 끝나기 전, 우선 확인해야 할 증거였다.

경보가 숙소 복도를 돌았다. 금속 방울이 벽마다 매달려 한꺼번에 울렸고, 하인 둘이 긴 옷을 걸친 채 복도 끝에서 뛰어왔다. 리에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배달구 앞쪽 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쟁반은 문 손잡이에서 두 뼘쯤 떨어진 곳에 엎어져 있었다. 밀폐 용기 하나가 옆으로 굴러 있고, 황갈색 물이 습자지처럼 얇게 흘러 돌 틈 사이로 번졌다. 리에나는 한쪽 팔을 뻗은 자세로 얼굴을 돌렸다. 입술은 파리했다.

“후보님!”

하인이 그녀 곁에 무릎을 꿇기 직전, 카이델이 그보다 먼저 쟁반 앞을 가로막았다. 망토 자락이 흘린 물을 건드리지 않았다.

“물러서라.”

하인들이 멈췄다. 리에나는 가쁜 숨을 얕게 몰아쉬며 방울 소리 너머로 눈을 조금 뒤집어 보였다. 입가에 침이 아니라 물기가 조금 비쳤다.

“이 쟁반이 배달구에 있었습니다. 문 앞에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하인 하나가 다른 이를 붙잡고 물러섰다. 리에나는 그들이 쟁반과 쓰러진 자신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머리를 뒤로 젖히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당겨 쟁반 쪽을 가리켰다.

“성녀 후보에게 약이 배달됐다... 그게 독이라면.”

다음 말은 삼켰다. 손끝으로 목걸이 줄을 쥔 듯했지만 옷 밖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카이델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명령했다.

“너희 둘, 복도 양쪽을 막아라. 이 길로 접근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가 한 명은 대주교 서기에게, 한 명은 근무 성기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독이라는 말은 쓰지 마라. 배달 쟁반에서 후보가 탈이 났다고만 해라.”

하인들이 흩어졌다. 리에나는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카이델이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복도 위쪽 등잔 불빛이 그의 금색으로 번진 눈가를 비췄다.

“일어설 수 있겠나.”

“잠깐... 숨이.”

리에나가 쟁반 옆에 떨어진 아주 작은 유리병 하나를 몸을 일으키는 척하며 왼쪽 소맷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움직임은 하인들이 본 방향과 반대쪽이었다. 카이델만 보았다.

“내실로 가시지요. 여기는 사람이 몰릴 테니.”

카이델이 그녀의 목소리를 평소 성녀 후보에게 쓰는 낮은 존대로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리에나는 잡지 않고 허리 힘으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천천히 몸을 세웠다.

카이델이 상체를 약간 기울여 그녀의 왼쪽 소매 있는 쪽을 오래 보았다. 곧 시선을 거둬 쟁반 쪽으로 돌렸다. 그는 맨손으로 쟁반 가장자리를 들지 않고 흰 천을 꺼내 밀폐 용기와 쟁반 전체를 감쌌다.

“이것도 내가 보관한다.”

“그것까지요.”

“네가 이런 걸 먹었든 아니든, 이 쟁반은 독약일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다. 내가 가져간다.”

리에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내실 쪽으로 발을 돌리는 순간, 복도 끝에서 하인 하나가 되돌아오며 소리쳤다.

“후보님 괜찮으십니까!”

“나은 편이에요. 지금은 성기사단장님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다른 분들은 가까이 오지 말아 주세요.”

리에나가 뒤돌아 말했다. 그 목소리는 끝이 조금 떨리는 듯했지만 명확했다. 하인이 물러나는 소리가 났다.

내실 문을 카이델이 열었다. 리에나가 먼저 들어섰고, 그가 뒤따르며 문을 닫았다. 바깥 복도의 방울 소리가 이제는 옆방 경비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섞여 들려왔다.

리에나는 창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돌아섰다. 왼쪽 소매에서 작은 갈색 유리병을 꺼내 보였다. 그가 다시 소매를 보려는 시선을 막기보다 병을 손바닥에 올렸다.

“이건 내가 가질게.”

