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맹검귀
1화
밤비가 은신처 문짝을 때렸다. 빗방울은 한동안 걷히지 않을 기세로 골목 전체를 두드렸고, 그 소리는 문짝에 부딪힐 때마다 마치 수백 개의 작은 손가락이 나무를 긁는 것처럼 거칠었다. 골목 바닥의 물웅덩이마다 흔들리는 등불 그림자가 번졌고, 벽에 낀 이끼는 빗물을 머금어 검게 빛났다.
흑음회 외곽 살수가 숨는 집은 골목 끝 막다른 곳, 빗물 받이 돌이 기울어 물소리가 갈라지는 자리였다. 벽돌 사이로 스며든 빗물이 흙냄새를 끌어올렸고, 처마 끝에서는 굵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떨어져 바닥의 고인 물을 튕겨냈다. 그 물보라가 문 앞 계단의 모서리를 조금씩 파내고 있었다.
강휘는 처마 밑에 서서 숨을 죽였다. 어깨를 벽에 붙이지도 않았고,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그의 자세는 오랜 살수의 훈련으로 다져진 것이었다. 검은 옷자락이 바람에 살짝 들썩였지만 발끝은 젖은 돌 위에 뿌리박은 듯 고정되어 있었다.
허리춤의 검집을 왼손 검지로 가볍게 쓸며 칼집과 칼날이 만나는 각도를 확인했다.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운 쇠의 온도가 낯익었다. 흰 무명 안대가 비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젖은 면직물이 콧등과 광대뼈에 눌러 붙어 호흡할 때마다 살짝 들뜨고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안쪽 초점 없는 눈동자 위로 빗물 한 줄이 흘렀지만 닦지 않았다. 차가운 물방울이 눈꺼풀의 미세한 떨림을 타고 관자놀이 쪽으로 흘러내렸다.
강휘는 그 감각을 오히려 즐기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은 느리게 뛰었고, 호흡은 빗줄기 사이로 섞여들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집 안에서 기척이 움직였다.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눌리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누군가 체중을 한쪽 다리에서 다른 쪽 다리로 옮길 때, 눌린 마룻바닥의 섬유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였다.
발뒤꿈치를 든 채 체중을 옮기는 소리. 이 녀석은 문이 아니라 뒤창을 먼저 본다. 그 생각이 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하며 칼자루 위치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강휘는 이 살수의 습관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가 왼손잡이라는 것, 검보다는 단검을 선호한다는 것, 그리고 긴장할 때마다 손가락 관절을 하나씩 꺾는다는 것까지. 그 버릇을 역으로 이용하면 뒤창을 노리는 순간, 문 쪽이 비는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마디 소리가 났다.
딱. 딱.
그 소리는 빗소리조차 뚫고 나올 만큼 또렷했다. 왼손 새끼손가락부터 약지, 중지 순서로 힘을 줘 쥐는 소리. 3년 전 스승의 목을 벨 때 검을 쥐던 그 순서 그대로였다.
강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 소리가 기억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장면을 건드렸다. 스승의 마지막 순간, 손가락이 검자루를 감싸는 소리.
빗속에서도 그 소리만은 마른 칼집을 긁는 듯 선명했다. 강휘는 숨을 한 번 더 낮게 가라앉혔다.
강휘가 문을 걸어찼다. 문짝이 안쪽으로 밀려나며 살수가 뒤로 물러났다. 발걸음이 급해지면서 물에 젖은 신발 바닥이 흙바닥에 닿는 소리가 끈적하게 들렸다.
숨결이 한 박자 빨라졌다. 검을 뽑는 소리가 났다. 쇠가 가죽 칼집을 스치며 빠져나올 때의 마찰음이 방 안의 공기를 갈랐다. 방 안은 좁았고, 곰팡이와 썩은 짚 냄새가 빗물에 눌려 낮게 깔려 있었다.
“누구냐.”
살수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목소리 끝에 살짝 떨림이 실려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벽에 부딪혀 약간 울렸다.
강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호흡이 어디에서 끊기는지, 무게 중심이 어디로 쏠리는지에만 집중했다. 발소리를 들었다.
상대는 왼발을 반 보 뒤로 뺐다. 오른쪽 어깨가 살짝 낮아지는 바람 소리가 따라왔다. 검을 뽑기 직전 자세였다.
빗물이 문틈으로 밀려 들어와 바닥의 흙을 조금씩 불리고 있었지만, 강휘는 그 소리까지 놓치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상대의 폐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강휘의 검이 허리에서 빠져나왔다. 검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빗물 소리보다 낮고 날카로웠다. 칼집을 떠난 검끝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찬 빛을 만들었다.
한 걸음.
발바닥이 젖은 흙바닥을 밀었다. 살수의 심장이 두 번 뛰었다. 첫 박에 상대가 검을 올렸고, 둘째 박에 강휘의 검이 가슴께로 파고들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도 전에, 검은 이미 상대의 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살수는 미처 막지 못한 채 목구멍으로 짧은 숨을 토해냈다.
칼날이 뼈를 갈랐다. 그 감각은 검을 쥔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수의 입에서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검을 쥔 손이 힘을 잃으며 칼끝이 바닥을 긁었다. 무릎 꺾이는 소리. 몸이 옆으로 쓰러지며 나무 벽에 부딪혔다.
한 번, 그리고 다시 바닥. 시신이 떨어진 자리에 흙먼지와 빗물이 함께 튀었다.
빗물이 열린 문 안으로 들이쳤다. 바람이 방 안의 썩은 냄새를 휘저으며 강휘의 젖은 옷자락을 스쳤다. 강휘는 검을 한 번 털어 피를 떨어내고 칼집에 꽂았다.
피가 빗물에 섞여 옅게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신 옆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살수의 왼쪽 손목을 짚었다.
맥이 없었다. 손끝에 닿는 피부는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맥은 완전히 멈춘 뒤였다. 강휘는 손목을 놓고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렸다.
시신의 품을 뒤졌다.
겹옷 안쪽에서 딱딱한 것이 손끝에 닿았다. 반쪽짜리 목패였다. 손가락으로 표면을 훑자 새겨진 글자가 도드라졌다. 약방에서 쓰는 약재 무늬. 그리고 이름 한 자 한 자.
서. 진. 악.
강휘는 손끝으로 이름을 세 번 짚었다. 목패의 모서리는 오래 손때가 올라 반질반질했다. 강휘는 목패를 품 안에 넣었다.
손끝에 살수의 피가 묻어 있었다. 흙바닥에 문지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피는 비에 젖어 점점 옅어지며 강휘의 손가락 마디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제 은신처 구석으로 몸을 돌렸다.
젖은 짚단 옆, 약재 찌꺼기가 흩어져 있었다. 코를 대지 않아도 썩은 뿌리 냄새가 났다. 빗물이 스며든 짚단의 냄새와 뒤섞여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강휘는 찌꺼기 사이로 손을 넣어 만졌다. 손가락 끝으로 약재의 결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형태를 확인했다. 몇 가지는 흔한 진통제 성분이었고, 하나는 기관지를 넓히는 희귀한 뿌리였다. 청각 수련에 쓰는 약재였다.
그때였다.
호흡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약재를 씹어 뱉은 자리 주변으로 미세한 기온 차가 감돌았다. 누군가 이 자리에서 오래 호흡 수련을 했다.
호흡이 일정하게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한 흔적. 단전으로 들이쉬고 멈추고, 다시 아랫배로 내리누르는 방식. 서진악의 호흡이 아니었다.
청각 무공을 단련한 자의 것이었다. 강휘는 손을 멈췄다. 서진악이 아닌 누군가가 여기서 수련했고, 약재를 씹었다.
이 살수와 같은 공간에서. 머릿속으로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서진악의 목패가 여기 있는 이유, 그리고 지금은 자리를 비운 또 다른 인물의 존재가 짚여 왔다.
그는 손가락을 털고 일어났다. 은신처 안에서 나는 소리를 다시 정리했다. 시신 옆에서 목패를 꺼내 왼손으로 더듬었다.
반쪽짜리 목패의 뒤편에도 작은 글자가 있었다. 젖은 나무패는 딱딱한 표면에 미세한 이끼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강휘는 손톱으로 글자의 획을 따라가며 새겨진 내용을 읽었다.
약방 이름과 거리. 서리화의 임시 약방.
강휘는 목패를 넣고 복수 점검표를 꺼냈다. 닳은 종이에 세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첫 줄, 흑음회 외곽 살수.
종이는 여러 번 접혔다 펴진 자리마다 낡아 있었다. 그는 새끼손가락으로 살수의 검은 피를 찍어 첫 이름 위를 그었다. 손가락이 종이를 가로지르는 소리가 났다.
한 번으로 끝냈다. 피가 종이에 스며들며 이름을 지웠다. 종이에 남은 두 개의 이름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점검표를 품에 도로 넣고 검의 손잡이를 확인했다. 젖은 무명 안대 밖으로 들리는 소리는 빗물뿐이었다. 시신의 마지막 숨결이 남긴 뒤꿈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강휘는 잠시 그 소리를 지웠다. 빗소리만 남았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어둠은 한층 더 깊게 내려앉았다.
강휘는 시신을 남겨둔 채 돌아섰다.
문턱에 서서 반쪽 목패의 뒷면을 손끝으로 짚었다. 서리화의 임시 약방. 3리쯤, 서문 밖 약재 골목이라 새겨져 있었다.
문턱의 나무가 빗물에 불어 있어 발밑에서 미세하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강휘는 고개를 약간 들었다. 빗줄기가 어둠을 뚫고 골목의 돌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빗속으로 나섰다.