카이델이 병을 보았다. 뚜껑에는 금속 테두리가 있고, 병 바닥 가장자리에 흰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언제 숨겼지.”

“그걸 왜 말해요.”

“독약 병 하나를 숨긴 것만으로 네 위장 성녀 신분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뇨.”

리에나가 병을 손에 쥔 채로 그를 똑바로 보았다. 내실 등잔불이 창틀에 기대는 그녀의 실루엣 뒤에서 먼저 흔들렸다. 카이델은 쟁반을 감쌌던 천을 조심스럽게 작은 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 조건을 말해.”

“단순해요. 지금 내 손에 있는 게 이 병, 성기사단장님 품에 있는 게 성물고 서류 원본.”

리에나가 병을 들어 보였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서로를 못 죽여요. 이 병이 서류와 이어질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이 병이 서류와 이어진다는 근거는.”

“성물고에서 위조된 날짜. 오늘 아침 문 앞에 도착한 약. 둘 다 성녀 후보를 겨냥한 조작 흔적이에요.”

카이델이 천천히 걸어와 상 위 쟁반 앞에 섰다. 둘 사이로 세 걸음쯤 거리가 남았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서류는 내가 보관해도 여전히 증거다. 병 네가 가져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서로 보관하는 거예요. 성분 감별은 내가 하면 되고.”

“네가?”

“길드에서 배운 거예요. 약 냄새로 대충이 아니라, 남은 가루로요.”

리에나가 병 바닥을 기울여 흰 가루가 남아 있음을 그에게 보였다. 등잔불이 병을 통과하지 못하고 표면에서 갈라졌다.

“문서 쪽은 빈자리가 있어요. 도장 옆이 수정된 날짜뿐이 아니었어요. 기록 한 줄이 지워졌어요.”

카이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리에나는 회귀 전 서류를 넣기 전에 본 그 흔적을 떠올렸다. 지금 본문에서 언급할 수 있는 선은 그것뿐이었다.

“그게 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스텔 같은 문서 복원에 능한 조제사가 확인하면 나올 거예요. 같은 수법으로 약에도 지워진 성분이 있는지 보려면 병과 서류를 따로 둘 필요가 있어요.”

“한쪽이 사라지면 나머지가 마지막 증거다.”

“그러니까 이 거래가 성립하는 거죠.”

리에나가 병을 왼쪽 품 안, 성흔 목걸이 쪽이 아닌 겉옷 안쪽에 밀어 넣었다. 천이 부풀지 않게 손바닥으로 눌렀다. 이제 손은 더 이상 병을 만지지 않았다.

카이델이 쟁반을 감쌌던 천을 다시 손끝으로 당겼다. 밀폐 용기의 뚜껑이 반쯤 보였다.

“이게 담긴 용기 하나도 내가 보관해 간다. 물기를 남긴 쟁반 전체가 아니라.”

“제안이 아니라 그냥 보관하시고 말하면 어때요.”

“대가다. 네 병이 남긴 얼룩과 이 용기에 남은 물을 대조해 두지.”

카이델이 뚜껑 부분을 손가락으로 돌려 천 바깥에서 흠을 확인하는 듯했다. 그가 상 위 쪽으로 몸을 조금 굽혔다. 등잔불이 그의 관자놀이 흰머리 한 가닥을 비췄다.

“내가 아는 제조 흠 하나가 자꾸 겹친다.”

그가 곧 육안으로 뚜껑 가장자리를 훑다가 멈췄다. 시선이 뚜껑 안쪽으로 옮겨갔다. 리에나도 바라봤지만 카이델의 등 뒤여서 보이지 않았다.

“세 명.”

카이델이 그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세 후보 사망 전, 그 숙소에서 회수한 밀폐 용기. 전부 여기와 같은 제조 흠이 있었어.”

리에나의 눈이 창문이 아니라 그에게 고정됐다. 카이델의 시선은 여전히 뚜껑에 멈춰 있었다. 그가 천을 조금 젖히자 등잔불빛이 금속 뚜껑 위의 가느다란 흠에 닿았다.

위장 성녀와 성기사의 거래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